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것과는 달리 공부의 최초의 뜻은 '토목이나 건축 공사와 관련한 노동이나 어떤 경지에 오르기 위한 몸의 단련'을 의미한다. 그러다 현대로 넘어오면서 공부는 '어떤 일을 하는 데 들이는 시간과 노력'이라는 의미로 쓰였다. 말하자면 공부라는 것은 "억지로 주어지는 부역과 같이 의미 결정된 정답을 놓고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
현대가 잃어버린 많은 것 중에 가장 소중한 것, 그것은 우리 모두가 공유하고 있던 정답이다. 하지만 정답이 사라집으로써 세상에는 커다란 변화가 시작되었다. 예를 들면 일찍이 기업에게 절대적인 정답이었던 더 많이, 더 싸게, 더 균일하게라는 세 가지의 룰이 전혀 통용되지 않는 그런 시대가 되었다.

기업이 전략적으로 하나의 제품만을 많이 생산한다면 팔리지 않은 대부분의 제품이 재고로 쌓여 엄청난 적자를 만든다. 이것은 경기가 나빠서가 아니라 사람들의 기호가 다양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물건을 더 싸게 제공하더라도 개발도상국의 저렴한 생산품을 따라갈 수가 없다. 무모한 가격을 매겼다가는 팔면 팔수록 적자가 커지는 본말이 전도되는 일이 생길 정도다.
그럼 어떻게 하면 좋을지는 아무도 알 수 없지만, 확실히 알 수 있는 것은 성장사회에 존재했던 정답은 이제 없다는 것이다. 즉 주어진 정답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생각으로 새로운 정답을 만들어내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 사회가 성장에 초점을 맞추고 달려갈 때 세상에는 누구나가 인정하는 정답이 있었다. 진학, 취업, 결혼, 자동차나 집 구입이라는 인생의 절차가 있었다. 좋은 대학을 나오면 대기업에 취직하거나 공무원이 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연공서열에 따라 급여가 오르고 일만 열심히 하면 출세가 가능하다는 것. 이것이 모든 사람이 꿈꾸는 행복하고 이상적인 삶의 모습이었다.
또 더 많이, 더 싸게, 더 균일하게라는 사회가 정해준 정답이 있고, 그 목표를 향해 정진하면 밝은 미래가 약속되었다. 하지만 이런 성장사회는 어느 단계에서 멈춰버렸다.
그리고 더 이상 물건으로는 채울 수 없게 된 행복을 우리는 마음의 풍요로움에서 찾게 될 것이다. 이 새로운 시대의 양상을 성숙사회라 부른다. 물건의 풍요를 추구하는 것이 성장사회라면, 그에 비해 마음의 풍요를 추구하는 것이 성숙사회다.

성장사회에서 우리에게 요구된 것은 1초라도 빨리 정답에 도달하기 위한 정보처리능력이었다. 이것은 퍼즐을 완성시킬 때의 능력과 같다. 이것은 처음부터 정답이 주어져 있는 셈이다.
그러나 성숙사회에는 그 정답이 없다. 퍼즐과 같은 정답이 없는 그 속에서 과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래서 성숙사회는 레고 블록을 조립하는 것과 같은 능력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세상에 정답이 없다는 것은 그 정답을 가르쳐주는 선생도 없다는 말이다. 그러니 자신이 스스로 선생이 없는 수업 속에서 무언가를 얻어내기 위해 스스로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

눈앞의 현실에 눈을 감고 '어딘가에 나에게 딱 맞는 직장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 또는 실제 직장 생활에 필요한 능력이나 기술은 익히지 않고 학교 수업에만 몰두해서 점수를 올리는 것. 이것은 완전히 퍼즐의 조각을 찾는 정답주의의 발상이다. 한 조각의 퍼즐을 찾지 못하면 퍼즐은 영원히 완성되지 못하는 것처럼 말이다.
한편으로 성숙사회에 필요한 것은 퍼즐과 비슷하지만 좀 더 입체적인 레고형의 수정주의다. 필요한 블록이 없다고 하더라도 다른 블록을 대용해서 자신이 그린 이상에 가깝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인생은 기성품의 정답을 찾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손으로 '납 · 득 · 해'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결국 우리 인생에 정답은 없고 행복의 형태에도 정답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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