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말엔 무슨 영화를 볼까?> 4월 4주



 

나이가 20대 중후반 이상이고 연애시뮬레이션을 즐겨 했던 사람이라면 '투하트'란 게임을 기억할 것이다. 다른 요소는 차치하더라도 감성적 스토리로 수많은 게이머들에게 사랑받았는데 그 중 멀티(마루치)라는 안드로이드가 특히 인기있었다. 인간과 전혀 다르지 않은 기체(機體)에 CD 한장이면 인간처럼 사고하고 감정을 느끼는 로봇 멀티(세리오와는 다르게)는 사랑스런 모습과 감동적인 스토리때문에 많은 사랑을 받았다.
 여기 나오는 노조미도 멀티와 비슷하다. 다만 멀티가 잡역을 위한 안드로이드였다면 노조미는 외로운 밤을 채워주는 안드로이드다. 기계는 언제나 인간의 욕구를 채워주는 도구에 지나지 않으며 주체성 가짐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마야 문명의 예언과 무자비한 문명 발달에 대한 경고 메시지에 담겨있는 말이 '기계는 언젠가 인간에게 복수한다'인데 문명이 급속도로 발달함에따라 性과 사랑마저 대신해주는 로봇이 등장했지만 그에 따른 부작용이 없을 거라고는 생각치 않았을 것이다.

 

 남자가 출근하고 햇살이 쏟아지는 창가에서 노조미는 천천히 생명을 얻는다. 이 장면은 아직 세상에 아름다움과 감성이 남아있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노조미도 기계에서 벗어나 서서히 자신의 존재를 깨닫게 되고 밖으로 나간다. 그리고 비디오샵에서 준이치를 만나게 되는데...

 

 현대에는 인간관계가 도구적이다. 히데오가 말 못하는 인형을 데리고 산다든지 직장에서 타박을 당하는 장면은 철저히 이성중심화된 사회를 보여준다. 그러다보면 개인의 존재 가치는 이해 관계와 성취 위주로 초점이 맞춰지기 마련이다. 일처리는 서툴러도 진정한 존재 가치를 찾고 싶었던 노조미에게 희망은 무엇일까. 후반에 또 다른 안드로이드를 데리고 사는 히데오를 보고 자신은 대체물에 지나지 않았다며 분개하는데 인간관계에서는 존재 자체만으로 사랑받고, 만약 누군가의 대신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실망감이 몰려온다. 준이치에게 노조미는 옛 연인의 빈 자리를 채우는 존재가 아니라 그 자체로 사랑하는 여자였다.

 노조미는 일을 잘 못했는데 왜 비디오샵에서 잘리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도 들지 않는가? 예쁘고 귀여운 외모로 비디오샵 주인의 눈을 만족시켜주기 때문이었을까? 아무튼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인간은 성취하는 기계에 불과하다.

 

 문득, 노조미는 자신이 보통 사람들과 다르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 얼마나 소외감을 느끼는 대목인가? 군중심리, 부화뇌동을 떠나서 외적 조건이 현저하게 차이가 있으면 인간은 큰 소외감을 느낀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 역시 자기와 같길 바라지만...

 

 이 작품은 도구적 이성이 지배하는 사회를 배경으로 삼고 있지만 프랑켄슈타인처럼 비판적 성격이 짙지는 않다. 일본 영화답게 머리아프지 않게 쉬엄쉬엄 감성적으로 풀어내고 있다. '주체적 존재'를 강조했던 하이데거는 물질 문명에만 집착하는 시대야말로 진정한 존재 가치에서 멀어진다고 하였는데 '주체적 존재'로 보나 '사람들 사이에서의 존재'로 보나 이 작품에서 강조하고 싶었던 게 바로 존재 가치가 아닐까. 한참 전에 나왔던 '마리오넷 컴퍼니'같은 잔잔한 감동을 주는 스토리를 좋아한다면 한 번쯤 볼만하다.

 또 한가지 당부하고 싶은 것은 미소녀물에 대한 편견을 가진 사람들이 많은데, 미소녀물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단지 말초 신경을 자극에 신경쓴다는 생각을 버리길 바란다. 수많은 연애 시뮬레이션이 단지 섹스씬에만 신경썼더라면 지속적인 팬층을 확보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주제의식과 감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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