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유리의 엄마는 암 투병 중이며, 유리는 “질병이 역설적으로 엄마를 살리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고 생각한다. 반면, 동생 ‘규리’는 인생을 마음껏 낭비하지 못했던 엄마의 모습을 보며 실컷 인생을 낭비하기로 결심한다. 엄마는 은향의 편지를 외면하며 "누가 누굴 도와"라고 말하고 유리 또한 모른 척하려 하지만, 규리는 병원에 돈을 보내고 끝내 은향을 직접 찾아가는 행동을 보인다. 이처럼 자매는 각자의 방식으로 삶을 견디거나, 혹은 어머니의 상황을 통해 다른 종류의 선택을 하고자 한다.
규리를 통해 연결된 은향은 놀라운 고백을 한다. 그녀는 병원에서 나갈 생각도, 누군가의 도움을 바라는 마음도 없이, “다만 죽기 전에 종순을 한 번 만나고 싶었을 뿐”이라고 말한다. 또한 은향은 병원 안에서 척을 하지 않고 나답게 지낼 수 있어 편안하고 좋다고 느낀다. 그녀는 “난 적어도 이 안에서 척을 안해요. 나답게 지내요. 편안하고 좋아요. 정말이에요.”라고 말한다. 편지를 통해 되살아난 이모의 그림자는 기억조차 희미했던 인물들과의 새로운 연결을 만들고, 자매는 각자의 방식으로 애도를 해나가는 시간을 갖는다. 소설은 누군가는 삶을 견디며 버티고, 또 누군가는 조용히 떠날 준비를 하는 등 삶의 본질적인 질문들을 마주하게 한다.
자매의 관계를 지탱해 온 것은 복잡한 거짓말들이었다. 규리는 유리가 엄마 몰래 담배를 피우고, 성적표에 엄마의 사인을 조작했으며, 참고서를 사겠다며 돈을 받아간 사실들을 모두 알고 있었다. 규리 또한 “유리의 거짓말에 자주 기댔다. 그래서 더 멋대로 지낼 수 있었다”고 고백한다. 유리가 규리에게 “이제 포기 같은 걸 선택하지마 규리야.”라고 말했을 때, 규리는 “그건 포기가 아니었어. 증명이었지.”라고 반박한다. 규리는 과거의 자신이 궁지에 몰려 선택지 같은 건 없었으며, 그때의 자신이 지금의 자신보다 “더 나답고 좋은데” 지금은 좀 건방지고 재수 없는 기분이 든다고 솔직한 감정을 드러낸다. 그녀는 그때의 자신이 "선택지가 하나밖에 없다는 걸 증명하"려고 했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삶은 끊임없이 자신을 증명하라고 한다. 우리가 고를 수 있는 선택지는 별로 없다. 포기(처럼 보이는 행동)도 하나의 선택일 수 있을까. 은향과 규리는 누군가를 사랑했고 그 사랑을 인정받기 어려웠다. 자신의 지향을 증명하는 길은 딱 하나였다. 누구에게는 자신을 놓아버리는 포기처럼 보이겠지만 그들은 마지막 발버둥이었고 향변이었다. 누가 그들을 궁지에 몰리게 하고 단 하나의 선택만 하도록 몰아 세우는가. 무거운 질문 앞에서 서게 만드는 작품이다.
**출판사 제공 도서로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