코로나 바이러스와 그리스도
존 파이퍼 지음, 조계광 옮김 / 개혁된실천사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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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에 개혁된실천사에서 존 파이퍼의 저서 코로나 바이러스와 그리스도가 출간되었다.
개인적으로 그의 저서는 거듭남 이후 두 번째이다.

이 책은 들어가는 말, 대지 두 개, 마치는 기도로 구성되어 있다.

저자는 들어가면서 현재 온 세계에 창궐한 코로나19를 보면 우리에게 견고한 반석 위에 서 있는지에 대해서 질문하며 시작한다.

저자의 이야기처럼 확률게임은 우리에게 소망을 줄 수 없다. 그러기에 저자는 우리에게 더 나은 길, 더 나은 토대가 있다고 말한다. 가능이라는 사상누각이 아니라 확실한 반석이 존재만을 말한다. 하나님은 성경에 근거하여 과거에도 말씀하셨다. 지금도 여전히 말씀하시고 앞으로 우리에게 말씀하실 것이다. 자신의 예를 들어 설명한다. 비뇨기과 진찰실에서 대기 중 하나님께서 데살로니가전서 5장 9-10절을 통해서 말씀해 주셨다. 그 중에 깨어 있든지 자든지 즉 살든지 죽든지 나는 하나님과 함께 살 것이다. 이 말씀을 어떻게 적용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의문이 들었다.그 때 하나님은 그에게 바로 예수 그리스도 때문이라고 말씀해 주셨다. 즉 그 분께서 자신의 죄와 죄책과 징벌을 담담하셨기 때문이다.이것이 우리의 발을 받쳐주는 견고한 반석인 것이다. 물론 혹자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너무 미래에서만 소망을 발견하는 것이 아니냐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저자의 고백과 같이 지금 이 순간에도 그 분께서 우리의 발을 받쳐주고 계신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가 이와 같이 말할 수 있는 이유는 미래의 소망이 현재의 소망이기 때문이다. 저자의 설명과 같이 소망의 목적은 미래에 있다. 하지만 우리는 현재 소망을 경험하다. 이 경험은 전적으로 그 분의 능력이다. 따라서 우리는 미래의 소망을 가볍게 여기지 말아야 한다. 우리의 미래는 확실하다. 또한 현재도 달콤하고 풍성한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있다.

이제 우리는 사도바울이 고린도후서 12장 15절에 기록된 대로 현재 경험하고 있는 미래의 소망 속에 담겨져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위대하심을 널리 알려기 위해서 우리 각자 자신을 기꺼이 내어드려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의 견고한 반석이시다. 하나님은 단지 삶과 죽음에만 관여하시는 분이 아니라 그 보다 훨씬 더 깊숙이 우리의 삶을 인도해 주신다. 사실 하나님께서 결정하지 않으신 일은 단 한 가지도 내 삶에 일어나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견고한 반석이 되시는 하나님이시다. 우리는 세상에 나아가 많은 사람들에게 견고한 반석이신 예수 그리스도 위에 함께 서자고 초대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에 담겨 있는 말씀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만약 우리가 근심하는 자와 같으나 항상 기뻐하라고 말씀하신 진리의 비밀을 깨달았다면 현재 우리 앞에 펼쳐지고 있는 상황에도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달콤함은 결코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현재 상황에도 하나님은 우리의 삶을 지탱해 주고 계신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된다. 이것이 성경의 진리됨이다. 우리 모두 영혼 안에 하나님의 형태를 따라 만들어진 형판이 있다. 이 사실에 대해서 바울 사도는 로마서 1장 19-21절을 통해서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그들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그들에게 보이셨느니라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라고 증언해 주셨다. 또한 요한 사도 역시 요한복음 1장14절을 통해서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라고 증언해 주셨다.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에서 비치는 자증적 영광이다. 이것이 우리의 믿음을 뒷받침해 주는 견고한 토대이다. 실제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그 분의 영광이 얼마나 위대하고 놀라운 지를 맛보았다. 이 진리를 어느 누구도 폐하지 못한다고 말씀해 주셨다. 또한 바울 사도는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이라고 말했다. 베드로 사도는 예언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우리가 코로나19로 인해서 위험한 상황 가운데에 놓여 있을지라도 하나님과 같이 우리를 위해 해 줄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 위로는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나온다.

우리의 반석이 되시는 하나님은 거룩하고 의로우고 선하다. 그 분의 거룩함은 완전과 온전함을 의미한다. 물론 성경은 그 분의 거룩하심에 대해서 초월적인 부분만을 말하고 있지 않는다. 이는 코로나 19를 하나님과 관련하여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지에 대해서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질문을 제기했다. 의로움은 올바른 일을 행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의로우심은 어떤 기준을 충족시키는 것일까요?

디모데후서 2장 13절을 보면 우리는 미쁨이 없을지라도 주는 항상 미쁘시니 자기를 부인하실 수 없으시리라 라고 기록되어 있다. 바로 하나님 자신이다. 이것이 성경은 답변이다. 하나님은 자신의 거룩하심과 의로우심에 따라 행하신다. 이는 그 분의 타협 없음을 의미한다. 또한 그 분의 의로우심은 선하심과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다. 그 분의 거룩하심은 선하심을 통해서 넘쳐흐른다. 또한 그 분의 의로우심은 선하심을 베푸는 기준이다. 이런 하나님의 섭리는 코로나19와 연결해서 그 분은 더 이상 거룩하시거나 의로우시거나 선하지 않다고 성급하게 결론지지 말아야 한다. 물론 우리는 모두 죄인이다. 앞서 말씀드린 반응을 얼마든지 보일 수 있다. 앞서 우리가 어려운 상황 가운데에 있을 때에도 그 분은 불의하지 않으셨다. 그 분은 신기루가 아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다스리시는 분이시다. 완전히 지혜로우신 분이시다. 이런 하나님의 신적 특성에 대해서 이사야 선지자는 이사야 46장9-10절에 너희는 옛적 일을 기억하라 나는 하나님이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느니라 나는 하나님이라 나 같은 이가 없느니라 내가 시초부터 종말을 알리며 아직 이루지 아니한 일을 옛적부터 보이고 이르기를 나의 뜻이 설 것이니 내가 나의 모든 기뻐하는 것을 이루리라 하였노라 라고 증언하여 주셨다. 이것이 하나님의 주권이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결정하신 뜻을 반드시 이루시는 분이시다. 이 외에도 다니엘 4장 35절과 에베소서 1장 11절 등을 참고해서 보면 좋을 것 같다. 하나님은 이 땅을 창조하시고 모든 일을 친히 다스리시다. 따라서 코로나19 역시 하나님께서 허용하신 것이다. 물론 이 상황으로 인해서 많은 생명이 위협을 당할지라도 생명의 주관자가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어려움, 고통, 고난 등을 주시지만 이 상황을 견딜 수 있는 힘과 능력을 주시는 분이다. 이런 하나님의 통치는 우리에게 좋은 소식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거룩하고, 의롭고, 선한 분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내어준 분이다. 여기에서 모든 것은 하나님의 뜻, 그 분의 이름을 영화로움, 우리의 필요 등을 가리킨다. 심지어 사탄의 악한 의도조차도 선으로 바꾼다. 사탄은 하나님의 허락 아래 우리를 고난과 죽음으로 몰아갈 수 있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결정권자는 없다. 이는 창세기 50장 20절에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라고 기록된 요셉의 고백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물론 우리가 오해하지 말아야 할 점이 있다. 하나님은 상황을 이용해서 선으로 바꾸는 분이 아니다. 처음부터 분명한 목적을 실행하는 분이다. 비록 요셉의 형들은 악한 의도를 품고 있었지만 하나님은 선한 목적을 가지고 계셨다. 하나님은 때에 되어 처음부터 가지고 있던 목적과 의도를 그대로 이룬다. 예수님은 이 부분에 대해서 마태복음 11장 29-31절에 하나님의 주권에 대해서 아름답게 표현해 놓았다.

현재 우리 앞에 펼쳐있는 상황 가운데에서 하나님은 영혼을 인도하고 있다. 이것이 우리가 근심 가운데에서 항상 기뻐할 수 있는 이유이다. 또한 지난 2천년 동안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죽음 앞에서 반석 같은 확신을 가지고 담대한 삶을 살 수 있었던 이유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코로나 19를 통해서 지금 무엇을 하고 계실까요?

잠언 3장 5절에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내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고 말씀해 주셨다. 우리는 유한하고 부패한 존재이다. 성경은 우리가 하나님을 신뢰해야 될 이유에 대해서 밝힌 바 있다. 우리는 하나님의 계획을 이해할 수 없다. 그래서 우리에게 성경을 주셨다.(p.67-8) 성경은 우리의 현주소를 보여주고 있다. 죄가 들어온 후 세상은 황폐해졌다. 그리고 모두 심판 아래 놓이게 되었다. 하지만 바울 사도는 로마서 8장 1절을 통해서 우리에게 놀라운 소식을 전해주었다. 성경은 사탄에 대해서 이 세상의 신(고후4:4), 이세상의 임금(요12:31), 공중의 권세 잡은 자(엡2:22) 등 다양한 표현들로 기록해 놓았다. 하지만 그는 하나님의 통제를 받는 존재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물리적 심판을 통해 세상의 악을 징치하는 이유는 하나님을 거스르는 도덕적 악을 일깨워주는 경고표지판인 것이다.

모든 불행은 사람이 타락의 결과 즉 죄가 세상에 들어온 결과이다. 성경을 보면 특정한 죄에 대해서 특정한 심판이 주어지는 사례를 발견할 수 있다. 첫 번째 사례는 사도행전 12장이다. 본문 23절을 보면 헤롯왕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다. 스스로 자신을 높이는 자를 심판한 것이다. 만약 우리가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스스로 자신을 높였음에도 불구하고 죽어 엎드려지지 않았다면 큰 사랑을 받은 것이다. 두 번째 사례는 로마서 1장 27절이다. 여기에 보면 상당한 보응에 대해서 말씀해 주고 있다. 상당한 보응은 들이 저지른 죄로 인해서 그들에게 임한 결과를 의미한다. 두 본문을 모든 상황에 적용할 수 없다. 그러므로 모든 고난이 특정한 죄에 대한 심판이라고 말할 수 없다. 그러므로 코로나19는 결코 단순히 어떤 사람에 대한 확실하고 단순한 징벌이 아니다. 우리의 고난은 정죄함을 의미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로 십자가 위에서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확증하셨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의 고난은 정죄와 파멸이 아니라 징계의 목적일 수 있다.

교회사를 보면 종말에 대한 그릇된 사례들이 많이 기록되어 있다. 하지만 분명한 한 가지 사실은 현재 역사는 재림을 향해 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마태복음 4장 27절을 보면 예수님이 말한 재림의 징조들(전쟁, 기근, 지진 등)에 대해서 기록되어 있다. 바울 사도는 로마서 8장 22절에 산고로 기록해 놓았다. 예수님은 우리가 코로나19를 비롯하여 모든 형태의 산고를 재림의 징조로 받아들여 자신의 다시 오심에 대해서 말씀하셨다. 깨어 있으라고 하셨다. 메시지는 분명하다. 준비하는 방법은 죄사함을 받고 빛 가운데에 행하라고 하셨다.

코로나 19만이 회개를 촉구하는 유일한 신호는 아니다. 예수님은 누가복음 13장 1-5절에 모든 자연재해가 회개를 촉구하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해당될 수 있다. 예수님은 본문에서 재난의 의미를 모든 사람에게 적용하셨다. 즉 모두 회개하라는 것이다. 두 번이나 말씀하셨다. 이것이 강조점이다. 이제 우리의 초점을 우리 자신에 맞추어야 한다. 우리는 그들의 죄가 아니라 내 자신의 죄에 대해서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그렇다면 회개는 무엇일까?

회개란 우리의 인격적 변화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고난 가운데에 있게 한 이유는 우리를 깨우쳐 그리스도를 의지하게 하심이다. 이와 같이 현재 고난에는 분명한 목적이 있다. 이 상황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을 내 삶의 모든 영역을 인도하시는 분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우리가 바울 사도가 겪었던 육체의 가시를 통해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이었는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바울 사도는 자신의 육체의 가사를 없애달라고 세 번이나 기도하였다. 하지만 하나님은 자신의 분명한 뜻을 위하여 응답하여 주시지 않으셨다. 그는 이 과정을 통해서 육체의 잃음을 통해서 그리스도를 더욱 얻었다.

현재 코로나19는 작게는 불편함에서 크게는 생명을 잃는 위험을 주었다. 바울 사도가 그리스도를 얻었다. 이것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다. 우리는 회개해야 한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무한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삶을 살아야 한다.

우리는 큰 위기 상황 속에서 선을 해야 한다. 예수님은 이 부분에 대해서 우리에게 말씀을 통해서 명령하셨다.(마5:11-14) 베드로는 하나님의 뜻대로 부름 받은 자들은 고난 가운데에 선을 행하라고 말하였다. 이는 초대교회의 성도들의 모습 속에서도 발견할 수 있는 모습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주권적 인도하심과 우리의 섬김을 통해 하나님의 선하심과 지혜로운 목적이 이루어지도록 기도해야 한다.

저자는 결론을 기도로 마무리한다.

개인적으로 몇 가지 아쉬운 점을 적어본다. 책의 상당한 부분이 성경구절을 인용했다. 그래서 실제로 읽을 내용은 많지 않다. 저자는 책의 시작부터 끝까지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하고 있다. 물론 저자의 의도와 마음은 충분히 이해가 된다. 또한 그의 주장은 틀리지 않았다. 하지만 책을 읽으며서 받은 느낌은 고집스럽다. 개인적으로 저자의 다른 저서를 몇 권 가지고 있다. 이 책에 대한 아쉬움을 그의 다른 책들로 대신해 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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