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테라스에서 쓴 편지 - 깊은 고독 속에서 건져 올린 반 고흐의 말
빈센트 반 고흐 지음, 신성림 편역 / 청림Life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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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에 테라스에서 쓴 편지》 | 빈센트 반 고흐 지음

이미 반 고흐라는 화가의 결말을 알고 있기 때문인지, 그의 편지를 읽는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 더 나아지려고 애쓰고, 어떻게든 자신의 삶을 꾸려가기 위해 몸부림치는 모습이 편지 곳곳에 보인다.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과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을 찾으려 했고, 혼자서는 버티기 힘든 순간에는 동생 테오에게 기대기도 했다. 어떻게든 살아내기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계속 찾았던 사람처럼 느껴졌다.

편지의 흐름은 그의 인생을 나열하고 있어서 처음에는 힘들어하면서도 다시 일어서려는 모습이 보이는데, 점점 우울에서 쉽게 빠져나오지 못하고 ‘파멸하는 편이 낫다’는 식의 말을 하기 시작한다. 이미 그의 마지막을 알고 있으니 그 말들이 단순한 절망의 표현으로만 읽히지 않았다. 한 사람이 조금씩 삶을 놓아가는 과정처럼 느껴져서, 그의 인생의 끝이 가까워지는 것이 보이는 듯했다.

한국에서 고흐가 유독 사랑받는 이유가 뭘까? 그의 그림이 아름답고 독창적인 것도 있겠지만 나는 그의 삶 역시 큰 몫을 한다고 생각한다. 정서적으로 불안정했고 가난했으며, 생전에 공식적으로 판매된 것으로 알려진 작품은 한 점뿐이었다. 살아서는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던 사람이 죽은 뒤 세계적인 화가가 되었다는 이야기는 이상할 만큼 우리에게 익숙하고 애틋하다. 누구보다 애썼지만 쉽게 인정받지 못한 사람에게 더 마음이 쓰이기 때문이 아닐까?

어렸을 땐 교과서에서 봤던 고흐가 생을 마친 나이와 내 나이가 크게 다르지 않은 순간이 왔다. 예전에는 그의 삶을 그저 비극적인 천재의 일대기로 바라봤다면, 지금은 그 나이까지 살아온 한 사람의 시간과 고민을 조금은 상상할 수 있을 것 같다. 무엇을 해도 뜻대로 되지 않을 때의 좌절, 인정받고 싶은 마음, 가족에게 기대면서도 미안한 마음, 혼자 있고 싶으면서도 누군가에게 이해받고 싶은 마음. 그런 것들이 꼭 고흐만의 것은 아닐 것이다.

이전에는 그의 작품만을 보았다몬 이제는 그 뒤에 있던 사람의 마음을 본다. 끝내 자신의 삶을 완전히 구해내지는 못했지만, 마지막까지 더 나은 삶을 찾으려고 애썼던 사람. 나는 그런 고흐의 모습을 편지를 통해 조금 더 가까이에서 바라볼 수 있었다.

지금도 자신이 잘하고 있는지 끊임없이 의심하면서 살아가는 사람, 열심히 살고 있지만 좀처럼 인정받지 못한다고 느끼는 사람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고흐의 삶이 우리에게 정답을 알려주지는 않지만, 적어도 나만 이렇게 흔들리는 것은 아니라는 위로가 되어줄 것이다. 흔들리면서도 어떻게든 살아보려 했던 사람의 이야기를 읽으며 우리의 삶을 붙들 수 있는 책이 되길 바란다.

*위 도서는 청림출판으로부터 제공받아 독서 후 작성한 서평입니다.

#밤의테라스에서쓴편지 #빈센트반고흐 #에세이 #편지 #청림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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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경험의 이야기
루이자 메이 올콧 지음, 저녁달 편집부 옮김 / 저녁달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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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경험의 이야기》 | 루이자 메이 올컷 지음

루이자 메이 올컷의 대표작은 《작은 아씨들》이지만 나는 아직 그 책을 읽어보지 않았다. 그래서 《일: 경험의 이야기》를 읽으며 올컷이라는 작가를 새롭게 알게 되었다. 자신의 경험이 녹이있다는 이 책은 한국에서 사는 나에게도 와닿는 지점이 많았고, 작가가 들려주는 이야기가 정말 매력적이었다. 이 책을 덮고 나서는 《작은 아씨들》도 읽어보고 싶어졌다.

스무 살의 크리스티는 더 이상 누군가에게 기대어 살고 싶지 않다는 생각으로 외삼촌의 집을 떠난다. 그리고 하녀, 배우, 가정교사, 말벗, 재봉사 등 여러 일을 경험한다. 어떤 일은 즐겁지만 어떤 일은 고되고, 여성이라는 이유로 무시당하거나 정당한 대가를 받지 못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크리스티는 주저앉지 않는다. “남을 위해 일하고 돈을 받는다고 해서 왜 부끄러워해야 하지?”라고 생각하며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부터 시작한다.

나에게도 일은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기보다 의식주를 꾸리고 자립하기 위해 필요한 수단에 가깝다. 그래서 크리스티가 어떤 일이든 일단 해내며 살아가는 모습이 유난히 와닿았다. 특히 자신의 삶을 장작불에 빗대어 “살아 있는 동안 유용하고 밝게 빛나고” 싶다고 말하는 장면이 오래 남았다.

그녀가 그 과정에서 얻는 것은 단순한 경력이 아니다. 하녀로서 겪은 모욕, 재봉사로서 경험한 가난, 돌봄의 현장에서 마주한 타인의 고통은 그녀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바꾼다. 그렇게 지나간 경험들은 사라지지 않고 다음 삶의 태도가 된다.

크리스티의 삶에 올컷 자신의 경험이 녹아 있다는 점도 인상적이었다. 올컷 역시 교사, 가정교사, 재봉사, 간호사 등 여러 일을 하며 생계를 꾸렸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여성의 노동과 자립을 이야기했다.

두꺼운 책이라 처음에는 걱정했는데 생각보다 술술 읽혔고, 번역도 매끄러워 오래된 고전이라는 거리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19세기의 여성 노동을 다룬 오래된 소설인데도 크리스티의 고민과 태도가 지금의 나에게 낯설지 않았다는 것이 이 책의 가장 큰 인상이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발견했으면 좋겠다.

*위 도서는 저녁달로부터 제공받아 독서모임 후 작성한 서평입니다.

#일경험의이야기 #루이자메이올컷 #저녁달출판사 #서평단 #독서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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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눈이 반했습니다 - 꿰맨 눈과 기울어진 사랑
김하진 지음 / OTD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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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눈이 반했습니다》 | 김하진 지음

여섯 편의 단편은 소재부터 매우 신선하다. 박스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는 바비인형, 멀쩡한 한쪽 눈을 봉합하는 사람들, 사람을 견인하는 시설, 인간의 아내가 되고 싶어 하는 AI 로봇까지. 조금은 이질적이고 기묘한 설정으로 지금 우리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는 게 신기했다. 그 안에 담긴 감정은 의외로 익숙했기 때문이다.

가장 인상 깊었던 작품은 역시 표제작 「한 눈이 반했습니다」였다. ‘한눈에 반하다’라는 익숙한 말을 ‘한 눈’으로 비틀어, 완벽한 대칭을 위해 한쪽 눈을 봉합하는 세상을 만들어낸 발상이 재미있으면서도 섬뜩했다. 특히 “잘 생각해봐. 자기 선택이었잖아.”라는 문장이 오래 남았다. 분명 자신의 선택인데, 그 선택이 정말 자신의 욕망에서 비롯된 것인지 생각하게 만드는 말이었다. 남들이 좋다고 하는 것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 순간 그것을 내가 원했던 것이라고 믿게 될 수도 있으니까.

「솔로 인 더 라이트」에서는 인형을 통해 관계와 삶의 방향을 생각하게 하고, 「얼리지 않아」에서는 남들과 다른 모습을 가진 사람이 자신을 받아들이는 과정을 보여준다. 「견인지역」에서는 삶에서 조난당한 사람들을 만나고, 「베이비 캐리어」와 「비닐, 하우스」에서는 가족과 출산, 관계의 의미를 들여다본다. 소재도 분위기도 서로 다른 이야기들이지만, 결국에는 내가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싶은지, 타인의 기준과 내 마음 사이에서 무엇을 선택하며 살아가는지 생각하게 했다.

단편을 읽을 때마다 현실에서 일어나는 비슷한 장면들을 떠올렸다. 현실에서는 그냥 지나쳤던 것들이 소설 속에서는 조금 낯선 모습으로 나타나니 비로소 제대로 바라보게 되는 순간도 있었다. 현실을 조금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고 싶거나, 익숙한 이야기에 새로운 상상력을 더한 소설을 좋아한다면 이 책을 권하고 싶다.

*위 도서는 @f83_project 상도덕서평클럽으로 참여하여 출판사 @otdcontents 로부터 제공받아 독서 후 작성한 서평입니다.

#한눈이반했습니다 #김하진 #OTD #상도덕서평클럽 #서평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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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김치 만화 클럽
허안나 지음 / 샘터사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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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김치 만화 클럽》 | 허안나 지음

무언가를 열렬히 좋아하는 사람에게 나는 늘 매력을 느낀다. 좋아하는 이야기를 할 때 눈이 빛나고 그 마음이 말과 문장 사이로 고스란히 전해지는 사람을 좋아한다. 《파김치 만화 클럽》이 좋았던 이유도 결국 그런 마음 때문이었다.

나는 만화를 책으로 읽는 것을 좋아하는데 이 책에는 내가 몰랐던 만화가 너무 많았다. 작가님이 한 작품을 소개할 때마다 ‘이것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어느새 작가님의 추천 목록을 따라 하나씩 읽어보고 싶어졌다. 전세사기를 겪고, 코로나를 지나고, 사랑하는 반려묘와 이별하는 동안 작가님 역시 축 늘어진 파김치 같은 시간을 보냈을 텐데, 그때마다 자신이 좋아하는 만화 속에서 삶의 빛을 찾아낸 이야기가 특히 좋았다.

누구에게나 파김치가 되는 순간은 찾아온다. 그럴 때 꼭 거창한 위로나 해답이 필요한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작가님에게 만화가 그랬듯 좋아하는 무언가가 다시 몸을 일으킬 작은 힘이 되어줄 수도 있으니까. 작가님이 자신이 애정하는 만화 이야기를 신나게 풀어놓을수록 이 책은 마치 짜파게티를 만난 파김치처럼 축 늘어진 마음에 묘하게 생기를 더한다.

이미 재미있게 읽었던 《룩 백》과 《해변의 스토브》에 대한 이야기를 만나는 것도 즐거웠다. 작가님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니 내가 읽었던 장면들이 다시 떠올랐고, 한 작품을 읽고 다른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는 즐거움까지 느낄 수 있었다. 특히 닉 드르나소의 《연기 수업》은 꼭 읽어보고 싶어졌다. 책은 절판이고 중고 가격이 정가의 거의 두 배던데. 저 같은 사람도 파.만.클에 가면 빌려주실 수 있나요? 파.만.클 모임원들이 부러웠다.

지금 당신이 파김치처럼 축 늘어져 있다면 좋아하는 무언가 하나쯤 곁에 두어보면 어떨까. 그리고 아직 그 무언가를 찾지 못했다면, 나는 《파김치 만화 클럽》을 긴급처방하고 싶다. 당신의 마음에도 짜파게티 같은 만화 한 그릇이 필요할지 모르니까.

*위 도서는 샘터에서 제공받아 독서모임 후 작성한 서평입니다.

#샘터 #파김치만화클럽 #허안나 #에세이 #독서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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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새에게 사로잡히지 않도록
가와카미 히로미 지음, 이지수 옮김 / 디플롯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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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새에게 사로잡히지 않도록》 | 가와카미 히로미 지음

이 소설은 여러 편의 이야기가 이어지는 연작소설이다. 초반에는 각각의 이야기가 서로 다른 인물과 사건을 다루고 있어 독립된 단편처럼 읽히지만, 읽다 보면 앞에서 스쳐 지나간 존재나 사건이 다른 이야기에서 모습을 바꾸어 다시 나타난다. 서로 무관해 보이던 이야기들이 조금씩 연결되면서 수천 년에 걸친 인류의 시간이 모습을 드러내는 방식이 무척 독특했다.

첫 번째 이야기인 〈유품〉부터 마음을 끌었다. 익숙한 세계를 살짝 비틀어놓은 듯한 설정과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인 듯 아닌 듯한 존재의 등장이 신선했고, 앞으로 어떤 세계가 펼쳐질지 궁금해졌다. 이후의 이야기들도 무엇이 나올지 예상하기 어려울 만큼 발상이 독특했다.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나씩 읽어가며 작가가 구상한 세계의 윤곽을 발견하는 과정이 재미있었다.

SF라고 하면 테드 창이나 아서 C. 클라크의 작품처럼 과학기술이나 우주를 떠올리는 편이다. 그래서 《큰 새에게 사로잡히지 않도록》은 내가 알고 있던 SF와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다가왔다. 인류의 먼 미래를 배경으로 하지만 과학기술을 전면에 내세우기보다 인간과 사회, 자연과 생명의 관계를 낯선 시선으로 바라본다. 책을 읽고 나서야 SF의 범위를 찾아보았는데, ‘사회적·생태학적 SF’라는 분류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이 작품을 설명하기에 꽤 잘 어울리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이 책에서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인간을 세계의 중심에 두지 않는 시선이었다. 인간과 인간이 아닌 존재, 자연과 기술의 경계가 흐려지고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했던 가족이나 공동체, 삶의 방식도 낯설게 보인다. 특히 인간의 감정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존재가 오랜 시간 인간을 지켜보며 ‘쓸쓸하다’와 비슷한 반응을 보인다는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다. 타자의 시선으로 인간을 바라보게 함으로써 오히려 인간이라는 존재를 깊이 생각하게 만든다.

열네 편의 이야기는 뒤로 갈수록 서로의 연결이 선명해지고, 마지막에 이르면 처음의 이야기까지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책의 해설에서도 모든 이야기를 읽은 뒤 다시 〈유품〉으로 돌아가 보기를 권한다. 나 역시 마지막 장을 덮고 〈유품〉으로 다시 돌아갔다. 처음에는 그저 기이하고 낯설었던 세계가 전체 이야기를 알고 난 뒤 어떻게 보이는지, 이 책을 읽는 다른 사람들도 꼭 경험해봤으면 좋겠다.

흔히 SF를 떠올리면 우주나 외계인, 진보한 과학기술 등을 먼저 생각하게 되는데, 《큰 새에게 사로잡히지 않도록》은 내가 테드 창의 〈영으로 나누면〉을 읽었을 때처럼 SF의 범위를 다시 생각하게 한 작품이었다. 이런 SF도 있구나 싶었던 경험이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인간을 낯선 자리에서 바라보고, 서로 독립된 이야기들이 긴 시간 속에서 하나의 세계로 이어지는 이 독특한 연작을 더 많은 사람들이 만나보았으면 한다.


-위 도서는 @alice__bookworm 에서 진행한 서평단 모집에 선정되어 디플롯 (@dplotpress )에서 제공해주신 책을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큰새에게사로잡히지않도록 #가와카미히로미 #SF소설 #앨리스서평단 #디플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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