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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이후 현대미술
데이비드 홉킨스 지음, 강선아 옮김 / 미진사 / 2025년 5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만 제공받아 작성한 후기입니다.
현대미술은 늘 저에겐 어렵게 다가오는 분야였습니다. 전시장에서 작품을 마주할 때면 ‘이걸 어떻게 이해해야 하지?’라는 질문이 자연스럽게 떠오르곤 했고, 그래서인지 작품과 나 사이엔 늘 보이지 않는 거리가 존재했다고나 할까요. 그 막막함 속에서 [1945년 이후 현대미술]을 읽게 되었습니다. 단순히 미술사적으로 정보를 얻기보다는, 현대미술이라는 복잡하고 난해한 세계를 조금이라도 더 이해하고 싶었어요. 그리고 이 책은 그런 바람에 충분히 응답해주었습니다.
데이비드 홉킨스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예술이 처한 존재론적 위기에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나가사키에 투하된 원자폭탄, 아우슈비츠에서의 집단학살 등 인간의 파괴성과 윤리적 한계가 극단으로 치닫던 그 시대에 예술은 과연 어떤 방식으로 계속될 수 있었을까요? 아도르노가 “아우슈비츠 이후 서정시는 야만”이라고 말한 것처럼, 예술은 근본적인 질문에 직면하게 되었고, 이 책은 그 질문들 속에서 현대미술이 어떤 방식으로 진화해왔는지를 깊이 있게 탐구합니다.
홉킨스는 추상표현주의, 팝아트, 미니멀리즘, 개념미술 등 전후 현대미술의 다양한 흐름을 단순히 사조로 구분하지 않고, 그것이 탄생하게 된 정치적·사회적 맥락까지 함께 짚어줍니다. 추상표현주의가 냉전 시기의 미국과 어떤 방식으로 연결되어 있었는지, 팝아트가 소비문화를 비판하면서도 동시에 그 문화와 어떻게 공모했는지, 그리고 개념미술이 왜 예술의 물질성을 거부하게 되었는지를 읽는 과정은 정말 흥미로웠어요. 그저 “어려운 예술”이라고만 여겼던 작품들이 그 시대의 현실에 어떻게 반응해왔는지를 알게 되면서, 막연했던 이미지들이 구체적인 의미를 갖기 시작했습니다.
책에는 풍부한 도판이 실려 있어서 시각적으로도 이해를 도왔습니다. 잭슨 폴록이나 마르셀 뒤샹처럼 이름만 알고 있었던 작가들의 작품 세계도 이전보다 훨씬 입체적으로 다가왔어요. 여전히 현대미술은 쉽지 않지만, 이 책을 통해 낯선 세계를 바라보는 눈이 조금은 열리는 경험을 했습니다.
또한 9·11 테러 이후, 디지털 기술과 글로벌 네트워크 시대의 미술 흐름에 대한 설명도 무척 인상 깊었어요. 현대미술이 단지 예술 내부의 실험이나 양식 변화에 그치지 않고, 감시 사회, 국경 문제, 디아스포라, 디지털 정치성 등 동시대의 복잡한 이슈들을 어떻게 담아내는지를 다루는 부분에서, 예술이 세상을 읽는 하나의 방식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물론 이 책은 한 번에 가볍게 읽히는 책은 아니었습니다. 어렵게 느껴지는 개념도 있었고, 몇몇 부분은 다시 읽어야 이해가 되기도 했어요. 하지만 그만큼 곱씹을수록 더 많은 걸 느끼고 생각하게 되는 책이기도 했습니다. 아직 완전히 다 이해한 것은 아니지만, 이런 책이 번역되어 출판되었다는 것이 참 반갑고 고맙게 느껴졌답니다.
현대미술이라는 낯선 세계에 한 발짝 다가서고 싶은 분들에게, [1945년 이후 현대미술] 좋은 출발점이 되어줄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그저 작품을 감상하는 데 그치지 않고, 예술을 통해 우리 시대의 질문과 마주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꼭 추천하고 싶은 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