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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회>
“야 여기 책 정말 많다 그치?”
“바보, 도서관이니까 많지.”
“난 아직도 배속이 니글거려 미치겠어.”
시간의 언덕에 다녀온 미르와 아이들은 며칠 동안 지독한 멀미 때문에 고생을 했다. 게다가 그리들의 왕이 낸 수수깨끼는 일주일 동안 아무리 생각해도 무슨 뜻인지 조차 알지 못했다. 결국, 삼총사와 미르는 수수깨끼를 푸는데 도움을 얻기 위해 한 번도 가 본적 없던 학교 도서실까지 오게 되었다.
“계수나무는 달에만 있잖아. 그런데 등잔 밑에 숨은 달은 무슨 뜻이지?”
한결이는 미르를 위해서라도 빨리 수수깨끼를 풀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수수깨끼는 쉽게 풀리지 않았다.
“달이 어떻게 등잔 밑에 숨어? 그럼 등잔은 엄청 크겠네.”
“바보야, 그건 수수깨끼야. 진짜 그런 게 아니라고.”
찬이가 석우를 보며 한심하다는 듯 말했다.
“쳇 그건 나도 알아. 내가 뭐 진짜 바본 줄 알아?”
“그만 티격태격 싸워. 다음 보름날까지는 얼마 안 남았단 말이야. 꼭 열쇠를 찾아야 해. 미르 봐봐, 지금 화가 나서 계속 왔다갔다만 하고 있잖아. 저 녀석 당장이라도 온 대륙에 쳐들어갈 것 같아.”
“그래, 알았어. 다들 힘내자 힘! 그런데 하늘을 나는 이무기는 또 뭘까?”
“공룡 박사, 괴물 박사님이 이무기도 몰라?”
“바보야 누가 이무기를 모른데? 보통 이무기는 여의주가 없기 때문에 하늘을 날지 못한단 말이야.”
찬이는 한국의 요괴라는 책을 펴들고는 “이무기”를 설명한 곳을 가리키며 말했다.
“난 백 개의 강이란 말도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걸.”
석우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몰랐어? 그건 "온 대륙"을 말하는 거잖아. 백 개의 산과 백 개의 강으로 이루어진 세상!”
한결이의 말에 석우는 헤헤 거리며 애꿎은 자기 머리만 긁적였다.
“달을 삼킨 아이는 뭘 의미할까 무슨 산 같은 거 아닐까?”
“맞다! 산 그래 산! 그럼 불속에서 우는 소리는 뭐야.”
“메아리 아닐까 그래 메아리!”
석우가 흥분에서 큰 소리를 질렀다. 아까부터 삼총사들을 보며 인상을 쓰던 사서 선생님이 드디어 참지 못하고 몸을 일으켰다.
“너희! 종용히 좀 못하겠니?”
“죄, 죄송합니다.”
한결이는 얼굴이 빨개져서 고개를 숙였다. 찬이와 석우도 목소리가 작아졌다.
“치, 저쪽 5학년 애들도 떠들잖아. 왜 우리만 혼내는 거지.”
“그야 네가 도서실이 더나가도록 소릴 질렸으니까 그렇지.”
“네가 언제? 내 목소리가 얼마나 작은데 발표할 때 선생님이 몇 번씩 큰소리로 말하라고 하신단 말이야.”
“그만 좀 싸우고 책 좀 더 찾아봐.”
그때였다. 건너편 책장에서 5학년 아이들이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이들은 요새 관심거리인 방화 사건을 말하는 것 같았다.
“어젠 목욕탕 옆 골목이 새까맣게 탔데. 이번엔 할아버지 한 명이 다치셨다는데?”
“또 야? 이젠 듣는 것도 지겹다 도대체 방화범은 언제 잡히는 거지?”
“그런데 그 할아버지 불길 속에서 어린 아이 울음소리를 들었데.”
“정말 ? 그럼 걔는 어떻게 된 거야?”
“몰라, 설마 불속에서 아이가 울고 있었겠어? 그냥 잘못 들은 거 아니냐?”
아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나자, 한결이는 두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야, 너희도 들었지?”
“뭐? 무슨 소리야?”
“마, 맞다! 불 속에 어린아이!”
찬이가 놀라서 큰 소리를 지를 뻔 했다. 석우도 그제야 찬이의 말을 알아들었다.
“그럼, 그 수수깨끼에 나오는 아이가 바로?”
“그래, 설마 방화사건 하고 달 두꺼비 열쇠가 관계가 있을 줄이야.”
“그러게, 그래서 속담도 있잖아 등잔 밑이 어둡다고 .”
“등잔 밑!”
이번엔 한결이가 고함을 지를 뻔 했다.
“이럴 수가, 등잔 밑에 숨은 달이란 바로 이 말이었구나!”
“그럼, 뭘 기다려 빨리 그 골목으로 달려가야지.”
“가만, 이 책에 달 두꺼비에 대해서도 나오는데? 이걸 좀 더 읽고 가자.”
“안 돼. 시간 없어. 그냥 빌려서 나가자.”
한결이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미르에게 달려갔다. 미르와 한결이 그리고 석우가 정신없이 계단을 내려갔고 찬이도 빌린 책에 눈을 떼지 않고 빠른 걸음으로 친구들을 쫓아갔다.
“헥! 헥! 달 두꺼비는 보름달이 뜨는 날 달에서 이 세상으로 내려온데. 그러니까 달 두꺼비 뼈로 만든 열쇠는 이세상과 다른 세상을 연결 할 수 있는 거야.”
학교 건물을 막 나오면서 찬이가 말했다. 찬이의 오른 손에는 “한국의 요괴”라는 책이 펄럭이고 있었다.
“그럼 이무기에 대해서도 좀 더 찾아봐. 혹시 정말 하늘을 나는 이무기가 있는지도 모르잖아.”
“그런 건 없다니까. 여의주가 있어야 하늘을 난단 말이야. 잠깐 저 녀석들 준태와 그 똘마니들 아니야? 어라, 광철이도 있네.”
찬이가 가리키는 운동장 한 구석, 등나무 교실에 정말 준태와 준태를 따르는 아이들, 그리고 당황한 표정에 광철이가 보였다.
“저 녀석들 또 광철이를 괴롭히는 게 분명해. 나쁜 자식들, 우리가 도와주자.”
“안 돼, 광철이는 늘 저렇게 당하는 게 일이잖아. 우린 먼저 열쇠를 찾는 게 급해.”
웬일로 한결이가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찬이와 석우도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광철이가 아까 우리 보던 얼굴 너도 봤지? 마치 도와달라는 것 같았어.”
교문을 나서면서 석우가 마음에 걸리는 듯이 말했다.
“알아, 하지만, 어쩔 수 없어. 광철이는 다른 아이들이나 선생님들이 도와줄 거야.”
이렇게 말하는 한결이의 마음도 무거웠지만 한결이는 하루 빨리 미르가 웃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한결이에게는 달 두꺼비 열쇠를 찾는 일이 가장 중요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미안해, 광철아, 다음엔, 다음번에 그냥 널 두고 가진 않을게. 미안해.”
한결이는 자꾸 무거워지는 마음을 이겨내려는 듯이 더욱 힘차게 달렸다.
“우와 정말 새까맣게 탔구나!”
“그래 전봇대도, 벽이며 바닥 모두가 다 까맣게 그을렸어.”
“이 불 속에 어린아이가 있었단 말이지?”
“말도 안 돼. 누구든 이곳에 있으면 구운 통닭처럼 되고 말거야. 음, 맛도 별로 없고”
석우는 그을린 부분을 조금 떼어서 입에 털어 놓고는 인상을 썼다.
“이게 혹시 이무기의 짓은 아닐까?”
“불을 이용하는 이무기라니 그런 게 어디 있니?”
“뭐 있을 수도 있지. 안 그래? 모든 것을 먹을 수 있는 나 같은 사람도 있는데 뭐.”
“어이구, 넌 다 먹을 수 있어서 좋겠다.”
그때였다. 석우와 찬이가 두 눈을 치켜뜨고 말싸움을 하는 모습 그대로 자리에 얼어붙어 버렸다. 물론 그것은 바로 미르 때문이었다.
“이 두 바보들이 말장난 하는 것 듣는 것도 이제 지쳤다. 달 두꺼비 열쇠는 보이지도 않는데 신경질 나게.”
“그래도 널 위해 여기가지 와준 거야.”
한결이나 난처한 듯이 웃으며 미르에게 말했다.
“쳇, 나도 알고 있어. 하지만, 여기서 뭘 찾을 수 있겠어.”
미르는 조급하고 화가 난 목소리로 말했다.
“영감이 없다고 생각하니 뭘 해도, 뭘 해도 신나지 않는단 말이야.”
“미르야…….”
한결이는 더 이상 말을 못하고 미르를 바라보았다.
그때, 얼어붙은 두 아이의 몸이 땡 하고 풀렸다.
“에취! 에고, 추워. 난 오늘 옷도 얇게 입고 왔단 말이야.”
“에취! 그리고난 몸이 추우면 더 배고파진다고!”
“이런 녀석들에게 내 비늘을 준 게 잘못이지. 그냥 여의주를 이용해서 확 예전으로 돌려버릴까 보다.”
미르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잠깐, 미르야 그럼 너 혹시 이 골목도 불타버리기 직전으로 돌려놓을 수 있어?”
한결이가 무언가 생각난 듯이 말했다.
“그야 당연하지 여의주를 이용하면 그건 어렵지 않아.”
“좋았어! 그럼, 그렇게 해보자 이 골목이 불타기 바로 전으로 말이야. 그럼 불 속의 아이도 아니면 달 두꺼비 열쇠에 대해서도 뭔가 단서를 찾을 수 있지 않겠어?”
“그래 그거 좋은 생각이다.”
찬이와 석우도 고개를 끄덕였다.
“쳇, 별로 큰 기대는 안 하지만, 어디 한번 여의주를 써 보지.”
미르는 머리를 쳐들고 크게 한 번 으르렁 거렷다. 그러자 입 속에서 푸른 광채가 나기 시작 했다, 순간 번쩍하는 섬광이 보이더니 새까맣게 타서 아무것도 남지 않았던 골목 모습은 온대간데 없고 미르와 삼총사들의 눈앞엔 말끔한 골목이 모습을 드러냈다.
“와! 이거 신기한데.”
“돌려놓은 시간이 딱 5분 전이야 그러니까 그전에 단서를 찾아야 해. 만약 5부이 지나도 골목에 서 있다간 석우 말처럼 통구이가 될 걸”
“으으, 그건 정말 싫어.”
삼총사와 미르는 골목 구석구석을 살펴보았지만 특별한 것은 눈에 띄지 않았다.
“뭐야, 이거 아무것도 없잖아. 5분 전에도 이렇게 말끔한데 도대체 언제 불이 붙은 거야?”
“이제 3분밖에 안 남았어.”
미르가 삼총사 주위를 스르르 지나가면서 짓궂게 한마디 했다. 그 바람에 아이들은 얼굴이 빨개져서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뭐야, 이제 2분밖에 안 남았는데 아이는커녕 방화범도 보이지 않잖아.”
“이제 1분이야.”
“어떡해, 도대체 단서는 어디에 있는 거야? 담벼락을 다 뒤져봐도 있는 거라곤 손자국 하나밖에 없는데……. 가만 손자국?”
한결이는 깜짝 놀라 소리쳤다. 탄 자국 같은 손자국을 어디선가 본 기억이 났기 때문이다.
“맞아, 지난번에 교실에서 청소하다 발견 한 것도 이런 모습이었는데…….”
“위험해!”
미르가 순식간에 한결이와 석우 그리고 찬이를 덥석 물고는 하늘로 날아올랐다. 그리고 곧바로 골목은 커다란 불길에 휩싸였다. 미르는 다시 여의주를 사용하여 원래의 시간으로 돌아왔다.
“1초만 늦었어도 큰일 날 뻔 했어.”
“맞아. 난 내가 정말 죽는 줄만 알았어.”
찬이가 놀란 가슴을 쓸어 내렸다.
“드디어 알아냈어. 교실에서도 불이 난 것도 똑같아 . 불탄 자국에서부터 불이 시작된 거야.”
한결이가 흥분해서 소리쳤다.
“뭐야, 그럼 도대체 불속에 아이는 뭐지?”
“불탄 자국이 뭔지도, 똑바로 봤어. 그건 분명히 손자국이야. 아이의 손자국…….”
“하지만, 도대체 그 아이가 누군지는 알지 못하잖아. 이래가지곤 아무것도 할 수 없어.”
그때였다. 찬이가 불쑥 이렇게 말을 내뱉었다.
“맙소사, 그 아이가 누구인지 이제야 알겠어.”
“뭐라고?”
아이들과 미르는 고개를 돌려 찬이의 얼굴을 살피고는 깜짝 놀랐다. 찬이의 얼굴인 백지장처럼 창백해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찬이는 들고 있던 책이 툭 떨어지는 것도 모른 채 혼잣말로 이렇게 중얼거렸다.
“그 아이는 바로……. 광철이야.”
찬이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학교 쪽에서 거대한 불길이 솟아올랐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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