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새에게 사로잡히지 않도록
가와카미 히로미 지음, 이지수 옮김 / 디플롯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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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새에게 사로잡히지 않도록》 | 가와카미 히로미 지음

이 소설은 여러 편의 이야기가 이어지는 연작소설이다. 초반에는 각각의 이야기가 서로 다른 인물과 사건을 다루고 있어 독립된 단편처럼 읽히지만, 읽다 보면 앞에서 스쳐 지나간 존재나 사건이 다른 이야기에서 모습을 바꾸어 다시 나타난다. 서로 무관해 보이던 이야기들이 조금씩 연결되면서 수천 년에 걸친 인류의 시간이 모습을 드러내는 방식이 무척 독특했다.

첫 번째 이야기인 〈유품〉부터 마음을 끌었다. 익숙한 세계를 살짝 비틀어놓은 듯한 설정과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인 듯 아닌 듯한 존재의 등장이 신선했고, 앞으로 어떤 세계가 펼쳐질지 궁금해졌다. 이후의 이야기들도 무엇이 나올지 예상하기 어려울 만큼 발상이 독특했다.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나씩 읽어가며 작가가 구상한 세계의 윤곽을 발견하는 과정이 재미있었다.

SF라고 하면 테드 창이나 아서 C. 클라크의 작품처럼 과학기술이나 우주를 떠올리는 편이다. 그래서 《큰 새에게 사로잡히지 않도록》은 내가 알고 있던 SF와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다가왔다. 인류의 먼 미래를 배경으로 하지만 과학기술을 전면에 내세우기보다 인간과 사회, 자연과 생명의 관계를 낯선 시선으로 바라본다. 책을 읽고 나서야 SF의 범위를 찾아보았는데, ‘사회적·생태학적 SF’라는 분류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이 작품을 설명하기에 꽤 잘 어울리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이 책에서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인간을 세계의 중심에 두지 않는 시선이었다. 인간과 인간이 아닌 존재, 자연과 기술의 경계가 흐려지고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했던 가족이나 공동체, 삶의 방식도 낯설게 보인다. 특히 인간의 감정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존재가 오랜 시간 인간을 지켜보며 ‘쓸쓸하다’와 비슷한 반응을 보인다는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다. 타자의 시선으로 인간을 바라보게 함으로써 오히려 인간이라는 존재를 깊이 생각하게 만든다.

열네 편의 이야기는 뒤로 갈수록 서로의 연결이 선명해지고, 마지막에 이르면 처음의 이야기까지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책의 해설에서도 모든 이야기를 읽은 뒤 다시 〈유품〉으로 돌아가 보기를 권한다. 나 역시 마지막 장을 덮고 〈유품〉으로 다시 돌아갔다. 처음에는 그저 기이하고 낯설었던 세계가 전체 이야기를 알고 난 뒤 어떻게 보이는지, 이 책을 읽는 다른 사람들도 꼭 경험해봤으면 좋겠다.

흔히 SF를 떠올리면 우주나 외계인, 진보한 과학기술 등을 먼저 생각하게 되는데, 《큰 새에게 사로잡히지 않도록》은 내가 테드 창의 〈영으로 나누면〉을 읽었을 때처럼 SF의 범위를 다시 생각하게 한 작품이었다. 이런 SF도 있구나 싶었던 경험이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인간을 낯선 자리에서 바라보고, 서로 독립된 이야기들이 긴 시간 속에서 하나의 세계로 이어지는 이 독특한 연작을 더 많은 사람들이 만나보았으면 한다.


-위 도서는 @alice__bookworm 에서 진행한 서평단 모집에 선정되어 디플롯 (@dplotpress )에서 제공해주신 책을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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