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구는 왼쪽에》 | 강신준 지음한국에서 정규 교육을 받고 자란 나에게 ‘마르크스’라는 이름은 왠지 낯설고 어렵게 느껴진다. 그래서 책을 읽기 전에는 강신준 저자가 왜 지금 다시 마르크스를 소환하는지 궁금했다.저자는 오래전부터 『자본』을 연구해왔다. 《자본론의 세계》에서 『자본』을 풀어 설명하고 《오늘 『자본』을 읽다》에서 오늘의 현실과 연결해온 연구의 흐름을 생각하면, 《비상구는 왼쪽에》는 그 질문을 한국사회까지 가져온 책처럼 느껴진다. 특히 ‘마르크스 없는 한국사회’를 돌아보며, 마르크스의 저작이 오랫동안 금지되었던 역사와 그로 인해 우리가 충분히 논의하지 못했던 문제들을 짚는다.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야만과 문명’을 구분하는 기준이었다. 저자는 야만은 오늘만 살고 문명은 내일까지 계산한다고 말한다. 내가 죽은 뒤에도 살아갈 사람까지 생각할 때 양보와 타협의 자리가 생긴다는 것이다. 이 문장을 읽고 나니 주 5일제와 하루 8시간 노동처럼 지금은 당연하게 여기는 것들도 누군가가 더 나은 내일을 고민하며 만들어온 결과라는 생각이 들었다.책은 마르크스 이후의 실패한 실천도 외면하지 않는다. 소련과 볼셰비키를 비롯한 여러 사례를 살펴보면서도 ‘연주에 실패했다고 악보를 찢어버리지는 않는다’고 말한다. 실패한 것은 실천이지 교본 자체가 아니라는 것이다. 과거의 실패를 그대로 반복하자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살펴보고 지금의 현실에 맞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의미로 읽혔다.그리고 책의 마지막에는 한국사회가 앞으로 고민해야 할 과제를 제시한다. 마르크스 문헌을 제대로 갖추는 일, 노동조합과 노동자 정당 같은 실천의 주체를 세우는 일, 사회가 공유할 강령을 마련하는 일, 그리고 시민정치교육을 이어가는 일이다. 마르크스를 다시 읽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사상을 어떻게 현실 속에서 이해하고 실천할 것인지까지 질문하는 셈이다.마르크스에 대한 찬반의 결론을 내려주는 책이라기보다, 우리가 어떤 사회에서 살아가고 어떤 내일을 만들어갈 것인지 질문하는 책이었다. 오늘만 살 것인가, 내일까지 계산할 것인가. 책을 다 읽고 나니 처음에는 낯설게만 느껴졌던 《비상구는 왼쪽에》라는 제목도 조금 다르게 보였다.*본 리뷰는 사계절출판사의 도서 지원을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비상구는왼쪽에 #강신주 #마르크스 #자본 #서평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