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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청소일 하는데요? - 조금 다르게 살아보니, 생각보다 행복합니다
김예지 지음 / 21세기북스 / 2019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책을 받기 전에는 저자가 일러스트레이터라고 해서 그림이 들어간 에세이라고 생각했는데 받아보니 만화였다. 그래서 더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저자는 27살의 여성으로 프리랜서 일러스트레이터이자 직업으로는 청소일을 하고 있었다. 이력이 독특해서 어떤 내용인지 금방 궁금해졌다.

형식은 만화였지만 내용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직업과 꿈이 일치하지 않을 때의 고민은 누구나 한번쯤 해봤을 것이다. 특히나 한국사회처럼 다른사람의 눈을 의식하고 곳에서 남보기에 번듯한 직업이 아닐 경우, 혹은 사회적으로 봤을 때 좋은 직업을 가져도 내가 원한 일과 일치하지 않을 때의 고민이 없을 수 있을까. 선보는 자리에서 직업이 무엇인지 떳떳히 말을 못하고, 상대방은 당당히 자기 직장 명함을 내미는데 저자는 그렇지 못할 때의 에피소드는 씁쓸함을 안겨줬다. 상위 몇 프로를 따지는 이 나라에 경쟁은 이미 일상화되어 있고, 대졸에 상응하는 기대치가 분명히 있다. 하지만 우리는 모두 각자의 개성만큼이나 다른 꿈이 있고 다른 가치가 있다.

저자는 꿈에 대한 고찰도 했는데 직업과 꿈이 같지 않다고 얘기한다. 나도 직업이 곧 꿈의 실현이라고만 생각했는데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왜 우리는 생계를 위한 직업과 자아실현을 위한 꿈을 항상 등가에 두고 괴로워하는가? 만약 대학을 졸업하고도 꿈의 실현에 합당한 직업을 얻지 못했다면 우리는 모두 실패자인가? 원하는 직종에 취직이 안 된다면 마냥 놀아야 하는가? 저자 역시 현명한 선택을 하기까지 괴로움이 없었던 것이 아니다. 누구나 삶의 답을 찾기 위해서는 부단한 노력과 고민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 고민의 시간을 헛되이 보낸다면 가치있는 자신만의 삶에 대한 답은 끝내 얻을 수 없을 것이다. 저자는 무려 4년 이상 청소일을 하고 있다. 동시에 일러스트레이터 역시 하고 있다. 누가 찾든 안 찾든, 일을 얻든지 그렇지 않든지 꾸준히 그림을 그려왔다. 대개의 사람들은 한 가지 선택을 한다. 집안이 좀 여유가 있으면 꿈만 쫒던가, 아니면 오직 돈버는 일에만 열중해서 꿈은 완전히 잊어버리고 지루한 직업인이 되던가.

저자는 꿈과 직업을 분리하는 영민함을 보였다. 그 결론에 이르기까지 청소일에 대한 일반 사람들의 편견을 견뎌야했고 상담을 받기도 하는 등 힘든 시간이 있었지만 그래도 그만두지 않고 꾸준히 해왔다. 저자는 청소일을 하면서 왠만하면 병에 걸리지 않는 강한 체력을 얻었고, 시간 조절이 가능한 일이라 일러스트레이터 일도 병행할 수 있었다. 또한 이 독특한 경험을 바탕으로 그림을 그려서 독립출판으로 책을 냈다. 흔히 생각하기로 청소는 대졸자 여성이 가질 직업이 아니다. 그러나 그 일은 보는 관점을 조금 바꾸자 남들이 쉽게 흉내낼 수 없는 장점이 되었다. 물론 청소일이 주는 수입에 만족해서 오로지 직업인으로서만 살아왔다면 자아실현의 기쁨은 맛보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움직이는 사람이다. 나는 왜 취직이 안 될까, 내 꿈은 일러스트레이터인데 왜 전혀 관계없는 청소일을 해야하나 괴로워만 한게 아니라 긴 호흡으로 달려왔다. 그녀는 자기 핸드폰값, 학자금 대출을 스스로 일해서 지불하고, 동시에 그림도 꾸준히 그렸으며 이런 대형 출판사에서 책을 내기 전에 독립출판 강좌를 듣고 직접 이 책을 만든 것이다. 나는 여기서 진심으로 기쁘고 저자가 존경스러웠다. 세상에는 이렇게 두들기는 사람이 있다는 것. 세상의 편견은 이런 사람을 못당한다는 것이 기뻤다 . 구정이 딱 지난 이 시점에 만난 기분좋은 책이다. 꿈은 꼭 이루지 않아도 갖고만 있어도 가치있다. 물론 저자처럼 꿈을 실현하고 싶은 희망이나 이상 수준에 두지 않고 점점 구체적인 모습을 갖추게 한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