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 철학사전 - 한눈에 보고 단숨에 읽는
다나카 마사토 지음, 이소담 옮김 / 21세기북스 / 2016년 4월
평점 :
품절


 

 이 책을 읽으면 탈레스로부터 시작한 서양철학의 역사가 어떤 변화를 거쳐 오늘에 이르렀는지 큰 줄기를 알 수 있다.

 

 옛날 사람들은 신이 자연을 만들었다고 믿었고 신화로 자연의 성립을 이해했다. 다양한 기술이 발달하면서 삶이 풍족해졌다. 인구가 늘어났고 다른 지역과 교류가 활발해졌다. 그러다 지역에 따라 자연의 성립을 설명하는 신화가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래서 누구나 인정할 만한 만물의 근원을 생각하게 됐다. 탈레스는 만물의 근원이 물이라고 했고, 아낙시메네스는 공기라고 했다. 이때 근원이 물인지 공기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만물의 근원을 신화로 설명하지 않고, 이성적으로 생각해 자연에서 근원을 찾으려는 새로운 사고방식이 중요하다. 이것이 자연철학의 시작이다.

 

 고대 아테네에서는 시민이라면 누구나 정치에 참여할 수 있었다. 따라서 시민의 관심은 자연에서 법률과 규칙으로 자연스레 옮겨갔다. 정치가가 되려는 청년들은 철학자에게 비싼 돈을 내고 변론술을 배웠다. 청년들에게 변론술을 가르친 철학자들을 소피스트라고 부른다. 이 청년들은 소피스트에게 상대주의 사상을 배웠다. 또한 사리사욕을 위한 정책일지라도 이를 들키지 않게 연설하는 방법도 배웠다.

 

 소피스트에게 상대주의 변론술을 배운 정치가들은 자기 이익을 정당화하기 위해 궤변만 늘어놓았다. 소크라테스는 그들과 문답하면서 개혁을 시도했다. 정치가들은 소크라테스와 문답을 나누면서 지금까지 안다고 생각했던 정의나 용기 등의 의미를 사실은 몰랐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제야 올바른 지식을 배우려는 마음이 생겼다.

 

 이처럼 문답을 나누며 상대가 스스로의 무지함을 깨우치게 하고 진정한 지식을 탐구하게 하는 것을 문답법이라고 한다. 또 상대가 지식을 낳도록 도와준다는 의미로 산파술이라고도 한다.

 

 

 소크라테스는 사람이 덕으로 살면 마음의 평안을 유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만약 마음이 평안하지 않다면, 그것은 덕을 모르기 때문이라고 소크라테스는 생각했다.

 

 이런 소크라테스는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인지를 배워 올바른 덕의 지식을 갖추고 실행하면 행복하다고 믿었다. 그에게 지식은 덕과 같은 것이었다. 이를 지덕합일이라고 한다.

 

 소크라테스는 "국가의 신들을 인정하지 않고 대중을 현혹했다"는 죄목으로 재판에 회부됐다. 그는 재판에서 목숨을 구걸하지 않고 자신의 주장을 관철하려다 배심원의 미움을 샀고 결국 사형당했다.

 

 제자들은 국외로 도망치라고 권유했으나 소크라테스는 "그냥 사는 것이 아니라 선하게 사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말하며 사형을 받아들였다. 설령 재판이 부정하더라도 자신은 탈옥이라는 부정을 저지르지 않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소크라테스에게서 선은 보편적인 것이었다. 그는 "악법도 법이다"라고 말하며 독당근즙을 들이켰다.

 

 플라톤은 인간의 영혼이 이성 · 의지 · 욕망으로 이뤄진다고 봤다. 이것을 영혼삼분설이라고 하고 각각은 두부 · 흉부 · 복부에 깃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성이라는 마부가 의지라는 백마를 몰아, 욕망이라는 흑마를 누르며 마차를 앞으로 몰아야 한다고 말했다.

 

 영혼은 이성 · 의지 · 욕망의 3가지로 이뤄진다. 이것이 올바로 작동하면 각각 지혜 · 용기 · 절제의 덕이 된다. 그리고 이 3가지가 조화를 이루면 정의의 덕이 된다고 플라톤은 생각했다. 지혜 · 용기 · 절제에 정의를 더한 4가지 덕을 고대 그리스의 사원덕이라고 한다.

 

 사람의 영혼은 이성 · 의지 · 욕망의 3가지로 이뤄진다. 그중에서 이성의 비율이 가장 높은 사람, 바로 철학자가 통치자에 가장 어울린다고 플라톤은 생각했다. 그러한 정치를 철인정치라고 한다. 플라톤은 "철학자가 국가의 통치자가 되거나 통치자가 철학자가 되지 않는 한, 이상적인 국가는 실현되지 않는다"라는 말까지 남겼다.

 

 

 아리스토켈레스는 인간이 행복해지기 위해서 덕을 갖춰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덕을 지성적 덕과 윤리적 덕으로 나눠 고찰했다. 지성적 덕은 사물을 이해하는 지혜, 판단하는 사려, 만드는 기술이다. 윤리적 덕은 용기와 절제를 말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윤리적 덕을 갖추기 위해서 중용을 선택하는 습관을 지녀야 한다고 생각했다.

 

 예수는 신이 선인도 악인도, 심지어 신에게 등을 돌린 자도 차별 없이 구원한다고 생각했다. 이같이 손해와 득실을 따지지 않는 무상의 사랑을 아가페라고 한다.

 

 예수는 인간끼리의 사랑도 아가페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오른뺨을 맞으면 왼뺨을 내밀어라"라는 말에 나타나듯,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보복주의와 다른 도덕을 내세웠다.

 

 사랑으로 번역하는 다른 말에 플라톤의 에로스, 아리스토텔레스의 필리아가 있는데, 아가페는 이것들과 어떻게 다를까? 예수의 말에 그 답이 있다.

 

 예수는 유대교도였지만 때때로 유대교의 가르침을 어겼다. 유대교의 교리보다 아가페를 우선시한 것이다. 그는 아가페를 몸소 실천했다. 그러다 이단으로 몰려 십자가형에 처했다. 그러나 아가페에 대한 그의 가르침은 바오로(바울) 등에 의해 로마제국 영토 내에 전파됐다.

 

 

 의식을 발견한 데카르트는 의식과 신체를 별개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스피노자는 이것에 의문을 품었다. 의식과 신체가 별개라면 의식이 슬프다고 느낄 때 신체에서 눈물이 나는 것을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스피노자는 우리 의식과 신체, 자연까지도 전부 포괄하는 하나의 신을 생각했다.

 

 스피노자는 "우리는 자연의 일부이다. 그리고 자연은 신이 창조한 것이 아니라 신 자체"라고 했다. 즉 자연에 포함된 우리의 정신과 신체도 신의 일부인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정신과 신체가 연결되기에 슬플 때 눈물이 나는 것에 모순이 없다. 신과 세계가 동일하다고 보는 이러한 사상을 범신론이라고 한다.

 

 의식과 신체가 별개라고 한 데카르트의 이원론과 반대로, 스피노자는 모든 것은 하나의 신이라는 일원론을 주장했다. 이 사상은 신을 인격적 존재로 본 기독교와 어긋나 기독교의 공격을 받았다.

 

 벤담은 인간이란 쾌락을 추구하고 고통을 피하려는 생명체라고 생각했다. 따라서 그는 어떤 행위가 인간의 쾌락으로 이어진다면 그 행위는 선, 고통으로 이어진다면 악이라고 정의했다. 선악을 판단하는 기준을 쾌락이 있는가에서 찾는 것을 공리주의라고 한다. 선악을 객관적으로 판단하는 공리주의는 지금도 윤리학과 정치학 등의 분야에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