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람은 쉬어야 한다. 불안하기에 자주 잡으려고 하고, 잡은 것을 놓지 못하니 우리는 쉬지 못한다. 하지만 건강을 위해서도, ㅈ금 하고 있는 일을 더 잘하기 위해서도, 성공을 위해서도, 지금 하던 일을 잠시 내려놓고 쉬어야 한다. 원래 그냥 쉬는 것이지 쉬어야 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지금의 살림살이가 이전보다 빠듯하고 미래가 지금보다 불투명하다 보니, 쉬면 무슨 일이 생길까 봐 쉴 줄을 모른다. 수지 않으니 사는 것이 더 버겁고 힘이 들기 마련이다.
하던 일을 멈추고 호흡을 고르면 숨통이 트인다. 폐 속에 새로운 공기가 들어오고 머릿속에 빈틈이 생기기 때문이다. 그렇게 숨통이 트여 주위의 책을 잡고 읽으면, 그것도 쉬는 것이다.
일의 결과를 둘로 나누면 성공 아니면 실패이다. 사람은 성공하기를 바라지 실패하기를 바라지 않는다. 그러나 사람은 실패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가 없다.
실패는 성공만큼이나 사람을 단단하게 키운다. 실패는 다음에 또 할 수 있는 실패의 가능성을 줄이는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을 더 깊이 들여다보게 된다. 따라서 실패는 겪으면 쓰라리고 아프지만 그렇다고 전염병인 양 화들짝 놀라며 멀리 달아날 필요는 없는 것이다.

행복을 향한 용기는 대박을 꿈꾸는 곳이 아니라 일상을 만나는 곳에 있기 때문이다. 대박을 이루고 행복한 삶을 이루면 무언가 이전과 완전히 다른 삶이 펼쳐지리라 상상하지만 그렇지 않다. 우리가 사람인 한 늘 하던 일상을 되풀이할 수밖에 없다.
행복한 삶이란 되풀이되는 단조로운 일상을 완전히 그만두고 화려하고 품위 있는 삶만을 시작하는 것이 아니다. 하기 싫어도 억지로 해야 하는 일상을 벗어나 하고 싶어서 하는 유쾌한 삶을 사는 것이다. 행복은 또 다른 삶이 그림처럼 펼쳐지는 신세계가 아니라 이전부터 있던 삶을 만족과 쾌활한 방식으로 새롭게 구성하는 것이다.
우리는 말에 대해 이중적인 태도를 가진다. 자신이 하는 말이 오해를 낳고 사람 사이를 불편하게 하는 경우가 있다. 진심은 그렇지 않은데 전달 과정에서 자꾸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진심과 다른 말이 나오거나 상대가 의도가 다른 방식으로 받아들여서 오해가 생긴다.
그러나 일단 한 번 오해가 생기면 말이 오해를 푸는 데 도움을 주기보다는 더 문제를 꼬이게 만든다. 상황이 점점 나빠지면 우리는 말을 하고 싶은 마음이 사라진다. 무슨 말을 해도 진심이 전달되지 않으니 말을 하기가 거북해지는 것이다.

우리는 대부분 사람을 처음 만나면 나이를 따진다. 나이가 확인되면 그제야 상대를 어떻게 대할지 명확한 기준을 세우게 된다.
공자는 알고 싶다는 욕망 앞에 나이만이 아니라 모든 것을 내려놓을 수 있는 사람이다. 나이로부터 자유로웠기 때문에 공자는 나이가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젊음을 유지하는 사람이 될 수 있었다. 육체의 노화는 피할 수 없었지만 정신의 노화는 뒤로 늦출 수 있었던 것이다. 나이를 떠나면 이렇게 많은 선물을 받게 된다. 공자는 바로 그것을 실증했던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유독 인간관계를 중시한다. 단순히 친목을 다지는 사교만이 아니라 업무와 정치 영역에서도 관계를 중요하게 본다. 흔히 중국 사람더러 관시를 앞세운다고 비판하고 하지만 우리도 중국 사람에게 결코 뒤지지 않는다.

관계는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먼저, 관계는 사람에게 다른 것으로부터 받을 수 없는 안정감을 준다. 사람이 아무리 똑똑하고 능력이 뛰어나다고 하더라도 혼자서 살 수는 없다.
요즘 사회적으로 인문학 열풍이 거세게 불고 있다. 이것은 사람들이 개별적으로 자신이 생활하고 일하는 영역을 벗어나서 새로운 삶의 지혜를 찾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이는 우리를 둘러싼 상황이 아주 급격하게 바뀌고 있음을 시사한다.
지혜는 우리의 삶에 드리운 어둠을 걷어내고 빛을 던져준다. 깜깜한 발길을 걸어온 사람은 안다. 빛이 우리에게 얼마나 안도감을 주는지. 나의 길을 누구에게 맡기지 않고 스스로 빛을 내려면 우리는 지혜를 구하지 않을 수가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