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베다 왕의 등 위에서
(1)
“한결군 정신 차려요!”
두 친구들이 마누크마누크와 새끼 구미호들과 신기한 일을 겪고 있던 그 시간, 한결이는 누군가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눈을 번쩍 떴다. 하지만 아직 머리가 핑핑 돌고 팔다리에 힘이 없었기 때문에 기껏해야 눈을 뜨고 소리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는 것이 전부였다.
“이제 정신 좀 들어요?”
‘어, 이건 광철이 목소린데? 아참, 광철이는 원래 부루였지?’
학교에서 가장 어수룩하던 아이였던 광철이사 이무기로 변했다가 다시 본 모습인 푸른용 부루가 되었던 사실이 떠올랐다. 그리고 이어서 자신이 넓은 용분식집 부엌에서 달두꺼비 열쇠를 이용해서 온 대륙으로 오게 된 것도 떠올랐다.
“부, 부루구나.”
한결이는 고개를 들어 소리가 나는 쪽을 바라보았다. 한결이의 눈에 부루 아니 광철이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어? 왜 아직도 그 모습인 거야?”
“네, 이곳에서 용의 모습으로 있으면 쉽게 눈에 띄잖아요. 혹시 검은 용들이 달려들면 안 되니까. 말이에요. 그래서 사람 모습으로 변해 있는 거예요”
“그렇구나.”
한결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언제까지 누워있을 거야. 우린 빨리 하람 아저씨를 찾아야 한단 말이야.”
반가운 까칠한 목소리... 미르가 분명했다. 한결이는 빙긋 웃으며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런데..?
“미... 미르? 왜?”
한결이의 눈에 푸른색 아름다운 비늘을 반짝이던 미르의 모습 대신에 푸른색 머리를 길게 따고 반바지 차림을 한 여자아이가 들어왔다.
“왜긴 뭐가 왜야? 왜 날 빤히 쳐다봐? 빨리 안 일어 날 거야?”
미르의 호통에 한결이는 얼굴이 빨개져서 후다닥 자리에서 일어났다.
‘미르가 여자 애로 변하다니. 이, 이게 어떻게 된 거지?’
한결이는 지금 껏 여자 애들하고 편하게 이야기를 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간단히 응, 아니 같은 말을 한 적은 있었지만 살갑게 인사를 한다든가 아니면 재미있게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꿈에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지금 미르가 여자아이의 모습으로 변해 있는 모습을 보니 한결이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허둥지둥댔다.
“어? 그런데 찬이는? 석우는?”
한결이가 미르의 시선을 애써 피해 더듬거리며 애써 말문을 열었다.
“두 사람은 온대륙의 다른 곳으로 떨어졌나봐요. 아무리 찾아도 여긴 없어요.”
부루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어떡해! 그 녀석들에게 무슨 일이 생겻으면.”
“걱정마, 내 비늘을 삼킨 녀석들이 목숨이 위태로우면 내가 바로 알아차린다고 녀석들 지금 아무 문제 없는게 분명해. 그리고 우린 지금 우리 걱정하기도 벅차다구.”
미르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여자아이의 모습을 하고 잇어도 그런 말을 할 대면 마치 냉기가 나오는 것 같았다.
“아, 알앗어. 그런데 여긴 어디야?”
“아무래도 여긴 베다왕의 등 위인 거 같아요.”
광철이 아니 부루가 바닥을 발로 툭툭 쳐보며 말했다.
“베다 왕?”
“네, 이 세상을 받치고 있는 세 마리의 거북이 바로 베다 왕이죠.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세상이 이 세 마리 거북 드우이에 떠 있다고 해야겠지만 어쨌든 베다왕은 온대륙에서 가장 큰 동물이지요. ”
“그렇구나!”
한결이는 놀란 눈으로 주변은 살펴 보았다. 넓디넓어 끝도 보이지 않는 베다왕의 등 위엔 작은 풀들과 나무들도 자라고 있었다. 게다가 마치 지평선처럼 사방에 별들이 가득했다. 위를 쳐다보니 정말 부루의 말처럼 엄청나게 큰 땅덩어리의 아래 부분이 보였다. 그리고 그 땅덩어리 중간엔 아주 작은 구멍이 하나 둟어져 잇는게 보엿다.
“저 구멍은 뭐야?”
한결이가 손으로 그것을 가리켰다.
“저건, 가온나무의 우물 구멍이에요. 온 대륙 한 가운데에는 아주 커다란 나무가 있는데 그 나무를 가온나무라고 불르죠. 그리고 그 나무 안엔 오래된 우물이 하나 있어요. 그 우물 속으로 들어가면 바로 이곳으로 나오게 되는 거에요.”
“와! 신기하다.”
“그만 신기해하고 뭐든 좋으니 쌓아올릴 것 좀 구해와. 여기서 이야기나 하면서 평생 살 거야? 하필 이런 곳에 떨어져서 신경질 나 죽겠는데...”
미르가 고함을 빽 질렀다.
“아, 알았어. 미르.”
미르가 신경질을 부리자 부루가 미안한 듯 머리를 긁적였다. 한결이도 무안한 듯 얼굴이 붉어졌다.
“이 곳에서 온대륙으로 돌아갈 수 잇는 유일한 방법이 저 우물 구멍을 통해서지요. 미르 녀석, 머리 속엔 지금 온통 우돌영감님을 빨리 찾아야 한다는 생각박에 없으니 한결군이 이해해요.”
“미, 미안, 나도 여 열심히 찾아볼게.”
한결이는 이렇게 미르에게 말하고 얼른 주변을 이리저리 살피기 시작했다.
“이곳에선 용으로 변해도 날 수 없단 말이야. 그러니까. 구멍까지 최대한 가까이 뛰어오를 수 있도록 쌓을 수 있는 건 모두 구해야 해.”
어느새 용의 모습으로 변한 미르가 미그러지듯 움직이다 베다왕의 등위에 뿌리를 내린 나무 하나를 덮썩 물며 말했다. 방금 전 보다는 미르의 화가 풀린 것 같아서 한결이는 마음이 놓였다. 게다가 원래의 모습으로 변한 미르를 대하는 것도 한결 마음이 편했다.
‘자, 나도 열심히 해야지.’
한결이는 이렇게 마음을 굳게 먹고 멀리까지 힘껏 달려 갔다. 과연 세상에서 가장 큰 동물이라는 말이 정말인 듯 베다 왕의 등은 가도 가도 그 끝이 보이지 않았다. 결국 한결이는 10분도 뛰지 못하고 그 자리에 주저안고 말았다.
“헥헥, 여긴 정말 넓다. 가도 가도 끝이 안보여. 어, 그런데 저건 뭐지?”
한결이가 발견한 것은 대나무로 엮어서 만든 상자였다. 한결이가 두 팔을 벌려서 안아야 들을 수 잇을 만큼에 커다란 상자... 한결이는 호기심이 일었다.
“무슨 상자지?
한결이는 쪼르르 상자쪽으로 달려가 상자를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상자는 대나무로 빽빽하게 엵어 만들어 속에 뭐가 들어 잇는지 통 알 수가 없었다.
“여기 뭐가 들었을까?”
한결이는 무심코 상자에 손을 뻗었다. 그때였다.
“그만둬요! 한결군!”
부루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