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선정 문학고전 26 : 삼국지 2 서울대 선정 문학고전 26
허경대 글, 정규하 그림, 손영운 기획, 나관중 원작 / 채우리 / 2013년 12월
평점 :
절판


 

삼국지 2

 

 나관중은 [삼국지]를 조조와 유비 중심으로 각색했다. 당시 시대적 상황이 권선징악을 주로 하고 있어 선과 악이 대립되는 인물로 유비와 조조를 선정하여 서로 대립시키고 작품의 흥미를 돋우려고 했을 것이다. 그러나 당시 삼국의 세력을 객관적으로 비교해 볼 때 실제로는 유비의 세력이 동오 손권의 세력에 비해 다소 약했다. 그래서 나관중은 [삼국지]에서 의도적으로 동오의 명장들을 크게 부각시키지 않았다. 하지만 동오의 참모들과 장수들 중에는 뛰어난 인재들이 많았다.

 

 나관중이 엮은 [삼국지연의]를 읽다 보면 그 내용의 흐름이 유비를 위주로 전개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나관중은 자신이 살았던 원나라 말에서 명나라 초기의 혼란한 시대적 상황이 어지러운 후한 말기의 모습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나관중이 [삼국지]에서 스토리의 주인공으로 유비를 지목한 것은 그가 대의와 명분을 갖춘 인물이기 때문이었다.

 

 나관중은 조조를 한 시대를 장악한 비범한 인물로서, 시대를 초월한 간웅이라고 여겼을 것이다. 진수가 평한 대로 그는 자신의 야망을 채우기 위해 도에 어긋나는 악행을 저지르기도 했다. 그러나 조조가 조정의 관리가 되어 황건적을 물리치고 반란을 평정하여 백성들을 돕는 일에는 적극적이었다. 농민들에게 토지를 주어 정착시키고 식량을 해결하기 위해 둔전제(군량이나 재원을 확보하기 위하여 농민들에게 토지를 나누어 주고 국가에서 집단적으로 관리하는 제도)를 실시하기도 하였다.

 

 조조는 20세에 지방에서 천거하는 효렴으로 처음 벼슬길에 오른 뒤, 그가 승승장구하며 천하대업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그의 곁에 머무르고 있던 참모들이나 장수들의 공이 컸다. 조조 곁에 머무르면서 지략과 모사를 담당했던 순욱과 가후는 조조의 머리가 되어 주었다.

 

 또 조조 곁에서 손과 발이 되었던 장수로서는 허저가 있다. 그는 조조 곁을 호위하면서 세 번씩이나 조조의 목숨을 구해 주었다. 조조를 암살하려는 호위군 서타의 음모를 발각하여 목숨을 구해 주었으며, 마초가 기병을 이끌고 조조를 공격할 때, 조조에게 날아오는 화살을 자신의 말 안장으로 막아 목숨을 구해 주었다. 또 조조가 마초를 단독으로 대면할 때, 마초가 조조를 죽이지 못하도록 옆에서 호위했다.

 

 또한 사촌 동생인 조인은 조조를 따라 서주를 정벌할 때부터 기병을 이끌고 선봉에서 여러 차례 공을 세웠다. 하우돈과 하우연 또한 조조의 인척으로 조조가 처음 군사를 일으켰을 때부터 함께했다. 하우돈은 조조가 가는 곳마다 선봉에 섰으며, 서주에서 여포를 쫓다가 적의 화살에 눈을 부상당해 왼쪽 눈이 멀기까지 했다.

 

 조조가 하북을 평정할 수 있었던 것은 하후돈과 같은 명장이 후방을 든든히 지켰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하후돈의 동생 하후연 또한 지략과 용맹을 겸비한 장수로서 형과 맞먹는 훌륭한 장수였다.

 

 관우와 장비는 항상 유비를 따라다니며 그를 보필했으며, 죽음이 그들을 갈라놓을 때까지의 형에애는 쇠보다 강했다. 일찍이 관우가 조조에게 사로잡혔을 때, 조조는 관우를 편장군으로 삼아 후하게 예우해 주었다. 그러나 관우의 마음속에는 오직 유비를 생각하는 마음뿐이었다.

 

 영웅을 알아볼 줄 아는 조조에게 관우는 더없이 탐나는 존재였다. 조조는 그의 부하 장요를 시켜서 관우의 마음을 돌리려고 애를 써 보았지만, 관우의 굳은 마음은 끝내 열리지 않았다.

 

 [삼국지]에서 일찍이 관우가 화룡도에서 조조를 죽이지 않고 살려 보내 주는 장면이 등장한다. 관우가 조조를 살려 보내고 하구로 돌아왔을 때, 제갈량은 관우에게 큰소리로 꾸짖으며, 조조를 살려 보낸 연유를 묻고, 곧바로 군령을 어긴 관우를 군법대로 목을 베려 하였다.

 

 그러나 유비가 간곡히 청함이 있어서 자신이 모시고 있는 주공의 뜻을 저버릴 수 없어 제갈량은 자신의 뜻을 물려 관우에게 공을 세워 속죄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만약 유비가 죽고 없는 상황이라면 제갈량은 반드시 관우의 목을 베었을 것이다.

 

 제갈량의 군법은 공과 사를 떠나 엄격했다. 그렇지만 촉의 백성들은 아무도 그를 원망하는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왜냐하면 그가 평소 예의와 법도를 따랐으며, 성실하고 공정한 마음을 가지고 모든 일을 공평하게 처리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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