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책을 읽어가면서 마지막엔 꼭 승소하기를 바라며 읽게 되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결과는 참혹했다. 10년이라는 긴 세월을 공룡과 싸웠지만 결국은 진 것이다. 그 긴 시간동안 겪었을 고충을 생각하니 마음이 아프고, 남의 일 같이 느껴지지 않았다.
여전히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돈 많고 힘 있는 사람들이 좌지우지 하는 세상인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예전과는 다르게 많이 변화했다고 생각 했었는데 말이다. 왜 아직까지도 가진 것 없고, 힘 없고, 빽 없는 사람들은 당할 수밖에 없는지 답답한 마음 뿐이다.

변호사는 지난 10여년 동안 민·형사소송을 합하여 무려 20여 건을 넘는 사건을 수행했으나, 번번이 실패하고 패소하였다. 특히 민사소송에서는 무려 18번 동안 단 한 번도 승소를 하지 못하고 모두 패소했다. 그럼에도 기을호는 변호사를 믿어 주었다. 이 믿음에 보답하고자 최선을 다해서 준비하고 소송에 임하였다.
아무런 조사권한 조차도 없었던 변호사만 바라보는 기을소를 위하여, 오로지 법원의 올바른 판단을 받아내려는 마음에서, 거듭되는 패소에도 불구하고 사력을 다하여 정정 당당하게 법리연구에 매진하였고, 증거수집에 온 힘을 쏟아 부었으며, 그렇게 10여 년의 세월을 미련하게 훌쩍 흘려보내 참으로 미련하고 답답한 세월이 아닐 수 없다고 심경을 얘기하고도 있다.

시대는 변화여 국민 주권주의와 평등사상을 기초로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최대한 보장하고 개성을 존중하는 자유민주주의, 자본주의, 다원주의, 사법권 우위의 시대가 도래 하였다. 국가권력에 버금가는 자본권력과 다양한 이익단체들이 출현하였고, 개개 국민들은 각자의 자유와 권리를 외치면서 분쟁은 크게 증가하였다.
자본주의가 고도화될수록 빈부의 격차는 격화되고, 일반 국민들의 실질적인 자유와 권리는 오히려 억압되고 위축되는 현상이 빈번해졌으며, 자보노과 권력 앞에 수많은 일반국민들의 자유와 권리는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는 위험에 봉착되었다.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보다 철저하고 효과적으로 보장하고 촉진하기 위하여, 국민주권주의를 바탕으로 어느 때보다도 고양된 사법독립의 정신과 법관의 재판상 독립이 요청되었고, 이는 헌법정신으로 승화되었다.
즉, 국민들은 헌법으로써 직업법관제도를 채택하는 동시에, 법관 개개인에게 보다 철저한 신분과 재판상의 독립을 보장해 주면서, 주권자인 국민 개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최대한 보장하고 촉진할 수 있도록 하였던 것이다. 이제 국민들의 자유와 권리는 오로지 헌법에 의하여 철저하게 그 신분과 독립이 보장된 법관들의 공정한 판결에 의지하게 되었고, 법원은 그야말로 국민들의 기본권 보장의 최후의 보루가 되었다.

그러나 현실은 너무도 다르게 전개된다. 법관의 재판상의 독립은 명분 뿐이었으며, 오히려 이를 빙자하여 사법부 자체가 서서히 독선적, 형식적, 획일적, 억압적, 비민주적 관료주의로 변모되어 가기 시작했다. 국민들은 점차 법원의 판결에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했다. 전관예우 등 연고주의의 폐해와 재판의 공정성에 대하여 의심하기 시작하였다.
어느 듯 사법독립은 사법 패권으로 변해가면서 국민의 자유와 권리의 최후의 보루라는 본래의 모습보다는, 사법부 스스로의 위신과 권력과 권위가 훨씬 강조되며 관료주의는 고착화되어 가고 있다. 그렇게 사법부와 법원은 국민들로부터 멀어지기 시작하였다.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 즉, 법관은 독립하여 심판할 수 있는 권한을 헌법으로부터 위임 받았지만, 판결이 선고되는 순간부터는 그것이 양심에 의한 것이었는지가 검증대상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법관은 자신이 한 판결이 법조적 양심에 따른 것이었다는 최소한의 근거를 판결이유를 통하여 밝혀야 한다. 이는 간접적인 민주적 정당성만을 부여받은 법관이 주권자인 국민의 기본권에 대하여 최정적인 국가의사를 결정하는 데에 따른 최소한의 예의이고 의무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