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종말은 투표로 결정되었습니다
위래 외 지음 / 황금가지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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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세상에 환멸이 들 때마다 이 책을 꺼내보기로 했다. 

바로 어제까지만 해도 친구랑 오늘이 마지막이라면 마지막 식사로 뭘 먹고 싶냐는 주제로 몇 시간을 떠들었다. 

인간은 멸망을 가장 인간적인 방식으로 맞이한다. 오늘 마지막 끼니에 대해 고민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 책은 딱 그런 소설들만 모아두었다. 

인간이 인간답게 멸망할 때 얼마나 웃기고 슬픈지. 

인간이 인간을 멸망시켜 인류의 멸망을 가져오기도 하고(죽이는 것이 낫다), 인공지능의 투표로 결정된 종말에서도 끝까지 자신의 궁금증을 해결하기도 하고(침착한 종말), 종말 직전까지 사람들에게 예술은 무엇일까, 영화는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하며(시네필(들)의 하루), 멸망 직전까지 질투라는 감정을 이기지 못하는 인간처럼(캐시), 인간은 멸망 직전에도 인간다운 짓을 하며 멸망을 맞이한다. 그 점이 재밌는 소설들이다. 

sf의 상상력은 가상의 공간에서 가장 현실적인 상상력을 마주하게 된다. 각 소설들은 멸망의 순간에도 인간은 인간을 위로한다. 인간은 인간을 죽이기도 한다. <죽이는 것이 낫다>는 살해주의라는 관점에서 현재 끝나지 않는 전쟁과 사이버 불링 등의 고차원화된 전쟁에서 인간이 인간을 죽이는 행위를 떠올리게 만든다. 우리는 지금 멸망하고 있는걸까? 그렇다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다 읽고나서 드는 생각은 '그래서 어떻게 되는 건데?'(침착한 종말, p.62)  멸망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없고 여전히 무력하지만 그럼에도 인간이 인간답게 최소한의 도리는 하고 살아야 멸망도 이렇게 유쾌한 소설처럼 맞이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아주 인간다운 방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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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주의자가 온다!
이신주 지음 / 아작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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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집의 가장 좋은 점은 목차가 나온 페이지를 펼치고 원하는 제목을 골라 읽는 맛이 있다는 점이다. 목차 부분을 딱 열어놓고 가장 먼저 읽을 소설을 결정하려는데 정말 어려웠다. 그만큼 제목만 봐도 호기심이 생기는 소설이었다. 역시나 표제작인 '공산주의가 온다'가 끌려서 가장 먼저 읽었다. 밖에서 책을 읽을 때 표지를 누가 볼까 살짝살짝 눈치를 보게 되는 나의 모습까지 이 소설에 포함되는 것 같았다.  

 '단일성 정체감 장애와 그들을 이해하는 법'은 현실에서 '정상적'으로 간주되는 인간들을 오히려 차별의 대상으로 둔 배경의 소설이다. 어느 사이비 종교의 시혜적 안내문 같은 이 소설은 강하게 '단일성 정체감 장애를 가진' 인간들과의 공존을 이야기하면서 교묘한 차별을 보여준다. 각 소설마다 현실에서 비주류라고 여겨지는 것들이 주류로 등장한다. 이런 부분을 보면서 SF의 상상력을 이렇게도 쓸 수 있구나, 싶었다. 이런 상상력은 일상을 낯설게 만들어준다. 
<공산주의자가 온다!>라는 쎈 제목과 달리 12개의 소설은 어떤 것이 오기만을 기다리진 않는다. 모든 소설이 어디론가 가고 있다. 이신주 작가의 소설집을 읽으면서 내가 SF의 어떤 부분을 좋아했는지 한번 더 깨달을 수 있었다. 수록된 소설 '완벽한 여자' 역시, 4등급 유전자 정보를 가진 인물들은 자신의 세상을 받아들이면서도 자신이 선택한 방향인 어디론가 가고 있다. '35억 년 레시피'에서도 이상한 생명체와 마주한 입시생은 어딘가 나사가 풀린 채로 일어나 후라이팬을 꺼낸다. 모두 자신에게 주어진 상황에서 가만히 기다리진 않는다. 어디론가 간다. 어느 소설이나 인물이 움직이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 SF에서 인물들의 선택은 낯설지만 묘하게 공감하게 된다. 12개의 소설은 특유의 유머러스하고 공포감이 있는 분위기로 이런 인물들의 행동을 더욱 주시하게 된다. 가끔은 체념하고 건방진 문체로, 정중한 것 같지만 어디 한 군데 삐뚤어져 있는 것 같은 이 인간적인 화자들은 SF가 주는 가상공간에 의문을 던지고 나중에는 우리의 현실에도 질문을 던진다. 정말 SF가 미래의 공간, 이질적인 공간이기만 한 지. 우리는 각자 어떤 선택을 하며 살고 있는 지. 이게 바로 내가 SF를 좋아하는 이유다. 



왜나하면 인식은 무언가를 수동적으로 보거나 듣는 게 아니니까요. 오히려 우리 뇌가 현실을 덧칠하여 새로운 질서와 의미를 부여하는, 지극히 능동적인 과정이니까요.
- P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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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버 드림
사만타 슈웨블린 지음, 조혜진 옮김 / 창비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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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대화를 엿듣는다는 건 누구에게나 흥미를 끄는 일이다. 

우연히 카페에 앉았는데 옆 테이블의 이야기가 들리는 일. 들으려고 한 건 아닌데 듣게 되는 일.

이 소설은 대놓고 두 사람의 대화로만 이루어져 있다. 아만다와 다비드의 대화로만 이루어진 이 소설은 끝까지 긴장감을 놓치지 않는다. 대화를 엿듣는 기분으로 시작한 소설은 점점 우리가 이 상황의 유일한 목격자가 되어버린다. 정확한 순간을 이야기하는 이 소설은 오히려 환상인지 현실인지 분간이 가지 않는 모호함이 특징이다. 아만다가 점점 병들어갈 수록 이 소설은 같이 곪는다. 다비드가 유령처럼 느껴졌던 소설의 전반적 분위기가 전환되고 오히려 다비드가 현실적으로 느껴진다. 


일명 ‘구조 거리’라고 엄마는 자신의 아이를 지킬 수 있는 감각을 그렇게 부른다. 그 거리는 유연해질 때도, 때로는 조절이 되지 않아 어렵다. 자식이 오염된 마을에서 아파가자 카를라가 할 수 있는 건 영적인 치료가 가능한 녹색 집을 찾아가는 것이다. 음산하고 공포스럽게 느껴지는 분위기는 이 소설에 더 몰입하게 만들어 준다. 카를라와 아만다, 그리고 다비드와 니나. 묘하게 겹치면서 또 흩어지는 이 네 명의 사람들이 어떤 식으로 이 마을에서 고립되는지 지켜보는 건 이제 목격자로만 남을 수 없게 만든다. 

호기심으로 읽어간 문장들을 따라 마지막 문장에 도달하면 목격자가 아니라 내가 이 세계의 일원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만든다. 오염되고 아프고 망가지는 세계에서 우리는 얼마나 많은 사람을 구할 수 있을까? 소설은 당연히 정답을 주지 않는다. 그리고 이건 아주 현실과 닮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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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스트넛 스트리트
메이브 빈치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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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스트넛 스트리트는 어떤 동네일까? 책의 표지에 고양이가 내다보는 동네만 보면 햇살이 가득해 그곳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행복할 거라는 편견을 갖고만 싶어진다. 그 속에서도 행복하지 못한 사람들은 있을 거다. 돌리는 지나치게 다정하고 모든 사람들에게 선망의 대상이 된 엄마와 자신을 끊임없이 비교한다. 엄마는 완벽해, 어떤 단점도 없을 거야. 이런 생각들은 단점 투성이인 돌리에게 크나큰 좌절감만 생기게 한다. 돌리는 친구들도 엄마도 자신에게 좋은 말을 해주거나 친절하면 의심한다. 모두 진심이 아닐 거라고. 돌리의 세상은 돌리가 아닐 때 다정한 곳이다. 하지만 돌리는 자신의 엄마의 허점, 완벽하지 않은 부분을 발견할 때 비로소 엄마를 이해하고 세상을 바라보는 조각들을 다시 맞추기 시작한다. 지금도 돌리는 엄마, 친구들과 자신을 비교하며 좌절할지도 모른다. 전과 달리, 이제 돌리는 여러 길이 있다는 걸 알고 있다. '반드시 옳은 길일 필요는 없다.' 이걸 알고 있는 돌리에게는 똑같이 해왔던 생각도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게 할 수 있는 힘이 생겼다. 체스트넛 스트리트 근방으로 이사를 가게 된다면 돌리의 다정한 세상에 다정하지 않은 말도, 생각도 가끔은 괜찮다고 꼭 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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