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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 빙그르르 짠! 2
마루탄 지음, 김신혜 옮김 / 뜨인돌어린이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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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뜨인돌 어린이에서 나온 책인데 빙그르르 돌리면 다른 그림이 나오는 재미있는 그림책이다. 8월 말에 나온 따끈따끈한 책!

 

 

 

지은이는 마루탄이라고 나와 있다. 지은이 이름이 독특해서 일본 사람인가? 생각했는데 마루탄은 부부인 고토 테츠와 고토 시즈코 두 사람을 함께 부르는 이름이라고 한다. 부부가 함께 작업을 하는 것 같다. 공동작업을 해서 팀 이름 같은 것으로 '마루탄'이라고 지은 듯.  저자의 이력도 독특한데 고토 테츠는 광고대행사에서 일하며 광고상과 디자인상을 받은 수상 경력이 있고 미술공예대학교에서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고 한다. 고토 시즈코는 도쿄조형대학교에서 실내건축을 공부한 후 인테리어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다고 한다.


두 사람이 함께 만든 시리즈가 '빙그르르 짠'이라고 함. 문맹 퇴치 운동에도 앞장서고 있을 정도로 사회 공헌 활동에도 관심이 많은 부부 작가인듯.

 

 

 공을 차는 두 사람. 돌리면 무엇이 나타날까?

 

 

 

책을 돌리자 나타난 건 선인장이었다.

 

책은 아이와 함께 보면 좋을 것 같아서 서평단 모집하고 있기에 신청했는데, 당첨되어서 받게 된 책이다. 역시 아이가 좋아하고 내용도 아이와 함께 보기 좋은 책이다. (원래 어린이책이니까) 빙그르르 돌리면 무엇이 나올지 아이와 함께 얘기해보는 것도 좋을 듯. 아이들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책이기에 창의력 발달에 도움이 될만한 책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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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관조 씻기기 - 제31회 김수영 문학상 수상 시집 민음의 시 189
황인찬 지음 / 민음사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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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은 단어를 수집해서 바느질을 하듯 꼼꼼하게 연결해서 어떤 마음에서 파생된 의미를 들여다보게 하는 사람들 같다.

안 보이는 것을 눈앞에 펼쳐 보이는 것이 시인의 일이니까.

텍스트 시대를 넘어서 이미지를 소비하는 시대. 이 시대의 젊은 시인들의 시는 그래서 이미지로 가득 차 있다. 이미지는 물처럼 넘치고 흐른다. 어떤 건 윤슬처럼 반짝 빛이 나기도 하고 몇 개의 단어만 모스 부호처럼 남긴 채 스쳐 지나가기도 한다.

표지에 파란색 직사각형이 들어가 있는데 이 시집의 시를 색깔로 표현하면 파란색에 가깝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시를 읽으며 영화 아가씨의 한 장면이 떠오르기도 했다. 벚나무에 목을 매달아 죽은 아가씨의 어머니가 떠올랐다. 그래서 찾아보니 벚나무 아래 시체를 묻는다는 얘기가 있었다.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는 것은 그 아래 시체가 묻혀 있기 때문이라고.  죽음이 있기에 삶은 빛나고 인간의 시간은 유한하기에 벚꽃이 피는 봄은 슬프도록 아름다울 수 있다. 벚꽃의 화사함을 등지고 죽음을 선택하는 인간의 삶은 그래서 더 극적으로 죽음과 삶을 대비(對比)시키고 그래서 더 강렬하게 오래 남는다. 아가씨의 그 장면은 회화적으로 느껴졌던 유일한 장면이기도 했다.

건조과라는 시가 마음에 들어서 산 시집이었다. 

 

'건조과'는 이 시집에서 가장 먼저 등장하는 시이기도 하다.

 

건조과 _ 황인찬

 

 

말린 과일에서 향기가 난다 책상 아래에 말린 과일이 있
책상 아래에서 향기가 난다

나는 말린 과일을 주워 든다 말린 과일은 살찐 과일보
가볍군 말린 과일은 미래의 과일이다

말린 과일의 표면이 쪼글쪼글하다

말린 과일은 당도가 높고, 식재료나 간식으로 사용된다
나는 말린 과일로 차를 끓인다


말린 과일은 뜨거운 물속에서도 말린 과일로 남는다
실내에서 향기가 난다

 

'말랭이'라고 불리는 말린 과일. 말라 비틀어져서도 뜨거운 물 속에서도 제 형태를 잃지 않는 말린 과일. 나로 남는 것. 어떤 고통이 가해져도 나로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의 가치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시였다. 깎고 다듬어 더 아름다워지려고 하는 욕망 사이에서 자기를 잃지 않으려는, 변형되지 않는 아름다움에 대해.

 

이 시집에서 가장 많이 알려진 시는 무화과 숲이지만. 고요한 응시가 있는 시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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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수업 - 천재들의 빛나는 사유와 감각을 만나는 인문학자의 강의실
오종우 지음 / 어크로스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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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이라고 하면 삶과는 직접적으로 관련이 없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예술이란 거창한 그 무엇이 아니라 삶을 향유하게 해주는 도구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예술이란 삶 속에서 나오는 것이고, 삶이 탄생시킨 모든 예술은 결국 삶을 표현하는 일이기 때문일 것이다.

 

예술은 우리 삶이 투영되어 있고 그래서 예술 작품을 접하는 것은 '현실'을 읽는 눈을 갖게 만들어준다는 얘기로 받아들여졌다. 이 책에 수록된 작품 중 에드워드 호퍼의 <아침 해>를 보면서는 아침 해를 맞이하는 여인의 쓸쓸하고 생기없는 표정에서 하루 하루 살아가는 일에 지쳐 오늘의 햇살도 느낄 수 없는 현대인의 지친 마음을 보았다. 나는 하루 하루를 소중히 여기고 온전히 누리며 살아가고 있나 되돌아보게 되는 부분이 있어 인상적이었다.

 

안톤 체호프의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이 실려 있기도 해서 좋았다. (읽어보지 못했던 작품이라서 찾아서 읽어봐야겠다 생각했는데 단편을 수록해두어서 책의 내용을 이해하는 데 있어 더 좋았고 저자의 배려가 고맙게 느껴졌다)


마크 로스코의 <어두움 너머 밝음으로 가는 지평>이라는 작품을 보면서는 마크 로스코의 "회화는 체험에 관한 것이 아니라 바로 체험이다."라는 말이 피부로 와닿을 정도로 그 작품이 해가 뜨는 광경을  색과 선만으로 잘 표현한 것 같아 깊은 인상을 받았다.


그리고 그 작품을 보면서 문득 깨달았던 것이 있다. 그동안에는 밤이 가고 아침이 온다고 생각했었다. 밤이 사라진 자리에 아침이 온다고. 그런데 그게 아니라는 것을 그의 작품을 보면서 깨달았다. 밤이 가고 아침이 오는 게 아니라 어둠에 빛이 스며드는 것이라는 사실이 깨달아졌다. 서서히 스며들다가 그렇게 밝아지는 것이라는 사실이.


그래서 모든 아침은 희망일 수 있겠구나, 새로운 날이 온다는 것은 희망일 수 있구나 깨달아졌다. 어둠은 빛을 품고 있고 빛이 퍼지면서 어둠이 서서히 물러난다. 그러니까 가고 오는 것이 아니라 원래 한 덩어리일 수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안에 있는 것이다. 사람들 마음 속에 빛을 표현하는 단어가 있다면 그것이 희망일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것을 색깔만으로 표현해낸 마크 로스코는 정말 대단한 화가이구나 새삼 깨달았다.


그 그림이 마음에 들었다. 마크 로스코의 이 작품을 보면서  서서히 스며드는 것, 어느새 나도 모르게 물들어져 있는 것. 그것이 사랑이고 삶이고 또한 예술일 것이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참, 좋은 수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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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한낮의 연애
김금희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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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덮으며 이 책의 띠지에 적힌 말이 과장이 아님을 깨달았다. 나 역시 그녀의 다음 소설을 빨리 읽고 싶으니까. 이 책에 수록된 작품 중 '조중균의 세계'로 그녀의 작품을 처음 접했다. 젊은 작가상 수상 작품이었기 때문에 젊은 작가상 수상 작품집에서  이 작품을 읽었다.


그래서 이 책에 수록되어 있는 작품 중 조중균의 세계는 읽지 않았다.


부조리한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는 인물들이 이 책 속에는 등장한다. 사실상 다른 부서로 발령 받은 것은 좌천이었고 해고될 위기에 있지만 어떻게든 살아남으려고 직능 계발에 힘 쓴 모과장(고양이는 어떻게 단련되는가)이나 인사이동을 통보 받고 어떻게든 회사에서 내쫓기지 않으려고 애를 쓰며 한때 썸 비슷한 것이 있었던 여자를 만나러 극장으로 달려가는 필용(너무 한낮의 연애)이나 모두 부조리한 사회를 느끼지만 이를 견디면서 살아가는 인물들이다


살아남는다는 것이 그들에게는 중요했으니까. 그건 누구에게나 중요하니까. 


필용에게는 자신을 사랑한다고 고백했던 양희를 떠올리는 일이, 모과장에게는 퇴근 후 타인의 잃어버린 고양이를 찾아주는 일이  모멸과 치욕을 견디게 해준 순간들이었던 것 같다.


부조리한 사회에 어떻게든 적응하고 살아남으려는 모과장에게 소년은 말한다. "아닐 수도 있댔어요. 다른 고양이 탐정들도 만나봤습니다만, 요즘은 썩 그렇지도 않대요. 오히려 도시 고양이들은 자기들끼리 군집해서 산다던데요. 다 죽는 건 아니라고 집을 나가서 그냥 그렇게 새 삶을 시작하는 거라고."(252쪽, 고양이는 어떻게 단련되는가)


모과장은 이 말에 어떤 치욕을 느낀다. 모여서 단체 행동을 해야 한다는 동료들의 말에도 불구하고 그는 직능 계발에 힘 써 왔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은 어떻게든 살아남으려는 자의 몸부림 같은 것이었다.


그에게는 군집해서 살아남을 용기가 없었고, 살아남을 수 있다는 확신도 없었다. 집을 나가서 그냥 그렇게 새 삶을 시작할 용기도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소년의 말을 모욕으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크리스마스에 자신의 가족을 불행하게 만든 사람이라 여기며 목욕탕 보일러실에 불을 지른 방화범을 찾아가는 형제들의 이야기는 또 어떤가. (보통의 시절) 결국 그에 대한 원망을 쏟아놓기는 커녕 그가 목욕탕에 불을 지른 것이 아니며 그런대로 잘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만 확인하게 된다. <고기>에서는 라벨을 이중으로 부착해 유통기한이 지난 고기를 팔려고 한 마트를 상대로 이의를 제기하는 여자가 나온다. 잘못된 것을 바로 잡으려 했을 뿐이지만, 그 결과로 정육점 남자는 일자리를 잃는다. 그리고 그는 그녀의 남편을 죽인다. 그저 고기일 뿐이라는 그의 말은 얼마나 섬뜩하게 그녀에게 되돌아오는가. 그저 고기일 뿐이니 봐 달라고 그가 사정할 때에도 그녀의 잃어버린 딸을 찾아주었을 때에도 그녀는 매몰차게 그의 부탁을 거절한다. 그 대가는 너무나 컸다.


잘못된 것은 바로 잡을 수 있었지만, 그 대가로 한 사람은 직장을 잃고 한 사람은 남편을 잃고 말았다.


부조리한 사회에서 어떻게든 살아남으려 애쓰는 그들의 모습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다. 그리고 그렇게 살아남는 일만이 전부라는 듯 부조리한 현실과 쉽게 타협해버리는 그들의 모습은 또한 아팠다.


왜 그들은 싸우지 못했을까? 그 싸움은 왜 외면 받아야만 했나? 나는 그런 적이 없었을까? 이 책을 읽는 동안 여러 질문들이 내 안에 담겨서 출렁거렸다. 사는 일은 때론 구차하게까지 여겨지지만 보통의 시절에 나오는 말처럼 <운이 나쁘면 어쩌다 좀 방심하다보면, 이유를 알 수 없는 거대한 불행이 일어나기도 하고 거기에 휘말리기도 하는 것>이겠지만, 그 속에서도 단맛을 내는 추로스를 먹으며 <오늘도 단맛이 있는 날이긴 하네> 생각할 수 있기에 또 살아갈 수 있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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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유하는 세상의 화가 민음사 모던 클래식 75
가즈오 이시구로 지음, 김남주 옮김 / 민음사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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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된 신념으로 세상을 살아갔던 화가가 주인공이다. 그는 딸의 혼사가 한 번 잘못된 이후 집에 찾아온 맏딸에게 '예방조치'를 하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는 말을 듣는다.
 
그 말을 듣고 그는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게 되고 둘째 딸의 결혼이 성사될 수 있도록 주의를 기울인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전범(전쟁 범죄자)이다. 이 인물은 화가인데 젊은이들이 전쟁터에 나가도록 부추기는 그림을 그렸다. 그는 자신이 한 행동에 대해 죄책감을 전혀 갖고 있지 않던 인물이었다. 그러나  패전 후 달라진 주변 환경을 인식하고 딸 아이의 혼사를 통해 이를 깨달아가면서 죄책감을 갖게 된다. 죄책감은 때때로 자기 개선의 도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이 소설의 주인공에게는 그가 자신의 잘못을 인식하며 갖게 되는 죄책감은 자기 개선의 도구로 활용되지는 못했다.
 
그는 자신이 했던 행위에 대해 잘못을 인정하면서도 동시에 그 시절에 대한 향수를 느끼기 때문이다. 결국 그의 죄책감은 자기합리화로 상쇄된다.
 
이 소설을 읽으며 특히 인상적이었던 장면이 있었다. 이 소설 속 주인공은 할아버지인데 자신의 외손자가 괴물이 나오는 영화를 보러 가고 싶다고 말하자 아이를 데리고 영화를 보러 가는 장면이 나온다.   
 
아이는 영화를 보는 내내 우비로 얼굴을 가리고 무서운 장면을 보지 않는다. 우비의 모자로 괴물이 나오는 장면마다 눈을 가려버렸던 것이다. 그리고 영화관을 나온 후 멋진 영화였다고 말한다. 굉장한 영화였다고. 이런 손자의 행동은 전쟁 중이던 당시의 시대상황을 제대로 보지 않았던(보려고 하지 않았던), 뒤에서 젊은이들에게 전쟁터로 나갈 것을 부추겼으면서도 본인은 호의호식하며 잘 살았던 그의 모습을 손자의 모습을 통해 비유적으로 보여준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손자는 아직 어린아이이기 때문에 잘못된 신념을 갖고 행동했던 그의 모습은 어린아이의 모습과도 같았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드러낸 장면이 아닐까 싶은 생각도 좀 들었다.
 
그는 잘못을 인정하지만 반성은 하지 않는다. 진심으로 뉘우치지는 않는다. 그의 자기합리화가 그것을 가로막기 때문이다. 그는 자기합리화를 통해 자신을 용서한다.
 
역자는  '옮긴이의 말'을 통해 이 작품을 '개인이 불편한 기억과 화해하는 법'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는데 그 표현이 딱 들어맞는 작품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용서를 빌기보다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자신을 그 시대적 상황에 끼워 맞춰버리며 자신을 용서해버리는 주인공의 내면이 인간이기에 그럴 수 있으리라 이해되면서도 한편으로는 섬뜩하게 다가왔던 작품이었다.

 

그는 물론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몇 가지 결점이 있다고 인식했을 테지만, 동시에 그런 면들에 대해 자부심도 느꼈음이 분명하다. 그가 지적한 대로 그와 나 같은 사람들은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당시 우리가 신념을 갖고 행동했다는 사실 자체에 만족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우리는 대담한 발걸음을 내디뎠고, 종종 고집스럽게 행동했다. 하지만 의지나 용기 부족으로 자신의 신념을 펼쳐 본 적조차 없는 것보다는 나은 것이 분명하다.

 

(269~270쪽, 부유하는 세상의 화가_가즈오 이시구로, 김남주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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