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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바의 수 - 진화심리학이 밝히는 관계의 메커니즘
로빈 던바 지음, 김정희 옮김, 최재천 / arte(아르테) / 2018년 4월
평점 :

로빈 던바는 자연과학에서 특별히 창의성이 필요한 진화심리학계에서도 가장 창의적인 학자 중 한
사람이다. 던바는 한 개인이 맺을 수 있는 사회적 관계의 최대치가 150이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우리는 이를 '던바의 수'라 부른다.
던바의 수를 쉽게 정의하는 방법이 하나 있다. 여행 중에 비행기를 갈아타기 위해 경유지인
홍콩에 잠시 둘렀다고 가정해보자. 당신이 새벽 3시에 여객용 라운지에서 누군가를 보고 다가가 "여기서 만나네. 여행은 어땠어? 오늘 진짜 젊어
보이는데!"라고 말을 걸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사람들이 바로 던바의 수에 포함시켜야 할 사람들이다.
사실 그들은 당신이 그런 식으로 말을 걸지 않으면 약간 화를 낼 수도 있다. 당신은
상대방에게 당신을 소개할 필요가 없다. 이미 서로 사회적 공간에서 어느 위치에 있는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자연선택이 인류를 위해 어렵사리 진화시킨 모든 특성 중 가장 가치 있는 것은 단연 인간의
뇌다. 뇌는 진화의 역사상 가장 훌륭한 발명품이다. 뇌의 구조는 우리의 행동을 환경에 맞추어 정교하게 조정하여 다른 생명체들이 겪는 최악의 진화
과정을 피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우리는 포옹을 하거나 쓰다듬거나 어루만지거나 다독거리는 등 다양한 형태로 친밀한 접촉을
한다. 피부를 통해 전달되는 물리적 자극은 뇌에 엔도르핀 분비를 유발한다.
엔도르핀은 화학적으로 모르핀이나 아편과 유사한 내인성 오피오이드계에 속한다. 즉 엔도르핀은
우리 몸에 약하지만 만성적인 통증이 느껴질 때 개입하는 통증 조절 메커니즘으로 뇌가 자체적으로 만들어내는 진통제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느끼는 강렬하고 날카로운 통증은 빠르거나 느린 두 가지 신경통증 회로로 완화되는
반면, 조깅이나 규칙적인 운동 혹은 가벼운 정신적 스트레스로 발생하는 약한 통증은 엔도르핀계 호르몬으로 완화된다.

인간에게는 가깝다고 느끼는 사람들을 쓰다듬거나 만지고 싶은 강렬한 욕구가 있다. 그 욕구는
우리가 어쩔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어떤 유형의 친밀한 관계에서든 접촉은 우리가 제일 먼저 하고 싶어 하는 행위다. 접촉에는 서로 강렬한
친밀감을 느끼게 하는 요소가 있다. 그런 감정은 단순히 손을 잡거나 팔을 두르는 정도의 접촉만으로도 충분히 느낀다.
접촉은 본능적이고 직감적이며 우리의 정신 아주 깊은 곳에 있는 원초적인 감각을 건드린다.
촉각은 진화적으로도 좀 더 나중에 발달한 언어중추, 즉 좌뇌와는 별로 관계가 없고 감정을 담당하는 우뇌와 관련이 있다.
진리심리학자들은 이따금 인간을 '우주를 경험하는 시대에 석기시대의 정신을 가진 자들'이라고
풍자한다. 인간의 정신은 뇌의 산물이고 뇌는 그다지 빠르게 진화하지 못한다. 따라서 우리가 생각하고 삶의 경험에 반응하는 방식은 필연적으로
오래전 과거의 환경에 적응한 뇌를 반영할 수밖에 없다.
말하자면 우리의 사고방식과 삶의 경험에 반응하는 방식은 펼연적으로 오래전 과거 환경,
그러니까 넉넉잡아 약 50만 년 전부터 현생인류가 최초로 농사법을 개발하고 촌락을 구성하고 살면서 생활 방식과 환경 모두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한
약 1만 년 전 사이에 적응한 뇌를 반영할 수밖에 없다.

일부 진화심리학자들에게 중요하게 생각될만한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인간의 행동 대부분이
우리가 살고 있는 현 시대와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사실 우리는 현 시대에 아직 잘 적응하지 못하고 있다.
즉, 세상은 과거와 비교해 생활 방식이나 환경 면에서 완전히 달라졌지만 아직 우리는 아프리카
평원에서 사냥하는 사람들처럼 반응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성이 아니라 본능에 따라 행동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