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아의 제야
고종석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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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03/9/2 책읽기. 책일기

1.
6년만에 출간된 고종석의 소설집 <엘리야의 제야>를 어제부터 읽고 있다. 이 소설집에는 여섯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피터 버갓씨의 한국일기'는 '한국사회언어학회'(p68)의 학술세미나 초빙을 받은 '생성문법, 기호사회학의 창시자'(p69)인 피터 버갓씨의 8일간의 일기를 내러티브 방식의 고백체 형식으로 재구성한 소설이다.

글의 포맷만 따지자면 97년 펴낸 첫 소설집 <제망매>에 실린 '讚기파랑'과 엇비슷하다. 언어학자를 소설의 화자로 삼은 것이 그런데, 사실 고종석 본인이 서울과 파리에서 언어학공부를 한 것과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

소설의 전체적인 구성은 노스트웨스트기를 타고 황해/일본해를 건너온 자신(피터 버갓)의 심경묘사와 함께(01.8/5일기) 시작하고, 다시 노스트웨스트기를 타고 태평양을 건너는 마지막날 일기(01.8/12)로 소설은 끝을 맺는다.

피터 버갓씨는 소설 시종일관 자신을 '이성의 빛으로 세계를 인도해야 할 책임이 있는'(p73) '위대한 정신(p93)으로, '대단한 인물'(p77)로 평가를 내린다. 또한 스스로를 '프랑스 이남이나 동유럽에서 건너온 미국인들'(p73)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독일 이북에서 건너온 게르만'(p73)계 미국인임을 다소 우월감을 가지고 자평하는데, 이로써 스스로를 '제 3세계를 원호하는 진보적 세계시민'(p67)으로 자칭하는 소설 속에서의 그와는 다르게 그답지 않는(아니 소설 전반을 보건대 오히려 그다운) 인종주의적 발언을 하고 있음을 독자는 감지할 수 있다.

또한 초빙료로 오천불을 조심스럽게 제시하는 해동대학교 김교수의 제안에 '내가 우스꽝스럽기 짝이없는 노벨상을 탄 동료들'(p70)만도 못하느냐며 벌컥 화를 내더니만 결국 세금공제 없는 만이천불을 한국사회언어학회로부터 받아낸다. 그리고 한국체류 기간동안 내내 한국문화와 학문수준에 대해 저급한 평가를 내리더니만 경주방문 후, 유럽엘 '죽기 전에 열 번쯤은 더 가보고 싶다',(p89)란 친유럽성의 발언을 서슴없이 내린다.

2.
결론적으로 파리에서 학업과 생업을 위해 체류한 적이 있는 고종석의 시각을 빌어 비교학적 관점에서 피터 버갓같은 미국지식인의 이중성을 고발하고 있고, 조금 더 소설속으로 깊숙이 들어가 보면 대의와 명분에 따라 움직인다 하면서도 종국에는 실리(자본획득)를 꼼꼼하게 챙기는 것을 잊지 않는 지식(상)인의 허위를 폭로하고 있다.

하나 더 첨언하자면, 고종석의 소설을 읽을 때 자간과 행간에서 인문학적 소양이 흘러나오고 있는 것은 이번 소설집에서도 여전한 것 같다. 이런 류의 소설을 읽을 때, 지적 즐거움을 유발시키는 것이 픽션이라 부리는 소설의 순기능으로 작용할지, 아니면 역기능으로 작용할 지,는 독자들의 몫으로 남겨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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