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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이의 노래 - 2021 읽어주기 좋은 책 ㅣ 북극곰 꿈나무 그림책 70
김유미 지음 / 북극곰 / 2020년 8월
평점 :
일시품절
파스텔 톤의 그림과 시종일관 봄햇살처럼 따뜻한 내용의 그림책을 읽었습니다. '달팽이의 노래'라고 김유미 작가의 동화책인데 무려 20년이나 해온 일을 과감히 그만두고 동화작가의 길로 들어선 용기있는 분이네요.

어느 봄날, 달팽이 커플이 다람쥐 커플의 결혼식 초대장을 받습니다. 다람쥐 마을까지는 지도상 봐도 꽤 거리가 되는데 걸음이 느린 둘이 시간 맞춰 도달할 수 있을지가 관건입니다.

사람의 생각으로 판단하면 가뜩이나 느려터진 달팽이니까 겁나 빨리 서둘러야 할 것 같은데 두 마리(실례;;)는 전혀 그런 기색이 없구요. 거을 앞에서 꽃단장도 하고 해님이 권하는대로 꽃들의 노래도 들으며 쉬엄쉬엄 길을 떠나네요.
책 읽는 사람 혼자 급해봐야 전혀 소용없죠. 몇 장 넘기다보면 달팽이 커플의 속도에 자연히 맞춰지고 마음이 느슨해집니다. 둘은 꽃구경도 하고 나무 아래서 바람도 쐬고 널뛰기까지 하면서 앞으로 나아갑니다. 비가 오면 시원한 소나기를 마시기도 하고 얼굴은 늘 웃고 있어요.
서두르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게으름을 부리는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지렁이가 플라스틱 물병 안에 갇혀서 오도가도 못하고 있는 걸 발견했네요. "괜찮다면, 정말 괜찮다면 지렁이를 도와줘요." 어디선가 들리는 햇님의 목소리.

당연히 달팽이 커플은 곤경에 처한 지렁이를 못 본 채 할 리가 없지요. 둘이 합심해서 지렁이를 구출해줍니다. 이들은 그런 식으로 버려진 봉지에 갇혀서 오도가도 못하는 개구리가 입구를 찾을 수 있게 도와주고요.

구출한 친구들과 기쁨의 댄스도 추죠. 전혀 서두르는 기색이 없어요. 달팽이 커플이 지금 어디를 가는 중이라는 걸 잊은건 아닌지 걱정이 되었는데 잊어버린 건 아니네요. 부지런히 길을 떠났다고 나오니까요. 책을 읽자면 '빨리 가야 하는 거 아닌가?' 독자만 서두르는 듯한 묘한 기분이 듭니다.
가다가 또 둘은 밤송이에 찔린 생쥐 한 마리를 발견합니다. 남의 고통을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친절한 두 달팽이! 옆에 자리를 깔고 앉아서 밤이 되도록 가시를 빼주네요.

이 장면이 특히 아름답습니다. 오른쪽 페이지의 하늘에서는 고고히 달빛이 빛나고 왼쪽 페이지 아래에서는 그 흐뭇한 달빛 아래 달팽이 둘이 생쥐를 도와 열심히 가시를 빼주고 있어요.
동화에는 햇님의 말 외에 대사라고 할 것도 없지만 무척 서정적이고 표현력이 좋아요. 동물 친구들의 표정과 상황을 보고 내용은 그냥 알 수 있는 유아용 그림책이거든요. 대사가 없다고 지루하거나 심심한 그림책은 아닙니다. 자연의 풍경과 묘사가 아름답고 어려움에 처한 친구들을 돕는 과정이 너무나 당연하고 자연스러워요.
아픈 생쥐를 지나치지 않는 달팽이를 보면서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친구를 돕는 마음을 배웁니다.
게다가 결말은 생각도 못했는데 기분좋은 반전이 기다리고 있었어요. 늦어도 늦은 게 아니다? 정말 세상일이 그렇지 않나요? 남보다 조금 뒤쳐지거나 늦어도 괜찮다고 나즈막히 위로를 전하는 동화책입니다. 그저 방향을 잃지 않으면 언제고 목적지에 도착한다고, 그러니 가다가 꽃들의 노래를 듣고 소나기를 마셔보고 친구들을 도와줘도 괜찮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오직 결혼식 참석에만 초점을 맞췄다면 병 속의 지렁이도 구해주지 않고 봉지 속에서 출구를 못 찾는 개구리도 못 본 척 하고 가시 박힌 생쥐도 건너뛰어야 하는 거겠죠? 생각만 해도 아찔해집니다. 결과만 강조하는 세상에서 과정의 아름다움을 노래하는 아름다운 그림책이었어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