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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떠나는 남자
로랑 그라프 지음, 양영란 옮김 / 현대문학 / 2005년 8월
평점 :
절판
누가 그럴 수 있겠어요. 여행할 꿈을 꾸면서 철저히 여행 준비를 하지만 절대로 지금 이곳을 떠나지 않았던 갑갑한 한 남자의 삶을 비난, 혹은 가여워할 자 누구일까요. 떠날 것이기 때문에 사는 곳을 임시 거처로 여기죠. 하여, 세들어 사는 집에 못도 하나 안 박고 제대로 된 침대도 없이 삽니다. 혀를 찰 건가요? 그러지 마세요. 파트릭은, 나름 잘 살았습니다. 카지노에서 일하고 퇴직하고 어느날 모아두었던 돈을 들고가서 룰렛 테이블에 몽땅 걸죠. 한 판에 말이죠. 일확천금을 노린 것도 인생이 허무해서도 아니에요. 그냥 살았던 거예요.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고 살려 했지만 자기도 모르게 태어나버린 아들의 존재도 그의 인생을 바꿔놓진 못해요. 그는 그냥 그대로 에스페랑스 호텔 11호실에서 살아갑니다. 죽어 뼛가루가 된 다음에는 우주로 떠나게 되지만 그건 그의 의지와는 상관없어요. 죽음 이후에 그토록 원했던 여행을 이루었다고 누군가는 말하더군요. 글쎄요. 그걸 그렇게 해석한다면 파트릭의 삶은 결국 그토록 원하던 걸 이루지 못한 보잘것 없는 게 되어버리지 않을까 싶어 주저됩니다. 그대로도 괜찮지 않았나요. 여행, 그거 꼭 가야하나요. 안 가면 어때요. 여행을 떠나고 싶어하고 여행 준비를 하면서도 지금 여기의 삶을 누리면 되죠. 뭔가 부족하고 부족한 걸 채우고 싶어하는 모자란 인간, 그 모자람이 좋습니다. 자신의 뼛가루를 들고 달나라여행을 떠난 아들에게 죽은 파트릭이 한 마디 할 기회가 있다면 뭐라 했을까요. 잠시 파트릭이 되어 짐작해봅니다. 곰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