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사람들의 추모기사를 쓰는 일이 직업인 이책의 저자가 우리에게 권한다. 자, 이제 당신이 한번 해보는 겁니다. 본인의 추모기사를 직접 쓰는 거죠. 당신의 인생이 고스란히 담긴 일종의 유서를요. A4 용지 세 장 분량입니다. 나중에 쓰지 뭐, 하고 미루지 말고 지금 써보세요. 혹시, 어떻게 써야할지 감을 못 잡으시나요? 그럼 제가 도움을 드리죠. 여기 질문이 열 가지(이게 바로 이책의 차례다) 있습니다. 대답을 잘 생각하다 보면 쓸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는,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생각해 내는 게 힘들까봐 (어찌 되었든 한 권의 책이 열 줄로 완성될 수는 없으니까) 작가 자신 얘기, 친구들 얘기, 작가가 쓴 추모기사에 얽힌 얘기들을 빽빽하게 적어두었다.
목적에 딱 맞게 활용한다면, 이책의 독자는 죽은 다음에도 세상이 자신을 기억해주기를 바라며 A4 용지 세 장 분량의 자기 추모기사를 쓰려하는 사람이 될 것이다. 그러니, 나는 이책의 진짜 독자가 아니다. 대충 (첫번째 질문 부분은 꼼꼼하게, 나머지 질문 부분은 설렁설렁) 읽긴 했다. 읽었지만 작가의 의도와는 다르게 나아가는 삐딱한 독자다. 광고 카피를 인용해 본다. "아무것도 안하고 싶다. 이미 아무것도 안하고 있지만, 더 격렬하게 아무것도 안하고 싶다." 특히, '나를 위한 작은 기념비' 따위는 남기고 싶지 않다. 완벽히 잊혀지고 싶다. 애쓰지 않아도 시간이 지나면 그리 될 것이지만 가급적 빨리 내가 살았던 흔적이 말끔히 사라졌으면 한다. 필요없어요, 라고 담담한 반응을 보였던 아내. 내막이 무엇이든 그녀를 지지한다.
너무 담담한 반응 때문에 오래도록 내 기억에 남는 특별한 거절 사례가 있다. 고인의 아내가 전화를 받았다. 나는 추모기사에 대해 간단히 설명하고 남편을 위한 추모의 글을 쓰고 싶다고 했다. 여자는 크게 한숨을 쉬더니 짧게 답했다. "필요없어요." 그는 잊힐 것이다. 아무도 그에 대해 듣지 못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