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_주의 알마 해시태그 1
박권일 외 지음 / 알마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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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혐오라는 유령이 한국을 떠돌고 있다. 혐오라는 것은 그야말로 어떤 불안-공포로, 또한 살지도 죽지도 않은 모호한 형태로 주변을 배회하고 있기 때문이다. 헤아릴 수 없는 많은 것들이 혐오의 대상이 되었다. 사람들은 전라도 출신이라서, 이주노동자라서, 동성애자라서, 운동권이라서, 여성이라서, 가난해서, 노동자라서 혐오당한다.

 

 혐오는 왜 나쁜가? 이것을 생각해나가다 보면 혐오가 문제의 원인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혐오는 증상이다. 증상을 관찰하는 일은 중요하지만 거기에 함몰되어선 곤란하다. 우리는 혐오를 사회악으로 지목할 게 아니라 혐오를 만들어내는 메커니즘을 찾아내야 한다.

 

 혐오는 우리가 될 수 없는 어떤 존재, 즉 동물성을 갖지 않는 불멸의 존재가 되려는 소망을 중심으로 움직인다. 혐오에 담긴 오염에 대한 사고는 우리 자신을 인간이 아닌 존재로 만들려는 야망을 드러내며, 이러한 야망은 자기기만과 헛된 열망을 수반한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으며 비합리적이라고 할 수 있다.

 

 

 분노는 주체로 하여금 대상으로 다가가게 만드는 감정이다. 비난을 하든, 보복을 하든, 처벌을 하든, 어쨌든 주체는 대상과 마주쳐야 한다. 그런데 혐오는 다르다. 주제를 대상과 가능한 멀리 떨어뜨리려 한다. 동물적인 것, 열등한 것이 나를 오염시킬까 꺼림칙하고 두렵기 때문이다. '주체와 대상의 분리', 이것이야말로 혐오라는 감정의 특성이다.

 

 오염을 거부하는, 순수함과 완전함에 대한 환상은 타인뿐 아니라 자기에 대한 혐오를 일으킨다. 식민주의적 인식은 식민주의적 감정을 낳고 그 감정은 다시 주체와 대상간의 거리를 더욱 벌려놓는다. 대상에 개입할 수 없으니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하지만 그 대상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날 수도 없다. 남는 것은 자기모멸뿐이다.

 

 혐오들 각각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결정적인 공통점이 있다. 바로 우열의 논리라는 것이다. 이 우열의 논리는 모든 판단을 우월성과 열등성이라는 기준으로 환원한다.

 

 혐오하는 주체는 혐오의 대상을 열등한 존재로 바라본다. 그것은 자신을 우월한 존재로 만드는 것이기도 하다. 주의해야 하는 점은 그 혐오행위가 상정하는 우열이 실제 혐오하는 주체와 혐오당하는 대상의 사회적 지위와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정치에 대한 혐오다. 이른바 하층에 속한 사람들이 법률가, 의사, 고위관료 출신 정치가를 향해 맹렬한 혐오 감정을 드러내는 경우는 매우 흔하다. 이런 경우 역시 다른 혐오들처럼 우열의 논리가 작동한다고 할 수 있다. 하층민은 자신을 도덕적으로 우월한 존재로, 정치가를 도덕적으로 열등한 존재로 상정함으로써 혐오하는 주체가 되는 것이다.

 

 여성에 대한 혐오에는 여성혐오가 가리고 있는 역사적, 정치적 구조에 대한 무관심이 있다. 사회는 혐오를 통해 실제로 견뎌내기 어려운 삶의 문제를 보다 잘 회피할 수 있게 된다. 그렇다면 한국사회가 여성혐오를 통해 회피하고자 하는 문제의 중핵에는 남성성이 있다.

 

 특정 지역의 사람들을 홍어로 비하하거나 대규모 재난에서 피해를 입은 희생자나 그 유족들을 어묵이라고 지칭하며 경멸하는 표현, 여성을 된장녀가 김치녀 등으로 업신여겨 부르거나 동성애자를 호모새끼로 부르며 멸시하는 표현은 이미 도를 넘어 형사적 제재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혐오표현을 하는 주체에게는 단지 마음속에 있는 증오나 반감의 배설에 지나지 않을지 모르지만 혐오표현의 대상이 되는 당사자에게는 심각한 인격 파괴로 사실상 살인행위나 다름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혐오표현으로 인한 불쾌감이나 수치심은 개인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주관적인 부분이나 감정적 피해를 이유로 혐오표현을 형사처벌하는 것이 합리적이지 못하다는 비판이 제기되기도 한다.

 

 

 특정한 집단에 혐오표현은 그 집단에 속한 구성원들 개개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행위이기 때문에 모욕죄로 처벌할 수도 있지만, 집단에 대한 반감이나 적대감을 드러냄으로써 그 집단 전체 혹은 그 구성원 개인들을 차별 및 차별을 선동한다는 점에서 차별행위로 보고 이를 불법적인 차별행위로 규제할 수도 있다.

 

 집단에 대한 혐오표현은 그것을 굳이 그 집단에 소속된 개개인에 대한 혐오표현으로 환원할 수 없다고 하더라도 그 자체만으로 사회적 해악이 될 수 있다. 인종, 피부색, 국적, 성별, 성적 지향 등 특정한 속성을 가진 집단에 대한 근거 없는 혐오를 선동하여 그 집단에 속한 구성원들의 동등한 인격과 존엄성을 침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집단에 대한 혐오표현은 사회 안에 존재하는 다양한 집단 간의 갈등과 대립을 부추겨 사회 전체의 질서와 안전에 해악을 끼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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