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 평전
이창호 지음 / 벗나래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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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중근은 비교적 유복하게 어린 시절을 보냈던 것으로 여겨진다. 할아버지 안인수와 아버지 안태훈이 일찍부터 깨어 있는 분들이었고, 생활도 넉넉한 편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안중근은 어려서부터 사냥을 즐겨 사냥꾼을 따라다니며 산과 들에서 뛰노는 것을 좋아했다. 차츰 성장해서는 총을 메고 산에 올라 새와 짐승들을 쫓아다니며 사냥을 하느라고 학업은 뒷전이었다. 이에 그의 부모와 선생들이 크게 꾸짖어도 안중근은 쉽사리 말을 듣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안중근이 이토 히로부미를 백발백중으로 처단한 사격술은 어릴 적부터 익힌 훈련의 결실이었던 것이다.

 

 안중근은 아버지 안태훈의 양곡 문제 때문에 성당으로 피신한 것이 결정적인 계기가 되어 천주교를 접했지만, 성당에서 교리를 공부하면서 그 누구보다 순수한 신앙심을 갖게 되었다. 안중근은 1897년 1월, 열아홉의 나이로 천주교에 입교하여 1910년 3월 죽음에 이르기까지 13년 동안 신실한 천구교인으로 살았다.

 

 

 많은 사람들은 안중근을 통해 천주교의 교리를 듣고 신앙심을 갖기 시작했다. 안중근의 천구교에 대한 믿음은 시간이 지날수록 두터워졌다. 이때 천주교는 안중근에게 있어 단지 신앙이 아닌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었다. 안중근은 자신은 물론 사람들 모두 천주교를 믿고 하느님의 교리를 따르며 사람다운 삶을 살기를 바랐다.

 

 이와 같은 신앙심을 바탕으로 안중근의 행보는 언제나 당당했다. 학교를 세우고 의병에 나서고 마침내 국적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하기까지 그의 삶의 지표에는 항상 신앙심이 있었고, 민족의식이 있었다.

 

 안중근이 외국 땅에서 의병을 창설하여 훈련한 목적은 일본군을 물리치고 조국을 일본으로부터 명실상부하게 독립하고자 함이었다. 일본군은 국내를 비롯하여 중국에까지 광범위하게 포진하고 있었다. 안중근이 참여해 처음으로 시작한 의병전투는 국내 진입 작전이었다.

 

 안중근은 이토 히로부미의 오른쪽 가슴을 향해 세 발을 쏘았다. 한국 침략의 원흉, 동양 평화의 교란자 이토 히로부미는 이렇게 안중근의 의탄을 맞고 현장에서 쓰러졌다. 이토 히로부미에게 세 발을 쏘아 명중시킨 안중근은 이어서 일본인 하얼빈 총영사 가와카미 도시히코, 궁내대신 모리 야스지로, 만주철도 이사 다나카 세이지 등 세 사람을 연달아 쏘아 이들을 모두 쓰러뜨렸다.

 

 

 안중근은 처음부터 적도들을 포살하고 당당하게 이토 히로부미의 죄사오가 일제의 침략 죄악을 밝힘으로써 한국의 자주독립의 당위성을 주장할 생각이었기 때문에 피신 같은 것은 생각지도 않았다. 옥중 투쟁을 통해 만국공법의 원칙을 밝히고 국제 열강의 지지를 받아서 조국의 자주독립을 쟁취하고자 현장에서 순순히 체포되었다.

 

 안중근은 이토 히로부미를 제거함으로써 평화를 누리는 것으로 이해했다. 안중근의 의거는 이토 히로부미를 제거하지 않으면 한국의 독립과 동양의 평화가 어렵다는 것을 인식한 행위였다. 안중근은 이토 히로부미를 처리한 일차적인 목적을 이루었지만, 궁극적으로는 한국의 독립과 동양의 평화라는 목적을 당성하지 못했다는 한계를 지닌다. 안중근의 의도와는 달리 1910년부터 대한제국은 일본의 식민 지배를 받게 되었기 때문이다.

 

 안중근은 1910년 3월 26일 교수형이 집행되기 직전 행한 마지막 유언에서 "나의 거사는 동양 평화를 위해 결행한 것이므로 형을 집행하는 관리들도 앞으로 한일 간에 화합하여 동양 평화에 이바지하기 바란다"고 하였다. 안중근의 마지막 유언은 동양 평화였던 것이다. 그가 30여 년의 짧은 생을 마감하면서 남긴 마지막 유언인 동양 평화는 안중근의 삶의 의미를 한 마디로 정의할 수 있는 정수이며, 그가 존재했던 이유였다.

 

 

 안중근은 민족 독립의 논리와 동양 평화의 논리를 불가분의 관계로 구조화함으로써 일본의 침략주의를 무력화시키고 민족 독립을 쟁취하고자 했다. 안중근은 자민족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이기적이고 편협한 민족주의자가 아니라, 동북아의 평화와 공동 번영을 강조하며 지역 협력을 강조한 열린 민족주의자였다. 안중근은 한국독립운동의 영웅으로서 한국 민족주의의 상징이기도 하지만, 진정한 동양 평화의 주창자로서 국제평화주의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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