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바양과의 결투

 

(1)

 

“한결아 무슨 일이야!”

한결이의 비명소리를 듣고 미르와 부루가 순식간에 한결이에게 달려왔다.

“호, 이 녀석 보기보단 대단한대? 새끼 용을 두 마리씩이나 부하로 두고...”

사내아이는 이렇게 말했지만 약간 당황한 듯 보였다.

“뭐야, 저 녀석은? 너 설마 상자를 건드린 거야?”

미르의 물음에 한결이는 얼굴이 빨개졌다.

“그.. 그게 저녀석이 살려달라고 구해달라고 했단말이야.”

“선한 마음으로 도와주려는 사람을 거짓말로 속이다니 너무 하는 군요.”

부루가 화가난 듯이 드꺼운 입김을 내뿜었다.

“속은 저 녀석이 바보인거야. 쓸데없는 말은 집어 치워. 너희 셋 모두 다 잡아먹어 버릴 테니까.”

사내아기가 으르렁거렸다. 미르는 가소롭다는 듯이 사내아이에게 냉기를 훅 뿜었다. 그러자 아이는 순식간에 얼어 붙었다.

“쳇 조그만한게 까불고 있어.”

잠시후 쟁 하고 얼음이 깨지는 소리와 함게 사내아이의 몸이 움직였다.

“에, 에취! 이 녀석 날 가지고 장난을 쳤겠다. 가만 안 두겠어. 나랑 결투를 하자!”

사내아이가 이를 드러내고 으르렁거렸다.

“웃기고 있네 결투는 무슨 .. 우린 여길 나가는데도 바쁘니까 넌 그냥 집에 가라 꼬마야.”

미르가 조롱하듯 말하자 사내아이는 화가 나서 펄쩍 뛰었다.

“이 녀석 내가 널 반드시 잡아먹어버릴 거야. 나랑 결투해! 결투!”

“쪼그만 게 봐줬더니 그냥....”

미르가 다시 입김을 훅 불었다. 사내아이는 다시 몸이 꽁꽁 얼어붙었다.

“미르, 생각해봐. 상자와 결투? 이거 분명 어디선가 들어봤는데? 너도 들어봤지?”

부루는 대나무로 만든 상자가 계속 마음에 걸렷다. 옛날 우돌 영감이 해준 이야기를 떠오르려고 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기억나지 않았다.

“몰라, 저런 이상한 꼬마애에게 관심가질 시간 있으면 일이나 해.”

미르는 관심 없다는 듯이 시쿤등하게 대답하며 나무들이 샇여 잇는 쪽으로 몸을 움직였다. 그때였다.

“에, 에취! 이 녀석! 내가 널 반드시 죽인다!”

얼었던 몸이 풀리자 사내아이는 미르를 가로 막았다.

“이 꼬마 녀석이! 한번 혼나 볼래?”

미르도 화가 나서 고개를 빳빳이 쳐들었다.

“자, 그럼 나와 결투 할 테냐?”

사내아이가 미르를 노려보며 말했다.

“이 녀석이 겁도 없이 정말... 그렇게 네 녀석이 결투를 원한다면...”

미르도 이빨을 드러내고 으르렁거리기 시작햇다. 그때였다.

“모두 그만 둬. 결투 같은건... 안 해도 되잖아.”

한결이가 둘 사이를 끼어들었다. 한결이는 자신을 속인 아이가 미웟지만 그렇다고 미르와 싸우게 나둘수는 없었다. 그리고 미르가 남을 헤치는 모습을 보고 싶지도 않았다.

“네가 나와 결투할 게 아니라면 비켜, 난 저 새끼용을 이겨서 내 노예로 삼겠어.”

사내아이가 미르를 노려보며 말했다.

“한 입에 꿀꺽 삼켜버리면 그런 허튼소린 더 이상 못할 거다 꼬마야.”

미르도지지 않고 대거리를 했다.

“왜, 왜 결투를 해야 하는 거지 그냥 사이좋게 지내면 안 되는 거야?”

한결이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아이를 바라보았다.

“난 결투를 하기 위해 태어났어. 결투에서 내가 이기면 상대방은 저 상자에 갇혀 노예가 되고 지면 내가 상자에 갇혀서 노예가 된다. 그게 바로 내가 살아가는 방식이야.”

사내아이가 이글거리는 눈으로 한결이를 노려보며 말했다. 한결이는 아이의 운명이라는 것이 너무 어처구니 없었었다. 누군가를 노예로 만들거나 그렇지 않으면 자신이 노예가 될 운명을 타고난 사람이라니...

‘이런 말도 안 되는 짓은 막아야해 그런데 어떻게 하면 되지?’

한결이는 아무리 생각해도 해결책이 떠오르지 않았다. 하지만 둘의 싸움을 어떻게서든지 막아야겠다고 생각했다. 한결이는 무언가 결심한 듯 입술을 굳게 다물고 사내아이를 바라보며 이렇게 말했다.

“정말 그렇게 결투를 하고 싶다면... 나하고 하자!”

“한결아! 무슨 짓이야.”

미르가 깜짝 놀라 고개를 쳐들었다. 부루도 놀란 눈으로 한결이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한결이의 결심은 흔들리지 않았다. 결투건 싸움이건 좋아할 리 없는 한결이었지만, 미르도 그리고 저 검은 옷의 아이도 다치는 것은 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한결이는 자신이 대신 결투를 하기로 한 것이었다. 그렇게 결투에 나서서 져버리면 끔찍한 싸움이 끝나지 않을까? 가능할지는 모르지만 한결이가 할 수 잇는 일이란 이런 것 밖에 없었기 때문이엇다.

“누가 결투 상대든 난 상관없다 . 저 버릇없는 푸른 용을 물어 뜯고 싶긴하지만... 다시 묻겠다. 정말 나와 결투를 하겠어?”

아이의 물음에 한결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좋다. 그럼 지금부터 결투장을 준비하겠다!”

아이의 말이 끝나자마자 검푸른 안개가 아이의 몸에서 뿜어져 나와. 한결이와 아이의 주변을 감쌌다. 위험을 느낀 미르와 부루가 한결이에게 다가가려고 했지만 검푸른 안개에 가로막혀 더 이상 움직일 수 없었다.

“소용없어. 결투가 끝날 때까지 이 안개는 절대로 사라지지 않는다.”

아이가 기분나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미르는 냉기를 푹푹 내뿜으며 기분나쁘다는 듯이 말했다.

“쳇 어쩔수 없네. 한결아! 저 기분나쁜 꼬맹이 자식을 한 대 걷어차줘.”

그때였다. 부루가 드디어 옛날 기억을 떠올리고는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미르, 드디어 생각났어. 대나무 상자와 결투를 하는 요괴!”

미르는 별로 상관할 게 없다는 투로 물었다.

“그래서 그게 누군데?”

부루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용을 잡아먹는 족제비 요괴 바양이야!”

부루의 목소리가 끝나자마자 사내 아이는 어느새 온 몸이 털로 뒤덮인 산처럼 거대한 검은 족제비로 변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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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어? 왜 그러는데?”

한결이는 부루의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 뻗은 손을 거두었다.

“이 상자 아무래도 불길해요. 예전에 이런 상자에 대해 들어 본 것 같기도 하고.”

어느새 붉은 용으로 변한 부루가 한결이에게 다가왔다.

“그래? 혹시, 이 속에 무서운 거라도 들어 있는 거야?”

한결이는 덜컥 겁이 나서 상자에서 뒷걸음쳤다.

“일들 안 해? 왜 또 잡담이야? 응!”

냉기를 푸륵푸륵 내뿜으며 미르도 한결이에게 다가왔다.

“미르, 이 상자. 어디선가 본 적 있지 않아?”

미르는 부루의 말에 상자를 이리저리 살펴보고 말했다.

“글쎄, 어디서 본 것 같기도 하고... 맞다! 이 상자 우돌영감이 가지고 잇던 것 하고 똑 같은데? ”

미르는 어렸을 때 우돌 영감이 이것과 똑같은 상자를 가지고 잇었던 것이 기억 났다. 언제나 우돌이 자기 머리맡 선방에 올려두고 누구도 만지지 못하게 했던 상자....

“맞아, 그 때 그 상자가 분명해. 그런데 이게 왜 여기 있는 거지?”

부루도 예전의 일을 기억해 내고 푸륵푸륵 뜨거운 열기를 내뿜었다.

“그런데 영감이 상자를 만지지 말라고 햇던 이유가 뭐였더라?”

부루는 옛날일이 기억나지 않자. 고개를 갸웃거리며 생각에 잠겼다. 그러자 성질 급한 미르가 상자에 냉기를 훅 뿜었다.

“후우! 이깟 게 뭐 그리 중요하다고 고민이야.”

미르의 입김에 상자가 힘없이 주르륵 밀려 나갔다.

“뭐야, 아무것도 없는 빈 상자잖아? 괜히 긴장했네. 자, 일들해 일! 나무와 돌이 더 필요하단 말이야. 한결이도 이런 쓸데없는 상자 말고 돌멩이라도 좀 주워와 봐. 부루 너도 저쪽에 잇는 바위들을 좀 물어오고”

“아, 알았어.”

미르의 재촉에 한결이는 허둥지둥 달려 나갔다. 부루도 앞에 보이는 바위산을 향햐 스르륵 미끄러져갔다.

 

“자, 이 정도면 미르도 만족하겠지?”

한결이는 두 팔을 잔뜩 벌려 자기 머리만한 돌 두 개를 간신히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힘은 들었지만 작자신도 뭔가를 도움이 되는 것 같아. 기분은 좋았다.

“미르 녀석, 잔소리 할 때 보면 우리 엄마 같다니까.”

한결이는 미르를 향해 장난스럽게 혀를 속 내밀었다. 그때였다.

“도와 주세요. 누구 없어요!”

어디선가 작고 귀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게 무슨 소리지?”

한결이는 목소리가 나는 곳을 이리저리 찾아 보앗다. 그리고 오래 걸리지 않아 목소리가 어디서 나는지 찾을 수 잇었다. 소리가 나는 곳은 바로 상자였다. 대나무로 만든 상자....

“이상하다. 아깐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는데?”

한결이는 조심스럽게 상자에 다가갔다.

“그 속에 누가 있나요?”

“누구세요? 밖에 누가 있나요? 절 좀 구해 주세요. 여긴 너무 답답해요.”

상자 속의 목소리가 애절하게 들려왔다. 한결이는 자신도 모르게 상자에 손을 가져가다 순간 멈칫했다. 부루의 목소리가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이 상자 아무래도 불길해요.”

‘어떡하지, 도와줄까? 하지만, 부루 말대로 뭔가 불길한 상자라면? 어쩌지?’

한결이는 상자를 바라보며 잠시 고민에 잠겼다. 그때였다.

“아! 숨막혀 죽을 것 같아요. 누가 좀 도와줘요. 누가 좀!”

상자 속의 목소리가 다급해졌다. 한결이는 놀란 눈으로 상자를 바라보며 안절부절 못했다.

‘어떡해, 그냥 두면 상자 안의 아이는 죽고 말거야. 하지만... 아니야, 그래도 안에 있는 아이의 목숨이 더 중요해. 좋아, 도와주자.’

이렇게 생각한 한결이가 대나무 상자를 손으로 덥석 잡았다. 그때였다. 상자 주변에 아주 기분나쁜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한결이는 깜짝 놀라 상자에 손을 데고 몇 걸음 물러났다.

“이게 뭐야?”

“하하하! 살았다! 드디어 해방이야!”

웃음소리와 함께 상자 속에서 검은 옷을 입은 사내아이가 튀어 나왔다. 아이는 키는 한결이보다 작았지만 몸이 다부지고 길게 짖어진 눈매가 매서워 보였다. 아이는 기분나쁜 미소를 지으며 한결이에게 이렇게 말했다.

“날 꺼내 준 답례로 바보 같은 네 녀석을 자근자근 씹어 먹어주마.”

“으 으악! 엄마야!”

깜짝 놀란 한결이가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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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베다 왕의 등 위에서

 

(1)

“한결군 정신 차려요!”

두 친구들이 마누크마누크와 새끼 구미호들과 신기한 일을 겪고 있던 그 시간, 한결이는 누군가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눈을 번쩍 떴다. 하지만 아직 머리가 핑핑 돌고 팔다리에 힘이 없었기 때문에 기껏해야 눈을 뜨고 소리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는 것이 전부였다.

“이제 정신 좀 들어요?”

‘어, 이건 광철이 목소린데? 아참, 광철이는 원래 부루였지?’

학교에서 가장 어수룩하던 아이였던 광철이사 이무기로 변했다가 다시 본 모습인 푸른용 부루가 되었던 사실이 떠올랐다. 그리고 이어서 자신이 넓은 용분식집 부엌에서 달두꺼비 열쇠를 이용해서 온 대륙으로 오게 된 것도 떠올랐다.

“부, 부루구나.”

한결이는 고개를 들어 소리가 나는 쪽을 바라보았다. 한결이의 눈에 부루 아니 광철이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어? 왜 아직도 그 모습인 거야?”

“네, 이곳에서 용의 모습으로 있으면 쉽게 눈에 띄잖아요. 혹시 검은 용들이 달려들면 안 되니까. 말이에요. 그래서 사람 모습으로 변해 있는 거예요”

“그렇구나.”

한결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언제까지 누워있을 거야. 우린 빨리 하람 아저씨를 찾아야 한단 말이야.”

반가운 까칠한 목소리... 미르가 분명했다. 한결이는 빙긋 웃으며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런데..?

“미... 미르? 왜?”

한결이의 눈에 푸른색 아름다운 비늘을 반짝이던 미르의 모습 대신에 푸른색 머리를 길게 따고 반바지 차림을 한 여자아이가 들어왔다.

“왜긴 뭐가 왜야? 왜 날 빤히 쳐다봐? 빨리 안 일어 날 거야?”

미르의 호통에 한결이는 얼굴이 빨개져서 후다닥 자리에서 일어났다.

‘미르가 여자 애로 변하다니. 이, 이게 어떻게 된 거지?’

한결이는 지금 껏 여자 애들하고 편하게 이야기를 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간단히 응, 아니 같은 말을 한 적은 있었지만 살갑게 인사를 한다든가 아니면 재미있게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꿈에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지금 미르가 여자아이의 모습으로 변해 있는 모습을 보니 한결이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허둥지둥댔다.

“어? 그런데 찬이는? 석우는?”

한결이가 미르의 시선을 애써 피해 더듬거리며 애써 말문을 열었다.

“두 사람은 온대륙의 다른 곳으로 떨어졌나봐요. 아무리 찾아도 여긴 없어요.”

부루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어떡해! 그 녀석들에게 무슨 일이 생겻으면.”

“걱정마, 내 비늘을 삼킨 녀석들이 목숨이 위태로우면 내가 바로 알아차린다고 녀석들 지금 아무 문제 없는게 분명해. 그리고 우린 지금 우리 걱정하기도 벅차다구.”

미르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여자아이의 모습을 하고 잇어도 그런 말을 할 대면 마치 냉기가 나오는 것 같았다.

“아, 알앗어. 그런데 여긴 어디야?”

“아무래도 여긴 베다왕의 등 위인 거 같아요.”

광철이 아니 부루가 바닥을 발로 툭툭 쳐보며 말했다.

“베다 왕?”

“네, 이 세상을 받치고 있는 세 마리의 거북이 바로 베다 왕이죠.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세상이 이 세 마리 거북 드우이에 떠 있다고 해야겠지만 어쨌든 베다왕은 온대륙에서 가장 큰 동물이지요. ”

“그렇구나!”

한결이는 놀란 눈으로 주변은 살펴 보았다. 넓디넓어 끝도 보이지 않는 베다왕의 등 위엔 작은 풀들과 나무들도 자라고 있었다. 게다가 마치 지평선처럼 사방에 별들이 가득했다. 위를 쳐다보니 정말 부루의 말처럼 엄청나게 큰 땅덩어리의 아래 부분이 보였다. 그리고 그 땅덩어리 중간엔 아주 작은 구멍이 하나 둟어져 잇는게 보엿다.

“저 구멍은 뭐야?”

한결이가 손으로 그것을 가리켰다.

“저건, 가온나무의 우물 구멍이에요. 온 대륙 한 가운데에는 아주 커다란 나무가 있는데 그 나무를 가온나무라고 불르죠. 그리고 그 나무 안엔 오래된 우물이 하나 있어요. 그 우물 속으로 들어가면 바로 이곳으로 나오게 되는 거에요.”

“와! 신기하다.”

“그만 신기해하고 뭐든 좋으니 쌓아올릴 것 좀 구해와. 여기서 이야기나 하면서 평생 살 거야? 하필 이런 곳에 떨어져서 신경질 나 죽겠는데...”

미르가 고함을 빽 질렀다.

“아, 알았어. 미르.”

미르가 신경질을 부리자 부루가 미안한 듯 머리를 긁적였다. 한결이도 무안한 듯 얼굴이 붉어졌다.

“이 곳에서 온대륙으로 돌아갈 수 잇는 유일한 방법이 저 우물 구멍을 통해서지요. 미르 녀석, 머리 속엔 지금 온통 우돌영감님을 빨리 찾아야 한다는 생각박에 없으니 한결군이 이해해요.”

“미, 미안, 나도 여 열심히 찾아볼게.”

한결이는 이렇게 미르에게 말하고 얼른 주변을 이리저리 살피기 시작했다.

“이곳에선 용으로 변해도 날 수 없단 말이야. 그러니까. 구멍까지 최대한 가까이 뛰어오를 수 있도록 쌓을 수 있는 건 모두 구해야 해.”

어느새 용의 모습으로 변한 미르가 미그러지듯 움직이다 베다왕의 등위에 뿌리를 내린 나무 하나를 덮썩 물며 말했다. 방금 전 보다는 미르의 화가 풀린 것 같아서 한결이는 마음이 놓였다. 게다가 원래의 모습으로 변한 미르를 대하는 것도 한결 마음이 편했다.

‘자, 나도 열심히 해야지.’

한결이는 이렇게 마음을 굳게 먹고 멀리까지 힘껏 달려 갔다. 과연 세상에서 가장 큰 동물이라는 말이 정말인 듯 베다 왕의 등은 가도 가도 그 끝이 보이지 않았다. 결국 한결이는 10분도 뛰지 못하고 그 자리에 주저안고 말았다.

“헥헥, 여긴 정말 넓다. 가도 가도 끝이 안보여. 어, 그런데 저건 뭐지?”

한결이가 발견한 것은 대나무로 엮어서 만든 상자였다. 한결이가 두 팔을 벌려서 안아야 들을 수 잇을 만큼에 커다란 상자... 한결이는 호기심이 일었다.

“무슨 상자지?

한결이는 쪼르르 상자쪽으로 달려가 상자를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상자는 대나무로 빽빽하게 엵어 만들어 속에 뭐가 들어 잇는지 통 알 수가 없었다.

“여기 뭐가 들었을까?”

한결이는 무심코 상자에 손을 뻗었다. 그때였다.

“그만둬요! 한결군!”

부루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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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뭐야, 이 녀석... 기절해 버렸잖아.”

노아가 한심하다는 듯이 석우를 바라보다 미호에게 고개를 돌렷다.

“이 녀석이 정말 온대륙을 구하는 예언의 아이란 거야?”

미호는 석우를 잠시 바라본 후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미호에게 말했다.

“우선, 자 이 아이를 데리고 마을로 가자. 이곳은 너무 위험해.”

“뭐야, 미호 넌 이 녀석을 정말 예언의 아이라고 믿는다는 거야?”

노아의 황당해 하는 얼굴을 보며 미호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말햇다.

“예언의 아이든 아니든 이대로 놔둘 수는 없잖아. 안 그래?”

그때였다. 기절을 했던 석우가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눈을 가늘게 떴다.

“으.. 으... 사, 살려줘.”

석우는 몸을 잔뜩 움츠리고 벌벌 떨었다.

“야, 우린 널 해칠 생각 없어. 그러니까 제발 정신 좀 차려.”

노아가 한심하다는 듯이 말했다.

“거, 거짓말! 너희가 날 잡아먹으려고 강제로 이곳으로 끌고 온 거잖아.”

“뭐라고? 위험에 빠진 걸 구해준게 누군데 그래?”

노아가 으르렁대자 석우는 다시 몸을 움츠렸다.

“그만해. 노아야.”

미호가 노아를 말리며 차분한 목소리로 석우에게 말했다.

“우린 너를 해치려 온 게 아니라 보호하러 온 거야. 그러니 안심해.”

“거짓말, 구미호는 원래 사람을 잡아먹잖아. 간을 쏙 빼먹는 그런 끔찍한 요괴잖아.”

석우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이게 정말 누구보고 끔직한 요괴래!”

노아가 화를 버럭냈다. 미호는 노아를 말리며 석우에게 말했다.

“인간 세계에 나간 구미호들은 어쩔수 없이 동물의 간을 먹어야 해. 하지만 온대륙의 구미호들은 그렇지 않아.”

“저, 정말?”

석우의 물음에 미호가 대답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석우는 고개를 들어 미호를 살짝 바라보았다. 미호의 눈빛을 보니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제야 석우는 몸을 일으켰다.

“그런데? 왜 날 도와 주는 거야?”

“넌 여우구슬이 예언한 예언의 아이니까. 우리들이 임무는 구슬의 예언이 실현될 때까지 그걸 돕는 일이야.”

노아가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석우를 쏘아보며 이렇게 말했다.

“예언의 아이? 그럼 내가 뭔가 대단한 사람이란 거야?”

“글쎄, 지금까지 봐선 예언의 아이가 아니라 아주 쓸모 없는 아이 같지만 말이야.”

노아의 핀잔에 석우는 얼굴이 빨개졌다. 미호가 노아를 나무라는 듯이 바라보다가 석우를 보며 말햇다.

“자, 이제 그만 우선 우리 마을로 함께 가자. 여기엔 검은 용들도 많이 나타나고 위험한 동물들도 많으니까 말이야.”

석우는 미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다 갑자기 생각난 듯 이렇게 외쳤다.

“맞아, 아침! 마을에 가면 아침을 먹을 수 있어?”

“응, 그래.”

미호의 대답에 석우의 얼굴은 금새 밝아졌다.

“나 참, 정말 어떻게 이런 녀석이 예언의 아이라는 거야? 어이가 없어서.... 어?”

노아는 그 모습에 혀를 글끌 차다가 무심코 하늘을 바라보았다. 하늘에서 거대한 푸른빛이 자신들을 향해 달려드는 것이 보였다. 순간 거센 바람이 몰아쳤다.

“마, 맙소사! 마누크마누크야...”

“정신 차려. 빨리 피해야 해.”

미호가 다급하게 노아의 꼬리를 잡아 끌었다. 정신을 차린 노아는 허둥지둥 석우의 팔을 잡아 끌고 몸을 움직였다. 하지만 계곡을 휘몰아치는 강풍은 더욱 거세져서 구미호들은 더 이상 움직일 수 조차 없었다. 이윽고 마누크마누크가 우아한 날개짓을 하며 미호와 노아 앞에 나타났다.

“어떡해, 마누크마누크야. ”

노아가 겁에 질린 표정으로 미호를 바라보았다. 미호의 얼굴도 굳어 있었다.


“별 수 없어 맞서보는 수밖에...”

미호가 아홉 개의 고리를 활짝 폈다. 순간 푸른 빛이 미호의 온 몸을 감쌌다. 노아도 자신의 꼬리를 활짝 폈다. 지상으로 내려온 마누크마누크는 두 새끼 구미호를 노려보며 길게 울음소리를 냈다. 그 소리가 계곡 전체를 쩌렁저렁 울렸다.

“야, 넌 우리 뒤에 그냥 숨어 있어. 알았지?”

노아의 말에 석우는 냉큼 구미호들 뒤로 몸을 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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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자, 잠깐만요! 하, 할 게요! 할 게요!”

마누크마누크의 부리에서 계속 굴러가던 찬이가 다급하게 소리를 질렀다. 그제야 마누크마누크는 움직임을 멈추었다. 너무 많이 몸을 부딪혀 찬이는 온몸이 시큰거려 몸을 일으킬 힘도 없었다.

“헥헥! 알았어요. 나단의 성까지 알을 가지고 간다고 약속할게요. 이제 됐죠?”

찬이가 간신히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아니, 꼬마야 아직 더 해야 할 게 남아 있다.”

마누크마누크의 목소리에 찬이가 화들짝 놀라며 말했다.

“뭐라고요? 또 뭘해야 하는데요?”

마누크마누크는 한결 부드러워진 목소리로 달래듯 찬이에게 대답했다.

“미안하지만, 너는 나와 삼족오의 계약을 맺어야 겠다.”

“사, 삼족오의 계약이요?”

“그래, 삼족오의 계약... 절대로 약속을 깨뜨릴 수 없게 만드는 불의 계약이지.”

마누크마누크의 말에 찬이는 더럭 겁이 났다.

“저... 그런 걸 꼭 해야 하나요?”

“꼭 해야 한단다. 꼬마야. 약속을 잘 지키지 않는 인간들에게 이런 방법을 쓰는 수 밖에 없더구나. 이게 다 나단 그 사악한 용 사냥꾼이 나타나고 나서부터 온 대륙의 대부분의 동물들이 인간을 더 이상 믿지 않게 되었기 때문이야.”

동물들이 인간들을 더 이상 믿지 않게 되었다니... 찬이는 괜히 창피한 생각이 들었다. 찬이는 무언가 결심한 표정으로 마누크마누크에게 말했다.

“조, 좋아요 그럼 전 어떻게 하면 돼죠?”

“삼족오의 계약을 맺겠다고 세 번 맹세를 해야 하면 된단다. 나는 마누크마누크와 약속을 지키기 위해 삼족오의 계약을 맺겠다고 말하면 돼.”

찬이가 마누크마누크의 설명을 들으니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닌 것 같앗다.

“좋아요. 별로 어렵진 않네요. 자 그럼 시작할 가요?”

“그래, 먼저 네 심장 위에 손을 얹으렴.”

찬이는 마누크마누크의 말에 따라 손을 가슴위에 얹었다.

“자 그럼 큰소리로 세 번 맹세를 하렴.”

“알겟어요.”

찬이는 크게 숨을 몰아 쉰 뒤에 큰소리로 세 번 소리쳤다.

“나는 신성한 마누크마누크님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삼족오의 계약을 맺겟습니다. ”

찬이가 세 번째로 맹세를 하고 나자 마자 찬이의 온 몸이 오색 빛가루로 둘러사였다. 그리고 갑자기 찬이의 심장부분이 뜨거워지기 시작햇다. 그리고 그 열은 심장 위에 손바닥으로 천천히 전달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순간 아주 뜨거운 열기가 손바닥에 느껴졌다. 찬이는 놀라서 손을 떼려 했지만 왠일인지 손이 움직이지 않았다.

“으으..,. 뜨거워!”

“조금만 참으렴 고마야. 이제 다 되었어. ”

마누크마누크의 말처럼 뜨거웟던 손바닥은 점차 식기 시작했다. 찬이의 몸을 둘러싼 오색 빛 가루들도 사라져갓다. 그와 동시에 손이 자연스럽게 떨어졌다.

“어? 손바닥에 이상한 문양이 생겼어!”

“그게 바로 삼족오의 문양이란다. 이제 너는 나와 절대로 깰수 없는 약속을 하게 된 거야. 만약 그럼에도 불구하고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면...”

마누크마누크의 말에 찬이는 눈이 동그래졌다.

“네 손바닥의 삼족오가 점점 커져서 널 불태워 버릴 거야.”

“저, 정말요? 알았어요. 결코 약속을 어기는 일은 없을 거예요.”

찬이가 침을 꿀꺽 삼키며 말했다.

“좋아 그럼 이제 땅으로 내려가자!”

마누크마누크가 이렇게 말하면 부리를 벌리고 휙 고개를 처즐었다. 그러자 찬이의 몸이 하늘 높이 솟구쳣다.

“엄마야!"

찬이의 몸이 한바퀴 빙글 돌더니 마누크마누크의 푹식푹신한 푸른 기털이 덮이 등위에 내려 앉았다.

“아이쿠!”

“꽉 잡으렴 자, 내려간다!”

말이 끝나자마자 마누크마누크의 몸이 수직으로 떨어지는 창처럼 바르게 추락하기 시작했다. 찬이가 푸른 깃털들을 꽉 잡앗다. 세 찬 바람이 뺨을 때리고 눈을 뜨기조차 어려웠다. 찬이가 눈을 억지로 뜨자 붉은 용의 계곡이 한 눈에 들어왓다.

“우와! 끝내준다! ”

찬이는 연방 감탄을 하엿다. 이윽고 마누크마누크의 둥지가 점점 가가이 다가오자 커다란 알이 보였다.

‘맞다, 저 둥지엔 석우가 있을 텐데.’

찬이는 순간 둥지에 두고온 석우가 생각이 났다.

“잠깐만요, 둥지에 제 친구가 있어요. 그 녀석 겁을 집어 먹고 둥지 속에 숨어 있을 거예요. 그대로 내려갔다가 숨이 막혀 죽을 지도 몰라요. ”

찬이의 말에 마누크마누크는 내려 앉는 속도를 점점 낮추기 시작했다.

“꼬마야, 네 친구가 둥지에 잇는게 맞니? 내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데?”

“분명히 있어요. 너무 멀어서 잘 안 보이는 게 분명해요.”

“후후 꼬마야. 나는 세상의 어떤 동물보다 눈이 좋단다. 하늘 위해서 작은 가시 하나도 찾을 수 있어. 지금 둥지에 네 친구가 없는 게 확실하다.”

알 뒤에 숨어 있던 석우가 사라졌다니... 찬이는 석우가 걱정되어 괜히 화를 냈다.

“이 녀석, 도대체 어디로 간 거야.”

“잠깐, 혹시 네 친구가 살이 통통하게 찐 녀석이니?”

마누크마누크의 말에 찬이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네, 맞아요. 그 녀석 지금 어디 있어요?”

“꼬마야, 지금 네 친구는 위험에 처한 것 같구나.”

“네? 그게 무슨 말이에요.”

“구미호들이 네 친구를 사로잡고 있어. 이런, 늦기 전에 내려가야 겠다. 꽉 잡아라!”

“예..예!”

마누크마누크의 말에 찬이는 깃털을 꼭 잡았다. 마누크마누크는 빛처럼 바르게 지상으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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