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누구나 성공을 원한다 나도 당신도 다른 사람도, 모두가 성공하고 싶다고 생각한다. 만약, 당신이 '나는 적당한 정도면 족해. 성공에는 큰 뜻이 없어'라고 생각하고 있다고 해도 이야기는 마찬가지다. 왜냐하면, 그 적당한 정도야말로 성공인 것이다.
저렇게 되고 싶어, 이렇게 되고 싶어, 좀 더 보람 있는 일을 하고 싶어, 말로는 꿈을 이야기하면서 실제로는 아무 행동도 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면서 항상 언젠가 머지 않아 시작하자라든지 기회가 오면 하자라고 생각하며 늘 미루는 일을 반복한다.
이 얼마나 안일한 생각이며 어이없는 착각인가. 언젠가 머지 않아라는 때는 결국 오지 않을 것이며, 결국 꿈은 허망하게 생각으로 끝나버리고 말 것이다. 하물며 기회가 오면이라니, 착각일 뿐이다.
만약 기회가 남아 있다고 한다면 행동으로 옮길 타이밍은 지금인 것이다. 아니 실은 지금이라고 해도 너무 늦었을 수도 있다.

실패를 재활용할 수 있다는 의식이 생겨나면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게 된다. 실패가 두렵지 않으니 과감하게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고, 비록 실패하더라도 그 경험은 축적되어 자산이 되는 것이다.
실패한 경험은 장래에 반드시 도움이 될 날이 찾아오며, 어쩌면 낡은 것에 새로운 것이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 그야말로 자빠져도 그냥은 일어나지 않는다는 정신으로 자신의 실패를 몇번이고 재활용할 수 있는 것이다.
개인주의적인 사람은 기본적으로 나는 나대로 할 테니까 너는 너대로 하라고 하는 태도로 매사를 생각한다. 이것은 쉽게 말하면 나 몰라라 하는 태도다. 그러니 단순한 개인주의 집단이 되면 엄청난 혼란이 올 것이다.
자신의 일이라고 여기면 하지만, 조금이라도 자신의 범주를 벗어나는 일에 대해서는 누군가 해주겠지하며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면서 절대로 관여하지 않는 것이 개인주의의 정체이다. 즉, 개인주의라는 것은 조직의 일원으로서의 책임을 지려고 하지 않는, 제멋대로 나 몰라라 하는 주의인 것이다.

개성을 키우고 싶으면, 학교 이외의 장소에서 해야 한다. 아이들의 개성을 찾아내고 키워가는 것은 원칙적으로 부모의 역할이다. 개성을 키우지 못하는 것도, 학력이 저하한 것도 모두 교사의 탓으로 돌리는 것은 말도 안 된다. 선생님들에게 "오늘부터 빡빡하게 주입식 교육을 하세요"하면 선생님들도 좀 더 큰 성과를 올릴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부모든 교사든,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좀 무서운 존재여야 한다. 아이들이란 어른들이 생각하고 있는 이상으로 예민한 감수성을 가지고 있어 어른이 너무 허물없이 대하면 우습게 보게 된다. 그리고 어른들도 아이들과 친구처럼 지내다 보면, 막상 혼을 내야 할 때 혼을 낼 수 없게 된다.
아이들에게 있어 부모나 교사는 유일하게 혼낼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부모도 교사도 야단을 치지 않는다면, 아이는 누구에게도 한 번도 야단을 맞지 않은 채 어른이 되고 그대로 사회로 나가게 될 것이다. 그래서 회사에서 상사에게 작은 꾸지람을 듣는 것만으로도 화를 내거나 낙담을 하게 된다.
아이들이 싫어할까봐 하는 마음은 이해하지만, 그래서는 부모나 ㄱ사의 역할을 할 수 없다. 그리고 아이들 입장에서도 야단 맞았으면 하는 순간도 있다. 야단을 맞음으로써 유대감이나 애정을 재확인할 수도 있는 것이다.

이 책에서는 계속 틀의 중요성, 유효성에 대해 이야기해왔는데 물론 틀이 만능은 아니며 거기에는 결점도 있다. 그 최대 결점은 성장이 멈춰버리는 것이라는 위험성일 것이다.
그러나 개성 따위는 버리고 일단 틀을 따라 가보라. 이 세상은 그렇게 하면 잘 굴러갈 수 있게 되어 있다. 개성 따위에 연연하고 있으니까 거기서 한 발짝도 못 움직이는 것이다. 이 책에서 하고 싶은 말을 요약하면 대략 이런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