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팽이의 노래 - 2021 읽어주기 좋은 책 북극곰 꿈나무 그림책 70
김유미 지음 / 북극곰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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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스텔 톤의 그림과 시종일관 봄햇살처럼 따뜻한 내용의 그림책을 읽었습니다. '달팽이의 노래'라고 김유미 작가의 동화책인데 무려 20년이나 해온 일을 과감히 그만두고 동화작가의 길로 들어선 용기있는 분이네요.



어느 봄날, 달팽이 커플이 다람쥐 커플의 결혼식 초대장을 받습니다. 다람쥐 마을까지는 지도상 봐도 꽤 거리가 되는데 걸음이 느린 둘이 시간 맞춰 도달할 수 있을지가 관건입니다.



사람의 생각으로 판단하면 가뜩이나 느려터진 달팽이니까 겁나 빨리 서둘러야 할 것 같은데 두 마리(실례;;)는 전혀 그런 기색이 없구요. 거을 앞에서 꽃단장도 하고 해님이 권하는대로 꽃들의 노래도 들으며 쉬엄쉬엄 길을 떠나네요.

책 읽는 사람 혼자 급해봐야 전혀 소용없죠. 몇 장 넘기다보면 달팽이 커플의 속도에 자연히 맞춰지고 마음이 느슨해집니다. 둘은 꽃구경도 하고 나무 아래서 바람도 쐬고 널뛰기까지 하면서 앞으로 나아갑니다. 비가 오면 시원한 소나기를 마시기도 하고 얼굴은 늘 웃고 있어요.

서두르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게으름을 부리는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지렁이가 플라스틱 물병 안에 갇혀서 오도가도 못하고 있는 걸 발견했네요. "괜찮다면, 정말 괜찮다면 지렁이를 도와줘요." 어디선가 들리는 햇님의 목소리.



당연히 달팽이 커플은 곤경에 처한 지렁이를 못 본 채 할 리가 없지요. 둘이 합심해서 지렁이를 구출해줍니다. 이들은 그런 식으로 버려진 봉지에 갇혀서 오도가도 못하는 개구리가 입구를 찾을 수 있게 도와주고요.




구출한 친구들과 기쁨의 댄스도 추죠. 전혀 서두르는 기색이 없어요. 달팽이 커플이 지금 어디를 가는 중이라는 걸 잊은건 아닌지 걱정이 되었는데 잊어버린 건 아니네요. 부지런히 길을 떠났다고 나오니까요. 책을 읽자면 '빨리 가야 하는 거 아닌가?' 독자만 서두르는 듯한 묘한 기분이 듭니다.

가다가 또 둘은 밤송이에 찔린 생쥐 한 마리를 발견합니다. 남의 고통을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친절한 두 달팽이! 옆에 자리를 깔고 앉아서 밤이 되도록 가시를 빼주네요.


이 장면이 특히 아름답습니다. 오른쪽 페이지의 하늘에서는 고고히 달빛이 빛나고 왼쪽 페이지 아래에서는 그 흐뭇한 달빛 아래 달팽이 둘이 생쥐를 도와 열심히 가시를 빼주고 있어요.

동화에는 햇님의 말 외에 대사라고 할 것도 없지만 무척 서정적이고 표현력이 좋아요. 동물 친구들의 표정과 상황을 보고 내용은 그냥 알 수 있는 유아용 그림책이거든요. 대사가 없다고 지루하거나 심심한 그림책은 아닙니다. 자연의 풍경과 묘사가 아름답고 어려움에 처한 친구들을 돕는 과정이 너무나 당연하고 자연스러워요.

아픈 생쥐를 지나치지 않는 달팽이를 보면서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친구를 돕는 마음을 배웁니다.

게다가 결말은 생각도 못했는데 기분좋은 반전이 기다리고 있었어요. 늦어도 늦은 게 아니다? 정말 세상일이 그렇지 않나요? 남보다 조금 뒤쳐지거나 늦어도 괜찮다고 나즈막히 위로를 전하는 동화책입니다. 그저 방향을 잃지 않으면 언제고 목적지에 도착한다고, 그러니 가다가 꽃들의 노래를 듣고 소나기를 마셔보고 친구들을 도와줘도 괜찮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오직 결혼식 참석에만 초점을 맞췄다면 병 속의 지렁이도 구해주지 않고 봉지 속에서 출구를 못 찾는 개구리도 못 본 척 하고 가시 박힌 생쥐도 건너뛰어야 하는 거겠죠? 생각만 해도 아찔해집니다. 결과만 강조하는 세상에서 과정의 아름다움을 노래하는 아름다운 그림책이었어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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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에 10권 플랫폼 독서법 - 원하는 지식을 얻는 가장 빠른 방법
김병완 지음 / 청림출판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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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는 분들은 이 바쁜 세상에 좀 더 빠르게 많은 양의 책을 읽을 수 없을까 한 번쯤 고민해봤을 것이다. 그래서 시중에는 독서법도 참 많이 나와있고 예전부터 속독법이 있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도 없다. 그런데 그저 처음부터 끝까지 빨리 읽는다고 그 내용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연습을 몇 번 하더라도 포기하는 경우가 더 많다. 한번에 10권 플랫폼 독서법은 그래서 내 관심을 사로잡았다. 어떻게 하면 한번에 10권 읽을 정도로 빠르게 원하는 정보를 얻을 수 있을까 궁금했기 때문이다.




이 책의 김병완 저자는 '퀀텀 독서법', '초서 독서법', '48분 기적의 독서법' 등 대한민국에서 독서법에 관한 책을 많이 낸 분들 중 가장 유명한 사람이자 삼성전자에서 직장 생활 때려치우고 3년 동안 도서관에서 1만권을 읽기도 했다. 무릇 스스로 이렇게 책 좀 읽어본 저자가 쓴 책이기에 더욱 신뢰가 간 것도 사실이다.



플랫폼 독서법이란 한 줄로 설명하기가 어렵지만 일반적으로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도 안 빼놓고 읽는 방식이 아니다. 보물찾기 하듯이 하나의 주제에 빠져들어 연결하고 공유하고 새로운 본인만의 정보를 생성하며 상호작용을 하는 것을 말한다. 어찌보면 편집의 미학과 일맥상통하는 독서법이다. 이제 자기가 원하는 정보를 남들보다 더욱 빠르게 탐색해 필요한 지식만 쏙쏙 뽑아야하는 복잡한 시대가 되었다. 이런 플랫폼 독서법을 익힌다면 한 번에 10권까지는 초보자가 무리겠지만 여러 권을 동시에 읽어가면서 예전보다 빠르게 필요한 지식을 섭렵하고 그 안에서 필요한 내용을 편집, 재가공하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저자가 지적했듯이 아무리 많은 책을 읽어도 읽는데서 그치고 단 한 권도 쓰지 못하는 사람이 태반이라고 한다. 이는 정말 반성해야 할 일이다. 우리는 수동적인 독자 노릇에서 벗어나 때로는 저자의 위치에 서야 하지 않을까? 평생 만 권도 넘게 책을 읽고 본인의 저서가 단 한 권도 없다면 어떤 기분일지 잠깐 생각해봤다. 그야말로 인풋만 있고 아웃풋이 없는 것과 똑같지 않나? 열매를 맺지 못하는 나무와 같지 않나 잠깐 어두운 생각도 들었다.

책의 핵심 주제를 잘 뽑아내는 훈련을 한 사람이 플랫폼 리딩을 잘 할 수 있다고 했고 그 대표적인 예가 다산 정약용이다. 다산은 많은 분들이 아시다피시 18년 동안 무려 500권의 저서를 썼다. 거의 신의 경지라고 생각한다. 그는 아들들에게 초서 독서법 등도 편지를 통해 가르쳤는데 읽어보면 초서 독서법과 플랫폼 리딩은 상당히 유사함을 알 수 있다.

초서 독서법이란 주관 의견->읽고 이해->취사선택->적고 기록->의식확장이라는 흐름을 따른다. 여기서 취사선택은 그냥 쉽게 이해가 가는데 주관 의견이 무슨 뜻인가 할 것이다. 책을 읽기 전에 자신의 생각을 먼저 정리하는 프리뷰 단계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아무 생각없이 무턱대고 남이 쓴 책부터 읽는 것이 아니라 이미 독서 전에 어떤 내용을 채굴할 것인지 방향을 정하라는 의미로 읽혔다. 마지막에 나오는 의식확장은 메타인지 학습법과 일맥상통하는데 자신의 견해에 대해 생각하는 것으로 그저 책의 중요 내용을 기록하는 데서 끝내지 말고 확장하라는 뜻이기도 하다.

해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 문화심리학자 김정운 교수의 사례도 여러번 나왔지만 그의 에디톨로지 독서법은 편집이다. 모든 창조는 편집이고 편집은 곧 창조라는 것. 연결하여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는 커넥토 리딩이 바로 플랫폼 독서법이기도 하다. 네트워크 효과의 극대화를 이룬 사례도 소개했는데 에어비앤비 같은 것이다. 기존의 호텔 비즈니스는 새로운 호텔을 짓는데서 끝났지마니 에어비앤비는 남는 방과 잠잘 곳이 필요한 사람을 연결해서 새로운 비즈니스를 창출했다. 이건 없은 걸 새로 만든 게 아니라 둘 다 존재하지만 연결되어 있지 않은 정보를 이어서 가치를 창출한 것이다. 이렇듯 편집은 성공한 후에 보면 깜짝 놀라는 발견과 비슷하다. 이미 존재하지만 가치를 불어넣지 않는 어떤 것.

이 책을 읽으며 플랫폼 독서법도 드라마와 참으로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 각각의 작가들은 해 아래 존재하는 이미 있는 소재를 활용해 다들 비슷비슷한 연애나 살인, 스릴러 같은 이야기를 만들어내지만 결론적으로는 조금씩 다른 새로운 이야기이다. 그게 에디톨로지건 커넥토 리딩이건 결국은 말장난과 조금 비슷하다고 느껴졌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유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은 그 정도는 아니지 않을까?

독서천재들은 책을 다 읽지 않는다고 한다. 엄청나게 많은 책을 건너뛰며 주제와 연관된 부분만 읽으면서 취사선택하고 결국 애초에 찾고 싶었던 해결방법을 찾으면 그걸 바탕으로 자기 생각을 첨가해 새로운 것을 창조한다. 감독과 같은 일이다.



이 책에는 책에서 필요한 내용을 어떻게 뽑아먹을 것인가하는 플랫폼 독서법에 관한 내용 외에도 뇌훈련과 같은 퀀텀 독서법 등 흥미로운 다른 독서법도 몇 가지 소개되었다. 물론 빌 게이츠, 토마스 에디슨, 일론 머스크 같은 유명인의 일화도 양념처럼 재미를 더한다. 하지만 너무 많은 정보보다 핵심을 찾고자 한다면 역시 초서 독서법이 아닌가 싶다. 이거만 제대로 해도 플랫폼 독서법으로 가는 길은 머지 않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쓴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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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맨 북극곰 그래픽노블 시리즈 2
박서영 지음, 이루리볼로냐워크숍 기획 / 북극곰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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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야, 이런 신박한 그림책을 봤나.. 유럽에서만 이런 책이 나오는 줄 알았더니 이제 우리나라에서도 이렇게 실험적인 어른용 그림책이 나올 수 있구나 싶어서 무릎을 탁 쳤다.




물론 대상 연령을 초등학생 고학년부터로 설정할 수 있겠지만 어쩐지 어른을 위한 동화같은 스마트맨을 보고 참 반가웠다. 책이란 게 굳이 연령을 상정할 필요도 없는 것이겠지만 읽을수록 그 내용이 어른스러워서 감탄을 금치 못한 그래픽 노블이다.

여기서 잠깐? 근데 그래픽 노블이란 게 정확히 뭘까? 네이버 지식백과를 참고하면 그림과 소설의 합성어로 만화와 소설의 중간 형식을 취하면서 일반 만화보다 철학적이며 진지한 주제를 다루고 예술성이 뛰어난 작품을 말한다고. 설명은 복잡하지만 읽고나니 딱 "스마트맨" 같은 책이 그래픽 노블인 건 알겠다.




스마트폰 없이는 하루도 살 수 없는 현대인을 풍자한 그림책인데 의성어, 의태어 빼고는 대사도 거의 없다. 말이 없이 표정만으로도 마치 한 컷 만화를 보는 듯 강렬하게 완성했다.

주인공 소년이 바로 스마트맨이다. 스마트폰을 들고 다니면 자신도 스마트해질 거라고 착각하는 현대인을 비꼰 것일까? 스마트맨은 빨간색 커버가 씌워진 스마트폰을 어디에나 가지고 다닌다. 그러다가 바지 주머니에서 훌쩍 폰을 떨어뜨리고 액정에 금이 간 건 아닌가 급 걱정이 되어 머리카락이 다 쭈뼛 선다!! 이런 경험 한번도 없는 사람은 없을 것 같네. 소년이 손까지 덜덜덜 떨어가며 휴대폰을 주워서 확인해보니 다행히 금은 안 갔다!!


그런데??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호러 그래픽 노블 스마트맨!

화장실 가서 볼일을 보고 무심히 거울을 보니 짜자작 금이 간 건 스마트폰이 아니라 내 얼굴이잖아??

으아아아아아악!!!

비명을 지르며 화장실에서 뛰쳐나오는 스마트맨. 스마트하자고 들고다니는 스마트폰이 자꾸만 괴기스러운 상황을 만든다. 떨어뜨리면 어쩌나, 비싼 건데 액정이 깨지면 어쩌나, 액정이 아니라 내 얼굴이 깨지면 어쩌나, 마치 과대망상증 환자처럼 스마트해지긴커녕 걱정만 늘어나게 하는 스마트폰!



얼굴이 깨졌으니 어떡해? 어떡하긴 병원 가야지!! 다리까지 쭉쭉 늘려가며 미친듯이 병원을 향해 뛰는 스마트맨. 그러다가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고 가뜩이나 금간 얼굴이 걱정스러워 죽겠는데 바닥에서 소리가 들린다.

아파!!




으잉? 근데 이건 내 얼굴에서 떨어진 입이잖아? 아.. 점점 호러블해지는 전개. 과연 이 그래픽 노블의 끝은 어딜까? 이제 독자도 악몽에서 깨고 싶다!!

스마트맨의 박서영 작가는 어린 시절 아일랜드에서 산 적이 있는데 그 때 말이 통하지 않는 친구 대신 텔레비전에 나오는 만화와 그림 위주의 책들에 푹 빠져 지냈다고. 꿈에서 본 상징적인 장면에 관심이 많다고 했는데 이렇게 근사한 그림책을 완성했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해서 어린이 책인데도 정말 재밌고 긴장을 늦출 수 없으며 일상의 공포를 잘 재현한 수작이다. 스마트폰 아무리 들고 다녀봐야 스마트해지긴커녕 걱정만 늘어가다 과대망상증에 걸리기 일보 직전인 주인공을 보자면 느끼는 바가 많다. 세상은 이제 5G시대라는데 과연 기술의 발달이 인간의 행복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갸우뚱해지는 순간이 많다는 것은 말 안 해도 알 것이다.

스마트맨이 마지막에 진정 스마트해지는 모습을 보자니 정말 상쾌했다. 하하하.. 하하하!! 기발한 전개에 걸맞는 훌륭한 결말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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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누 똥 쌌어? - 2020 문학나눔 선정도서 북극곰 꿈나무 그림책 69
이서우 지음 / 북극곰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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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누 똥 쌌어?" 라고 북극곰에서 나온 글 없는 그림책을 읽었습니다. 배경으로 등장하는 서양식 집과 널찍한 거리, 아름다운 공원, 길쭉한 사람들이 어딘가 제가 좋아하는 프랑스 작가 장자크 상뻬의 꼬마 니꼴라가 연상되어서 더욱 사랑스러웠어요.


이야기는 누누라는 강아지가 메모 한장과 함께 주인공의 집에 도착하면서 시작되요. 이 귀여운 강아지는 칭찬을 좋아한다네요. 특히 똥을 잘 싸면 온 가족이 크게 칭찬해달라는 당부가 있습니다. 맞아요, 강아지들이 대소변을 가리는 것은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닙니다. tv에서 봐도 집안 여기저기에 테러를 해서 골치를 썪는 가정이 많죠.



낯선 집에 온 작고 하얀 강아지 누누. 거실 한 가운데 깔아놓은 배변 패드 위로 조심스럽게 가서 첫 번째 똥을 누는데요. 가족들 긴장한 표정이 재밌습니다. 이 녀석이 제대로 네모칸 안에 볼일을 볼 것인가 말 건인가 지켜보는 눈치죠. 그러다가 두 개 중에 하나를 멋지게 네모 안에 성공시키는 누누. 첫 번째에 이 정도면 정말 훌륭한 견공 아닌가요? 다들 원주인의 당부대로 춤도 춰주고 누누를 크게 칭찬해줍니다.



그런데 아버지!!! 첫장면부터 잔뜩 화가 나신 그 얼굴 그대로네요. 처음에는 여기저기 똥 누는 누누가 마음에 안 들어서 그러신 걸까 생각했는데 자세히 보니 아니었어요. 그림을 비교해보면 아버지도 표정만 무서울 뿐 꼬깔모자를 쓰고 있네요. 이게 대반전의 힌트입니다.



어딘가 화난 얼굴의 아버지가 이제 주인공이 되네요. 누누와 함께 산책을 가는 아들, 역시 굿똥을 누는 누누. 평범한 가족의 일상을 즐기지만 어느덧 시간이 흘러 아들은 결혼을 해서 집을 떠나고 딸도 대학졸업을 합니다. 가족의 모든 소중한 순간을 함께 하며 똥을 누는 누누. 아, 이 그림책 너무 웃겨요. 생리현상을 그 누가 막을 수 있을까요? 강아지는 시간과 공간의 제약없이 자기 편할 대로 볼일을 보고야 맙니다. 하지만 가족들은 늘 똥누는 누누를 한결같이 사랑하고 칭찬해주죠.

아들, 딸이 다 떠나고 이제 노부부와 누누만 남은 썰렁한 집. 연로한 어머니 한 분이지만 역시 누누가 배변패드 안에 볼일을 잘 보자, 칭찬의 댄스를보내주시지만 안타깝게도 어떤 병인가 급하게 돌아가십니다.



계속 즐거운 일만 있을 줄 알았는데 심지어 동화 속에서도 인생사는 그게 아니네요. 시종일관 밝고 아름다운 그림책에 한 순간 어두움이 드리우는 순간이자 내용은 이제 클라이맥스를 향해 달려갑니다.

더 이상 누누가 똥을 잘 눠도 칭찬해줄 가족이 없을 것만 같은 집. 늘 험상궂은 표정의 아버지만 남았거든요. 아버지는 도무지 그 불편해보이는 얼굴 때문에 책의 시작부터 끝까지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이 책의 진정한 주인공이기도 합니다. 자, 누누는 네모칸 안에 굿똥을 쌌는데 과연 아버지는 다른 식구들처럼 누누를 칭찬해줄까요?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기대하는 누누와 바싹 그 곁에 서 있는 아버지. 대반전이 일어나고 마지막 페이지를 보자 찔끔 눈물이 나네요. 이게 뭐라고...

투박한 아버지의 사랑을 듬뿍 느낄 수 있어서 더욱 감동적이었던 "누누 똥 쌌어?" 입니다. 작가는 대한민국 아버지들을 너무나 잘 아는 것 같네요. 만남과 이별, 반려견이 가족이 되어가는 과정, 장성한 자식들이 떠난 후 남은 아버지의 외로움 등이 글자 하나 없어도 너무나 잘 전달되는 아름다운 그림책입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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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밤 안아도 될까요?
미츠루 유우 지음, 정아름 옮김, 아오이 블루 원작 / 북스토리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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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딩도 아닌데 이런 로맨스 소설 정말 오랜만이다. 그만큼 말라비틀어진 감성을 갖고 있었던 거 아닌가 반성하면서 펼쳐든 "오늘 밤 안아도 될까요?"는 이름도 이쁜 아오이 블루의 원작으로 일본에서는 드라마까지 나왔다고 한다.

책은 야한 부분은 1도 없고 정말 딱 가볍게 읽기 좋은 로맨스 청춘 소설이다. 책 표지의 포즈만 보고 고른다면 너무나 건전한 수위에 실망일 것이고 십대 시절의 소녀적 감성을 느끼고 싶다면 추천할 만하다.



"쇼콜라 아이스, 실버 링, 베이비 핑크, 스타더스트 옐로, 섬싱 블루"라는 아름다운 제목의 총 5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는데 모두 이제 사랑을 시작했거나 별로 연애 경험이 없는 풋풋한 나이대의 사회 초년생이 등장한다.




사실 이야기는 설정이 좀 뻔한 감도 있어서 크게 새롭다는 느낌은 못 받았지만 묘하게 다른 한국과 일본의 말투가 번역을 뚫고 나와서 웃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연인 사이라도 좀처럼 쓰지 않는 오글거리는 멘트가 꽤 많이 나온다.

이런 로맨스 소설에 익숙하지 않은 나 같은 사람은 중간에 닭살이 돋을 지도 모르겠고 달달한 연애 소설을 여름방학 혹은 여름휴가가 가기 전에 꼭 한 권 읽고 싶다면 이 책이 참 잘 어울린다.

예를 들어 원제도 "콘야 캇테니 다키시메테도 이이데스까?"인데 직역하면 "오늘밤 내 맘대로 안아도 되겠습니까?"라는 남자 말투가 된다. 멋대로 안을 거면서 허락을 받는다는 형식이 희한한데 일본어에는 이런 식의 어투가 많아서 소설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스타더스트 옐로우"에는 나나 선배라는 예쁜 여자아이를 동경해서 천문학 동호회에 들어간 유스케라는 남자 후배가 나온다. 그녀에게 다가가고 싶지만 아직 서툰 유스케는 나나 선배와 가까워지기 위해 임시 애인이 되기로 하고 그녀가 남친이 생기면 하고 싶은 리스트를 같이 해주기로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연애를 꿈꾸는 소녀들은 한번쯤 애인이 생기면 같이 장보기, 놀이공원 가기, 상대방 집에서 데이트 같은 건 생각한 적이 있을 것이다. 이 귀여운 유스케군이 착실히 나나 선배의 "사귀면 하고 싶은 일" 리스트를 다 들어주고 그녀의 집에 가서 짝사랑에 우는 선배를 달래며 한 말이 재밌었다.

"제가 나나 선배를 소중히 여겨도 된다고 허락해주세요."

띠용.. 이런 것까지 허락받아야 하나 싶어서 그만 웃고 말았다. 아.. 나와 같은 반응은 작가가 의도한 게 아닐텐데 미안한 생각도 들고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우리나라와 일본은 이렇게 참 다르구나 느끼는 일이 많았다.

이 책은 2017년에 일본에서 출간된 거 같은데 계속 결혼 적령기 내지는 결혼을 심각하게 생각하는 나이로 26살이 나온다. 한국에서 26살도 물론 결혼할 수 있지만 결혼 적령기라기에는 좀 이른 것 같은 생각이다. 26살이면 아직 학교 다니거나 직장 구하는 사람이 태반일 텐데 결혼씩이나 가능할까 싶어서 역시 갸우뚱하며 읽었다.

외국의 로맨스 소설을 읽는다는 것은 닮은 듯 다른 두 나라의 차이점을 느끼는 것도 재밌지만 크게 봐서는 국가별 차이가 없는 사랑의 감성을 느껴보는데 더 의의가 클 것 같다. 옆집 오빠를 사랑하는 여동생이나 편집부 여자 선배를 좋아하게 된 남자후배, 별자리를 같이 찾아볼 수 있는 천문 동아리 선후배 사이, 장거리 연애를 하며 상대방 마음을 확신하지 못해 불안에 떠는 여자 등 설정은 흔하지만 이끌어가는 솜씨는 꽤 매끄럽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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