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숨쉬게 하는 것들
김혜나 지음 / 판미동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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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책읽기/책일기] 김혜나를 읽는다는 것

1
김혜나의 신간이 나왔다. 나는 김혜나를 이효리가 아닌 페이스북을 통해 알았다. 그녀가 소설을 쓰는 글쟁이라는 것도 역시 페이스북을 통해 알았다. 인연을 톱아보니 몇 번의 메시지를 주고받았고 그녀로부터 앤솔로지 소설집 한 권을 받은 게 다다. (희미한 기억에 소설집 속 단편 중 김숨과 김혜나와 정용준이 좋았던 것 같다) 폐친이 된 이후 타임라인에 올라오는 그녀의 글을 빼놓지 않고 읽었음은 물론이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겠다. 나는 그녀의 글이 좋다. 내가 아는 한 그녀는 생활을 주재료로 글을 쓴다. 생활에 밀착한 글이 이른 아침 혹은 늦은 저녁, 타임라인에 올라올 때 나는 나도 모르게 입 안에 군침이 돈다. 눈이 그녀가 쓴 활자에 가 닿을 때 내 미감은 살아난다.

2
김혜나를 읽으며 나는 생활하는 한 사람을 본다. 그녀는 글 속에서 살아 움직인다. 몸이 움직일 때 활자가 쏟아진다. 그것은 스스로 운동하는데 읽는 나는 동사가 되어 한껏 몸을 구부리거나 쭉 편다. 그것이 그녀를 읽는 내 고유한 방법이다. 그녀는 타임라인에 자주 불평을 쏟거나 감사를 토해낸다. 이 둘은 언제나 함께 간다. 그 방식이 무척 마음에 든다. 나는 그녀가 쓴 <제리>(2010), <정크>(2012),<그랑주떼>(2014)를 읽지 않았다. 내가 읽은 그녀의 글은 앤솔로지 소설집에 실린 단편 한 개가 다다. 하지만 내겐 페이스북 타임라인이 있다. 그녀는 내가 그녀를 잊기 전 자신만의 방식으로 타임라인에 글을 올린다. 한 개의 세목에서 시작해 그녀는 자신의 마음을 타임라인에 펼친다. 글은 스스로를 밀고 나가는데 길이와 상관없이 한호흡으로 아니 단 한 개의 문장으로 그녀는 글을 끝맺는다.

3
김혜나의 글쓰기는 수행처럼 보인다. 나는 그녀가 요가 강사임을 글을 통해 굳게 믿을 수 있겠다. 그것은 (삶을 대하는) 그녀의 미덕이고 (삶을 글로 실어나르는) 힘이다. <나를 숨쉬게 하는 것들>의 세목이 궁금하다. 아니, 궁금하지 않다. 나는 이미 그녀를 읽었고 그녀의 삶 속으로 깊이 들어가 '숨'을 내쉰 바 있다. 그녀를 따라 말해보자. '나를 숨쉬게 하는 것들'의 세목을 불러 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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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다시 위험해질지라도
홍서여 지음 / 북인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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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다시 위험해질지라도˝ ˝아베베처럼, 맨발의 아베베처럼˝ ˝누구라도 시작하길 바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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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다시 위험해질지라도
홍서여 지음 / 북인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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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은 어디로도 못가고˝,“사랑, 길을 잃었을 때” ’묻는다.‘ “삶을 어떻게 생각하냐고?” “사랑이 올 때 누구는 얻고 누구는 잃는다.” “사는 것도 죽은 것도 아닌” ˝마음은 어디로도 못가고˝, ˝징징징 잉잉잉˝, ˝넘어지고야 깨달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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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초 민음사 오늘의 작가 총서 8
한수산 지음 / 민음사 /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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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수산, 샤갈 그리고 나! (한수산의 「부초浮草」를 읽고.........)
<- 유년의 뜨락엔 별빛이 산산히 부서지고 있다.>

1.
새벽 두시 삼십분. 한수산(1946-)의 처녀작이자 출세작 「부초浮草」의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며, 지난 삼일동안 나와 동거동락했던 공중곡예사 하명, 마술사 윤재아저씨, 삐에로 칠룡이, 통굴리던 석이네, 총무 명수 후견인 덕보, 줄타던 연희, 지혜를 한 명 한 명 기억의 강에서 호명해본다.

'기억의 강물 속'에서 걸어 나온 일월곡예단의 그네들이 러시아 비테프스크 태생 샤갈(1887~1985) 의 후기작, <서커스>연작에 나오는 정경들과 오버랩되면서 나를 환영으로 이끌었다.

2.
환영 속에서 걸어나온 저들은 나를 유년의 뜨락으로 이끈다. 눈을 뜨니 고향 정읍터미널 뒷켠 가설무대에 설치한 동춘서커스단 앞마당이다. 만국기가 천막 입구 꼭대기에서부터 더없이 파아란 가을 하늘 위로 펄럭이고, 난 한 마리 철없는 망아지가 되어 이리 폴짝 저리 팔짝 뛰어다니고 있다.

그네들(동춘서커스단)이 정읍터미널 뒷켠에 올 즈음이면, 시절은 어김없이 추석전야 혹은 전후였고 내 호주머니는 두둑해져 있었다. 갓 구워낸 쥐포 한 마리를 게아침(주머니)에 구겨 넣고 한 껏 까치발을 한 체, 서커스가 시작되기를 목빠지게 기다리는 한 소년이 검표를 마치고 가마니 하나를 꿰차고 앉아 공연 시작을 기다리고 있다.

시작을 알리는 둥∼둥∼둥∼ 북소리에 장내가 흥청거린다. 굵은 쇠줄에 매달린 오토바이가 천막 한 가운데서 검은 매연을 휙 내풍기면 장내는 최고조에 다다랐다. 어린 내 마음도 두둥실 떠울라 샤갈의 전작全作에 자주 나타나는 공중을 유영하는 사람들마냥 천막 안을 날아다니고, 천막 천정 끝까지 올라간 오토바이가 검은 연기에 보이지 않을 즈음 나의 상상력은 최고조로 올라, 급기야 오토바이아저씨가 아마 천정 너머 하늘 어디론가 사라져 버릴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럴 즈음이면 장내의 모든 불이란 불이 확 켜져 버리면서 내 머리 속의 상상력은 한 순간에 날아가 버리고, 내 상상력을 비웃기라도 하듯 오토바이아저씨가 내 코앞에서 양손을 쫙 벌리고 여전히 오토바이를 탄 체 싱긋 웃음을 건네는 것이었다. 오토바이 묘기는 동춘서커스단의 하일라이트였던 것이다.

서커스가 끝나고 뚝방길을 따라 달빛을 받으며 나보다도 먼저 저만큼 앞서 성큼성큼 걸어가는 발자국을 밟으며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지금 생각해보아도 무척 아름다운 밤이었다,라고 적어 두련다.

그래! 일년에 두어 차례 내생에 불현듯 찾아오는 서커스단은 불청객이었다. 그러나 싫지 않은 낯선 손님이었고, 난 기꺼이 낯선 손님을 기다렸다. 서커스단과 천막, 만국기와 사람들의 흥청거림 그리고 귀가길의 달빛과 뚝방 위로 길게 누인 내 그림자 위로 매혹적인 유년의 추억이 켜켜이 쌓이면서 나는 성장했다.

3.
작가는 후기에서 '창조의 정신이란 자기가 가지는 공간空間에 대한 끝없는 파괴와 수정을 통해서만 그 깊이와 폭을 넓혀 갈 수 있다.'고 곱씹고 있다. 누구에게나 삶은 일회적이다. 그러나 일회적 삶은 기억의 집적을 통해 시대를 달리하여 복원되기도 하고 재창조되기도 한다.

한수산의 소설 「부초浮草」는 이야기의 결을 따라 내 유년의 기억을 되살리기도 하고 과거의 집적체集積體의 산물인 현재의 나를 돌아보게도 한다. 필시 이것이 이야기가 지닌, 소설이 지닌 힘일 것이다,라는 독백을 하고 있는 내게, 황혼의 나이에 접어든 샤갈의 그림 [하늘의 연인과 꽃다발](1983作)이 하늘 가득 넘실거린다.

수줍게 고개를 돌리는 여인에게 작은 꽃다발을 내밀며 사랑을 고백하는 초로의 마르크 샤갈에게 '고향이라는 기억의 풍경'이 화폭을 가득 채워나가면서 이 모든 풍광을 슬며시 바라보는 나를 잡아 이끈다.

지금 내 유년의 뜨락에선 별빛이 산산히 부서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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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아의 제야
고종석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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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9/2 책읽기. 책일기

1.
6년만에 출간된 고종석의 소설집 <엘리야의 제야>를 어제부터 읽고 있다. 이 소설집에는 여섯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피터 버갓씨의 한국일기'는 '한국사회언어학회'(p68)의 학술세미나 초빙을 받은 '생성문법, 기호사회학의 창시자'(p69)인 피터 버갓씨의 8일간의 일기를 내러티브 방식의 고백체 형식으로 재구성한 소설이다.

글의 포맷만 따지자면 97년 펴낸 첫 소설집 <제망매>에 실린 '讚기파랑'과 엇비슷하다. 언어학자를 소설의 화자로 삼은 것이 그런데, 사실 고종석 본인이 서울과 파리에서 언어학공부를 한 것과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

소설의 전체적인 구성은 노스트웨스트기를 타고 황해/일본해를 건너온 자신(피터 버갓)의 심경묘사와 함께(01.8/5일기) 시작하고, 다시 노스트웨스트기를 타고 태평양을 건너는 마지막날 일기(01.8/12)로 소설은 끝을 맺는다.

피터 버갓씨는 소설 시종일관 자신을 '이성의 빛으로 세계를 인도해야 할 책임이 있는'(p73) '위대한 정신(p93)으로, '대단한 인물'(p77)로 평가를 내린다. 또한 스스로를 '프랑스 이남이나 동유럽에서 건너온 미국인들'(p73)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독일 이북에서 건너온 게르만'(p73)계 미국인임을 다소 우월감을 가지고 자평하는데, 이로써 스스로를 '제 3세계를 원호하는 진보적 세계시민'(p67)으로 자칭하는 소설 속에서의 그와는 다르게 그답지 않는(아니 소설 전반을 보건대 오히려 그다운) 인종주의적 발언을 하고 있음을 독자는 감지할 수 있다.

또한 초빙료로 오천불을 조심스럽게 제시하는 해동대학교 김교수의 제안에 '내가 우스꽝스럽기 짝이없는 노벨상을 탄 동료들'(p70)만도 못하느냐며 벌컥 화를 내더니만 결국 세금공제 없는 만이천불을 한국사회언어학회로부터 받아낸다. 그리고 한국체류 기간동안 내내 한국문화와 학문수준에 대해 저급한 평가를 내리더니만 경주방문 후, 유럽엘 '죽기 전에 열 번쯤은 더 가보고 싶다',(p89)란 친유럽성의 발언을 서슴없이 내린다.

2.
결론적으로 파리에서 학업과 생업을 위해 체류한 적이 있는 고종석의 시각을 빌어 비교학적 관점에서 피터 버갓같은 미국지식인의 이중성을 고발하고 있고, 조금 더 소설속으로 깊숙이 들어가 보면 대의와 명분에 따라 움직인다 하면서도 종국에는 실리(자본획득)를 꼼꼼하게 챙기는 것을 잊지 않는 지식(상)인의 허위를 폭로하고 있다.

하나 더 첨언하자면, 고종석의 소설을 읽을 때 자간과 행간에서 인문학적 소양이 흘러나오고 있는 것은 이번 소설집에서도 여전한 것 같다. 이런 류의 소설을 읽을 때, 지적 즐거움을 유발시키는 것이 픽션이라 부리는 소설의 순기능으로 작용할지, 아니면 역기능으로 작용할 지,는 독자들의 몫으로 남겨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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