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회>
“손님, 뭘 드신다고요?”
주방 쪽에서 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이내 주인 할아버지의 무시무시한 얼굴이 나타났다. 흰머리와 긴 콧수염 때문에 할아버지의 모습은 더욱 무서워 보였다. 주인 할아버지의 모습을 보자 한결이는 표정이 굳어졌고 찬이와 석우도 웃음소리를 뚝 그쳤다.
“손님……. 뭘 드신다고요?”
할아버지는 존댓말을 쓰고 있었지만 노려보는 눈빛은 이미 “네 이놈들 ” 하고 소리치는 것 같았다. 한결이는 얼른 고개를 푹 수그렸다.
“저……. 용 튀김 세, 세조 각이요.”
한결이가 간신이 입을 열었다. 얼굴엔 정말 하고 싶지 않는 일을 하고 있다는 표정으로 가득했다. 석우는 침을 꿀꺽 삼켰고 언제나 해해거리는 찬이의 얼굴에도 미소가 사라졌다.
한결이는 마치 시키면 안 될 음식을 주문하는 것 같아 기분이 좋지 않았다. 4학년 때 아빠와 함께 멋모르고 갔던 음식점에서 보신탕을 시키는 아빠의 목소리를 듣는 기분 같았다. 그때 울면서 식당을 뛰쳐나간 한결이는 앞으로 절대 이상한 음식은 먹지 않기로 다짐했었다. 그런데 지금 자기가 스스로 이런 음식을 시키고 있다니!
‘정말 보신탕처럼 끔찍한 음식이 나오면 어쩌지?’
잘 못해도 그만 잘해도 그만이라고 생각했던 한결이가 가위 바위 보를 못하는 자신이 원망스러운 적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아, 용 튀김 말이죠? 이런, 재료가 지금 있을까 모르겠네, 살펴보고 올 테니. 잠시 기다려 주세요.”
주인 할아버지는 알 듯 말 듯 한 미소를 지으며 주방 안으로 사라졌다. 삼총사들은 난리가 났다.
“야! 진짜 용 튀김이 있나 봐?”
먹을 것을 밝히는 석우가 신기하다는 얼굴로 말했다.
“어쩌지, 그런 걸 우리가 먹어야 되는 거야?”
모든 게 귀찮은 한결이도 걱정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난 몰라! 난 오리 고기도 못 먹는단 말이야. 이거 나오면 너희가 다 먹어!”
찬이는 아예 울 것 같은 표정이었다.
“그냥 도망갈까? 준태 녀석도 도망갔다며?”
“안 돼, 준태가 우릴 가만두지 않을 거야.”
석우의 말에 찬이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난 집에 갈래.”
한결이는 아예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때였다. 스르르 주방 커튼이 열리더니 할아버지의 허연 수염이 보였다.
“죄송합니다, 손님. 마침 재료가 떨어졌네요. 대신 다른 메뉴는 다 됩니다. 뭐 다른 거라도 시키시겠어요?”
학교 아이들 중 용 튀김을 사먹은 사람이 아무도 없는데 재료가 없다니, 도대체 용 튀김은 누가 사먹는 걸까? 삼총사들은 이해할 수 없었지만 주인 할아버지의 말에 모두 안도의 한숨을 내 쉬었다.
“어떻게 할래?”
“몰라, 네가 결정해.”
“그래, 네가 가위 바위 보에서 졌잖아. 네가 결정해.”
아이들은 모두 한결이에게 대답을 미뤘다. 한결이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한결이와 아이들에겐 튀김 먹을 용기가 저 만치 달아나고 없다는 것만은 분명했다. 게다가 한껏 긴장한 탓에 뱃속에서 꼬르륵 소리도 났다.
“그, 그럼. 그냥 떡볶이하고 순대 3인분 주세요.”
“잠깐! 4인분, 4인분으로 해.”
석우가 씩 웃으며 말했다. 석우에 머릿속엔 이미 근심 같은 건 사라지고 없었다.
“알겠습니다. 손님, 다음엔 꼭 재료를 구해 놓지요.”
주인 할아버지는 세 아이들을 찬찬히 바라보고는 다시 주방으로 사라졌다.
이렇게 해서 삼총사들의 모험은 싱겁게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세 친구는 용 튀김 냄새도 맡지 못한 채 맹꽁이 같이 부른 배를 어루만지며 “"용 분식집"”을 나왔다.
“만약에 용 튀김을 먹었다면 어떤 맛이었을까?”
분식집을 나서면서 석우가 아쉬운 듯 말했다. 아이들은 모두 석우를 흘겨봤지만 석우는 눈치 채지 못했다.
“넌 지금도 그 생각이냐? 아마 공룡은 파충류였다니까 도마뱀 튀김이랑 같은 맛일 꺼다.”
공룡 박사인 찬이가 톡 쏘아대듯 말을 뱉었다.
“도마뱀?”
순간 아이들은 서로를 쳐다보았다. 모두 머리 속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도마뱀 도막이 그려졌다.
“우웩!”
세 아이들 모두 동시에 소리를 질렀다.
“안 먹길 잘했다. 그치?”
“그래, 그래!”
아이들은 서로 서로를 쳐다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였다. 뒤에서 누군가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얘들아, 얘들아!”
느리고 어눌한 목소리로 봐서 그 목소리는 광철이가 분명했다. 광철이는 며칠 전 한결이네 반으로 전학 온 아이였다. 담임선생님 말씀이 광철이는 어릴 때 사고로 크게 다쳐서 말이나 행동이 느리고 기억력도 좋지 않다고 했다. 담임선생님은 반 아이들에게 광철이를 많이 도와주라고 당부하였지만 아이들은 우스꽝스러운 광철이의 행동을 보며 바보라고 놀려대곤 했다.
“야, 바보 광철이다.”
석우가 한결이에게 귓속말로 말했다.
“그러지마, 우리도 그렇게 불리잖아.”
한결이가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석우는 무안해서 머리를 긁적였다.
“얘, 얘들아, 빵빵 상회가 어디야?”
광철이는 삼총사를 보며 연방 벙글벙글 웃으며 말했다.
“빵빵 상회는 왜? 뭐 살 거 있어?”
찬이가 약간 쌀쌀맞게 말했다. 찬이는 광철이가 매일같이 아이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것도 보기 싫었지만 광철이가 멍청하게 아무에게나 헤헤거리는 것도 보기 싫었다.
“응, 준태가 말이야……. 준, 준태가 음, 뭐 사오라고 했더라?”
광철이는 기억이 나지 않는 듯이 머리를 계속 긁적였다.
“ 아 맞다 아이스크림! 아이스크림 세 개 사오랬어. 세 개.”
광철이는 생각이 난 듯이 다시 헤헤 거리며 10원짜리를 삼총사에게 보여주었다.
“뭐야 준태 자식, 10원 주고 아이스크림을 세 개 사오라고 했단 말이야?”
찬이가 화가 나서 말했다.
“응, 응.”
광철이는 10원짜리 동전을 오른 속에 꼭 쥐면서 다시 씩 웃었다.
“저기 골목 끝에 있는 가게야.”
한결이가 손가락으로 가게 간판을 가리켰다.
“참, 그리고 이 돈도 가져가.”
한결이는 주머니에서 천원자리 두 장을 꺼내더니 광철이 손에 쥐어 주었다.
“엉? 이 돈은 뭐야?”
“너 오기 전에 준태가 와서 돈을 적게 줬다고 너 보면 주라고 했어.”
“아, 그랬구나. 고마워 한결아. 헤헤.”
광철이는 마치 어른에게 인사하는 듯이 삼총사에게 꾸벅 절을 하고는 신이 나서 가게로 달려갔다.
“뭣 하러 돈을 줘. 그냥 두면 자기가 알아서 사든지 말든지 할 거 아니냐. 1000원이면 초코 맛 젤리가 열 개라고 열개!”
“그냥, 광철이는 우리들을 나머지 삼총사라고 부르지 않잖아.”
한결이의 말에 찬이와 석우는 할 말이 없었다.
“젠장, 준태 자식. 이제 광철이를 종처럼 부리는 구나. 내가 주먹만 좀 셌어도 한 주먹에 그냥……. 잠깐, 큰일 났다. 우리, 내일 어떡하지?”
찬이는 광철이의 뒷모습을 보며 씩씩 대다가 준태가 삼총사를 노려보며 했던 말이 떠올라 정신이 번쩍 들었다.
“잘 들어 내일까지 그 용 고긴지 용 튀김인지 안 먹고 오면 너희 세 놈들 다리를 아주 오도독 소리가 나게 분질러 놓을 줄 알아!”
“어떡해, 용 튀김도 못 먹고 돈을 다 써버렸잖아 이젠 우린 죽은 목숨이야.”
찬이의 말에 석우는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한결이도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내일 아프다고 결석해 버릴까?”
“미쳤어? 준태 자식이 집으로 쳐들어올걸?”
“그럼 어떡해?”
한결이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다가 뭔가 결심한 듯 말했다.
"그냥 맞자 뭐. 설마 다리를 부러뜨리겠냐? “
“야, 그걸 해결 방법이라고 말하는 거야?”
찬이와 석우는 말도 안 된다고 말렸지만 이미 한결이는 결심을 굳혔다. 사실 귀찮은 걸 싫어하는 한결이에겐 이것이 가장 나은 방법이었다.
“난 먼저 간다. 나 집에 가서 게임 해야 해.”
한결이는 주저 없이 타박타박 집으로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두 친구는 그런 한결이의 뒷모습을 멍하니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후 난 별수 없이 준태에게 빌어야겠어. 사실 싸운 건 내가 아니고 너잖아. 집에 있는 젤리를 잔뜩 가져다주면 준태가 용서해 줄지도 몰라.”
석우의 말에 찬이는 기가 찼다.
“야, 너까지 그러면 난 어떻게 하란 말이야. 응”
“그럼 어쩌라고?”
석우와 찬이는 분식집 앞에서 한참을 옥신각신 했다. 지금 삼총사들의 머릿속에는 이미 용 튀김이나 "용 분식집" 대한 건남아 있지 않았다. 오로지 준태에게 얻어맞을 내일이 두려울 뿐이었다. 하지만, 사실 그때부터 삼총사와 "용 분식집" 사이에 일어날 황당하고 이상한 일들은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