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말의 아이들 ㅣ 소원잼잼장르 4
전건우.정명섭.최영희 지음, 안경미 그림 / 소원나무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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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의 아이들》 | 전건우·정명섭·최영희 지음, 안경미 그림

아이들이 보는 문학이라고 하면 희망적이고 밝은 이야기를 먼저 떠올리게 된다. 조금 우울한 이야기가 등장하더라도 친구 관계나 가족 사이의 갈등처럼 아이들의 일상에서 만날 법한 문제이고, 결국에는 잘 해결되는 경우가 많다. 그런 투명하고 반짝이는 아동·청소년 문학 사이에 아포칼립스 소설이라니. 아이들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종말은 어떤 모습일까. 어떤 소재를 어떻게 풀어나갈까 궁금한 마음으로 책을 펼쳤다.

《종말의 아이들》에는 전건우, 정명섭, 최영희 세 작가가 각자의 방식으로 그려낸 세 편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소행성 충돌, 백신으로 시작된 정체불명의 질병, 변종 메뚜기라는 서로 다른 재난이 등장한다. 그런데 세 이야기를 읽으며 오래 생각하게 된 것은 종말 그 자체보다 그 앞에 선 아이들의 모습이었다.

세상이 무너지는 상황에서도 아이들은 그저 살아남기만을 위해 움직이지 않는다. 누군가를 기다리고, 믿고, 때로는 함께 살아갈 방법을 찾는다. 작가마다 재난을 상상하고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도 달라 세 편을 비교하며 읽는 재미가 있었다.

우리가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세계는 어떤 모습일까. 안전하고 따뜻한 세계를 보여주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 세계의 바깥에 얼마나 다양한 이야기가 있는지도 보여줄 필요가 있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종말의 아이들》은 아이들이 만날 수 있는 이야기의 범위를 한 뼘 더 넓혀주는 책처럼 느껴졌다. 어쩌면 누군가에게는 이 책이 처음 만나는 아포칼립스 소설이자, 앞으로 더 많은 장르소설을 찾아 읽게 되는 시작이 될지도 모르겠다.

*본 리뷰는 소원나무로부터 도서 지원을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소원나무 #종말의아이들 #아포칼립스 #아동문학 #청소년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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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극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선영 옮김 / 북로드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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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극》 | 미야베 미유키 지음

서로의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이 인터넷에서 가족이 되었다. ‘아빠’ 역할을 맡은 도코로다 료스케가 살해되면서 평범해 보였던 가족놀이는 미스터리의 중심으로 들어온다. 경찰은 가상 가족의 구성원들을 한 명씩 불러 조사하고, 그 모습을 실제 딸 가즈미가 지켜본다. 누가 아버지를 죽였는지, 이들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따라가며 읽게 된다.

2001년에 발표된 소설이라 인터넷 게시판과 이메일로 소통하는 모습은 지금 읽으면 조금 옛스럽다. 나 역시 어릴 때 인터넷 카페에서 열심히 활동했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라 그 시절의 온라인 공간이 반갑기도 했다. 기술은 달라졌지만 현실에서는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온라인에서 나누고, 그곳에서 관계와 소속감을 찾는 모습은 여전히 낯설지 않다.

가상 가족의 ‘딸’과 실제 딸의 이름이 같다는 설정이 흥미로웠다. 현실과 가상의 경계가 겹쳐지면서 누구도 완전히 믿을 수 없게 되고, 나름대로 범인을 추측하며 읽었지만 마지막에 밝혀지는 진실은 예상과 달랐다. 하나의 ‘가족극’이 펼쳐지는 과정은 모든 독자들이 재미있게 읽을만한 요소이다.

소설의 시작에는 사이조 야소의 시 「나비」가 제사로 놓여 있다.

아마도 나는 호주머니에서
창백하게, 부서진
나비의 잔해를 꺼내리라

처음에는 왜 이 시를 인용했을까 궁금했는데, 책을 덮고 나니 가상 가족이 떠올랐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만들어진 관계는 흩어지고 사라졌지만, 그 안에서 나눈 감정과 위로까지 가짜였다고 말할 수 있을까. 결국 손에 남는 것은 완전한 관계도, 아무것도 아닌 것도 아닌 ‘부서진 나비의 잔해’ 같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가족은 가까운 만큼 서로를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때로는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사람에게 오히려 더 많은 이야기를 털어놓기도 한다. 살인사건의 진실을 따라가던 이야기가 결국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어디까지 진짜라고 부를 수 있는지 생각하게 했다.

*위 도서는 북로드로부터 제공받아 독서 후 작성한 서평입니다.

#북로드 #미야베미유키 #가족극 #가상가족놀이 #미스터리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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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구는 왼쪽에 - 『자본』의 세계사와 마르크스 없는 한국사회
강신준 지음 / 사계절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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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구는 왼쪽에》 | 강신준 지음

한국에서 정규 교육을 받고 자란 나에게 ‘마르크스’라는 이름은 왠지 낯설고 어렵게 느껴진다. 그래서 책을 읽기 전에는 강신준 저자가 왜 지금 다시 마르크스를 소환하는지 궁금했다.

저자는 오래전부터 『자본』을 연구해왔다. 《자본론의 세계》에서 『자본』을 풀어 설명하고 《오늘 『자본』을 읽다》에서 오늘의 현실과 연결해온 연구의 흐름을 생각하면, 《비상구는 왼쪽에》는 그 질문을 한국사회까지 가져온 책처럼 느껴진다. 특히 ‘마르크스 없는 한국사회’를 돌아보며, 마르크스의 저작이 오랫동안 금지되었던 역사와 그로 인해 우리가 충분히 논의하지 못했던 문제들을 짚는다.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야만과 문명’을 구분하는 기준이었다. 저자는 야만은 오늘만 살고 문명은 내일까지 계산한다고 말한다. 내가 죽은 뒤에도 살아갈 사람까지 생각할 때 양보와 타협의 자리가 생긴다는 것이다. 이 문장을 읽고 나니 주 5일제와 하루 8시간 노동처럼 지금은 당연하게 여기는 것들도 누군가가 더 나은 내일을 고민하며 만들어온 결과라는 생각이 들었다.

책은 마르크스 이후의 실패한 실천도 외면하지 않는다. 소련과 볼셰비키를 비롯한 여러 사례를 살펴보면서도 ‘연주에 실패했다고 악보를 찢어버리지는 않는다’고 말한다. 실패한 것은 실천이지 교본 자체가 아니라는 것이다. 과거의 실패를 그대로 반복하자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살펴보고 지금의 현실에 맞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의미로 읽혔다.

그리고 책의 마지막에는 한국사회가 앞으로 고민해야 할 과제를 제시한다. 마르크스 문헌을 제대로 갖추는 일, 노동조합과 노동자 정당 같은 실천의 주체를 세우는 일, 사회가 공유할 강령을 마련하는 일, 그리고 시민정치교육을 이어가는 일이다. 마르크스를 다시 읽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사상을 어떻게 현실 속에서 이해하고 실천할 것인지까지 질문하는 셈이다.

마르크스에 대한 찬반의 결론을 내려주는 책이라기보다, 우리가 어떤 사회에서 살아가고 어떤 내일을 만들어갈 것인지 질문하는 책이었다. 오늘만 살 것인가, 내일까지 계산할 것인가. 책을 다 읽고 나니 처음에는 낯설게만 느껴졌던 《비상구는 왼쪽에》라는 제목도 조금 다르게 보였다.

*본 리뷰는 사계절출판사의 도서 지원을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비상구는왼쪽에 #강신주 #마르크스 #자본 #서평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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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자 문명 - 원자에서 양자컴퓨터까지, 세계를 움직이는 양자의 힘
한정훈 지음 / 김영사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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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자 문명》 | 한정훈 지음

《양자 문명》은 양자역학 자체를 설명하는 데 그치지 않고, 양자에 대한 이해가 어떻게 새로운 기술을 만들어내고 우리가 살아가는 문명까지 바꾸어왔는지를 살펴보는 책이다. 유리부터 시작해서 원자와 양자역학의 탄생, 핵에너지, 반도체, 레이저를 거쳐 양자컴퓨터와 양자통신으로 이어지고, 후반부에는 AI와 양자 기술이 만나는 지점까지 다룬다. 과학의 발전을 각각의 사건으로 보기보다 하나의 큰 흐름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해준다.

솔직히 나에게는 꽤 어려운 책이었다. 생소한 용어도 많았고 물리학의 개념을 따라가다 보면 읽던 부분을 다시 읽어야 할 때도 있었다. 한 번은 ‘큐비트’라는 단어를 훅훅 읽다가 ‘큐피트’로 보고 “뭐? 큐피트?” 하며 다시 읽기도 했다. 단어를 많이 알지 못하는 나의 웃픈 순간이었다.

그럼에도 끝까지 읽고 나니 세부적인 내용을 모두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이 책이 보여주는 큰 흐름과 맥락은 조금 알 것 같았다. 특히 후반부 AI 이야기는 반가웠다. 예전에 김영사의 《AI 메이커스, 인공지능 전쟁의 최전선》을 읽었던 덕분에 익숙한 인물들의 이름이 등장하니 괜히 아는 사람을 만난 것처럼 반갑고 친근했다.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는 해외 한복판에서 알고 지내던 사람을 우연히 만난 기분이랄까.

어려운 부분이 많았던 만큼 완독하고 나니 오히려 뿌듯하다. 당장 양자역학을 설명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지만, 우리가 사용하는 기술과 지금의 문명이 어떤 과학적 발견들의 흐름 위에 만들어졌는지를 조금이나마 알게 됐다. 덕분에 과학 상식도 하나둘 늘어가는 것 같고, 어쩐지 조금 더 멋진 현대인이 된 기분이다.

*위 도서는 김영사로부터 제공받아 독서 후 작성한 서평입니다.

#김영사 #양자문명 #한정훈 #양자 #물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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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심장을 줄게 - 심장을 이식받은 기상캐스터의 햇살 찬란 투병기
오수진 지음 / 소소사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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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심장을 줄게》 | 오수진 지음

“사실은 간절히 살고 싶었던 것이다.”

책을 읽으며 이 문장이 오래 남았다. 중환자실에서 “이제 그만하고 싶다”고 말했던 저자는 그때의 자신을 돌아보며, 죽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고통에서 벗어나 사랑했던 원래의 삶으로 돌아가고 싶었던 것이라고 말한다. 결국 저자가 간절히 원했던 것은 대단한 무언가가 아니라 평범한 일상이었다.

서른 살에 암을 진단받고 서른세 살에는 심장이식을 받은 저자는 여러 번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선다. 카메라 앞에서는 씩씩한 기상캐스터였지만 집으로 돌아오면 항암치료로 달라진 몸을 마주할 때의 이질감이 내게도 그대로 와닿았다. 그런 시간을 지나 다시 살아난 뒤에는 가슴에 남은 흉터를 자신의 삶을 증명하는 흔적으로 받아들이고,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에게 받은 심장에 감사하며 장기기증의 이야기를 전하는 사람이 된다.

그 과정에서 저자가 깨달은 것은 삶이 결코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기증자의 선택과 가족의 용기, 의료진의 노력, 곁을 지킨 사람들의 마음이 모여 지금의 삶을 만들었다. “사실 우린 연결된 채로 살아가고 있었다”는 문장이 이 책을 읽고 난 뒤 오래 생각났다.

“나는 무려 한 개의 목숨을 더 선물받은 사람이다.”

저자에게 두 번째 삶은 매일 특별하게 살아야 한다는 뜻이 아니었다. 미래를 아끼면서도 오늘을 놓치지 않는 것, 평범하게 반복되는 하루를 살아내는 것이었다.

나 역시 매일 비슷하게 흘러가는 하루를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 같다. 누군가에게는 간절히 되찾고 싶었던 그 평범한 하루를, 나에게도 주어진 삶의 한 장면으로 조금 다르게 바라보게 됐다.

*위 도서는 소소사로부터 제공받아 독서 후 작성한 서평입니다.

#내심장을줄게 #오수진 #소소사 #에세이 #서평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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