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타협 미식가 - 맛의 달인 로산진의 깐깐한 미식론
기타오지 로산진 지음, 김유 옮김 / 허클베리북스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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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저자는 다소 건방지고 거만한 미식가이다. 맛에 관한 타협이란 1도 없다. 본인이 좋다고 생각하는 식재료를 다른 식재료보다 우위에 두는 것은 물론인데 거기에는 어떤 생선이나 고기의 산지라는 지리적인 이유가 있을 때도 있고 객관적으로 봤을 때 아무 이유없기도 하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읽다보면 그의 미식예찬에는 조금 반발심이 일기도 했다. 세상 사람 중에 미식을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까? 심지어 짐승도 먹이가 풍부하면 가장 맛있는 부위만 먹고 나머지는 버리는데 사람은 오죽하랴. 다들 맛있는 것, 신선한 재료, 몸에 좋은 것을 먹고 싶지만 일단 돈이 없고, 시간적 여유가 없고, 자라온 환경이 달라서 맛에 대한 기대치가 다른 것뿐 아닌가 싶었다. 그래서 뭐가 맛있다, 뭐는 어떻게 요리해먹어야 한다 주구장창 나오는 음식 얘기를 일본요리에 대한 호기심으로 읽어나가다가 어느 대목에서는 '아, 기타오지 이 사람은 맛에 대한 집착이 지나치긴 하지만 틀린 말을 하는 것은 아니구나' 싶었다. 바로 잘 먹어야 건강하다는 것이다.

저자가 말하는 미식은 오직 고급 식재료로 만든 비싼 음식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 산지에서 자연적으로 난 생선이나 채소를 가지고 설탕이나 시판 간장에 의지하지 않고 재료 고유의 맛을 100% 끌어내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었다. 이는 요즘 사람들이 좋아하는 유기농이나 웰빙과도 일맥상통한 얘기지만 시간과 돈 모두 부족한 서민층에게는 역시나 멀기만 하다. 기타오지는 본인이 젊고 가난한 시절에도 미식을 포기하지 않고 있는 돈 없는 돈 끌어모아서 좋은 것, 맛있는 것을 먹고, 음식을 담은 그릇이나 도구에도 각별한 신경을 썼음을 언급한다. 도예가로 이름을 날린 사람이니 떡잎부터 관심이 남달랐다고나 할까. 나 역시 이 태도 만큼은 높이 산다. 사람은 결국 자기가 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가게 되어 있다. 시간없고 하기 싫다고 매번 라면이나 햄버거같은 인스턴트만 먹어대다가는 뭐가 미식인지 알지도 못하는 것은 물론, 건강도 해치게 된다. 개인적으로는 사람이 너무 맛있는 음식만을 추구하는 것도 요리사나 미식가가 아닌 다음에야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지만 건강한 맛을 미식이라고 정의한다면 일반인 역시 저자만큼은 아니어도 꾸준히 추구해야 하는 것이다.  


또한 저자가 극강의 미식이라고 칭찬하는 은어, 복어, 고사리, 오차즈케 이야기도 흥미로웠다. 아무리 일본이 가깝다고는 하나 음식문화는 확연히 달라서 일본고급요리를 실컷 먹고 이렇다, 저렇다 자세히 쓴 글을 읽어본 적이 없기에 인문학적으로 재밌게 읽었다. 특히나 오사카, 교토 사람과 도쿄 사람을 이분법처럼 나눠서 마치 우리나라 경상도, 전라도 지역을 나누고 그게 따라 평을 하듯이 쓴 부분도 웃음이 났다. 예를 들어 '도쿄 사람은 세속적이라 느끼하고 기름기 많고 단맛을 좋아하며 어디에나 설탕맛을 느낄 수 있다'는 비판이 있는데 과연 일본여행을 한 번이라도 다녀온 사람이라면 동감할 것이다. 매운 음식은 거의 없지만 각종 요리와 반찬까지도 다 달다. 그 밖에 참치회를 두고도 다들 고추냉이에만 신경쓰지만 실은 신선한 무즙이 훨씬 더 맛에 중요한 요소라든지, 식재료로 거의 먹지 않는 두꺼비가 요리하면 그렇게 맛있다니 이 역시 신선한 충격이었다. 저자의 경험은 너무 폭이 넓고도 깊고, 또 흔한 식재료가 아닌 경우가 많아서 내가 따라하기에는 무리가 있지만 후반부에 자세히 소개된 오차즈케 정도라면 기회가 있을 때 먹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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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여행 - 세기의 작가들에게 길을 묻다
이다빈 지음 / 아트로드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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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여행'은 저자 이다빈씨가 해당 작가가 살았던 나라, 생가를 방문하고 그 작가와 대표 작품에 대해 풀어쓴 여행기 같은 글이다. 동서양을 아우르는 다양한 작가들의 삶과 대표작, 그들의 숨은 일화가 소개되어 있어서 흥미로웠고 작가가 살았던 도시, 생가, 작가들이 자주 가던 카페, 동상 등의 사진이 실려있어서 보는 재미도 쏠쏠했다.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가볍게 들고 떠나기도 좋은 책 같다. 한 작가에 대한 소개는 10페이지 안팎으로 순서대로 읽지 않고 어디를 펼쳐서 읽어도 좋은 구성이다. 어쩌면 수박겉핧기 느낌도 들 수 있지만 한 사람의 작가에 대해 샅샅이 소개하는게 아니라 주요일화와 작품배경을 훓어보고 다음 독서에 대한 계획을 세우기에 더 적합한 책이다.

 

사마천이 받았다는 궁형도 책을 읽기 전부터 대충은 알고 있었지만 요도만 남겨두고 생식기를 모두 자르는 형벌이라는 것은 이번에 처음 알았고, 심지어 돈을 주면 궁형을 벗어날 수 있었다는 것은 몰랐다. 나는 사마천이 궁형을 받았다고 해서 그에게 선택의 여지없이 반드시 받아야하는 형벌로 떨어진 것인줄 알았더니 돈만 주면 현대의 보석처럼 풀려날 수도 있었던 것인데 돈이 없어서 그런 형벌을 받았다니 너무 안타까웠다. 하지만 그렇게 모든 것을 잃은 사마천이었기에 가감없이 비판하는 사기를 죽기살기로 쓰지 않았을까 싶다.

 

작가들의 불행한 삶은 사마천과 두보 같은 동양사람만이 아니라 오스카 와일드, 도스토옙스키, 고리키 등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작가들이 순탄하고 행복한 삶을 살았다면 외롭기짝이 없는 소설집필에 그토록 몰두할 수 있었을까도 싶다. 도스토옙스키도 자신이 받는 군인 월급으로는 씀씀이를 감당할 수 없어서 돈을 더 벌기 위해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는 게 재미있었다. 지금이야 대작가로 추앙받고 마치 작가의 삶을 위해 태어난 것처럼 보여지는 많은 작가들이 실제로는 생계를 위해 글을 쓰기 시작했다는게 더 인간적으로 다가온다.   

 

그리고 오스카 와일드의 동상 사진은 정말 특이했는데 다른 작가들의 동상이 전부 서있거나 앉아있는데 반해 이 사람은 바위에 기대 누워있다. 동상도 오스카 와일드다워서 웃고 말았다. '도리안 그레이의 초상'도 그 옛날에 저런 파격적인 소재로 글을 쓰다니 천재는 다르구나 싶었다. 나는 예전에 행복한 왕자를 영문으로 읽은 적이 있는데 우리나라 번역본에는 제비의 성별이 안 나왔지만, 영문으로는 분명히 he, 남자제비이다. 남자 제비와 왕자의 끈끈한 우정이랄까 희생과 사랑인 것이다. 어린이 소설로 탈바꿈되어서 소개되고 있지만 원서로 보면 느낌이 사뭇 달라진다.

 

이렇게 작가와 작품에 대해 모르던 일화까지 읽고나면 저자의 시가 마지막 페이지마다 나타난다. 처음에는 '왠, 시?"라고 뜬금없다는 생각을 하면서 읽었는데 다음회로 갈수록 '아, 이렇게 여행지에 느낀 걸 작가는 그냥 넘기지 않고 시로 적는구나' 하고 색다른 느낌을 받았다. 책에 소개된 동서양 작가는 모두 19명으로 저자의 현대 사진을 통해서 또 작품소개를 통해서 마치 나도 같이 짧은 여행을 한 듯한 기분전환을 할 수 있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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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레니얼과 함께 일하는 법 - 세대차이를 성장에너지로 바꾸다
이은형 지음 / 앳워크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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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198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까지 태어난 세대를 다른 세대와 구분하여 밀레니얼 세대라 칭하고 그들과 함께 일해야 하는데 세대차이를 느끼는 분들을 위한 책이다. 저자의 구분에 따르면 나는 X세대에 해당하지만 책을 읽어보니 그닥 우리 세대와 밀레니얼 세대는 구분이 명확하지 않을 뿐더러 큰 차이를 못 느꼈다. 아마도 저자와 같은 나이대(50대) 혹은 그 윗세대가 읽는다면 도움을 받을 것 같다.

 

 

책에 따르면 밀레니얼 세대는 공유, 경험, 가치를 중시하고 연결되기를 바란다는데 아마도 이것은 그들이 특별히 다른 가치를 추구한다기보다 IT기술의 발달과 맞물린 사회변화에 따른 것이라 해야 더 맞을 거 같다. 우리 세대에는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이 아직 없었고 당시 인터넷의 폭발적 발달로 미니홈피라든지 인터넷 동호회를 열심히 했었다. 하지만 그런 서비스가 그 때 출시되었다면 그 때부터 이용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할머니, 할아버지들도 눈이 좀 더 잘 보이고 좀 더 인터넷이나 스마트폰을 익숙하게 이용할 줄 안다면 오늘 간 병원의 친절도, 복용하는 건강 보조제의 효능, 최근 가족과 간 맛집에 대해 페북에 올리고 다른 노인정 친구들의 페이지에도 들어가서 '좋아요'를 클릭할 지 누가 아는가. 그분들은 경험을 중요시하지 않고, 연결되기 싫어서 안 쓰는게 아니라 너무 빠른 기술적 변화를 노인의 몸으로 못 따라갈 뿐이다.

 

 

밀레니얼 세대라고 뚝 떨어져서 다른 세대와 공통점이 없다기보다는 그들이 약간 더 다른 특징이 있고 그 특징이라는 것도 기실 모바일 기기와 인터넷을 얼마나 더 잘 이용하는가에 지나지 않는다. IT도구를 통해 다른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느나 없느냐로 갈리는 것이지 밀레니얼 책의 사례를 보면 볼수록 사람은 아무리 세월이 변해도 기본적으로 다 똑같고 그 차이라는 것도 세월에 따른  환경탓인 경우가 더 많다. 하지만 그만큼 세월의 변화는 느려도 확실한 것이고 나이든 세대와 젊은 세대의 갈라놓고 있다는 데는 동의한다. 어려서부터 핸드폰을 주무르는 조카세대와 몇 년전에야 겨우 스마트폰을 배운 우리 부모님 세대가 그 활용도에 큰 차이를 보이는 것은 어찌할 수 없는 부분이다.  


저자는 밀레니얼 세대가 회사에 적응하기 어려워하는게 꼰대로 불리는 상사의 일방적인 지시와 그들의 내미는 보상체계가 실제로 밀레니얼 세대가 원하는 것과 너무 달라서라고 한다. 그런데 과연 밀레니얼 세대만 주말에 등산가기, 회식하기, 워크숍을 싫어할까? 그닥 젊지않은 나도 극혐인데? 저런 건 사장님만 좋아하는 일이 아닌가 싶다. 직장인이라면 집에 빨리가고 싶고 주말엔 쉬고 싶고, 개인취미활동이 중요하지, 회사일은 돈벌기 위한 생계수단인 경우가 더 많지 않은가? 누구나 더 자유를 원하고 선택지가 있는 보상이 당연히 더 반갑다. 다만 이전세대는 일방적 명령과 지시가 익숙하고 평생을 한 회사에 몸담으려 어떻게든 적응했다면 지금은 평생직장이라는 게 거의 없고 불경기가 일상화되어서 돈에 더 민감해진 것 뿐이다. 사람이 달라졌다기보다 환경이 달라졌다는 표현이 더 맞을 거 같다. 밀레니얼 세대도 충분한 돈이 있다면 왜 차를 공유해서 일일히 예약해서 불편을 감수하며 쓸까, 그냥 외제차 국산차 가리지않고 취향에 맞는 것으로 여러 대 굴리지.

좀 억지스러운 구분과 납득하기 힘든 설명에도 불구하고 밀레니얼 세대를 설명하기 위한 예시와 각종 마케팅 기법, 요즘 유행하는 물건, 장소, 회사에 대한 소개는 흥미로웠다. 실제로 나도 방송 프로그램을 본방 시간에 보는 경우가 거의 없고 넷플릭스 서비스를 좋아하는데 소규모 다품종 생산이 TV에 접목된 거라 본다. 실상은 요즘 잘나가는 서비스들이 다 그렇다. 취향저격이란 말은 무수히 많은 취향을 저격해야 하는 것이고 당연히 한개만 만들어서는 과녁을 맞힐 수가 없다. 여러 개의 선택지 중에 하나를 선택한 나, 나와 같은 선택을 한 너, 그렇다면 얼굴도 모르지만 우리 둘 사이에는 유대감이 생길 수 밖에 없겠지? 책 뒤편에 이어지는 내용은 회사의 관리자급 이상이 주요고객이 밀레니얼 세대일 때 그들을 타켓으로 물건이나 서비스를 팔아야할 때 읽어보면 것 많다. 회사 다닐 때 소위 꼰대에게 당한 기억이 많아서 유심히 읽었는데 그들은 책에서 말하는대로 자신들이 더 우월하고 신입이고 어린 너희는 무조건 나의 지시를 따르라는 경우가 많았다. 또 그렇다고 윗세대는 다 그렇고 젊은 세대는 새롭고 장점만 있나하면 그건 아니다. 이 책 역시 필요에 따라 세대를 구분하고 차이점을 두려고 노력했을 뿐 개인차가 존재함을 모르는 바가 아닐 것이다. 점점 혐오와 차별이 심해지는 요즘 사회에서 윗세대와 신세대의 차이를 이해하기 위해 이런 책이 나왔다는 것에 가치를 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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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의 감정학 How To Break Up Like A Winner K-픽션 24
백영옥 지음, 제이미 챙.신혜빈 옮김 / 도서출판 아시아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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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영옥 작가의 책은 '빨강머리 앤이 하는 말', '아주 보통의 연애' 등 제목은 많이 들었는데 이렇게 읽어보는 것을 처음이다. 그것도 바이링궐 한영 소설로! 학생때 영한대역소설은 몇 권 읽어봤지만 이렇게 젋은 한국작가의 소설을 영어로 번역한 출판물이 나와있다는 것도 이번 기회에 처음 알았다. 책은 작고 가볍고 얇아서 휴대가 편하게 생겼고 왠만한 핸드백에 쏙 들어갈 사이즈이다. 나는 평소 영어 공부가 취미인 사람이므로 한국어로 먼저 읽고, 영어로 2번째 읽어보았다. 이 책, 두 가지 면에서 아주 인상적이었다!

 

 

첫째, 이 k픽션 시리즈는 옛날에 만들어진 어색한 영한 대역소설이 아니다. 한국어와 영어의 중요도가 똑같은 바이링궐 소설이다.  

기존의 영한대역소설은 영문소설이나 영미권 소설을 1:1로 번역한 것이라 한국어로 옯긴 내용이 어딘가 어색하게 마련인데 한영대역인 '연애의 감정학'은 그런 매끄럽지 못한 번역투의 영어가 1도 없었다. k픽션 시리즈는 나처럼 한국어가 모국어이고 영어를 공부하고 싶은 사람에게도 재미있게 읽히지만, 영어가 모국어이고 매끄러운 한국어를 공부하고 싶은 외국인 학습자에게도 좋은 도구가 될 터였다. 예를 들어 한국어는 흔히 주어가 생략되지만 영어는 주어가 꼭 필요하다. 없으면 it같은 가주어라도 집어넣어야 직성이 풀리는데 본문 36페이지에 "내 주위를 봐도 헤어져서 두 달을 못 넘기고 다시 만나더라. 의지력이 없어진 건가?"라는 주인공의 대사가 나온다. 주인공 친구가 "참을 필요가 없어진 거지."하고 바로 되받는데 다음 페이지의 영어본을 보니 이걸 "Kids these days have no need for willpower."라고 아주 훌륭하게 번역해놓았다. kids는 단순히 어린애들만 뜻하는 게 아니라 젊은이들도 포함해서 지칭하는데 소설 속에서 다이어트 중인 사람이 과자를 못 참고 집어먹는 걸로 비유가 나왔으므로 한국소설 원본에는 주어가 없었다고 해도 이를 영어로 옮길 때는 어린애와 젊은이를 모두 포함하는 kids보다 더 좋은 주어를 생각해낼 수가 없는 셈이다. 이 소설은 소설 자체만으로도 재밌지만 외국어에 관심이 많은 독자라면 '아, 이런 한국어 표현을 어떻게 영어로 바꿀까' 궁금할 때 바로 옆 페이지나 그 다음 페이지에서 찾아볼 수 있어서 도움이 많이 된다. "눈에 보이는 곳에 과자를 사놓고"라는 대사가 나와서 어떻게 바꿨나 슬쩍 봤더니 "Why leave snacks lying around in plain view"라고 멋지게 작업해놓았다. '눈에 보이는 곳' 같은 한국어를 곧이곧대로 영어로 번역했다면 a visible place가 되었을 것이다. 문법적으로 맞더라도 어딘가 이상하다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러나 plain view라니, 말만 들어도 탁 트인 시야가 느껴진다. 역자인 제이미 챙의 약력에 저절로 눈이 가는 순간이었다.

 

둘째, 요즘 20대의 연애를 sns와 연결시켰다는 것이다. 백작가의 장기가 연애물이라는 것은 대충 알고 있었지만 이 책은 여주와 남주의 연애 그 자체보다는 헤어진 후의 심리를 다루고 있다. 철저히 여주인공인 태희의 관점만 나온다. 남자친구인 종수가 태희와 헤어진 후에 어떤 심정으로 전여자친구를 다시 만났는지, 왜 그가 태희를 또 만나게 된 것이지, 결국 다시 헤어진 것은 정확히 어떤 이유인지 때문인지 알 수가 없다. 모든 것은 태희가 하는 대사와 행동을 통해 추측해봐야 하는데 광고회사의 카피라이터로 일하는 태희는 sns를 하는 요즘 20대 여자의 표본같다. 나는 이미 20대를 지나왔기에 그렇게까지 sns에 집착하지 않지만 데이터 마이닝이라고 지칭하는 스토커짓이 사실은 우리 모두가 일상적으로 하고 있는 일이라는 데 놀랐다. 인스타그램, 카카오스토리, 페이스북 등 대다수의 sns는 친구의 친구를 넘나들고, 서로 팔로우해서 아는 사람을 늘리는데 중점을 두고 있다. 내가 굳이 관심이 없어도 끝없이 이런 사람 알지 않냐고 추천에 뜨고, 언젠가는 그 추천인들을 클릭하게 된다. 이런 초연결사회에서 sns와 연애를 동시에 하는 사람이라면 헤어졌다고 옛연인의 흔적에서 완전히 해방될 수 없을 것이다. 잊혀질 권리는 가상의 공간에서 없다. '자, 이제 우리 헤어지자'하고 땅땅땅 결정을 해도 내일 sns에 들어가면 그 사람의 친구를 통해서 혹은 단톡방 소환을 통해서라도 전여친, 전남친과 언제라도 마주칠 수 있는 것이다. 

 

 unfriend는 소셜 네트워크의 친구목록에서 삭제한다는 뜻이라고 한다. 그러나 태희는 종수를 unfriend하는 작업, 즉 이별에 실패한다. 종수에 대한 관심을 도저히 끊을 수가 없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그녀가 종수를 아직 사랑하고 있어서 종수의 흔적을 sns상에서 죽어라 찾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전남친 증후군'이라는 병 아닌 병에 걸려 종수의 전여친, 과거 행적, 친구들이 올린 단서를 마치 탐정처럼 찾아헤매면서 종수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된다. 사귈 때보다 헤어진 후에 더 많이 알게 되는 아이러니, 그녀는 책 초반에 종수와 헤어진 게 그녀가 겪은 이별 중 3번째라고 했다. 종수와 제대로 헤어지고 싶은 태희에게 이별이란 마치 페이스북을 끊는 것처럼 여러번에 걸쳐서야 완성된다. 처음 읽을 때는 소설 속 결말이 갑작스럽고 모호하게 느껴졌는데 책 뒤편의 창작노트와 해설을 통해 이해를 더할 수 있어서 좋았다. 또한 sns키즈이건 아니건 연애는 어쩌면 자신의 완성을 위해 더 필요한 과정일지 모르다는 생각을 했다. 상대를 통해 들여다보는 객관적인 나. 태희는 종수를 스토킹하면서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성장했다. 그리고 끝내 이별을 완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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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청소일 하는데요? - 조금 다르게 살아보니, 생각보다 행복합니다
김예지 지음 / 21세기북스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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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받기 전에는 저자가 일러스트레이터라고 해서 그림이 들어간 에세이라고 생각했는데 받아보니 만화였다. 그래서 더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저자는 27살의 여성으로 프리랜서 일러스트레이터이자 직업으로는 청소일을 하고 있었다. 이력이 독특해서 어떤 내용인지 금방 궁금해졌다.

 

형식은 만화였지만 내용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직업과 꿈이 일치하지 않을 때의 고민은 누구나 한번쯤 해봤을 것이다. 특히나 한국사회처럼 다른사람의 눈을 의식하고 곳에서 남보기에 번듯한 직업이 아닐 경우, 혹은 사회적으로 봤을 때 좋은 직업을 가져도 내가 원한 일과 일치하지 않을 때의 고민이 없을 수 있을까. 선보는 자리에서 직업이 무엇인지 떳떳히 말을 못하고, 상대방은 당당히 자기 직장 명함을 내미는데 저자는 그렇지 못할 때의 에피소드는 씁쓸함을 안겨줬다. 상위 몇 프로를 따지는 이 나라에 경쟁은 이미 일상화되어 있고, 대졸에 상응하는 기대치가 분명히 있다. 하지만 우리는 모두 각자의 개성만큼이나 다른 꿈이 있고 다른 가치가 있다. 

 

저자는 꿈에 대한 고찰도 했는데 직업과 꿈이 같지 않다고 얘기한다. 나도 직업이 곧 꿈의 실현이라고만 생각했는데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왜 우리는 생계를 위한 직업과 자아실현을 위한 꿈을 항상 등가에 두고 괴로워하는가? 만약 대학을 졸업하고도 꿈의 실현에 합당한 직업을 얻지 못했다면 우리는 모두 실패자인가? 원하는 직종에 취직이 안 된다면 마냥 놀아야 하는가? 저자 역시 현명한 선택을 하기까지 괴로움이 없었던 것이 아니다. 누구나 삶의 답을 찾기 위해서는 부단한 노력과 고민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 고민의 시간을 헛되이 보낸다면 가치있는 자신만의 삶에 대한 답은 끝내 얻을 수 없을 것이다. 저자는 무려 4년 이상 청소일을 하고 있다. 동시에 일러스트레이터 역시 하고 있다. 누가 찾든 안 찾든, 일을 얻든지 그렇지 않든지 꾸준히 그림을 그려왔다. 대개의 사람들은 한 가지 선택을 한다. 집안이 좀 여유가 있으면 꿈만 쫒던가, 아니면 오직 돈버는 일에만 열중해서 꿈은 완전히 잊어버리고 지루한 직업인이 되던가.

 


저자는 꿈과 직업을 분리하는 영민함을 보였다. 그 결론에 이르기까지 청소일에 대한 일반 사람들의 편견을 견뎌야했고 상담을 받기도 하는 등 힘든 시간이 있었지만 그래도 그만두지 않고 꾸준히 해왔다. 저자는 청소일을 하면서 왠만하면 병에 걸리지 않는 강한 체력을 얻었고, 시간 조절이 가능한 일이라 일러스트레이터 일도 병행할 수 있었다. 또한 이 독특한 경험을 바탕으로 그림을 그려서 독립출판으로 책을 냈다. 흔히 생각하기로 청소는 대졸자 여성이 가질 직업이 아니다. 그러나 그 일은 보는 관점을 조금 바꾸자 남들이 쉽게 흉내낼 수 없는 장점이 되었다. 물론 청소일이 주는 수입에 만족해서 오로지 직업인으로서만 살아왔다면 자아실현의 기쁨은 맛보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움직이는 사람이다. 나는 왜 취직이 안 될까, 내 꿈은 일러스트레이터인데 왜 전혀 관계없는 청소일을 해야하나 괴로워만 한게 아니라 긴 호흡으로 달려왔다. 그녀는 자기 핸드폰값, 학자금 대출을 스스로 일해서 지불하고, 동시에 그림도 꾸준히 그렸으며 이런 대형 출판사에서 책을 내기 전에 독립출판 강좌를 듣고 직접 이 책을 만든 것이다. 나는 여기서 진심으로 기쁘고 저자가 존경스러웠다. 세상에는 이렇게 두들기는 사람이 있다는 것. 세상의 편견은 이런 사람을 못당한다는 것이 기뻤다 . 구정이 딱 지난 이 시점에 만난 기분좋은 책이다. 꿈은 꼭 이루지 않아도 갖고만 있어도 가치있다. 물론 저자처럼 꿈을 실현하고 싶은 희망이나 이상 수준에 두지 않고 점점 구체적인 모습을 갖추게 한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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