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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누 똥 쌌어? - 2020 문학나눔 선정도서 ㅣ 북극곰 꿈나무 그림책 69
이서우 지음 / 북극곰 / 2020년 8월
평점 :
"누누 똥 쌌어?" 라고 북극곰에서 나온 글 없는 그림책을 읽었습니다. 배경으로 등장하는 서양식 집과 널찍한 거리, 아름다운 공원, 길쭉한 사람들이 어딘가 제가 좋아하는 프랑스 작가 장자크 상뻬의 꼬마 니꼴라가 연상되어서 더욱 사랑스러웠어요.

이야기는 누누라는 강아지가 메모 한장과 함께 주인공의 집에 도착하면서 시작되요. 이 귀여운 강아지는 칭찬을 좋아한다네요. 특히 똥을 잘 싸면 온 가족이 크게 칭찬해달라는 당부가 있습니다. 맞아요, 강아지들이 대소변을 가리는 것은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닙니다. tv에서 봐도 집안 여기저기에 테러를 해서 골치를 썪는 가정이 많죠.

낯선 집에 온 작고 하얀 강아지 누누. 거실 한 가운데 깔아놓은 배변 패드 위로 조심스럽게 가서 첫 번째 똥을 누는데요. 가족들 긴장한 표정이 재밌습니다. 이 녀석이 제대로 네모칸 안에 볼일을 볼 것인가 말 건인가 지켜보는 눈치죠. 그러다가 두 개 중에 하나를 멋지게 네모 안에 성공시키는 누누. 첫 번째에 이 정도면 정말 훌륭한 견공 아닌가요? 다들 원주인의 당부대로 춤도 춰주고 누누를 크게 칭찬해줍니다.

그런데 아버지!!! 첫장면부터 잔뜩 화가 나신 그 얼굴 그대로네요. 처음에는 여기저기 똥 누는 누누가 마음에 안 들어서 그러신 걸까 생각했는데 자세히 보니 아니었어요. 그림을 비교해보면 아버지도 표정만 무서울 뿐 꼬깔모자를 쓰고 있네요. 이게 대반전의 힌트입니다.

어딘가 화난 얼굴의 아버지가 이제 주인공이 되네요. 누누와 함께 산책을 가는 아들, 역시 굿똥을 누는 누누. 평범한 가족의 일상을 즐기지만 어느덧 시간이 흘러 아들은 결혼을 해서 집을 떠나고 딸도 대학졸업을 합니다. 가족의 모든 소중한 순간을 함께 하며 똥을 누는 누누. 아, 이 그림책 너무 웃겨요. 생리현상을 그 누가 막을 수 있을까요? 강아지는 시간과 공간의 제약없이 자기 편할 대로 볼일을 보고야 맙니다. 하지만 가족들은 늘 똥누는 누누를 한결같이 사랑하고 칭찬해주죠.
아들, 딸이 다 떠나고 이제 노부부와 누누만 남은 썰렁한 집. 연로한 어머니 한 분이지만 역시 누누가 배변패드 안에 볼일을 잘 보자, 칭찬의 댄스를보내주시지만 안타깝게도 어떤 병인가 급하게 돌아가십니다.

계속 즐거운 일만 있을 줄 알았는데 심지어 동화 속에서도 인생사는 그게 아니네요. 시종일관 밝고 아름다운 그림책에 한 순간 어두움이 드리우는 순간이자 내용은 이제 클라이맥스를 향해 달려갑니다.
더 이상 누누가 똥을 잘 눠도 칭찬해줄 가족이 없을 것만 같은 집. 늘 험상궂은 표정의 아버지만 남았거든요. 아버지는 도무지 그 불편해보이는 얼굴 때문에 책의 시작부터 끝까지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이 책의 진정한 주인공이기도 합니다. 자, 누누는 네모칸 안에 굿똥을 쌌는데 과연 아버지는 다른 식구들처럼 누누를 칭찬해줄까요?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기대하는 누누와 바싹 그 곁에 서 있는 아버지. 대반전이 일어나고 마지막 페이지를 보자 찔끔 눈물이 나네요. 이게 뭐라고...
투박한 아버지의 사랑을 듬뿍 느낄 수 있어서 더욱 감동적이었던 "누누 똥 쌌어?" 입니다. 작가는 대한민국 아버지들을 너무나 잘 아는 것 같네요. 만남과 이별, 반려견이 가족이 되어가는 과정, 장성한 자식들이 떠난 후 남은 아버지의 외로움 등이 글자 하나 없어도 너무나 잘 전달되는 아름다운 그림책입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