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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정 - 정명공주와 광해군의 정치 기술
박찬영 지음 / 리베르 / 2015년 4월
평점 :


광해군은 공빈 김씨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선조의 정비인 의인왕후 박씨는 아이를 낳지 못했으나, 선조의 마음을 사로잡은 공빈 김씨는 임해군과 광해군을 낳았다.
선조는 거의 매년 후궁으로부터 왕자를 얻었다. 인빈 김씨는 의안군, 신성군, 정원군을, 순빈 김씨는 순화군을, 정빈 민씨는 인성군을 낳았다. 적자가 없는 상황에서 선조의 후계자를 놓고 물 밑 암투가 벌어질 수밖에 없었다.
선조가 살아있는 동안에 광해군은 선조의 눈치를 보느라 성격이 우유부단해졌다. 또한 어쩔 수 없는 상황은 극단적으로 해결하려 했다.
선조가 죽을 때 광해군은 34세의 장년이었다. 영창대군은 세 살배기 어린아이였으므로 선조는 광해군에게 왕위를 물려줄 수밖에 없었다. 선조는 광해군에게 영창대군을 잘 돌봐 달라는 유명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광해군은 선조가 살아 있을 때 정명공주와 영창대군에게 더없는 우애를 보여 주었다. 영창대군은 광해군을 아버지처럼 따를 정도였다. 하지만 광해군은 왕위에 오르자 영창대군을 본체만체했다. 반면, 정명공주에게는 친밀감을 표시했다.
광해군은 명분과 본심 사이에서 숱한 고민을 했다. 이런 광해군의 본심을 누구보다 잘 읽은 이이첨은 광해군의 복수심에 불을 붙였다. 하지만 누군가가 내게 큰 잘못을 저질렀다고 해서, 무분별하게 복수하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일까? 억압의 잘못된 분출, 그것이 광해군 정권의 한계였는지도 모른다.
정명공주의 삶 역시 방어 기제를 일으켜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힘든 사건의 연속이었다. 이복 오빠의 손에 의해 서궁에 유폐되어 죽음의 고비를 넘겼고, 동생 영창대군의 죽음을 무력하게 지켜보아야 했다. 하지만 정명공주는 광해군과는 달랐다. 서궁에 유폐되었을 때 이미 화정을 쓰며 자신을 다스렸다. 자연스럽게 주변을 움직여 주변은 물론 자신도 지켰다.
화정을 비롯한 여러 서예 작품을 남긴 정명공주는 조선 최고의 여성 서예 작가로 평가받고 있다. 정명공주의 작품 대부분은 서궁 유폐시절에 쓰여졌는데, 그 중 화정은 글자 하나의 사방이 각각 73cm나 되는 대작이다. 누가 보아도 선이 굵고 힘이 넘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이런 화정은 정명공주가 죽은 후 막내아들에게 물려졌다. 그는 혹시라도 화정이 사라질까 두려워 여러 벌의 탁본을 떠서 친인척과 주변 지인들에게 나눠 주었다.
화정이 쓰여진 시기는 정명공주가 서궁에 유폐된 시절이라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필력과 결구의 세련미로 보아 환갑을 전후한 시기에 썼을 것이라고 추측하기도 한다. 현종 때에는 송시열이 정국을 주도하고 있었고, 남편 홍주원이 송시열과 뜻을 같이 하고 있었으므로 이들을 격려하기 위해 화정을 썼다고 본다.


[저자소개]
저자 : 박찬영
한국외국어대학교 영어과를 졸업하고 중앙일보 기자, 미국 시사주간지 「뉴스위크」 한국판의 편집부장을 지냈다. 현재 ㈜리베르스쿨, 리베르의 대표이사로 있다.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간행물윤리위원회의 우수 저작물에 당선된 『한국사를 보다』는 5년에 걸친 한국 문화유산 답사의 결과물이자, 이야기 한국사의 결정판이다. 청소년 부문 베스트셀러인 『세계사를 보다』, 『세계지리를 보다』에서는 두 차례의 세계 답사 여행에서 확인한 역사와 지리의 현장을 글과 사진으로 생생하게 담았다. 『한국사를 보다』를 토대로 집필한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2014년 적용)는 검정 심사에서 최고 득점(90~100점)으로 합격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