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람은 누구나 하나님이 주신 선물을 한 가지씩 가지고 태어난다. 하지만 그 선물이 무엇인지 잘 알지 못하고 살거나, 노력을 게을리해서 그 선물을 받지 못하고 일생을 마치는 경우도 많다.
록펠러가 태어난 시절은 미국이 무서운 속도로 자본주의의 모험적 드라마를 펼치며 초강대국의 기반을 다지기 시작하던 무렵이었다. 그는 격동의 시기인 골드러시와 남북전쟁을 겪으면서 성장했다.
록펠러는 어린 시절부터 일기를 쓰는 대신 자신만의 금전출납부인 회계장부에 기록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었다. 이 회계장부에는 록펠러의 원칙주의자로서의 면모가 그대로 드러난다.
그는 매일매일의 수입과 지출, 저축과 투자금, 그리고 사업과 자선금의 내역을 한 푼도 소홀히 하지 않고 작성해 나갔다. 매일 저녁 그 장부를 기록하며 자신의 하루 일과를 꼼꼼히 더듬어보는 한편 다음 날의 수입과 지출을 따져보았다. 말하자면 장부에 적힌 숫자가 그에게는 하루하루의 기록이자 반성인 셈이었다.
록펠러는 열아홉 살에 이리 스트리트 침례교회의 집사가 되었다. 그는 그저 예배에만 참석한 것이 아니라 매우 열성적으로 교회일을 거들었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해온 주일학교 선생을 계속하는 한편 운영위원을 맡았고, 교회 운영 일지를 기록하는 서기일도 맡아보았다.

일찍이 자신에게 돈을 보는 재능이 있다는 것을 깨달은 록펠러는 그것을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라 여기고 평생 즐겁게, 열심히 돈을 버는 데 매달렸다. 그는 조용하고 차분하며 늘 생각에 잠긴 듯 말이 없고 참을성이 많은 사람이었다. 하지만 자신이 옳다고 믿는 일에는 매우 적극적이었으며, 반면 자신의 생각이나 목표를 잘 드러내지 않는 치밀함을 가지고 있었다. 또한 돈 문제에 관한 한 매우 냉혹한 인물이었다.
그에게는 자기 자신을 최상의 무기로 사용할 줄 아는 강력한 힘이 있었다. 그 결과 하나님이 주신 선물인 자기 자신의 능력을 제대로 활용해 세계 최고의 부자가 된 것이다.
록펠러는 많은 사람을 사귀지는 않았지만 한번 믿은 사람에게는 전폭적인 신뢰와 권한을 주었다. 그는 의심하면서 사람을 부리면 그 사람의 장점을 살릴 수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사람을 채용할 때는 신중을 기했고, 일단 채용한 뒤에는 과감하게 일을 맡겼다.
50대에 이르자 록펠러는 어린 시절부터 꿈꾸던 세계 최고의 부자가 되었다. 하지만 그때 전혀 예상히 않은 병마가 그를 덮쳤다. 오로지 사업밖에 모르고 30여 년간 몸을 혹사한 결과였다.
그즈음 그는 점점 몸이 쇠약해져서 지독한 피부병까지 얻게 되었다. 머리카락과 눈썹이 빠지고 몸이 오그라들기 시작하면서 준수했던 그의 외모는 노인처럼 구부정해졌다. 하루에 백만 달러씩 벌어들이는 그의 수입도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어려서부터 돈을 위해 살아온 그였지만, 결코 돈이 인생의 전부가 될 수 없다는 것을 그제야 깨닫게 되었다.

나이가 들면서 록펠러의 유일한 관심사는 어떻게 하면 자신의 재산을 자선사업으로 지혜롭게 쓸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이었다. 그는 그것이 하나님의 계획이라고 굳게 믿었다. 그는 우선 집중적이고 치밀한 자선사업을 벌이기 위해서 기업경영에서 그랬던 것처럼 자선사업에서도 뛰어난 협력자를 찾았다.
록펠러는 자신이 젊은 날 스탠더드 오일의 경영에 성공했듯이 자선사업에서도 위대한 업적을 남길 수 있으리라 확신했다. 그의 새로운 참모인 게이츠 목사는 자선사업이란 시대를 뛰어넘어 영원히 존속할 수 있는 제도라고 누누이 강조했다. 게이츠는 록펠러에게 그의 천재적인 조직력을 자선사업에 적용해보라고 강력히 권고했다.
은퇴한 록펠러는 늘 그랬던 것처럼 또다시 할 일이 많아졌다. 이제 돈 버는 일이 아닌, 돈 쓰는 일로 바빠진 것이다. 세계 제일의 부자 록펠러는 세계에서 가장 큰 자선사업가가 되었다. 그는 여러 가지 계획과 투자에 돈을 썼는데, 마치 재산을 다 없애 버릴 듯 무모하게 보이기까지 했다. 그는 젊은 날 사업에서 보여주었던 과단성을 자선사업에서도 여지 없이 보여주었다.

오늘날 록펠러는 세계 최고 부자의 대명사로 불린다. 그는 100년 가까이 살면서 현재의 가치로 환원할 경우 현재 세계 최고의 부자로 알려져 있는 빌게이츠보다 무려 세 배가 넘는 돈을 벌었다.
록펠러는 억만장자가 된 뒤에도 근검절약 정신으로 일관했다. 그는 일기를 쓰듯 평생 회계장부를 철저히 썼으며, 수입을 정확히 계산해 온전한 십일조를 하나님께 드렸다. 세계 최고의 부자가 된 뒤에는 십일조를 계산하기 위해 별도의 십일조 전담 부서에 직원을 40명이나 둘 정도였다.
그는 학교에 들어가기 전부터 98세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한 번도 빠짐없이 십일조를 하나님께 드렸다. 어린 시절 어머니의 가르침이 그의 일생에서 약속의 말씀이자 가장 큰 유산이 되었던 것이다.
록펠러는 십일조가 하늘나라에 복을 쌓고, 어려운 사람들도 도와주는 것이라 생각하면서 하나님께 드렸기에 늘 기쁜 마음이었고, 자신이 기쁜 마음으로 드린 십일조를 하나님이 30배, 60배, 100배로 자신에게 돌려주신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