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랜만에 스릴러 장편 소설을 만났다. 부산에서 자리잡은 산지니 출판사 책이라 애정하는 마음으로 서평단 신청을 했고 덕분에 좋은 작품을 재미있게 읽었다. 중간에 책을 내려놓기가 어려울 정도로 몰입감이 컸고 반전의 반전을 거듭하는 이야기가 무척 흥미로웠다.
'지홍'은 불행한 가정사를 딛고 악착같이 살아간다. 더 나은 직장과 삶을 위해 불법과 범죄에 가담하게 되어 급기야 살해의 위협까지 겪는다. 가까스로 살아 남은 그녀는 대기업 대리가 되었지만 그 곳에서도 오로지 승진을 위해 팀장의 하수인 노릇을 감당한다. 어느 날 우연히 대학 동기 ‘승훈’을 다시 마주하면서, 묻어둔 과거가 수면 위로 떠오르고, 마침내 그녀는 깨닫게 된다.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자신을 망가뜨리는 삶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을. 지홍은 ‘되돌아가야’ 할 방향을 택한다.
"같이 저지른 살인은 아니지만, 인생이 꼬인 건 그 두 가지 사건부터가 분명했다. 너무 늦었으나 지금이라도 바로잡아야 앞으로 더 무너지는 걸 막을 것이다." p.208
운명처럼 반복되는 불행의 사슬에서 벗어나기 위해 우리는 얼마나 악착같이 살아야 하는가. 살인 모의에 가담하고, 죽음 직전까지 폭행을 당하며, 상사의 하수인이 되어 비리를 감당하는 일까지. 정말 이렇게까지 추락해야만 하는 걸까.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우리 역시 각자의 자리에서 어떤 목표를 위해 스스로를 갉아먹는 선택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때론 그 선택이 무너지지 않기 위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가장 자신을 해치는 길일 수도 있다.
한편으로는, 소설 속에 등장하는 끔찍한 살인과 폭력, 온갖 비리들이 나와는 무관한 세계의 일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일은 지금 이 순간에도 세상 어딘가에서 반복되고 있고, 어떤 사람들에게는 일상이자 현실일 수 있다.
“큰 사건이 터졌는데도 아무렇지 않게 일상을 사는 사람들이 사람을 죽이려고 덤빌 때보다 더욱 끔찍하게 느껴졌다.”(p.178)
실제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음에도, 나는 아무 일 없다는 듯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닌가. 그 무감각한 일상이 때로는 폭력보다 더 잔혹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re, 셸리>는 지하 끝까지 추락했을지라도, 우리는 ‘다시’—re—를 선택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그 선택이 아주 늦었다고 생각하더라도 결코 불가능하지 않다고.
**출판사 제공 도서로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