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세계는 확실하게 세 시기로 구분할 수 있다. 냉전과 데탕트, 양극화 이후. 시기마다 강대국 간 체계적 합의와 인류애를 위협하는 심각한 도발에 대한 공동 대응으로 평화로운 세계를 만들고자한 희망은 있었다. 동시에 진정한 공동 안보 노력은 얼마 못 가 흩어져버리곤 했다.
냉전의 시기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는 데서 시작해 소비에트 연방이 무너지면서 종말을 맺는 것으로 종종 정의된다. 다시 말해 양극화 세계로 지칭될 수 있는 역사적 시기를 말한다.
제2차 세계대전의 연합국들은 매우 이른 시간 내에 이념적으로 나뉜 두 진영에 자리를 잡았다. 그 사이에는 철의 장막이라 불리는 단절의 상징이 있었다. 전쟁이 끝으로 치달을수록 연합의 와해라는 상황이 다가오고 있었다. 두 진영은 냉전의 기원을 서로 다른 방식으로 해석했다.

한쪽에서는 자본주의 시스템의 욕망이 전 세계에서 미국의 영향력을 무제한으로 키웠고, 그 욕망이 전쟁 중 비싼 대가를 치르고 소련을 통해 얻어낸 권리를 부정했기 때문에 냉전이 싹튼 것으로 봤다. 그리고 다른 한쪽에서는 공산주의 시스템 그 자체가 갖는 메시아적 시각, 영토 확장주의적 성격, 지배에 대한 욕구 등의 특성이 전통적 러시아 제국주의에 더해졌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철의 장막으로 상징되는 베를린의 분할, 독일의 분할, 나아가 대륙의 분할 등 냉전의 핵심은 유럽에 있었지만, 아시아에서도 무시할 수 없을 정도의 기운이 확산되고 있었다.
냉전의 최전선은 유럽 대륙이 최악의 전쟁이 일어날 수도 있는 상황을 비껴가게 해준 곳은 아시아였다. 공산주의 진영은 1949년 마오쩌둥이 중국의 권력을 잡았을 때 이루어진 엄청난 외연 확장에 환호했다. 그러나 이 승리는 소련 측에 그리 긴 기간 동안 이익을 가져다주지는 못했다. 또한 민족자결주의와 비동맹 운동이 활발하게 떠오르던 곳 역시 아시아였다.
냉전의 정점이라 불리는 한국전쟁은 자칫 핵전쟁으로 이어질 뻔했다. 전쟁은 모스크바와 워싱턴이 전략적으로 그리 중요하지 않게 여겼던 지역에서 일어났다. 충돌을 주도한 두 초강대국이 서로를 과소평가 한 데서 기인했다는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한국전쟁에서 숨진 군인은 70만 명, 부상자는 90만 명이고, 일반인 사망자는 200만~400만 명인 것으로 집계된다. 한반도는 전투와 폭격으로 황폐해졌다. 특히 서울은 70% 이상이 파괴됐다.

데탕트는 유로 미사일 위기,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과 함께 1970년대 말까지 동서관계의 특징을 드러낸다. 데탕트는 긴장의 완화를 뜻하지 화합을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데탕트가 가능했던 것은 소련이 자신감에 넘쳐 있었고, 미국은 상대적으로 하향세여서 국제사회의 문제를 독단적이고 일방적으로 처신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데탕트 시기는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에게 어두운 시절로 규정된다. 종종 미국의 지원을 받는 폭압적 집권세력과 창궐하는 게릴라 사이의 내부적 폭력이 폭발했기 때문이다. 이는 일부 지역에서 아직도 진행 중이다. 그렇지만 1980년대 후반에서 1990년대 초반 사이에 대부분의 내부 갈등이 해결되고, 민주주의와 문민세력의 복귀가 이뤄졌다.
냉전의 종말은 군비의 효과적 제어를 실질적인 군비 축소로 돌려놓는 효과를 낳았다. 유로미사일 전쟁이 1980년대 동서 관계의 극단적 긴장 상태를 대변하는 반면, 고르바초프는 소련의 협박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유럽에 형성된 여론의 일부가 미국의 중거리 탄도 미사일 서독 배치를 반대한다 할지라도 대서양 연대 전체에 걸림돌이 되진 않았다.

거의 50년 동안 국제관계를 구성한 것은 양극화 세계였다. 어떤 이들은 끔찍한 적대 관계가 일반화되면서 풍경화의 배경처럼 굳어져 양극화가 고착될 것이라고 여겼다. 한때 핵전쟁의 위기에까지 몰리기도 했지만 결국 총성 한 발 울리지 않은 채 평화적으로 양극화 세계는 자취를 감췄다.
양극화 세계 이후 러시아의 정책은 크게 두 시기로 나눠 분석할 수 있을 것이다. 우선 1990년대를 아우르는 보리스 옐친의 임기로 극심한 경제적 · 외교적 취약성과 합의에 따른 서방세계와의 느슨한 관계를 특징으로 들 수 있다. 두 번째 시기는 푸틴이 정권을 잡으면서 시작된다. 러시아가 경제적 · 외교적으로 재정비를 하고 서방세계와 긴장관계를 조성한 것이다. 다만 2001년 9 · 11 테러 이후 미국에 다가가려는 노력을 보인 적은 있다.
이제 핵전쟁의 위험이 없어졌다고 하더라도 대립 구도는 여전히 뚜렷하게 남아 있다. 커다란 전략적 변화가 생긴 것이다. 서방세계 국가들의 독점이 깨지고 남반구 국가들이 존재감을 드러내면서 다원주의 체제로 바뀌었다. 이는 서방 강대국의 종말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의 독점 구도가 더 이상 세계의 다른 지역에서 통하지 않게 됐다는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