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페의 음악
장자크 상페 지음, 양영란 옮김 / 미메시스 / 2020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장자크 상페의 오랜 팬으로 재즈와 클래식 등 진정한 음악 애호가인 상페의 그림에세이를 받아들고 정말 기뻤다.

내용은 말할 것도 없고 책의 만듦새 역시 소장하는 사람이 흡족할 만한 퀄리티였는데 미색의 톡톡한 종이의 질감과 실로 꿰매는 사철방식, 넉넉하게 들어간 컬러 화보가 상페의 그림을 많이, 크게 보고 싶은 욕심을 충분히 채워주었기 때문이다.


내 책장에서 오랜 세월 살아남은 몇 안되는 책 중 하나가 바로 저 "꼬마 니콜라"인데 상페가 세계적인 그림작가로 발돋움하는데 큰 공이 있는 르네 고시니와의 대표적인 합작품이다.

그는 내게 아주 오래 전부터 꼬마 니콜라의 삽화가로 더 익숙했고 니콜라의 급우인 뚱보 알세스트가 크루아상이나 크림빵을 먹는 모습은 수십년이 지난 지금도 나의 뇌리에 각인되어 있어서 TOUS LES~라고 불어가 들어간 빵집에 가면 나도 모르게 가루가 부슬부슬 떨어져서 입가에 묻고 마는 크루아상부터 고르게 된다.



위의 사진은 소담출판사의 '꼬마 니콜라'에 나온 장자크 상페의 작가 소개란인데 꽤나 핵심을 잘 짚었다. 학창시절부터 성적은 보통에 사고뭉치였고 감화원까지 다녀왔으며 만화가 생활을 19살부터 했다는 것, 이 정도를 머리 속에 넣어두고 이 책을 읽으면 덩치가 크고 남성미 넘치는 그가 더욱 가깝게 느껴진다.

'상페의 음악' 작가 소개를 읽어보면 "1991년 상페가 30년간 그려온 데생과 수채화가 <파피용 데 자르>에서 전시되었을 때 , 현대 사회에 대해 사회학 논문 1천편보다 더 많은 것을 말해준다는 평을 받았다."라는 말이 나오는데 정말 그렇다.

언뜻 보면 대충 그린 듯 하지만 실상은 특징을 무척 잘 잡았고 스케일이 큰 그림이라 시원하고 넓은 배경은 물론, 확장성이 뛰어난 작가라는 인상을 받는다. 꼭 똑같이 사진처럼 그려야 잘 그린 삽화가 아니므로 르네 고시니의 "꼬마 니콜라" 역시 삽화가가 장자크 상페가 아니었다면 이만큼의 세계적인 대히트는 못했을 것만 같다.



음악에 대한 상페의 사랑은 남다른데 왜 그림을 그렸냐는 질문이 나온다. 이유는 간단했다. 어린 시절 부모의 불화로 다소 불행했던 그는 라디오조차 이렇게 몰래 들을 형편이었고 집이 가난해서 언감생심 피아노는 꿈조차 꿀 수 없었다.

그림은 연필과 종이만 있으면 바로 시작할 수 있었고 그려서 갖다주면 돈도 금방 나왔기에 집세를 낼 수 있었다고 한다. 이 그림 에세이를 읽으며 처음부터 느낀 건데 장자크 상페는 참으로 솔직, 소탈 그 자체이다.

정말 듣고 싶었던 레코드를 듣기 위해 음반 가게 사장의 눈치를 보며 어렵게 부탁해서 2~3번 들어보고 그걸 귀로 아예 외워버리고, 황홀감에 빠져서 집으로 돌아가는 모습이나 나중에 커서는 아내가 사준 LP플레이어를 받게 된 소회, 수많은 유명 음악가 친구들과의 교류, 또 작품 생활 중에 많이도 그린 앨범자켓, 콘서트, 오케스트라 그림은 그의 인생 이야기와 같이 듣고 보면 감명깊기까지 하다.

삽화가가 되지 않았다면 상페는 음악가가 되었을 것 같지만 그 스스로는 재능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듣는 귀는 있지만 연주자가 될 만큼의 실력은 절대 아니라고 손사래를 치지만 과연 어릴 때 좀 더 윤택하게 받혀줬더라면 정말 직업이 바뀌진 않았을까 순수하게 궁금해진다.



상페는 음악하는 사람들, 특히 어릴 때부터 바이올린이나 피아노를 배우는 학생들을 부러워하기도 하고, 같이 음악하는 청년들 혹은 회원들끼리 삼삼오오 모여서 기차를 기다리거나 연주회를 하는 모습에도 각별한 애정이 있었다. 아마도 만화가는 혼자 작업하는 게 숙명이라 조금 외로웠던 것 같기도 하고 제 때에 배우고 싶은 것을 해보지 못한 아쉬움도 컸던 것 같다. ​P.153. "거리에서 어깨에 바이올린을 메고 가는 학생이나 콘트라바스 혹은 기타를 들고 가는 청년을 볼 때마다 나는 항상 가슴이 찡합니다. 그 젊은이들은 음악을 등에 짊어지고 다닙니다. 나는 그들이 자기 악기와 씨름하며 보내는 무수히 많은 시간을 생각하게 되죠." 사람은 누구나 가보지 못한 길에 대한 미련과 애정이 있기 마련인데 딱 그런 마음이 묻어나는 인터뷰를 읽자니 중간중간 안타깝기도 하고, 또 먹먹한 마음으로 수많은 뮤지션들의 무대 뒤 모습까지 그린 그의 마음을 바라보게 되었다. ​ 상페의 삽화 중 하나인데 이미 어두운 밤, 트럼펫을 옆구리에 끼고 담배를 한 대 물고 있는 연주자는 연습 중에 잠깐 휴식을 취하는 중일까?


이 책은 대담형식으로 꾸며져 있어서 인터뷰어와 인터뷰이(상페)의 질답이 끝없이 오가는데 상페는 굉장히 위트있는 사람이라 다소 반복되거나 짖꿎은 의도가 있는 집요한 질문조차 좀처럼 화를 내지 않고 그만의 방식으로 소탈하게 응수하는 게 인상적이었다.

6살 때부터 라디오를 들으며 음악과 사랑에 빠졌으나 다른 직업을 택해 대가의 반열에 오른 모습이 어딘가 돈을 벌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죽어라 해야 하는 평범한 사람의 인생과도 겹쳐져 보였다.

할 수 있는 일, 잘하는 일, 하고 싶은 일이란 직업선택의 갭을 최정상 그림작가 장자크 상페에서도 느낄 줄이야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이 책을 읽지 않았다면 그가 어떤 사람인지는 전혀 몰랐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 책의 뒷부분은 다 장자크 상페의 그림만으로 꾸며져있다. 앞에서 중간까지는 인터뷰를 통해 그의 인생, 음악 이야기, 영감을 준 유명한 곡을 친절한 역주와 함께 질리도록 볼 수 있고 뒷부분에는 그의 컬러그림(오케스트라, 연주회, 연주자의 모습들)을 실컷 볼 수 있어서 멜론이나 지니 같은 음악앱을 켜고 하나하나 찾아가며 들어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재즈나 스윙, 클래식, 샹송에 대해 문외한이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들어보니 이미 알고 있는 곡이 너무 많아서 놀랐다. 그만큼 유명한 가수와 음반에 대해 두루 다루고 있으니 가을밤 울적할 때 음악을 들으며 한 장씩 넘겨보기에 이보다 더 좋은 그림 에세이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만족스러웠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샤인 - 제시카 소설 데뷔작 샤인
제시카 정 지음, 박지영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0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소녀시대의 전 멤버이자 패션 디자이너, 인플루엔서인 제시카 정의 첫번째 소설 샤인을 읽었다. 나는 사실 그녀에 대해 거의 모르지만 동생이 f(x)멤버인 크리스탈(한국이름: 정수정)이고 요즘 보는 드라마 '써치'의 주인공으로 나오기 있기에 정자매에 대한 호기심에 읽어봤는데 처음 100페이지까지의 오글거림만 견뎌내면 굳이 영어덜트라는 22~25세를 빠져나가는 올드보이들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청춘소설이라고 생각한다. 심지어 포토카드도 2장 주기에 기쁜 마음으로 소장한다.



굳이 서평에 스포를 하고 싶지 않기에 짧게 어떤 이야기인지 줄거리와 감상 위주로 적어봤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한국계 미국인 레이첼 김이고 그녀에게는 케이팝 스타가 되고 싶은 꿈이 있기에 DB엔터테인먼트라는 곳에서 7년째 연습생 생활을 하고 있다.




가족구성원은 프로 복싱선수 은퇴하고 체육관에서 일하며 몰래 로스쿨을 다니는 아버지, 정교수가 되길 희망하며 열심히 대학강의를 나가는 어머니, 철부지지만 귀여운 여동생 레아가 있다. 말하자면 단란한 가족이고 자매 구성이다. 아버지는 그녀의 꿈을 응원하고, 어머니는 좀 더 이성적이며 레이첼의 연습생 혹은 데뷔 이후의 삶까지 걱정하고 있다. 어머니는 이 소설에서 레이첼을 항상 긴장시키는 인물이자 가장 현실적이다. 수백만명의 연예인 지망생 중 하나 발탁되어 스타로 살아가는 현실을 감안하면 이런 걱정을 안하는 게 도리어 비정상적으로 느껴진다.

어딘가 DB엔터의 노대표는 SM의 이땡땡 회장이 연상되고 걸그룹 데뷔를 위해 거치는 그 많은 오디션도 예의 대결구도 프로그램이 생각나지만 그건 '샤인'의 저자가 전직 케이팝 스타라는 이미지 때문에 겹쳐지는 모습일 뿐 소설 첫머리에도 나왔듯이 모든 등장인물과 사건은 다 허구이다.

다만 다루는 이야기가 케이팝 스타와 소속사, 연습생이라는 생태계이기에 현실을 바탕으로 마구 뻗어나가는 독자의 상상력까지 막을 수는 없을 듯하다. 또 DB엔터테인먼트가 소설 배경의 중심이라 케이팝 연습생들이 어떤 생활을 하는지, 어떻게 자신의 사생활을 희생하며 오랜 시간 데뷔만을 위해 노력하는지 생생하게 볼 수 있어서 매력적이기도 하다. 연예계 생활이 궁금했던 독자라면 어느 정도 호기심 해소도 될 것이고 다 읽고나면 한 편의 청춘 드라마를 본 듯한 기분이 든다.

레이첼은 연습생 생활 중 아카리 같은 친구도 사귀고 반대로 늘상 한 대 칠 기회만 노리는 경쟁자 미나도 만나고, 우연한 기회에 매력적인 케이팝 스타 제이슨 리와 사랑에도 빠진다. 중간에 의미심장한 말이 나오는데 바로 업계 '비밀'에 관한 것이다. 영어덜트 독자라면 그 비밀이 당췌 무엇인지 궁금할 것이고 나이를 좀 먹은 독자라면 '이게 비밀이었어?' 싶을 정도로 별로 놀라진 않을 것 같다. 그만큼 이 세상은 굳이 엔터 업계가 아니어도 시궁창이니까...



다만 늘상 이죽거리는 추미나 같은 경쟁자나 언제든 욕을 할 준비가 된 안티팬은 사실은 레이첼 인생에 있어서 병풍 같은 존재일 뿐이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꿈을 향해 어디까지 달려갈 수 있을지 자신을 끝없이 담금질하는 자세가 아닐까 싶다. 어떤 이슈가 터져도 스스로가 단단하다면 레이첼이 두려워하는 것만큼 그녀에게 타격을 줄 수는 없을 테니까.

물론 소설에서 말하는 것처럼 엔터 업계의 고리타분한 이중잣대는 여전히 존재하고 같은 사건에도 남녀가 받는 시선이 다르긴 하지만 절대 연애금지가 요즘에도 그렇게 엔터계 불문율인지 갸우뚱했다. 가장 사랑에 빠지기 쉬운 나이에 아무도 만나지 말라니 어째 본능을 거스르란 소리 같네.

이 소설은 레이첼의 케이팝 스타로서 성장기를 담고 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제이슨 리의 성장기이기도 하다. 비중이 레이첼에 비해 적어서 아쉽고 레이첼 1인칭 시점 소설이라 그의 진짜 속마음을 들여다볼 수 없기에 그저 짐작만 할 뿐이다. 무겁지 않은 내용이라 생각보다 재밌게 읽었고 어차피 소설은 작가와 독자가 공통 경험을 바탕으로 어느 지점에서 만나는 거라 생각한다. 케이팝 스타의 삶에 관심 있는 독자들이라면 딱 100페이지만 넘어가면 순식간에 400페이지를 넘겨버릴 강력한 흡입력이 장점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만을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우리 집 고양이의 행동 심리 - 고양이는 어떤 생각을 할까?
이마이즈미 다다아키 지음, 장인주 옮김 / 다온북스 / 2020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고양이를 키운 지 20년이 넘었지만 그래도 아직도 모르는 점이 많기에 '우리 집 고양이의 행동 심리'라는 책을 읽어봤다.

요즘 개보다 고양이가 핫하다지만 오래 전부터 고양이를 가정에서 키워온 일본에서 "고양이 아빠"로 불릴 정도의 저자라면 책 내용에 깊이가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었다.

고양이 관련 책이 처음은 아니지만 여태까지의 책들은 거의 수박 겉핥기 수준이어서 10년 이상 된 집사의 궁금증을 충족시키기엔 대부분 부실했기 때문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 책은 기존의 고양이 책보다 조금 나은 모습을 보여준다. 뇌과학의 관점에서 고양이 뇌구조에 대해 설명하기도 하지만 그보다 야생성이 강한 고양이의 습성과 그로 인해 집 안에서 키울 때 생길 수 있는 문제점, 인간이 이해하기 힘들지만 고양이 입장에서는 당연한 패턴까지 좀 더 풀어주고 있다.

저자는 이리오모테살쾡이 연구를 50년 이상 하고 있고 포유동물학자이자 일본 동물 과학 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다. 머릿말에 고양이에 대해 '여러모로 멋진 동물'이라고 했는데 정말로 동의하는 정의가 아닐 수 없다.

고양이는 한 마디로 단정 짓기엔 너무나 복잡하고 스마트한 동물이며 사람과 비슷한 듯 다른 점이 더 많기 때문에 더욱 매력적이다. 특히 그 변덕스럽고 자기주장이 강한 성격, 깔끔하고 독립적이면서도 묘하게 사람을 따르는 사회성은 냉온 양면을 다 가지고 있어서 개와 고양이를 다 키워본 사람이라면 결국에는 고양이쪽으로 옮겨가지 않을까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1장은 고양이의 뇌구조와 기억, 수면 등에 대해 나와있는데 그렇게까지 흥미롭지는 않았고 2장은 고양이의 신체능력에 관해 나와있다. 초음파를 감지하고 인간보다 20~30만배 뛰어난 후각을 갖고 있지만 미각쪽에서는 또 그렇지도 않다는 것.

시력 역시 사람보다 10배나 뛰어난 동체시력을 갖고 있어서 움직이는 물체를 금방 파악하지만 가까이 있는 사물을 볼 때는 초점이 맞지 않아 노안과 비슷하고 시력 수치로 나타내자면 0.04~0.3 정도라는 것도 처음 알았다.

우리집 고양이도 멀리서 움직이는 건 아주 잘 보는 것 같은데 이상하게 코 앞에 떨어뜨려준 빵을 못 찾아서 손으로 톡톡 쳐서 가르쳐줄 때가 많았는데 고양이는 사람으로 치면 고도근시에 해당한다니 설명을 듣고서야 당시 상황이 이해가 갔다. 단순히 늙어서 시력이 떨어진 줄 알았는데 원래 가까운 사물을 잘 못 봐서 뭔지 확인하려고 앞발로 툭툭 건드려 보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이 책이 대략 이렇다. 고양이를 키우는 분들이라면 이미 다 아는 행동 패턴인데 아마 그 이유까지는 모르는 분들이 많을 것이다. 이건 이래서 그렇고 저건 저래서 그렇다라는, 과학적인 이유가 없을 때는 꽤 신빙성 있는 추측성 설명이라도 있기 때문에 읽기 전보다 고양이에 대해 훨씬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또 하나 발정과 교미에 관한 실태도 그러한데 고양이의 임신 확률이 거의 백프로라는 것에 충격을 받았다. 이유는 고양이의 배란이 사람과 달리 교미 후에 일어나기 때문이고 토끼도 이런 과라고 한다. 종을 유지하고 자손을 퍼뜨리는데는 합리적일 지 몰라도 길고양이를 자연임신 상태로 놔두면 100%에 가까운 임신 확률로는 너무나 고생스러울 수밖에 없다.

1년에 2번씩 발정기가 찾아온다는데 그 때마다 족족 임신해서 매번 4~5마리의 새끼를 낳아 기른다는 건 길에서 사는 생명에게 가혹할 수밖에 없다. 책에서는 이런 문제점까지는 짚지 않고 합리적인 시스템이라고 가볍게 넘어갔지만 봄만 되면 임신한 길고양이가 많이 보이는 이유에는 저런 속사정이 있었구나 싶어서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

하지만 자연의 섭리를 인간이 다 간섭할 수도 없고 수많은 길고양이를 포획해서 중성화한다는 것도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다.

뒷부분에서 흥미로운 내용은 많은 집사들이 궁금해할 '고양이는 왜 골골송을 부르는가' 일텐데 새끼와 어미의 소통에서 시작되었다는 설이 유력하다고 한다. 골골골 소리도 나지만 성대의 울림으로 몸이 떨리는데 누워서 젖을 주던 어미도 직접 보지 않아도 새끼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산책냥이가 비둘기나 쥐를 잡아다가 주인에게 주는 것은 사냥에 서툰 주인을 새끼 고양이처럼 보고 자기가 되려 주인을 챙겨주려는 마음에 갖다준다니 참 기특하다는 생각을 했다. 주인의 털을 핥아주는 행위도 미숙한 새끼 고양이의 털을 대신 정리해주는 행동이라는 설명에는 빵 터졌다. 우리집 고양이가 어릴 때 그렇게 나를 쫓아다니며 머리카락을 핥아줬는데 이게 저런 이유였다니..

마찬가지로 모르던 걸 하나 또 발견했는데 고양이가 하품을 하는 것도 스트레스를 발산하기 위해 하는 전위행동(전후의 행동과는 아무 맥락없이 하는 것)이라고 한다. 일상에서 자주 하는 행동을 함으로써 짜증을 억누르고 마음을 평온하게 유지하려 하는 게 전위행동이다.

우리집 고양이는 동물병원에 가면 진찰대 위에서 극도로 긴장을 하고 꼬리까지 숨기는데 예전에는 아예 하품을 하기에 '어? 이 상황에 하품이라니?'하고 의아한 적이 있었다. 그게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한 전위행동이라는 것을 알게 되니 궁금증이 해소되어 속은 시원하지만 가슴이 아프다.

고양이에게는 이렇게 자기들만의 속사정이 있다. 전문적인 서적을 읽지 않으면 절대 이해할 수 없는 맥락 없는 행동이 꽤 많기 때문에 고양이 키우는 사람이라면 기초 정보도 쌓고 꽤 재밌게 볼 수 있을 것 같고 키우기 전이라면 더더욱 읽어보고 문제행동이 나타나도 감당할 자신이 있는지 한번쯤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개보다 훨씬 키우기 힘든 동물이 고양이인데 그저 독립적이니 손이 덜 가겠지 생각하고 덜컥 고양이를 키워보려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지는 것 같아 우려스럽기 때문이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주디스 커 일러스트레이터 1
조안나 캐리 지음, 이순영 옮김 / 북극곰 / 2020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주디스 커"라고 영국의 세계적인 동화책 작가 주디스 커의 파란만장한 전기를 읽었습니다. "간식 먹으러 온 호랑이", "깜박깜박 잘 잊어버리는 고양이 모그" 등의 대표작을 남긴 분인데 일대기를 먼저 읽고나니 이 분이 남긴 동화책에 무척 관심이 가더라구요.

그만큼 작가 개인의 역사를 객관적인 시선으로 잘 담아냈어요. 나치 독일에서 태어나 온 가족이 몰래 영국으로 망명을 하고 그 곳에서도 무수히 이사를 다니며 전쟁통에 학교를 다닌 내용이 '안네의 일기'와 겹쳐지면서 무척 흥미진진했습니다.



엄마와 베를린을 탈출할 때 어린 주디스 커가 챙긴 한 권의 책 "위인이 되다"에는 '힘든 어린 시절을 견디고 위인이 되었다.'라는 구절이 있었다는데 이게 무척 마음에 들어서 가슴에 새겼다네요.

정말로 주디스는 자라서 영국을 대표하는 아동문학 작가가 되고 대영제국 장교 훈장까지 받았다니 어린 시절 읽는 책의 중요성을 새삼스레 깨닫게 되었습니다. 어른이 되면 사실 위인전기 같은 건 식상해지잖아요? 하지만 어린이들에게는 그만한 가치가 있어요.

주디스 커는 작년 95세의 나이로 작고하셨는데 동화 작가로서 본격적으로 이름을 날린 것은 다소 늦은 40대부터였구요. 결혼 전에는 섬유 디자이너, 미술 교사, BBC 방송작가 등 다양한 직업을 거치기도 했는데 아이들이 학교 간 이후에 본격 데뷔한 "간식 먹으러 온 호랑이"가 히트를 치면서 전문적인 동화작가의 길로 들어섭니다.

그 후에는 거의 50년 동안 작품 활동을 줄기차게 하셨으니 100세 시대에 진정한 모범이자 이렇게 살고 싶다는 생각이 자꾸만 드네요.



'그림 그리기 싫었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는 주디스 할머니.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죽기 전까지 하면서 생계도 꾸릴 수 있다면 이거야말로 행복 아닌가 싶습니다.

특히 베스트셀러가 되어 50년이 넘게 팔리고 있는 데뷔작 '간식 먹으러 온 호랑이'는 딸아이 덕분에 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주디스의 딸 테이시가 동물원 호랑이를 무척 좋아했고 같이 동물원에 가서 보기도 하고, 딸아이가 호랑이 이야기를 해달라고 매일 조르면서 이 동화는 탄생하고 나날히 살을 붙여갔습니다.

딸 테이시는 동화 속 주인공 소피의 모델이 되었고 딸 덕분에 독자에게 뭐가 익숙한지, 어떤 점에 놀라워하는지, 어떻게 해야 웃게 할 수 있는지 알 수 있었다네요.

그림책을 그리는 엄마와 그 책을 읽을 나이대의 딸, 환상의 조합 아닌가요? 덕분에 화가였지만 그 전까지 그림책 일러스트 경험이 전혀 없었던 주디스가 글과 그림이 합쳐진 동화책을 내는데 큰 도움을 준 거죠.


또 하나의 환상의 조합이라면 주디스 커와 그녀의 어머니 이야기를 빼 놓을 수 없습니다. 땡전 한 푼 없을 정도로 가난했던 망명자 집안에서 무슨 여유가 있어서 딸에게 비싼 스케치북을 사줄 수 있겠어요?

그런데 주디스의 어머니는 아픈 딸아이를 기쁘게 해주기 위해 전문가용 화방에 가서 최고급 수채화 용지를 플렉스 해버렸죠. 덕분에 주디스의 어린시절 그림은 질좋은 종이에 그려져 세븐 스토리즈 기록 보관실에서 볼 수 있다고 합니다. 이걸 보고 과소비라고 할 수 있을까요?

게다가 그녀의 어머니는 나치에게 쫓기며 이사다니는 와중에도 어린시절 딸아이가 그린 그림을 가방 속에 다 챙겨서 떠났고 덕분에 독자들은 그녀의 어린시절 그림까지 고스란히 감상할 수 있게 된 거죠.

다른 일화도 많은데 달리는 모습을 못 그려서 고민하는 어린 딸을 위해 화가로 활동하는 친구를 집으로 초대해 일종의 개인과외까지 시킨 일을 보면서 한 사람의 위대한 예술가가 탄생하기 위해서는 부모의 도움이 꼭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 세상 누구도 혼자 그냥 자라지는 않죠. 위대한 작가에게는 혜안을 가진 엄마가 있었네요. 그 날의 특별 지도 덕분에 주디스는 달리는 아이들은 발을 땅에 수평을 딛는 게 아니고 앞부리로 땅을 딛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 후로는 달리는 모습은 물론 이렇게 서클댄스까지 훌륭하게 그리게 되었습니다.




춤을 출 땐 앞부리로 이렇게, 이렇게. ㅎㅎ

이 책 편집도 기가 막힙니다. 적절한 일화와 설명, 그 옆에는 참고자료까지. 정말 즐겁고 재밌게 읽었어요. 주디스 커 그림책에 관심이 많은 독자라면 이 작가의 일생, 작품세계, 베스트셀러의 탄생 비화까지 책 한 권으로 중요 사건을 쏙쏙 다 알 수 있어서 궁금증 해결은 물론 그녀의 작품 세계가 읽기 전보다 훨씬 더 매력적으로 다가옵니다.

'깜빡깜빡 잘 잊어버리는 고양이 모그' 역시 실제로 그녀의 고양이가 모델이라니 이렇게 사랑스러울 수가 있을까요? 동물을 사람처럼 의인화하지도 않고 과장하지도 않는 것은 그녀가 그만큼 동물에 익숙하고 충분히 잘 알았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고양이는 그냥 고양이다운 그 모습 그대로로 충분하니까요.




이 책이 시리즈물은 아닌 것 같은데 다른 작가의 작품도 이렇게 전기식으로 나오면 또 읽고 싶을 정도로 정말 만족스러웠어요. 심지어 아무도 빌려주고 싶지도 않을 정도로 마음에 쏙 드는 책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책 먹는 도깨비 얌얌이 북극곰 무지개 그림책 57
엠마 야렛 지음, 이순영 옮김 / 북극곰 / 2020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책 먹는 도깨비 얌얌이는 도깨비 좋아하는 우리 조카 나이대의 꼬마들이라면 정말 재밌게 볼 수 있는 약간의 입체북 형식이에요. 앞표지도 두껍게 얌얌이가 쇠창살에 갇힌 것처럼 파냈고 뒷표지 역시 지명수배 중인 얌얌이를 위트있게 오려내어 아이들이 좋아하는 촉각놀이처럼 책을 직접 만져보는 재미가 있습니다.





꼬마 도깨비 얌얌이는 비누, 양말, 고무오리, 발가락까지 닿는대로 씹고 깨무는 장난꾸러기인데 그 중에서도 가장 좋아하는 게 책이네요. 얌얌이는 이 책에서 나가서 유명한 다른 동화로 들어가 이야기를 자기 멋대로 훼손합니다. 이게 바로 이 동화책의 꿀잼 포인트!




'골디락스와 곰 세 마리', '빨강망토 이야기', '잭과 콩나무'까지 얌얌이가 옛날 동화책으로 들어가 자기가 이야기를 이끄는 새로운 주인공이 되어버리고 원래 이야기는 완전히 바뀌어버립니다. 원작의 내용을 알고 있는 아이들은 더욱 재미를 느끼겠지만 아직 모르고 봐도 아무 상관 없이 좋아하네요.




저는 북인북처럼 소개된 변형된 동화 중에 원작 '빨간 망토'를 워낙 좋아하기도 했지만 가장 위트있게 패러디해서 내내 깔깔깔 웃으며서 봤어요. 빨간 망토 이야기 속으로 들어간 도깨비 얌얌이는 빨간 망토 소녀가 가지고 있는 할머니 도시락을 자기가 다 먹어치우고 소녀의 빨간 망토를 빼앗아 어깨에 두르고 (미친다 ㅋㅋㅋ) 신이 나서 할머니 오두막으로 찾아갑니다.

그런데 당연히 기다리고 있는 건 할머니가 아니라 할머니 분장을 한 늑대잖아요? 늑대가 빨간망토를 걸친 얌얌이에게 이상해보인다고 지적질을 하는데 그것도 기가 막혀요. ㅎㅎ

온갖 소동 끝에 할머니는 풀려나지만 빨간 망토 소녀는 아예 이야기에 등장도 못해서 창문 밖에서 화를 버럭 내고 있고 할머니 분장을 한 늑대는 얌얌이가 그 페이지를 갉아먹어서 닭이 되어버렸네요!




원작을 패러디하는 솜씨가 능수능란하고 상상력이 뛰어나요. 다음 페이지를 갉아먹은 얌얌이 때문에 닭이 되어 버린 늑대, 게다가 왠지 푸드덕거리고 싶다며 닭이 된 걸 좋아하는 듯 하죠? 희한한 방식의 해결이지만 어쨌든 해피엔딩, 늑대 녀석 다시는 나쁜 짓을 못하게 되었군요!



책을 넘나다니며 원작을 훼손하고 주인공들의 분노를 산 말썽꾸러기 얌얌이. 이 녀석 체포해야 하는데 아무리 가둬놔도 쉽지가 않습니다. 책 먹는 도깨비니까 다음에는 어떤 책으로 들어가서 말썽을 부릴지 기대되네요. 조카들과 즐겁게 읽은 독특한 기획의 동화책입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