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회>
“ 수업 시작 전에 여러분에게 말해둘 게 있어요. 요새 우리 동네에 방화사건이 계속 일어나는 건 다 알지요?”
담임선생님은 교실에 들어서자마자, 근심어린 목소리로 말하였다.
“네!”
아이들도 모두 알고 있다는 듯이 큰 목소리로 대답 했다. 벌써 일주일이 넘게 골목마다 불에 탔지만 아직 방화범이 잡혔다는 이야기는 없었기 때문에 아이들은 모두 불안해했다. 게다가 피해를 당한 사람들이 하나같이 갑자기 불덩이가 하늘에서 날아왔다고 말해서 아이들을 더 무섭게 했다. 아이들은 이제 골목을 지날 때도 이리저리 주위를 살필 수밖에 없었다.
“분명히 테러리스트의 소행일 거야.”
“말도 안 돼. 테러리스트가 왜 동네 골목에 불을 지르고 다니니?”
“그러게 나도 그게 궁금하다니까.”
“우 헤헤! 재밌다.”
“우리 할머니 말이 불타 죽은 귀신이 장난치는 거래.”
“설마, 그럼 이게 다 귀신 소행이란 말이야?”
요즘 아이들은 모이기만 하면 방화범이 누굴까에 대해 쑥덕대기 일쑤였지만 찬이나 석우는 지금 방화범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둘은 한결이 주위에서 이리저리 날아다니는 미르에게 눈을 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용은 원래 물과 관련 있는 성스런 동물이야. 그런데 청룡, 즉 푸른 용은 그 중에서도 하늘을 다스린다고 했어. 멋지지 않니?”
“저 심술꾸러기 용이 하늘을 다스린다고? 말도 안 돼.”
“찬이! 또 석우하고 잡담이니? 도대체 너희는 선생님 이야기 하는데 어디를 보는 거니?”
담임선생님의 말씀에 찬이는 머리를 긁적였지만 여전히 눈은 한결이 책상 위에서 어슬렁거리며 나는 미르에게 꽂혀 있었다. 선생님은 짧은 한숨을 내쉬며 말 계속이었다.
“어제는 4학년 아이가 방화 때문에 화상을 입었어요. 여러분이 혹시 불이 난 걸 보면 절대로 가까이 가지 말고 꼭 119에 신고해야 해요 알겠죠?”
“네!”
“좋아요 그럼 모두 체육관으로 갈 준비를 하세요.
“드르륵!”
담임선생님이 말을 마치자마자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윽고 겁을 잔뜩 집어 먹은듯한 표정의 한 아이가 책가방을 매고 들어왔다. 바로 광철이었다.
“광철이, 너!”
“죄송합니다. 선생님!”
광철이는 넓죽 엎드려 절을 했다.
“으하하, 저것 봐. 완전 바보 같지 않냐?”
준태가 배꼽을 잡고 웃자 덩달아 아이들도 까르르 웃었다.
“준태야.”
선생님이 굳은 표정으로 준태를 노려보자, 준태는 그제야 웃음을 멈추고 자리에 앉았다. 하지만, 준태는 광철이를 보며 이를 꽉 물었다.
‘쳇, 바보 자식 때문에 또 선생님에게 야단맞잖아. 두고 보자 병신새끼.’
광철이는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듣더니 더욱 고개를 숙이고 울먹이며 말했다.
“늦잠 잤어요. 잘못, 정말 잘못 했어요. 선생님!”
담임선생님은 엎드려 있는 광철이를 일으켜 세웠다.
“그만 일어나라 광철아. 다음부터 안 늦으면 돼. 알겠니?”
“예? 정말요? 선생님, 정말 고맙습니다.”
광철이는 다시 넙죽 절을 했고 아이들은 다시 으하하 웃음을 터트렸다.
“광철이는 빨리 자리에 가방 내려놓고 체육관 갈 준비 하렴. 다른 사람도 빨리 나오고”
선생님은 말을 마치고 먼저 교실 문을 나섰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준태가 기분 나쁜 미소를 씩 지었다.
광철이는 준태가 자신을 보고 기분 나쁜 미소를 짓고 있다는 것을 알아채지 못한 채 맨 뒤에 있는 자기 자리를 향해 빠른 걸음을 옮겼다. 그때였다.
“꽈당!”
광철이는 무언가에 걸려 마룻바닥에 그대로 넘어지고 말았다.
“우 하하하.”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준태는 고소하다는 표정으로 일어나려는 광철이 앞에 쪼그리고 앉았어요.
“바로 그거야. 앞으로 지각하면 그렇게 바닥에 코를 처박고 납작 엎드려서 빌어야 하는 거야. 안 그래, 얘들아?”
“맞아 헤헤헤”
“그래, 그래. 하하하”
“그만 둬!”
준태가 고개를 드니 석우와 찬이 그리고 한결이가 보였다.
“우, 바보 삼총사가 바보 광철이를 구하러 오셨군. 엉?”
“네가 광철이 다리 걸은 거 다 봤어. 사과 해.”
“어쭈, 지난번에 비겁하게 떼로 덤벼들어서 날 깔아뭉갰다고 지금 아무것도 안 보이나 보지?”
“그래, 다시 우리에게 깔아뭉개지기 전에 사과 해.”
찬이가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하지만, 사실 찬이의 가슴은 콩닥콩닥 뛰고 있었다.
“겁쟁이 치곤 제법인데?”
미르가 놀랐다는 듯 찬이를 바라보고는 준태에게 천천히 날아갔다.
“나는 처음부터 이 녀석이 맘에 안 들었어.”
미르가 옆에 있는지 꿈에도 모르는 준태는 찬이의 말에 흥분해서 주먹을 휙, 휙 휘두르며 으르렁 거렸다.
“얘들아, 싸우지 마. 싸우면 안 돼. 선생님한테 혼나!”
광철이가 찡그린 표정으로 몸을 일으켰다.
“그래, 좋아 사과 하지 뭐. 이 자식에게 사과 하면 되는 거냐?”
준태는 간신히 일어나는 광철이의 옆구리를 냅다 걷어찼다.
“아이고!”
광철이는 그대로 쓰러져 옆구리를 잡고는 데굴데굴 굴렀다.
“이 자식이 정말.”
“어때, 지난번처럼 비겁하게 세 명이 덤비지 말고 한 놈씩 와 봐. 내가 저 광철인지 꽝철인지 하는 병신새끼처럼 두들겨 패줄 테니까.”
준태가 성큼 성큼 삼총사에게 다가왔다. 주변에 있던 아이들은 준태의 서슬에 놀라 모두 자리를 피했다. 삼총사들도 씩씩댈 뿐 먼저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그때였다.
“도저히 못 참겠다.”
준태 옆에서 날고 있던 미르가 갑자기 준태 주변을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미르는 한번 몸을 꿈틀 하더니 로켓처럼 솟아올랐다가 준태의 입속에 쏙 들어가 버리고 말았다.
“캑, 캑!”
준태는 자기 목을 잡더니 괴로워했다. 잠시 후 준태의 목구멍에서 미르가 튀어나왔고 준태는 그 자리에 그대로 동상처럼 얼어붙어버리고 말았다.
“이 녀석 이제 한 시간은 이 모양으로 있어야 할 거다.”
미르가 입김을 훅 훅 뿜으며 고소하다는 듯이 말했다.
삼총사는 제자리에 꼼짝도 하지 않는 준태의 눈앞에 손가락을 흔들어 보기도 하고 딱딱해진 팔을 들어 올려 보기도 했다.
“고마워, 미르야.”
한결이가 찡긋 윙크를 했다. 석우와 찬이도 미르를 보며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
“바보 삼총사에게 칭찬을 들어도 기분은 좋은데?”
미르는 교실 천정까지 솟구쳐 올라 빙글빙글 돌았다.
“어, 어떻게 된 거야.”
쓰러졌던 광철이가 두 눈이 휘둥그레져서 삼총사를 바라보았다.
“저 녀석, 나쁜 짓해서 천벌 받은 거야. 자 빨리 가자 선생님 기다리신단 말이야.”
한결이의 말에 광철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일어났다. 석우와 한결이가 광철이를 부축해 주었다.
“빨리 가자. 찬이야.”
“응, 잠깐만.”
찬이는 장난삼아 얼어붙은 준태의 턱을 톡톡 건드리다가 뭔가 재미난 생각이 났는지 자기 주머니 속을 이리저리 찾았다.
“분명히 호주머니에 넣었는데……. 아, 여기 있다.”
찬이가 찾은 것은 작은 유성매직이었다. 찬이는 짓궂은 표정으로 얼어붙은 준태의 얼굴에 낙서를 하기 시작했다.
“사과 안 한 벌이다 이놈아!”
준태의 얼굴은 찬이의 낙서 덕분에 주근깨와 주름살 그리고 붕대 투성이로 변해버렸다.
“아이고 속 시원해. 가만, 그런데 내 손이 이렇게 길었나?”
찬이는 매직펜을 집어넣다가 문득 자기 손을 보고 중얼거렸다.
“뭐 기분 탓이겠지. 늦었네. 빨리 가야겠다.”
찬이는 휘파람을 불며 아이들을 따라 체육관을 향해 달려갔다.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