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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유하는 세상의 화가 ㅣ 민음사 모던 클래식 75
가즈오 이시구로 지음, 김남주 옮김 / 민음사 / 2015년 9월
평점 :
잘못된 신념으로 세상을 살아갔던 화가가 주인공이다. 그는 딸의 혼사가 한 번 잘못된 이후 집에 찾아온 맏딸에게 '예방조치'를 하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는 말을 듣는다.
그 말을 듣고 그는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게 되고 둘째 딸의 결혼이 성사될 수 있도록 주의를 기울인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전범(전쟁 범죄자)이다. 이 인물은 화가인데 젊은이들이 전쟁터에 나가도록 부추기는 그림을 그렸다. 그는 자신이 한 행동에 대해 죄책감을 전혀 갖고 있지 않던 인물이었다. 그러나 패전 후 달라진 주변 환경을 인식하고 딸 아이의 혼사를 통해 이를 깨달아가면서 죄책감을 갖게 된다. 죄책감은 때때로 자기 개선의 도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이 소설의 주인공에게는 그가 자신의 잘못을 인식하며 갖게 되는 죄책감은 자기 개선의 도구로 활용되지는 못했다.
그는 자신이 했던 행위에 대해 잘못을 인정하면서도 동시에 그 시절에 대한 향수를 느끼기 때문이다. 결국 그의 죄책감은 자기합리화로 상쇄된다.
이 소설을 읽으며 특히 인상적이었던 장면이 있었다. 이 소설 속 주인공은 할아버지인데 자신의 외손자가 괴물이 나오는 영화를 보러 가고 싶다고 말하자 아이를 데리고 영화를 보러 가는 장면이 나온다.
아이는 영화를 보는 내내 우비로 얼굴을 가리고 무서운 장면을 보지 않는다. 우비의 모자로 괴물이 나오는 장면마다 눈을 가려버렸던 것이다. 그리고 영화관을 나온 후 멋진 영화였다고 말한다. 굉장한 영화였다고. 이런 손자의 행동은 전쟁 중이던 당시의 시대상황을 제대로 보지 않았던(보려고 하지 않았던), 뒤에서 젊은이들에게 전쟁터로 나갈 것을 부추겼으면서도 본인은 호의호식하며 잘 살았던 그의 모습을 손자의 모습을 통해 비유적으로 보여준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손자는 아직 어린아이이기 때문에 잘못된 신념을 갖고 행동했던 그의 모습은 어린아이의 모습과도 같았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드러낸 장면이 아닐까 싶은 생각도 좀 들었다.
그는 잘못을 인정하지만 반성은 하지 않는다. 진심으로 뉘우치지는 않는다. 그의 자기합리화가 그것을 가로막기 때문이다. 그는 자기합리화를 통해 자신을 용서한다.
역자는 '옮긴이의 말'을 통해 이 작품을 '개인이 불편한 기억과 화해하는 법'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는데 그 표현이 딱 들어맞는 작품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용서를 빌기보다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자신을 그 시대적 상황에 끼워 맞춰버리며 자신을 용서해버리는 주인공의 내면이 인간이기에 그럴 수 있으리라 이해되면서도 한편으로는 섬뜩하게 다가왔던 작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