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어? 왜 그러는데?”
한결이는 부루의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 뻗은 손을 거두었다.
“이 상자 아무래도 불길해요. 예전에 이런 상자에 대해 들어 본 것 같기도 하고.”
어느새 붉은 용으로 변한 부루가 한결이에게 다가왔다.
“그래? 혹시, 이 속에 무서운 거라도 들어 있는 거야?”
한결이는 덜컥 겁이 나서 상자에서 뒷걸음쳤다.
“일들 안 해? 왜 또 잡담이야? 응!”
냉기를 푸륵푸륵 내뿜으며 미르도 한결이에게 다가왔다.
“미르, 이 상자. 어디선가 본 적 있지 않아?”
미르는 부루의 말에 상자를 이리저리 살펴보고 말했다.
“글쎄, 어디서 본 것 같기도 하고... 맞다! 이 상자 우돌영감이 가지고 잇던 것 하고 똑 같은데? ”
미르는 어렸을 때 우돌 영감이 이것과 똑같은 상자를 가지고 잇었던 것이 기억 났다. 언제나 우돌이 자기 머리맡 선방에 올려두고 누구도 만지지 못하게 했던 상자....
“맞아, 그 때 그 상자가 분명해. 그런데 이게 왜 여기 있는 거지?”
부루도 예전의 일을 기억해 내고 푸륵푸륵 뜨거운 열기를 내뿜었다.
“그런데 영감이 상자를 만지지 말라고 햇던 이유가 뭐였더라?”
부루는 옛날일이 기억나지 않자. 고개를 갸웃거리며 생각에 잠겼다. 그러자 성질 급한 미르가 상자에 냉기를 훅 뿜었다.
“후우! 이깟 게 뭐 그리 중요하다고 고민이야.”
미르의 입김에 상자가 힘없이 주르륵 밀려 나갔다.
“뭐야, 아무것도 없는 빈 상자잖아? 괜히 긴장했네. 자, 일들해 일! 나무와 돌이 더 필요하단 말이야. 한결이도 이런 쓸데없는 상자 말고 돌멩이라도 좀 주워와 봐. 부루 너도 저쪽에 잇는 바위들을 좀 물어오고”
“아, 알았어.”
미르의 재촉에 한결이는 허둥지둥 달려 나갔다. 부루도 앞에 보이는 바위산을 향햐 스르륵 미끄러져갔다.
“자, 이 정도면 미르도 만족하겠지?”
한결이는 두 팔을 잔뜩 벌려 자기 머리만한 돌 두 개를 간신히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힘은 들었지만 작자신도 뭔가를 도움이 되는 것 같아. 기분은 좋았다.
“미르 녀석, 잔소리 할 때 보면 우리 엄마 같다니까.”
한결이는 미르를 향해 장난스럽게 혀를 속 내밀었다. 그때였다.
“도와 주세요. 누구 없어요!”
어디선가 작고 귀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게 무슨 소리지?”
한결이는 목소리가 나는 곳을 이리저리 찾아 보앗다. 그리고 오래 걸리지 않아 목소리가 어디서 나는지 찾을 수 잇었다. 소리가 나는 곳은 바로 상자였다. 대나무로 만든 상자....
“이상하다. 아깐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는데?”
한결이는 조심스럽게 상자에 다가갔다.
“그 속에 누가 있나요?”
“누구세요? 밖에 누가 있나요? 절 좀 구해 주세요. 여긴 너무 답답해요.”
상자 속의 목소리가 애절하게 들려왔다. 한결이는 자신도 모르게 상자에 손을 가져가다 순간 멈칫했다. 부루의 목소리가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이 상자 아무래도 불길해요.”
‘어떡하지, 도와줄까? 하지만, 부루 말대로 뭔가 불길한 상자라면? 어쩌지?’
한결이는 상자를 바라보며 잠시 고민에 잠겼다. 그때였다.
“아! 숨막혀 죽을 것 같아요. 누가 좀 도와줘요. 누가 좀!”
상자 속의 목소리가 다급해졌다. 한결이는 놀란 눈으로 상자를 바라보며 안절부절 못했다.
‘어떡해, 그냥 두면 상자 안의 아이는 죽고 말거야. 하지만... 아니야, 그래도 안에 있는 아이의 목숨이 더 중요해. 좋아, 도와주자.’
이렇게 생각한 한결이가 대나무 상자를 손으로 덥석 잡았다. 그때였다. 상자 주변에 아주 기분나쁜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한결이는 깜짝 놀라 상자에 손을 데고 몇 걸음 물러났다.
“이게 뭐야?”
“하하하! 살았다! 드디어 해방이야!”
웃음소리와 함께 상자 속에서 검은 옷을 입은 사내아이가 튀어 나왔다. 아이는 키는 한결이보다 작았지만 몸이 다부지고 길게 짖어진 눈매가 매서워 보였다. 아이는 기분나쁜 미소를 지으며 한결이에게 이렇게 말했다.
“날 꺼내 준 답례로 바보 같은 네 녀석을 자근자근 씹어 먹어주마.”
“으 으악! 엄마야!”
깜짝 놀란 한결이가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