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공주
한소진 지음 / 해냄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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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정의공주는 세종의 둘째 딸로 어머니는 소현왕후심지이다. 정의공주는 관찰사 안망지의 아들 연창위 안맹담과 결혼한다. 정의공주는 맹담을 처음 보는 순간부터 이미 마음을 뺐기게 되고, 결국 결혼까지 하게 된 것이다.

  정의공주의 남편 안맹담이 죽자 남편의 명복을 빌기위해 지장보살본원경 상, 중, 하를 간행한다. 이 책은 보물 966호로 지정되었다. 또한 정의공주와 안맹담의 묘소와 신비도가 서울시 도봉구 방학동 산 63번지에 있다.

  정의공주와 관련된 흥미로운 기록은 [죽산안씨대동보]에 훈민정음 창제와 관련된 기록이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들이 한글을 쓰기 전에 이두를 쓰고 있었다고 한다. 이 이두란 한자의 음과 훈을 빌려 한국어를 적던 표기법으로, 조선시대 백성들이 그 뜻을 헤아리기는 거의 불가능 했다.

  이에 백성들이 좀더 자유롭게 글을 읽고 쓰기를 원했던 세종대왕은 한글 창제에 온 힘을 쏟게 되는데, 그 뒤에 정의공주의 열정과 백성을 아끼는 마음이 있었다.

  조선시대에 능력 있는 여성들이 얼마나 많았을까? 하지만 시대의 불운 때문에 출중한 실력을 발휘조차 해보지 못한 여성들 중 한 사람인 정의공주에 관한 이야기이다.

  우리들은 한글창제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인물이 세종대왕이다. 이런 세종대왕의 둘째 딸 이야기로 정의공주가 세종대왕을 어떻게 도와 한글 창제를 하게 되었는지가 나와 있다.

  한글창제를 할 당시 세종대왕 혼자서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 한글창제에 정의공주가 많은 참여와 노력을 기울였다.

  부모의 마음은 시대를 떠나 똑 같은 것 같다. 세종대왕도 정의공주의 뛰어남을 항상 안타까워 하셨다. 단지 공주라는 이유로 집무에 참여하지도 못하고 남녀 차별을 당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세종대왕은 정의공주를 위해 '종학'을 세우게되고 이 곳에서 왕자와 공주가 같이 공부할 수 있도록 해 주었다. 이것만 보더라도 세종대왕이 정의공주를 위해 얼마나 애썼으며, 남녀차별 없이 자식을 키우려 했는지 알 수 있다.

  책을 보면 한글을 만드는데 기초가 되었던 가림토문자가 나온다. 정말 한글과 비슷하게 생겼다. 또한 핸드폰의 천지인과도 비슷한 느낌이다.

    이처럼 이 책은 우리들이 현재 사용하고 있는 한글이 이떻게 탄생하게 되었고, 얼마나 많은 분들이 고생해서 한글이 만들어 졌는지 잘 쓰여져 있다.

  이 책을 통해 다시한번 한글의 우수함과 고마음을 느끼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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