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쉰의 말 - 사회를 깨우고 사람을 응원하는
루쉰 지음, 허유영 옮김 / 예담 / 2013년 10월
평점 :
절판


 

 

  루쉰의 본명은 저우수런으로 중국 저장 성 샤오싱에서 태어났다. 본래 사대부 집안이었지만 조부가 투옥되고 부친이 병에 걸리면서 가세가 기울었다. 장남인 루쉰은 집안의 물건을 전당포에 맡기고, 그렇게 빌린 돈으로 부친의 약에 쓰일 희한한 약재들을 사는 일을 도맡아야 했다. 소년 루쉰은 재산과 권세가 사라지자 냉정하게 돌변한 사람들의 시선을 통해 세상의 비정한 세태를 깨달았다.

 

  1909년 귀국한 루쉰은 외국 문학을 번역해 외국의 사조와 사상을 중국에 알리는 데 몰두했고, 1911년 산해혁명이 일어난 후에는 문예지에 문학과 사회를 통렬히 비판하는 글을 본격적으로 발표하기 시작했다. 그 후 그는 본격적으로 혁명 투쟁의 일선에 서서 미명사, 조화사 등 문학 단체를 조직하고, 여러 대학에서 강의를 하며 중국인들의 몽매함을 일깨우고 사회를 변혁시키기 위해 치열하게 싸웠다. 메스가 아닌 펜으로 중국인의 열등한 근성을 해부하고 치료하기 위해 신랄한 글을 쓴 것이다. 그에게 글쓰기란 옛것에 안주하는 중국인들을 향한 공격이자 일깨움이었다. 한 치의 위로나 연민 따위는 없었다.

 

  루쉰은 우리에게 소설가로 잘 알려져 있지만, 사실 그가 남긴 소설은 단편소설집 세 권뿐이다. 1920년대 초반에는 주로 소설을 썼지만 그 후에는 잡문에 치중했다. 그의 잡문은 언제나 현실에 대한 풍자와 비판 정신으로 가득 차 있었으며, 그가 대중과 사회에 자신의 외침을 전하는 가장 큰 통로였다. 잡문외에도 그는 평생 6천여 통에 이르는 편지를 썼다. 편지를 많이 썼다는 것은 그가 대중과 독자, 제자들에게 자신의 목소리를 직접 들려주려고 노력했음을 보여준다. 우리가 루쉰을 단순히 소설가나 문학가로 이야기하는 데 그치지 않고 사상가이자 혁명가로서의 루쉰에 대해 이야기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 추전의 글 중에서 -

 

 

[저자소개]

 

루쉰 [저]

- 1881년 중국의 저장성(浙江省) 사오싱(紹興)에서 태어나 1936년 상하이(上海)에서 세상을 떠났다. 「광인일기」와 「아Q정전」으로 한국 독자들에게 널리 사랑받는 세계적 대문호 루쉰은 중국 현대문학의 선구자이기도 하지만, 첸리췬錢理群과 왕후이汪暉 같은 저명한 학자들이 그를 통해 오늘날의 중국을 사유할 만큼 위대한 혁명가이자 사상가이다.
청 말기 사대부가에서 태어난 루쉰은 곧 집안이 몰락하여 무료로 교육받을 수 있는 강남수사학당과 광무철로학당에서 처음 신학문을 접한다. 그 후 현대적인 의술을 중국에 전하고자 일본의 센다이의학전문학교에서 서양 의학을 공부하는데, 그때 루쉰은 충격적인 사진 한 장을 보게 된다. 러시아 간첩 혐의로 일본군에게 붙잡혀 참수당하는 사람과, 자국민을 함부로 죽이는 일본에 분개하기는커녕 그 처형을 둘러서서 구경하는 사람들이 담긴 사진이었다. 일본군이 죽이려는 사람도, 구경꾼들도 전부 중국인인 그 사진은 루쉰의 분노에 불을 지피고 중국인의 질병보다 정신을 고치는 것이 시급함을 일깨운다. 의학 대신 문학을 선택한 루쉰은 본격적인 투쟁과 혁명의 길을 걸으면서 중국의 굵직한 현대사에 참여한다. 5.4운동은 물론 중국의 현대 혁명사와 문학사, 학술사, 사상사, 심지어 미술사를 논할 때도 루쉰을 빼놓을 수 없을 정도이다. 루쉰은 세 권의 소설집 『외침』 『방황』 『고사신편』, 그리고 다수의 잡문집과 산문집 『거짓자유서』 『남강북조집』 『들풀』 『무덤』 『삼한집』 『아침 꽃을 저녁에 줍다』 『열풍』 『이심집』 『이이집』 『준풍월담』 『집외집』 『집외집습유』 『차개정 잡문』 『화개집』 『화변문학』 등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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