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회> 

                                                       (1) 

 학교에서 수업하는 내내 한결이의 표정은 밝지 못했다. 하지만, 미르는 뭐가 그리 즐거운지 교실 이 곳 저 곳을 돌아다니며 입김을 뿜어 댔다. 그 바람에 난데없이 재채기를 하는 아이들이 많아서 교실은 온통 시끌벅적했다.

“미르 녀석, 정말 신나나 봐. 그치?”
“그러게 말이야. 한결이 표정을 봐서라도 좀 적당히 하지. 너무 하는 것 같지 않아?”
“어차피 우리들도 오늘 밤이 지나면 아무 기억도 못한 텐데 뭐. 한결이도 그건 마찬가지잖아.”
“그나저나 넌 그만 좀 먹어라.”
“난 고민거리가 있으면 더 먹는단 말이야.”
“네가 언제 조금 먹은 적이 있었냐?”
“나 참, 지금 이 몸은 미르 환송식을 고민 중이라고.”

석우는 무언가 거창한 일이라도 생각해 냈는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환송식?”
“그래, 앞으로 미르를 보지 못 할 테니까 뭔가 기념할 만한 이벤트를 열자는 거지. 어때? 내 생각 멋지지 안 그래?”
“너, 먹는 생각만 아니라 좀 괜찮은 생각도 하는구나. 그래 어떻게 할 계획인데?”
“그건 아직 생각 못했어. 
 

석우는 초코 맛 젤리를 또 하나 입에 넣고 우물거리며 말했다.

“뭐라고?”
“그러니까 고민 중이라는 거잖아.”
“나 참, 널 믿은 내가 바보지.  ”
“그래, 생각났다! 우리가 그리들을 잔뜩 잡아서 주는 건 어때? 미르 녀석 그리들 엄청 좋아하잖아.”
“지난번에 된통 당한 거 기억 안 나? 이번에 그 놈들이 널 잡아먹으려고 덤벼들걸?”
“그, 그럼. 그건 취소, 취소!”
“네 이 녀석들 또 수업 중에 잡담이냐!”

담임선생님의 호통에 두 친구는 움찔했다. 결국, 두 친구는 복도에서 벌을 설 수박에 없었다.

“너희는 벌을 안 설 때가 도대체 언제냐?”

복도를 꽉 채울 만큼 커진 미르가 스르르 지나가면서 콧방귀를 뀌었다.

“쳇, 우린 우리 나름대로 중대한 계획을 짜고 있었단 말이야.”
“헤……. 너희 바보들이 무슨 계획이냐.”
“그, 근데 미르야, 너 어디가는거야?”
“어디가긴 지금부터 난 한 시간 동안 자유 시간이란 말이야. 아침에 본 구미호나 사냥하러 갈 거야. 왜 너희가 미끼라도 되어 주게?”

석우와 찬이는 놀란 눈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정말 너무하는 거 아니냐? 헤어지는 마지막 날인데 자유 시간까지 꼬박꼬박 챙기고 으이그, 얄미워 죽겠어.”

 석우가 사라져가는 미르를 보며 눈을 흘겼다.

“미르 성격이 원래 그런 거 잘 알잖아 그보다 지금이 기회야. 기회!”
“기회? 무슨 기회?”
“환송식 말이야 . 미르가 돌아올 때까지 1시간 동안 준비하는 거야.”
“하, 하지만, 아직 계획도 다 세우지 못했잖아.”
“내게 생각이 있어 멋진 환송식이 될 거야. 두고 봐” 
 

찬이의 틀림없다는 듯이 고개를 힘차게 끄덕였다. 
..................
                                                    

“난 싫어.”
“엥! 왜 ? 왜 싫다는 거야?”
“나 그런 거 하면 괜히 눈물 나온단 말이야.” 
 

한결이는 찬이의 제안에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래도 하자, 오늘 밤이면 미르 녀석이 누구였는지도 다 까맣게 잊어버린다는 거. 너도 잘 알잖아.”
“그래, 한결아. 빈 교실에서 깜짝 환송회를 한다! 오늘같이 선생님이 출장 가는 날이 아니면 할 수 도 없는 이벤트란 말이야.”
“…….”
“한결아 하자. 응? 이제 30분밖에 안 남았어. 우리가 있는 돈으로 과자 좀 사올 테니까 넌 교실에서 칠판 좀 꾸미고 하고 싶은 말도 쓰고 그럼 되잖아. 응? 하자 응?”
“아, 알았어.”

찬이와 석우가 계속해서 재촉하자  한결이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한결이도 미르를 그냥 보내고 싶진 않았기 때문이었다.

 “지난번에  담임선생님 생일 파티 했던 거 생각나지 ? 그때 신철이하고 아이들이 했던 것처럼 창문도 안보이게 가리고 혹시 누가 들어오면 안 되니까. 우리가 밖에서 자물쇠로 잠그고 갈게. 알았지?”

“알았어.”
“그럼 우린 빨리 다녀올게.”

석우와 찬이는 부리나케 교실을 빠져나갔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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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회> 

 또 며칠이 지난 아침, 예전 같이 삼총사들은 지각이어도 상관없다는 듯이 터벅터벅 학교로 향하고 있었다. 하지만, 오늘 아침 등굣길의 삼총사들은 모두 평소보다 기운이 없어 보였다. 다른 날처럼 미르와 장난을 치거나 농담을 주고  받지도 않았고. 미르도 이상하게 오늘따라 얌전해 보였다.

“오늘이네.”

한결이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석우와 찬이도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알고 있었다. 오늘은 바로 우돌 영감이 돌아오기로 한 보름날이었기 때문이다.

“그러게, 오늘이야.”

석우도 아쉽다는 듯이 말했다.

“쳇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나? 난 아직 백악기 시대 공룡 중에 변해보지 못한 공룡도 꽤 되는데…….”

찬이는 아쉬운 듯이 손가락으로 숫자를 세 보았다.

“맞아, 나도 집에 있는 물건 반도 맛을 못 봤어. 한결아 너도 아쉽지?”

석우는 입맛을 다시며 한결이에게 말했다. 석우의 말에 한결이는 미르를 슬쩍 바라보았다.  미르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유유히 한결이 옆을 날고 있었다.

“아, 아니 난 안 아쉬워 .”

말은 그렇게 했지만 이제 미르를 못 만날 뿐만 아니라 미르나 "용 분식집"에서 일어난 모든 일들을 다 기억하지 못한다고 생각하니 마음에 커다란 구멍이 뻥 뚫린 것 같았다.

“야,  오른쪽 방향에서 구미호 한 마리 온다.”

찬이가 뒤를 흘낏 보고 화들짝 놀라 친구에게 속삭였다. 아이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이 반대편 구멍가게로 시선을 돌려 짐짓 물건들을 보는 척 했다. 소복을 입고 아홉 개 달린 꼬리를 출렁거리며 한 마리 구미호가 삼총사와 미르를 스쳐서 멀리 사라지자 아이들은 동시에 한숨을 내 쉬었다.

“녹두 군사나 닷발 괴물을 보는 것도 오늘이 마지막이네. 어제 디카로 티라노로 변한 내 모습을 찍으려고 했는데 결국, 실패했어.”

찬이가 보여준 사진에는 무언지 모르는 뭉툭한 것만이 보였다. 석우는 그 사진을 보고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 이게 뭐냐?”

“티라노의 꼬리야. 후, 혼자 찍으니까 이것 밖에 안 나오네.”

찬이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진작, 알려줬으면 내가 도와주었을 텐데.”

“그러게. 어제 저녁 전까진 사진에 남기겠다는 생각은 거의 없었거든. 그런데 우리가 용 비늘 토해 내면 이 사진도 기억 못하지 않을까?”

“…….”

“뭐 어때, 우린 예전처럼 바보 삼총사로 돌아가면 되잖아.”

“그래 맞아.”

“그래…….”

삼총사들은 일부러 크게 목소리를 냈지만 하나도 즐거워 보이진 않았다.

“미르야 넌 기분이 어때?”

석우는 미르를 흘낏 보며 물었다.

“어떻긴, 바보들하고 열흘 넘게 있으려니 좀이 쑤셨는데 이제 해방이니 얼마나 신나겠냐?”

이렇게 말하고는 미르는 갑자기 하늘 위로 날아올랐다. 미르의 몸은 이내 커져서 구름 사이를 왔다 갔다 했다.

“까칠한 건 여전하네. 미르는.”

“그러게 .”

“그런데, 한결아, 한결……?”

찬이는 한결이에게 눈길을 돌리다가 그만 한결이의 눈가에 맺힌 눈물을 발견하고 말문이 막혔다.

“저 모습, 이제 다신 볼 수 없겠지?”

한결이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하늘 높이 올라간 미르는 구름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다. 단지 미르의 으르렁거리는 소리만 멀리서 들려왔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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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회>

                                                  (1) 

“찬이야 제발 정신 차려. 찬이야! 나야, 한결이야. 우리 삼총사잖아 삼총사!”

한결이는 이 모든 게 자기 탓인 것 같아 눈물이 왈칵 났다. 다급해진 한결이는 몸을 찬이 쪽으로 더욱 기울였고 그만 미르의 등에서 떨어지고 말았다.

“으악!”

한결이는 떨어지면서 찬이의 목을 움켜잡았다. 자기 등 뒤로 무엇인가가 목을 잡고 늘어져 있자 찬이는 더욱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날개를 펄럭 거렸다. 그 바람에 한결이는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하지만, 한결이는 찬이의 목을 놓지 않았다.

“찬이야! 부탁이야 제발, 부탁이야.”

그때였다. 한결이의 손에서 점점 푸르스름한 광채가 나기 시작했다, 그것은 처음엔 작은 불빛이었지만 마치 물이 드는 것처럼 찬이의 몸 전체로 번져나가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찬이의 몸도 점점 줄어들었다. 날카로운 부리와 큰 날개도 찬이의 개구쟁이 얼굴과 팔로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봐, 한결아, 찬이가 변하고 있어. 이제 사람으로 돌아왔어.”

 미르의 외침에 한결이도 놀라서 찬이를 바라보았다. 정말이었다.  손도 얼굴도 모두 개구쟁이 찬이의 모습이었다. 

“내가 간다. 기다려!”

그대로 추락하는 찬이와 한결이를 미르가 어느새 날아와 등에 태웠다.

“찬이야! 찬이야!”

한결이는 정신을 잃은 찬이를 흔들어 깨웠지만 찬이는 움직임이 없었다.

“괜찮을 거야. 잠시 기절한 거 같으니까.”

“휴, 다행이다. 그런데 아까 내가 뭘 한 거지? 내 손에서 이상하게 푸른빛이 나왔어.”

한결이는 신기한 듯 자기 손을 살펴보았다.

“아무래도 그게 네 능력인가 봐.”

“내 능력?”

“그래, 지금은 설명할 시간 없어. 봐봐, 저기 석우가 미끄럼틀도 다 먹어치우려 하고 있단 말이야.”

미르의 말에 놀라 주변을 살펴보니 철봉을 먹어치운 석우가 미끄럼틀로 달려가는 것이 보였다.

“안 돼! 석우야.”

한결이는 석우를 밀치고 미끄럼틀 앞을 가로막고 섰다. 사실 한결이는 찬이가 사람으로 돌아온 것이 어떻게 해서 가능했는지 그리고 석우에겐 뭘 해야 하는지 알지 못했다. 한결이에게는 석우를 막아야 한다는 간절한 생각밖에 없었다,

“석우야, 이제 네 모습으로 돌아와 제발, 부탁이야!”

그 순간 한결이의 양손이 또 파랗게 빛났다. 손에서 마치 공기를 물들이는 듯 번져가는 푸른빛은 석우를 천천히 둘러쌌다. 그러자 석우도 움직임을 멈추고 그 자리에 털썩 쓰러지고 말았다.

“아아, 배불러! 잘 먹었다.”

석우는 마치 잠꼬대를 하는 것처럼 중얼거리더니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한결이도 온 몸에 기운이 다 빠져서 스르르 미르에게 기댔었다. 그렇지만 기분은 너무 좋았다.

“고마워, 모두 다시 돌아와서 정말 고마워.”

긴장이 탁 풀린 한결이는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2) 

 

“오늘 반성문 쓰고 청소하는 것 있지 말아야 한다. 알겠니?”

선생님이 엄한 목소리로 말했다. 체육시간 동안 사라진 것과 준태 얼굴에 낙서를 해서 깨어난 준태를 놀라자빠지게 한 일 때문이었다.

“야, 그러니까 내가 익룡이 되었단 말이지?”
“응.”

“아쉽다 그때 사진을 찍었어야 하는데.”

찬이는 못내 아쉬운 표정이었다.

“그런 소리하지 마, 너 땜에 내가 얼마나 고생했는데.”
“그래도 말이야 커다란 아나콘다나 뭐 그런 걸로 변하면 얼마나 멋져. 안 그래?”

찬이가 이렇게 말하는 순간 찬이의 몸은 어느새 아나콘다로 변해 있었다.

“우왁! 또 야?”

 한결이는 깜작 놀라 손에 힘을 주었지만 이상하게도 이번에는 손에서 아무런 빛도 나오지 않았다.

“걱정 마, 난 지금 멀쩡해. 전하고 다르단 말이야.”

아나콘다가 된 찬이가 씩 웃으며 말했다.

“야호! 이거 신나는데? 난 뱀의 제왕 아나콘다다!”

찬이는 책상 사이를 유유히 미끄러져 갔다.

“저 녀석, 자기 능력이 무슨 놀이용인 줄 아나?”

미르는 못마땅해서 콧바람을 냈지만 즐거운 듯 보였다.

“아야!”

어느 순간 찬이는 본래 모습으로 되돌아와 있었다. 찬이는 그런 줄 모르고 그냥 일어나다가 책상에 머리를 박은 것이었다.

“뭐야, 금세 사람으로 돌아오잖아. 이번엔 다른 걸로 변해 볼까?”

찬이는 자기가 제일 좋아하는 공룡인 벨로시렙터로 변했지만 그것도 5분이 지나자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다.

“쳇 겨우 5분밖에 안 되잖아.”
“그래도 안 돌아오는 것 보다 나아. 그게 다 한결이 덕분인 줄이나 알아”

미르가 푸륵 푸륵 냉기를 내뿜으며 시큰둥하게 말했다.

“한결이 덕분이라고?”
“그래, 네가 보기엔 한결이는 다른 사람이 가진 마법을 조절해 주는 능력이 생긴 것 같아.”
“그게 내 능력?”

한결이는 신기하다는 듯이 자기 두 손을 바라보았다.

“그래, 그래서 지금까지 아무 능력이 없는 것처럼 보인 걸 거야.”
“뭐 그건 그렇고 너무 배고프지 않냐?”
“야, 컴퍼스 좀  그만 뜯어먹어!”

미르가 핀잔을 주었지만 석우는 씩 웃을 뿐이었다.

“컴퍼스가 이렇게 맛있는 줄 몰랐어. 이것 봐, 연필, 지우개……. 맛이 다 달라.”
“그게 그렇게 먹고 싶냐?”

찬이는 황당하다는 듯이 석우를 흘겨보았다.

“아무거나 먹을 수 있는 게 내 능력인데 어쩌겠어. 안 그래? 이번 기회에 세상의 모든 물건을 맛 볼 거야.”
“어이구, 할 말 없다.”

찬이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러다 저녁때까지 청소 못하겠다. 빨리 끝내고 집에 가야지 오늘 너무 피곤하잖아.”

한결이의 말에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뭔가 엉뚱한 능력들이지만 한 가지 이상한 능력이 생긴 탓인지 아이들은 모두 기분 좋게 청소를 할 수 있었다.

“어라, 이 얼룩은 왜 이리 안 지워져.”

석우가 땀을 흘리며 마룻바닥의 크고 검은 얼룩을 닦았지만 마룻바닥의 얼룩은 그대로였다.

“뭔데 그래? 어? 이건 얼룩이 아니라 탄 것 같은 데.”
“그러게, 그런데 탄 모양이 무슨 손자국 같지 않아?”
“그렇게 보면 그런 것 같기도 하고.”
“그런데 언제 여기가 불에 탄 거지?”
“준태 녀석 만날 라이터 가지고 다니던데 방화범 흉내라도 낸 거 아니야?”
“그 녀석이라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아.”
“오늘 준태 얼굴은 정말 최고였지?”
“그럼! 찬이의 최고 작품이었어.”
“하하하!”

삼총사들과 미르는 모두 큰소리로 웃었다. 아무도 없는 교실에서 삼총사의 웃음소리만 크게 울려 퍼졌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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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회> 

“오늘은 뜀틀 시험 있는 거 알고 있지요? 모두 지금까지 연습한 만큼 실력이 나오길 기대할게요. 그런데 준태는 왜 안 보이는 거죠?”

“선, 선생님 준태가 돌이 됐어요.”

광철이가 놀라서 커진 눈으로 말했다. 당황한 찬이는 황급하게 광철이의 말을 가로 막았다.

“그, 그게 아니라 준태가 열이 많다고 해서 양, 양호실에 갔어요.”

“그 녀석, 시험 보기 싫어서 꾀병 부리나……. 좋아요. 아무튼 오늘은 1번부터 시험 볼 테니까 우선 10분 동안은 준비운동을 하겠어요.”

“휴 간신히 둘러댔네.”

찬이는 석우와 한결이를 보며 씽긋 웃었다.

“나도 긴장했나봐. 너무 긴장했는지 배고파서 매트라도 먹고 싶은 지경이야.”

“이 먹보야. 그러니까 네가 살이 찌는 거야”

“그나저나 너 얼굴이 좀 길어진 거 같다. 원래 네가 얼굴이 이렇게 길었나?”

한결이가 길어진 찬이의 얼굴을 보고 고개를 갸우뚱 했다.

“무슨 소리야 난 동글동글하게 생겨서 어릴 적 별명은 수박이었단 말이야.”

 찬이는 자기 머리를 가리키다가 길어진 손을 보고 깜짝 놀랐다.

“어 내 손! 내손이 왜 이러지?”

“뭘 놀래, 드디어 시작됐는데.”

어느 틈엔가 미르가 나타나 한결이 어깨 위에 내려앉으며 한마디 했다.

“시작되긴 뭐가 시작돼?”

“내가 말 했잖아. 용 비늘을 먹은 사람들은 12시간 안에 한 가지씩 특별한 능력이 생긴다고 .”

“맙소사 그럼, 지금 내가 이상한 걸로 변한다는 거야?”

찬이는 깜작 놀라서 펄쩍 뛰었다.

“난 아무런 능력 같은 거 없었잖아.”

한결이는 이상하다는 듯이 말했지만 미르는 냉기를 내뿜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건 네가 이상한 거라고 말했잖아.”
“그, 그럼. 난 어떻게 해야 해”
“지금으로선 그냥 어떻게 변할지 두고 봐야지. 뭐로 별할지 모르지만. 후후. 그게 초코파이가 되는 능력이라면 큰일이 날 걸? 저기 봐. 먹보 석우가 뭘 하고 있는지.”

 미르가 가리키는 곳을 보니 석우가 앉아서 기계체조 매트를 뜯어먹고 있는 게 보였다.

“이런, 석우야! 매트를 먹으면 어떻게.”
“배고파, 배고파!”

한결이가 간신히 석우를 매트에서 떼어 놓았다. 하지만, 석우에게는 한결이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 같았다.

“안 되겠다 빨리 이곳에서 나가야 해. 아이들이 알면 난리 날게 분명해.”
“나 점점 다리가 길어지는 것 같아. 어떡해 한결아!”
“안되겠다. 우리가 빨리 시험보고 운동장이라도 나가야겠어. 저 선생님!”
“무슨 일이지?”
“시험 저희가 먼저 보면 안 되나요?”
“그래? 벌써 준비가 끝났단 말이니?”
“네, 그리고 세 명 다 화장실이 급해서요.”

한결이는 자기 실내화를  먹고 있는 석우를 간신히 설득시켜서 선생님 앞에 세웠다.

“사실 너희는 맨 마지막에 할 줄 알았는데……. 아무튼 좋아. 그럼 먼저 시험 보도록 해."
"저 먼저 볼 게요. 선생님.”

찬이는 체육복으로 얼굴을 최대한 가리고는 엉거주춤한 자세로 뜀틀의 구름판에 발을 디뎠다.

“자세가 똑바로 돼야지. 자세가! 어?”

선생님이 깜짝 놀라신 것도 당연했다. 찬이가 뜀틀을 2미터 가까이 뛰어오르며 가뿐히 넘었기 때문이었다.

한결이는 애써 태연한 척 하며 석우를 끌어왔다.

“자, 그럼 이번엔 석우 차례에요.”

한결이는 자기 체육복을 반이나 먹고 있는 석우를 끌고 와서 뜀틀을 뛰어 넘게 했다. 석우가 뜀틀을 넘는 건 불가능해 보였지만 다행이 미르가 잠시 커져서 석우를 입으로 물고는 뜀틀을 넘을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아얏! 이 녀석 내 수염을 먹어치우려고 하고 있어! 확 잡아먹어 버릴까 보다.”

한결이는 미르를 달래고 나서 자신도 정신없이 뜀틀을 넘었다. 그리고 세 친구와 도망치듯 체육관을 빠져 나왔다.

“헉헉!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미르야! 난 어떡해!”
“나도 몰라. 내가 그래서 자기 스스로 책임지는 거라고 했잖아.”
“키익, 키익, 나 이상해. 나 몸이 이상해”

찬이의 얼굴이 거의 세배만큼 길어지고 다리도 점점 길어지기 시작했다.

“배고파! 배고파!”

석우는 어느새 운동장 철봉대에 매달려서 철로 된 철봉대를 먹기 시작했다.

“석우야, 그만둬!”

한결이가 달려가 석우를 말렸지만 석우는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키이익! 키이익!”

 그때였다. 찬이가 기괴한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한결이는 찬이를 보고 깜짝 놀라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어느새 찬이는 한 마리 커다란 익룡으로 변해 있었던 것이다.

“맙소사!”
“위험해!”

미르가 순식간에 날아와 찬이를 물고 하늘로 솟구쳐 올랐다. 덕분에 한결이는 간발에 차로 익룡으로 변한 찬이의 날카로운 부리를 피할 수 있었다.

“저 녀석, 지금 자기가 누군지도 모르고 있어.”
“그럼 어떡해! 찬이는 앞으로 저렇게 공룡으로 계속 살 수밖에 없는 거야?”
“나도 몰라. 그래서 내가 책임지랬잖아. 이런, 석우 녀석은 지금도 끊임없이 먹어 대는군.”
“우왕,  난 몰라 어떡해!”
“일단 "용 분식집"으로 돌아가자. 거기 가면 무슨 방법이 있을지 모르잖아.”
“안 돼, 이대로 나두고 가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고.”
“바보, 그럼 어쩌란 말이야.”
“내가 이야기를 해볼게. 찬이도 석우도 내 친구니까 말해보면 정신을 차릴 수도 있잖아.”
“말도 안 돼. 널 공격한 걸 보고도 몰라?”
“그래도 찬이와 석우는 내 친구야. 내가 어려울 때 늘 곁에 있었단 말이야, 지금 나 혼자 떠날 수 없어.”

한결이의 눈물이 차가운 미르에 등에 뚝뚝 떨어졌다.

“좋아 알았어.”
“고마워 미르야. 우선 찬이 몸 쪽으로 가까이 가줘. 거기서 이야기를 해 볼게.”
“좋아 꽉 잡아.”

미르는 날개를 펄럭이며 날아가는 찬이를 쫓아 내려가기 시작했다.

“찬이야! 정신 차려 찬이야!”
“키이익! 키이익!”
“좀 더 가까이, 가까이 가줘.”
“젠장, 그러다 부리에 찍혀 버리면 어쩌려고 그래? 난 부리로 쪼이기 싫단 말이야.”

미르는 구시렁거리면서도 다시 몸을 돌려 찬이에게로 달려들었다. 한결이는 몸을 최대한 길게 빼고 찬이에게 소리를 질러댔다. 하지만, 찬이의 대답은 키익, 키익 하는 울음소리뿐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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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회>  

 “ 수업 시작 전에 여러분에게 말해둘 게 있어요. 요새 우리 동네에 방화사건이 계속 일어나는 건 다 알지요?”

 담임선생님은 교실에 들어서자마자, 근심어린 목소리로 말하였다.

“네!”

 아이들도 모두 알고 있다는 듯이 큰 목소리로 대답 했다. 벌써 일주일이 넘게 골목마다 불에 탔지만 아직 방화범이 잡혔다는 이야기는 없었기 때문에 아이들은 모두 불안해했다. 게다가 피해를 당한 사람들이 하나같이 갑자기 불덩이가 하늘에서 날아왔다고 말해서 아이들을 더 무섭게 했다. 아이들은 이제 골목을 지날 때도 이리저리 주위를 살필 수밖에 없었다.

“분명히 테러리스트의 소행일 거야.”
“말도 안 돼. 테러리스트가 왜 동네 골목에 불을 지르고 다니니?”
“그러게 나도 그게 궁금하다니까.”
“우 헤헤! 재밌다.”
“우리 할머니 말이 불타 죽은 귀신이 장난치는 거래.”
“설마, 그럼 이게 다 귀신 소행이란 말이야?”

 요즘 아이들은 모이기만 하면 방화범이 누굴까에 대해 쑥덕대기 일쑤였지만 찬이나 석우는 지금 방화범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둘은 한결이 주위에서 이리저리 날아다니는 미르에게 눈을 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용은 원래 물과 관련 있는 성스런 동물이야. 그런데 청룡, 즉 푸른 용은 그 중에서도 하늘을 다스린다고 했어. 멋지지 않니?”
“저 심술꾸러기 용이 하늘을 다스린다고? 말도 안 돼.”
“찬이! 또 석우하고 잡담이니? 도대체 너희는 선생님 이야기 하는데 어디를 보는 거니?”

담임선생님의 말씀에 찬이는 머리를 긁적였지만 여전히 눈은 한결이 책상 위에서 어슬렁거리며 나는 미르에게 꽂혀 있었다. 선생님은 짧은 한숨을 내쉬며 말 계속이었다.

“어제는 4학년 아이가 방화 때문에 화상을 입었어요. 여러분이 혹시 불이 난 걸 보면 절대로 가까이 가지 말고 꼭 119에 신고해야 해요 알겠죠?”
“네!”
“좋아요 그럼 모두 체육관으로 갈 준비를 하세요.
“드르륵!”
담임선생님이 말을 마치자마자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윽고 겁을 잔뜩 집어 먹은듯한 표정의 한 아이가 책가방을 매고 들어왔다. 바로 광철이었다.

“광철이, 너!”
“죄송합니다. 선생님!” 
 

광철이는 넓죽 엎드려 절을 했다.

“으하하, 저것 봐. 완전 바보 같지 않냐?” 
 

준태가 배꼽을 잡고 웃자 덩달아 아이들도 까르르 웃었다.

“준태야.”

선생님이 굳은 표정으로 준태를 노려보자, 준태는 그제야 웃음을 멈추고 자리에 앉았다. 하지만, 준태는 광철이를 보며 이를 꽉 물었다.

‘쳇, 바보 자식 때문에 또 선생님에게 야단맞잖아. 두고 보자 병신새끼.’

광철이는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듣더니 더욱 고개를 숙이고 울먹이며 말했다.

“늦잠 잤어요. 잘못, 정말 잘못 했어요. 선생님!”

담임선생님은 엎드려 있는 광철이를 일으켜 세웠다.

“그만 일어나라 광철아. 다음부터 안 늦으면 돼. 알겠니?”
“예? 정말요? 선생님, 정말 고맙습니다.”

광철이는 다시 넙죽 절을 했고 아이들은 다시 으하하 웃음을 터트렸다.

“광철이는 빨리 자리에 가방 내려놓고 체육관 갈 준비 하렴. 다른 사람도 빨리 나오고”

선생님은 말을 마치고 먼저 교실 문을 나섰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준태가 기분 나쁜 미소를 씩 지었다.

광철이는 준태가 자신을 보고 기분 나쁜 미소를 짓고 있다는 것을 알아채지 못한 채 맨 뒤에 있는 자기 자리를 향해 빠른 걸음을 옮겼다. 그때였다.

“꽈당!”

광철이는 무언가에 걸려 마룻바닥에 그대로 넘어지고 말았다.

“우 하하하.”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준태는 고소하다는 표정으로 일어나려는 광철이 앞에 쪼그리고 앉았어요.

“바로 그거야. 앞으로 지각하면 그렇게 바닥에 코를 처박고 납작 엎드려서 빌어야 하는 거야. 안 그래, 얘들아?”

“맞아 헤헤헤”
“그래, 그래. 하하하”
“그만 둬!”

준태가 고개를 드니 석우와 찬이 그리고 한결이가 보였다.

“우, 바보 삼총사가 바보 광철이를 구하러 오셨군. 엉?”
“네가 광철이 다리 걸은 거 다 봤어. 사과 해.”
“어쭈, 지난번에 비겁하게 떼로 덤벼들어서 날 깔아뭉갰다고 지금 아무것도 안 보이나 보지?”
“그래, 다시 우리에게 깔아뭉개지기 전에 사과 해.”

찬이가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하지만, 사실 찬이의 가슴은 콩닥콩닥 뛰고 있었다.

“겁쟁이 치곤 제법인데?”

미르가 놀랐다는 듯 찬이를 바라보고는 준태에게 천천히 날아갔다.

“나는 처음부터 이 녀석이 맘에 안 들었어.”

미르가 옆에 있는지 꿈에도 모르는 준태는 찬이의 말에 흥분해서 주먹을 휙, 휙 휘두르며 으르렁 거렸다.

“얘들아, 싸우지 마. 싸우면 안 돼. 선생님한테 혼나!”

광철이가 찡그린 표정으로 몸을 일으켰다.

“그래, 좋아 사과 하지 뭐. 이 자식에게 사과 하면 되는 거냐?”

준태는 간신히 일어나는 광철이의 옆구리를 냅다 걷어찼다.

“아이고!”

광철이는 그대로 쓰러져 옆구리를 잡고는 데굴데굴 굴렀다.

“이 자식이 정말.”

“어때, 지난번처럼 비겁하게 세 명이 덤비지 말고 한 놈씩 와 봐. 내가 저 광철인지 꽝철인지 하는 병신새끼처럼 두들겨 패줄 테니까.”

준태가 성큼 성큼 삼총사에게 다가왔다. 주변에 있던 아이들은 준태의 서슬에 놀라 모두 자리를 피했다. 삼총사들도 씩씩댈 뿐 먼저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그때였다.

“도저히 못 참겠다.”

 준태 옆에서 날고 있던 미르가 갑자기 준태 주변을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미르는 한번 몸을 꿈틀 하더니 로켓처럼 솟아올랐다가 준태의 입속에 쏙 들어가 버리고 말았다.

“캑, 캑!”

준태는 자기 목을 잡더니 괴로워했다. 잠시 후 준태의 목구멍에서 미르가 튀어나왔고 준태는 그 자리에 그대로 동상처럼 얼어붙어버리고 말았다.

“이 녀석 이제 한 시간은 이 모양으로 있어야 할 거다.”

미르가 입김을 훅 훅 뿜으며 고소하다는 듯이 말했다.

삼총사는 제자리에 꼼짝도 하지 않는 준태의 눈앞에 손가락을 흔들어 보기도 하고 딱딱해진 팔을 들어 올려 보기도 했다.

“고마워, 미르야.”

한결이가 찡긋 윙크를 했다. 석우와 찬이도 미르를 보며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

“바보 삼총사에게 칭찬을 들어도 기분은 좋은데?”

미르는 교실 천정까지 솟구쳐 올라 빙글빙글 돌았다.

“어, 어떻게 된 거야.”

쓰러졌던 광철이가 두 눈이 휘둥그레져서 삼총사를 바라보았다.

“저 녀석, 나쁜 짓해서 천벌 받은 거야. 자 빨리 가자 선생님 기다리신단 말이야.”

한결이의 말에 광철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일어났다. 석우와 한결이가 광철이를 부축해 주었다.

“빨리 가자. 찬이야.”
“응, 잠깐만.”

찬이는 장난삼아 얼어붙은 준태의 턱을 톡톡 건드리다가 뭔가 재미난 생각이 났는지 자기 주머니 속을 이리저리 찾았다.

“분명히 호주머니에 넣었는데……. 아, 여기 있다.”

찬이가 찾은 것은 작은 유성매직이었다. 찬이는 짓궂은 표정으로 얼어붙은 준태의 얼굴에 낙서를 하기 시작했다.

“사과 안 한 벌이다 이놈아!”

준태의 얼굴은 찬이의 낙서 덕분에  주근깨와 주름살 그리고 붕대 투성이로 변해버렸다.

“아이고 속 시원해. 가만, 그런데 내 손이 이렇게 길었나?”

 찬이는 매직펜을 집어넣다가 문득 자기 손을 보고 중얼거렸다.

“뭐 기분 탓이겠지. 늦었네. 빨리 가야겠다.”

 찬이는 휘파람을 불며 아이들을 따라 체육관을 향해 달려갔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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