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네 집에 다녀오고 나면 파김치가 된다. 냉장고를 정리하고 욕실을 청소하고 베란다를 한바탕 뒤집느라 몸이 고단할 뿐 아니라 채널A로 맞춰진 텔레비전 소리가 끝도 없이 왕왕거려서 속도 부글거려서다. 어버이연합 회원은 아니지만 그에 못지않은 사고방식을 가진 노인은 나라의 안정을 위해서라면 뭐든 양보할 줄 아는 애국주의자다. 그 애국심을 표출하는 방법 중 하나는 텔레비전을 보면서 빨갱이 욕하는 것. 약간 불그스름해보이는 놈부터 새빨간 새끼까지 입으로 패대기를 친다. 게다가 채널A 등장인물들은 왜 그리 다들 목소리가 큰 건지. 새벽마다 씩씩하게 하는 운동으로 미루어 보아 노인의 남은 시간은 짐작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애국심 또한 시간이 지날수록 단단해지고 있으므로 내 몸 고단함과 내 속 부글거림도 점점 심해질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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