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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한낮의 연애
김금희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5월
평점 :
책을 덮으며 이 책의 띠지에 적힌 말이 과장이 아님을 깨달았다. 나 역시 그녀의 다음 소설을 빨리 읽고 싶으니까. 이 책에 수록된 작품 중 '조중균의 세계'로 그녀의 작품을 처음 접했다. 젊은 작가상 수상 작품이었기 때문에 젊은 작가상 수상 작품집에서 이 작품을 읽었다.
그래서 이 책에 수록되어 있는 작품 중 조중균의 세계는 읽지 않았다.
부조리한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는 인물들이 이 책 속에는 등장한다. 사실상 다른 부서로 발령 받은 것은 좌천이었고 해고될 위기에 있지만 어떻게든 살아남으려고 직능 계발에 힘 쓴 모과장(고양이는 어떻게 단련되는가)이나 인사이동을 통보 받고 어떻게든 회사에서 내쫓기지 않으려고 애를 쓰며 한때 썸 비슷한 것이 있었던 여자를 만나러 극장으로 달려가는 필용(너무 한낮의 연애)이나 모두 부조리한 사회를 느끼지만 이를 견디면서 살아가는 인물들이다
살아남는다는 것이 그들에게는 중요했으니까. 그건 누구에게나 중요하니까.
필용에게는 자신을 사랑한다고 고백했던 양희를 떠올리는 일이, 모과장에게는 퇴근 후 타인의 잃어버린 고양이를 찾아주는 일이 모멸과 치욕을 견디게 해준 순간들이었던 것 같다.
부조리한 사회에 어떻게든 적응하고 살아남으려는 모과장에게 소년은 말한다. "아닐 수도 있댔어요. 다른 고양이 탐정들도 만나봤습니다만, 요즘은 썩 그렇지도 않대요. 오히려 도시 고양이들은 자기들끼리 군집해서 산다던데요. 다 죽는 건 아니라고 집을 나가서 그냥 그렇게 새 삶을 시작하는 거라고."(252쪽, 고양이는 어떻게 단련되는가)
모과장은 이 말에 어떤 치욕을 느낀다. 모여서 단체 행동을 해야 한다는 동료들의 말에도 불구하고 그는 직능 계발에 힘 써 왔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은 어떻게든 살아남으려는 자의 몸부림 같은 것이었다.
그에게는 군집해서 살아남을 용기가 없었고, 살아남을 수 있다는 확신도 없었다. 집을 나가서 그냥 그렇게 새 삶을 시작할 용기도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소년의 말을 모욕으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크리스마스에 자신의 가족을 불행하게 만든 사람이라 여기며 목욕탕 보일러실에 불을 지른 방화범을 찾아가는 형제들의 이야기는 또 어떤가. (보통의 시절) 결국 그에 대한 원망을 쏟아놓기는 커녕 그가 목욕탕에 불을 지른 것이 아니며 그런대로 잘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만 확인하게 된다. <고기>에서는 라벨을 이중으로 부착해 유통기한이 지난 고기를 팔려고 한 마트를 상대로 이의를 제기하는 여자가 나온다. 잘못된 것을 바로 잡으려 했을 뿐이지만, 그 결과로 정육점 남자는 일자리를 잃는다. 그리고 그는 그녀의 남편을 죽인다. 그저 고기일 뿐이라는 그의 말은 얼마나 섬뜩하게 그녀에게 되돌아오는가. 그저 고기일 뿐이니 봐 달라고 그가 사정할 때에도 그녀의 잃어버린 딸을 찾아주었을 때에도 그녀는 매몰차게 그의 부탁을 거절한다. 그 대가는 너무나 컸다.
잘못된 것은 바로 잡을 수 있었지만, 그 대가로 한 사람은 직장을 잃고 한 사람은 남편을 잃고 말았다.
부조리한 사회에서 어떻게든 살아남으려 애쓰는 그들의 모습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다. 그리고 그렇게 살아남는 일만이 전부라는 듯 부조리한 현실과 쉽게 타협해버리는 그들의 모습은 또한 아팠다.
왜 그들은 싸우지 못했을까? 그 싸움은 왜 외면 받아야만 했나? 나는 그런 적이 없었을까? 이 책을 읽는 동안 여러 질문들이 내 안에 담겨서 출렁거렸다. 사는 일은 때론 구차하게까지 여겨지지만 보통의 시절에 나오는 말처럼 <운이 나쁘면 어쩌다 좀 방심하다보면, 이유를 알 수 없는 거대한 불행이 일어나기도 하고 거기에 휘말리기도 하는 것>이겠지만, 그 속에서도 단맛을 내는 추로스를 먹으며 <오늘도 단맛이 있는 날이긴 하네> 생각할 수 있기에 또 살아갈 수 있는 것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