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까칠한 할매는 왜 다시 산티아고에 갔을까 - 두 번째 까미노, 포르투갈 길을 걷다
이윤 지음 / 푸른향기 / 2026년 3월
평점 :
흔히 '산티아고 순례길' 하면 젊은 날의 호기로운 도전이나 낭만적인 풍경을 먼저 떠올리기 쉽습니다. 하지만 이 책은 화려한 수식어를 싹 걷어낸 '날것의 고통'과 '정직한 내면'을 담담하게 보여줍니다.
발목 골절과 인대 파열, 골다공증에 식도염까지 안고 64세의 나이에 다시 배낭을 멘 저자. 의사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무모해 보이는 두 번째 길에 오른 이유는 16년 전 떠나보낸 '엄마에 대한 사무치는 그리움과 회한' 때문이었습니다.
스스로를 '까칠한 할매'라 칭하는 저자의 시선은 유쾌하면서도 깊은 울림을 줍니다. 상그리아에 취해 넘어져 앞니가 부러질 뻔하고, 앱 사용이 서툴러 허둥대는 모습에선 피식 웃음이 나다가도, 길 위에서 만난 린, 리나, 마가렛 같은 도반들과 나누는 온기, 그리고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발바닥 통증 너머로 바치는 투박한 기도문 앞에서는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특히 매력적인 부분은 '속도'에 대한 성찰입니다. 로마 용병처럼 내달리는 젊은이들을 부러워하기보다, 하루 5km를 걷고 멈추더라도 내 몸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남을 먼저 보내주는 용기. 우체국에서 불필요한 짐 1.14kg을 덜어내고서야 숨통이 트였다는 고백은, 과도한 욕심과 타인과의 비교 속에서 스스로를 옥죄며 살아가는 우리 일상에 큰 경종을 울립니다.
대성당에 닿는 환희보다 배낭을 바닥에 내려놓았을 때 찾아오는 담담한 안도감이 더 크듯, 길은 끝났어도 진짜 순례는 이제 문을 열고 마주할 매일의 삶이라는 메시지가 긴 여운을 남깁니다. 가슴속에 부려놓지 못한 그리운 이름이나 무거운 삶의 짐을 지고 있는 모든 분들에게 따뜻한 길동무가 되어줄 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