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쳇, 삼총사라면서 이게 뭐야, 의리 없는 놈들”

 한결이는 우두커니 학교 운동장을 바라보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준태에게 얻어맞은 명치끝이 조금씩 아파왔지만 그럭저럭 참을 만 했다. 어제 용 튀김을 못 먹은 비운의 삼총사들은 준태에게 비웃음을 당하고는 한 대씩 맞는 걸로 "용 분식집" 내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물론 석우는 초코 맛 젤리를 준태에게 잔뜩 준 덕분에 맞는 건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석우는 준태에게 “돼지 새끼”라는 말을 들어야 했고 석우는 눈물을 찔끔댔다. 그렇지만 사실 석우가 눈물을 흘린 것은 돼지새끼라는 말보다. 초코 맛 젤리를 다 줘버린 게 너무 아까웠기 때문이었다. 
 자존심 강한 찬이도 한 방 얻어맞고 그대로 넘어져서 씩씩 대기만 할 뿐 별 다른 방법이 없었다. 게다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삼총사는 오늘 본 쪽지 시험에서 또 꼴찌를 차지했다. 결국, 세 친구 모두 나머지 공부를 하게 된 것이다. 삼총사는 오늘 시험에서 면제된 광철이가 한 없이 부러울 따름이었다.

‘오늘도 저녁때까지 셋이 함께 있겠네.’

 한결이는 당연히 이렇게 생각했지만 오늘따라 석우와 찬이 모습은 예전과 달랐다. 선생님이 자리를 비우기라도 하면 셋이 모여 잡담으로 시간을 때웠었는데 오늘은 석우와 찬이는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않고 문제를 끙끙대며 푸는 게 아닌가.

“미안해, 오늘 텔레비전에서 끝내주는 공룡 다큐멘터리가 한단 말이야.”

“오늘 동생 생일이야, 지금 안가면 동생이 음식 다 먹어버릴 거야.”

이런 저런 이유로 한결이를 제외한 두 아이는 나머지 공부를 서둘러 끝냈다. 결국, 아무런 계획도 없던 한결이만 저녁 6시가 넘어서야 교실에서 빠져 나올 수 있었다.

“쳇, 집에 가서 게임이나 해야겠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한결이는 발걸음을 빨라지지 않았다. 느린 걸음으로 계단을 따라 타박타박 운동장까지 내려오느라 주변은 더욱 더 어두워졌다. 게다가 하늘은 먹구름이 잔뜩 끼어 갑자기 빗줄기가 쏟아질 것 같았다. 마침 어두워진 운동장엔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아 마치 학교에서 한결이 혼자만 있는 것 같았다.

“이크, 비가 올려나 보다. 어쩌지?”

 한결이는 먹구름을 한 번 쓰윽 올려다보고는 다시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뭐, 그냥 맞지 뭐.”

비 맞다가 감기 걸리면 그 핑계로 학교도 안 갈수 있고 비방울이 목 뒤를 간질거리는 것도 나름 재미있었다. 빗방울이 한 두 방울 어깨에 떨어져왔지만 한결이의 걸음걸이는 전혀 빨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비구름이 더욱더 몰려들어 짙은 회색이 되고 사방이 온통 어두컴컴해지자 한결이도 더럭 겁이 나기 시작했다. 순간, 하늘에서 굵은 빗줄기가 쏟아져 내리기 시작하자 결국, 한결이의 발걸음도 빨라지기 시작했다.

“이 크크!”

 한결이는 재빨리 학교 밖에 있는 건물 처마로 뛰어 들어갔다. 빗줄기는 어느새 더욱 굵어져 눈앞이 하나도 보이지 않을 지경이 되었다. 길가의 자동차 소리도 빗소리에 묻혀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번쩍! 쿠르르 쾅!”

“엄마야!”

마치 한결이 바로 옆에서 번개 내리친 것처럼 큰 소리가 났다. 그 소리에 깜짝 놀라 한결이는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사방을 둘러봐도 빗줄기에 가려 아무것도 보이지 않자, 한결이는 점점 겁이 나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이런 비를 쫄딱 맞았군요! 어서 들어와요! 어서”

 한결이는 그 목소리에 놀라 머리카락을 타고 흐르는 빗물을 훔치며 간신히 찡그린 눈을 떴다. 그러자 하얀 콧수염에 험상궂은 얼굴이 보였다. 한결이가 비를 피한 건물은 바로 "용 분식집"이었던 것이다.

“자 따뜻한 국물이에요.”
“고맙습니다. 할아버지.”

주인 할아버지가 따뜻한 국물을 담긴 그릇을 내밀었다. 한결이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그릇을 잡았다. 조금 지나자 떨리던 손가락도 그릇의 온기 때문에 따뜻해지기 시작했다.

‘저 할아버지, 얼굴은 무섭게 생겼어도 좋은 사람인가 봐.’

 한결이는 슬쩍 할아버지의 얼굴을 살펴보았다. 여전히 할아버지의 얼굴은 무섭게 보였지만 왠지 모르게 매서운 눈초리가 부드러워진 것 같기도 했다.

 뜨거운 국물이 목구멍에 들어가자 한결이의 몸도 조금씩 따듯한 기운이 돌아오고 있었다. 긴장이 풀리고 몸도 따뜻해지자 한결이는 슬슬 졸음도 오고 배도 고파졌다.

“꼬르륵!”

뱃속에서 소리가 나자 한결이는 얼굴이 빨갛게 되었다. 그 모습을 본, 주인 할아버지의 얼굴에 잠시 미소가 그려졌다.

 “이런, 배가 고픈가 보군요. 어쩌나 오늘 우리 가게엔 남은 음식이 하나도 없는데…….”

“괜찮아요. 그리고 저 돈 없어요.”

 한결이는 얼굴이 더욱 빨개져서 말했다.

“ 돈은 무슨! 우리 집을 찾는 손님 분들에게 이런 서비스는 당연한 거예요. 그나저나 남은 재료가 뭐가 있더라…….”

주인 할아버지가 골똘히 생각하더니 무릎을 탁 쳤다.

“참! 지난번에 찾았던 용 튀김 한 조각이 남아 있는데 그걸 한 번 먹어보겠어요?”

“네? 요, 용 튀김이요?”

“그래요, 오늘 같이 비오는 날엔 용 튀김 요리가 제격이지요.”

 주인 할아버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겉모습으로는 무섭게만 여겨졌던 주인 할아버지도 인자한 분이라는 생각이 들자 이상하게도 한결이의 마음속에 전에 없던 용기가 무럭무럭 생겨났다.

‘용 튀김 한 번 먹어볼까?’

 처음 왔을 때와 달리 은은한 불빛이 비추는 분식집 안은 마치 꿈속에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배가 고픈 것도 이제 참을 수 없을 지경이었다.

‘용 튀김이면 뭐 어때. 배만 부르면 되는 거잖아’

 이렇게까지 생각이 들자 한결이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이렇게 말하고 말았다.

“조, 좋아요. 주세요. 용 튀김!”

“알겠습니다! 그럼 바로 준비 할 테니 잠시만 기다려요.”

주인 할아버지는 미소를 지으며 서둘러 주방으로 들어갔다. 한결이는 순간 정신이 퍼뜩 들었지만 이제 후회 해봐도 소용없었다.

‘내가 미쳤나봐. 어쩌려고 그런 걸달라고 한 거야 이 바보 !’

 한결이는 자기 자신이 한심스러워 졌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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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회> 
 

“손님, 뭘 드신다고요?”

 주방 쪽에서 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이내 주인 할아버지의 무시무시한 얼굴이 나타났다. 흰머리와 긴 콧수염 때문에 할아버지의 모습은 더욱 무서워 보였다. 주인 할아버지의 모습을 보자 한결이는 표정이 굳어졌고 찬이와 석우도 웃음소리를 뚝 그쳤다.

“손님…….  뭘 드신다고요?”

할아버지는 존댓말을 쓰고 있었지만 노려보는 눈빛은 이미 “네 이놈들 ” 하고 소리치는 것 같았다. 한결이는 얼른 고개를 푹 수그렸다.

“저……. 용 튀김 세, 세조 각이요.”

 한결이가 간신이 입을 열었다. 얼굴엔 정말 하고 싶지 않는 일을 하고 있다는 표정으로 가득했다. 석우는 침을 꿀꺽 삼켰고 언제나 해해거리는 찬이의 얼굴에도 미소가 사라졌다.

 한결이는 마치 시키면 안 될 음식을 주문하는 것 같아 기분이 좋지 않았다. 4학년 때 아빠와 함께 멋모르고 갔던 음식점에서 보신탕을 시키는 아빠의 목소리를 듣는 기분 같았다. 그때 울면서 식당을 뛰쳐나간 한결이는 앞으로 절대 이상한 음식은 먹지 않기로 다짐했었다. 그런데 지금 자기가 스스로 이런 음식을 시키고 있다니!

‘정말 보신탕처럼 끔찍한 음식이 나오면 어쩌지?’

잘 못해도 그만 잘해도 그만이라고 생각했던 한결이가 가위 바위 보를 못하는 자신이 원망스러운 적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아, 용 튀김 말이죠? 이런, 재료가 지금 있을까 모르겠네, 살펴보고 올 테니. 잠시 기다려 주세요.”

 주인 할아버지는 알 듯 말 듯 한 미소를 지으며 주방 안으로 사라졌다. 삼총사들은 난리가 났다.

“야! 진짜 용 튀김이 있나 봐?”

먹을 것을 밝히는 석우가 신기하다는 얼굴로 말했다.

“어쩌지, 그런 걸 우리가 먹어야 되는 거야?”

모든 게 귀찮은 한결이도 걱정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난 몰라! 난 오리 고기도 못 먹는단 말이야. 이거 나오면 너희가 다 먹어!”

 찬이는 아예 울 것 같은 표정이었다.

“그냥 도망갈까? 준태 녀석도 도망갔다며?”

“안 돼, 준태가 우릴 가만두지 않을 거야.”

석우의 말에 찬이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난 집에 갈래.”

 한결이는 아예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때였다. 스르르 주방 커튼이 열리더니 할아버지의 허연 수염이 보였다.

“죄송합니다, 손님. 마침 재료가 떨어졌네요. 대신 다른 메뉴는 다 됩니다. 뭐 다른 거라도 시키시겠어요?”

 학교 아이들 중 용 튀김을 사먹은 사람이 아무도 없는데 재료가 없다니, 도대체 용 튀김은 누가 사먹는 걸까? 삼총사들은 이해할 수 없었지만 주인 할아버지의 말에 모두 안도의 한숨을 내 쉬었다.

“어떻게 할래?”
“몰라, 네가 결정해.”
“그래, 네가 가위 바위 보에서 졌잖아. 네가 결정해.”

 아이들은 모두 한결이에게 대답을 미뤘다. 한결이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한결이와 아이들에겐 튀김 먹을 용기가 저 만치 달아나고 없다는 것만은 분명했다. 게다가 한껏 긴장한 탓에 뱃속에서 꼬르륵 소리도 났다.

“그, 그럼. 그냥 떡볶이하고 순대 3인분 주세요.”

“잠깐! 4인분, 4인분으로 해.”

 석우가 씩 웃으며 말했다. 석우에 머릿속엔 이미 근심 같은 건 사라지고 없었다.

“알겠습니다. 손님, 다음엔 꼭 재료를 구해 놓지요.”

 주인 할아버지는 세 아이들을 찬찬히 바라보고는 다시 주방으로 사라졌다.

  이렇게 해서 삼총사들의 모험은 싱겁게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세 친구는 용 튀김 냄새도 맡지 못한 채 맹꽁이 같이 부른 배를 어루만지며 “"용 분식집"”을 나왔다.

 “만약에 용 튀김을 먹었다면 어떤 맛이었을까?”

 분식집을 나서면서 석우가 아쉬운 듯 말했다. 아이들은 모두 석우를 흘겨봤지만 석우는 눈치 채지 못했다.

“넌 지금도 그 생각이냐? 아마 공룡은 파충류였다니까 도마뱀 튀김이랑 같은 맛일 꺼다.”

 공룡 박사인 찬이가 톡 쏘아대듯 말을 뱉었다.

“도마뱀?”

 순간 아이들은 서로를 쳐다보았다. 모두 머리 속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도마뱀 도막이 그려졌다.

“우웩!”

 세 아이들 모두 동시에 소리를 질렀다.

“안 먹길 잘했다. 그치?”

“그래, 그래!”

 아이들은 서로 서로를 쳐다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였다. 뒤에서 누군가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얘들아, 얘들아!”

느리고 어눌한 목소리로 봐서 그 목소리는 광철이가 분명했다. 광철이는 며칠 전 한결이네 반으로 전학 온 아이였다. 담임선생님 말씀이 광철이는 어릴 때 사고로 크게 다쳐서 말이나 행동이 느리고 기억력도 좋지 않다고 했다. 담임선생님은 반 아이들에게 광철이를 많이 도와주라고 당부하였지만 아이들은 우스꽝스러운 광철이의 행동을 보며  바보라고 놀려대곤 했다.

“야, 바보 광철이다.”

 석우가 한결이에게 귓속말로 말했다.

“그러지마, 우리도 그렇게 불리잖아.”

한결이가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석우는 무안해서 머리를 긁적였다.

“얘, 얘들아, 빵빵 상회가 어디야?”

광철이는 삼총사를 보며 연방 벙글벙글 웃으며 말했다.

“빵빵 상회는 왜? 뭐 살 거 있어?”

찬이가 약간 쌀쌀맞게 말했다. 찬이는 광철이가 매일같이 아이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것도 보기 싫었지만 광철이가 멍청하게 아무에게나 헤헤거리는 것도 보기 싫었다.

“응,  준태가 말이야……. 준, 준태가 음, 뭐 사오라고 했더라?”

 광철이는 기억이 나지 않는 듯이 머리를 계속 긁적였다.

“ 아 맞다 아이스크림! 아이스크림 세 개 사오랬어. 세 개.”

광철이는 생각이 난 듯이 다시 헤헤 거리며 10원짜리를 삼총사에게 보여주었다.

“뭐야 준태 자식, 10원 주고 아이스크림을 세 개 사오라고 했단 말이야?”

찬이가 화가 나서 말했다.

“응, 응.”

 광철이는 10원짜리 동전을 오른 속에 꼭 쥐면서 다시 씩 웃었다.

“저기 골목 끝에 있는 가게야.”

한결이가 손가락으로 가게 간판을 가리켰다.

“참, 그리고 이 돈도 가져가.”

한결이는 주머니에서 천원자리 두 장을 꺼내더니 광철이 손에 쥐어 주었다.

“엉? 이 돈은 뭐야?”

“너 오기 전에 준태가 와서 돈을 적게 줬다고 너 보면 주라고 했어.”

“아, 그랬구나. 고마워 한결아. 헤헤.”

광철이는 마치 어른에게 인사하는 듯이 삼총사에게 꾸벅 절을 하고는 신이 나서 가게로 달려갔다.

“뭣 하러 돈을 줘. 그냥 두면 자기가 알아서 사든지 말든지 할 거 아니냐. 1000원이면 초코 맛 젤리가 열 개라고 열개!”

“그냥, 광철이는 우리들을 나머지 삼총사라고 부르지 않잖아.”

한결이의 말에 찬이와 석우는 할 말이 없었다.

“젠장, 준태 자식. 이제 광철이를 종처럼 부리는 구나. 내가 주먹만 좀 셌어도 한 주먹에 그냥……. 잠깐, 큰일 났다. 우리, 내일 어떡하지?”

 찬이는 광철이의 뒷모습을 보며 씩씩 대다가 준태가 삼총사를 노려보며 했던 말이 떠올라 정신이 번쩍 들었다.

“잘 들어 내일까지 그 용 고긴지 용 튀김인지 안 먹고 오면 너희 세 놈들 다리를 아주 오도독 소리가 나게 분질러 놓을 줄 알아!” 

“어떡해, 용 튀김도 못 먹고 돈을 다 써버렸잖아 이젠 우린 죽은 목숨이야.”

찬이의 말에 석우는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한결이도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내일 아프다고 결석해 버릴까?”
“미쳤어? 준태 자식이 집으로 쳐들어올걸?”
“그럼 어떡해?” 
 

한결이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다가 뭔가 결심한 듯 말했다.

"그냥 맞자 뭐. 설마 다리를 부러뜨리겠냐? “
“야, 그걸 해결 방법이라고 말하는 거야?”

 찬이와 석우는 말도 안 된다고 말렸지만 이미 한결이는 결심을 굳혔다. 사실 귀찮은 걸 싫어하는 한결이에겐 이것이 가장 나은 방법이었다.

“난 먼저 간다. 나 집에 가서 게임 해야 해.”

 한결이는 주저 없이 타박타박 집으로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두 친구는 그런 한결이의 뒷모습을 멍하니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후 난 별수 없이 준태에게 빌어야겠어. 사실 싸운 건 내가 아니고 너잖아. 집에 있는 젤리를 잔뜩 가져다주면 준태가 용서해 줄지도 몰라.”

석우의 말에 찬이는 기가 찼다.

“야, 너까지 그러면 난 어떻게 하란 말이야. 응”

“그럼 어쩌라고?”

 석우와 찬이는 분식집 앞에서 한참을 옥신각신 했다. 지금 삼총사들의 머릿속에는 이미 용 튀김이나 "용 분식집" 대한 건남아 있지 않았다. 오로지 준태에게 얻어맞을 내일이 두려울 뿐이었다. 하지만, 사실 그때부터 삼총사와 "용 분식집" 사이에 일어날 황당하고 이상한 일들은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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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회> 

 삼총사들은 평소처럼 교실 창가 쪽에 모여서 조용히 점심을 먹고 있었다. 찬이는 누가 듣든 말든 알로사우루스의  습성에 대해 한참 늘어놓았고 석우는 입에서 밥풀을 튀어 나오는 것도 모른 채, 연방 “야, 이거 맛있다. 끝내준다.”며 숟가락질을 했다. 한결이도 찬이의 말에  “응, 그렇구나.” 라며 고개를 끄덕였지만 아무 관심 없는 표정으로 식사를 하는 중이었다. 그때였다.  
 

“어이구, 아무것도 못하는 세 바보가 밥도 미련하게 먹는구나.” 
 

 어제저녁 숨겨놓은 30점짜리 과학 시험지를 들키는 바람에 아버지에게 흠씬 두들겨 맞았던 준태는 그 분풀이 상대를 찾으며 두리번거리다 삼총사를 발견한 것이다.  

 준태는 책상 다리를 툭툭 치며 비웃음 가득한 얼굴로 시비를 걸었다. 그 바람에 식판이 들썩거렸다. 

  애당초 한결이는 선생님이 큰소리로 야단을 치셔도 아무 반응이 없는 아이기 때문에 준태가 무슨 말을 하든지 상관하지 않고 조용히 밥을 먹고 있었다. 그것은 석우도 마찬가지였다. 오늘 점심급식은 맛있는 참치 김치찌개였기 때문이다. 석우는 연방 숟가락질을 하며 밥을 먹는데 정신이 팔려서 준태가 무슨 말을 하는지 들을 수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찬이는 달랐다. 찬이는 이번 과학 시험에서 준태보다 두 문제나 더 맞았기 때문이다. 준태 녀석보다 10점이나 높은 점수를 받았는데 녀석에게 바보라고 놀림을 당하다니, 그건 참을 수 없는 일이었다. 
 

 “흥 그러셔? 그러는 넌 얼마나 똑똑하기에 과학 점수가 30점도 안 된 거냐. 응?” 

 찬이의 말에 주변에 있던 아이들이 으하하 하고 웃음을 터뜨렸지만 일그러진 준태의 얼굴을 보고 모두 웃음을 뚝 그쳤다. 그러나  준태의 얼굴은 이미 벌겋게 달아올랐다. 준태는 씩씩대며 말했다. 
 

 “뭐? 너, 오늘 점심을 잘못 먹었냐? 겁쟁이 녀석들이 오늘 정말 죽고 싶은가 보지?” 

 준태는 반에서 주먹이 가장 세기로 소문난 아이였다. 물론 찬이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찬이는 이상하게도 준태에게 맞서고 싶은 마음이 무럭무럭 생겼다.

“흥, 우린 너보다는 겁쟁인 아니거든. 너 어제 "용 분식집"에서 용 튀김 주문한다고 들어갔다가 아무 말도 못하고 그냥 도망갔다며? 우리였으면 용 튀김 같은 건 아무렇지도 않게 씹어 먹을 수 있었을 거야. 안 그래, 얘들아?”

 말은 그렇게 했어도 찬이는 이쯤해서  두 친구가  싸움을 말려주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게 아니면 담임선생님이라도 부르러 가길 바랐지만 두 아이는 찬이의 마음을 눈치 챌 여유가 없었다. 
 대신 석우는 연방 김치찌개 국물을 떠먹다가 튀김이란 소리에 귀가 뻔쩍해서 한 마디 했다.

“튀김? 와! 그거 맛있겠다.”

 모든 게 귀찮은 한결이는 그저 아무 상관없다는 듯이 이렇게 말했다.

“응 그래, 그래.”

 결국, 찬이의  얼굴만 점점 하얗게 되어갔다.

" 좋아, 그럼 나보다 더 용감하시다는 너희 바보 삼총사들이 한번 용 튀김을 먹고 와봐. 설마 평생 겁쟁이 바보 삼총사로 불리고 싶진 않겠지? “

“무, 물론 당연하지.”

 찬이는 애써 당황한 얼굴빛을 감추며 우물쭈물 말했다. 준태는 여전히 씩씩 거렸지만 얼굴이 하얘진 찬이를 보자 기분이 조금 좋아졌다.

‘바보 녀석들 너희는 용 튀김은커녕 "용 분식집"도 못 들어갈 걸.’

 준태는 주먹을 불끈 쥐어 보이며 눈을 부라렸다.

“잘 들어. 내일까지 그 용 고긴지 용 튀김인지 안 먹고 오면 너희 세 놈들 다리를 아주 오도독 소리가 나게 분질러 놓을 테니까!”

찬이는 씩씩대며 사라지는 준태의 뒷모습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찬이야 저 녀석이 뭐라는 거야.”

“왜? 무슨 일인데?”

식판을 깨끗하게 비우고 나서야 석우가 아는 체를 했다. 한결이도 얼어붙은 찬이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찬이는 석우와 한결이의 얼굴을 차례로 바라보더니 다시 크게 한 숨을 내 쉬었다.

“후…….  이젠, 우린 끝장이야”

 이런 우여곡절 끝에 한결이와 두 친구는 지금 "용 분식집"에 앉아 있다. 사실 수업을 마치고 "용 분식집"이 가까워 질 때까지 삼총사들은 승강이 벌였다. 서로 용 튀김을 주문하지 않겠다고 고집을 피웠기 때문이다.

 준태에게 문제없이 해낼 것이라고 허풍을 떨던 찬이나 먹는 거에는 사족을 못 쓰는 석우, 그리고 무엇이든 관심 없고 상관없다고 말하던 한결이도 마찬가지였다. 용기를 내서 내가 말하겠다고 나서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결국, 삼총사는 가위 바위 보를 하기로 했고 그 결과 한결이가 뽑히게 되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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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회> 

  한결이와 석우 그리고 찬이, 이렇게 세 명을 반 아이들은 삼총사라고 불렀다. 등굣길이나 집에 갈 때, 세 친구가 함께 있는 걸 발견하면 아이들은 “야, 저기 삼총사가 간다.”라며 자기들끼리 낄낄대었다. 그러면 세 친구는 못들은 척하며 아무렇지도 않게 아이들 앞을 지나쳤다. 하지만, 마음은 편하지 않았다 사실 세 친구는 삼총사라는 별명을 끔찍하게 싫어했다.
 왜냐고? 삼총사 란 말 앞에는 두 글자가 항상 따라왔기 때문이다. 

 ‘나머지 삼총사.’

 반에서 늦게까지 남아 보충 공부를 하는 걸 나머지 공부라고 하는데 세 친구는 언제나 나머지 공부를 도맡아 하였다. 그래서 아이들은 세 친구에게 “나머지 삼총사”라고 별명을 붙여주었다.

 먹는 일 빼곤 생각하는 걸 죽도록 싫어하는 석우와 공룡에 대해서는 줄줄 외지만 수학과 영어는 젬병인 찬이, 그리고 세상 모든 것에 관심이 없는 한결이, 이렇게 세 친구는 반 꼴찌를 도맡아 했고 나머지 공부 시간에 언제나 함께 남았다. 세 친구가 친하게 된 것도 그 때문이었다.

 석우는 먹을 때가 가장 행복한 아이였다. 부모님이 야단을 쳐도 입속에 하나 가득 먹을 게 있으면 신기하게 슬픈 생각도 고민도 사라졌다. 특히 석우는 초코 맛 젤리를 가장 좋아해서 입에 달고 다녔는데 그 때문에 입 주변이 항상 지저분했지만 전혀 상관하지 않았다.

 자칭 공룡박사 찬이는 공룡에 대해서는 모르는 게 없었다. 공룡의 이름, 키, 몸무게, 습성을 하나도 틀리지 않고 줄줄 말 할 수 있었다. 
 부모님들도 처음엔 그런 찬이의 모습을 보며 자랑스러워했다. 
 

 “우리 애는 천재가 틀림없어.”

 하지만, 찬이의 행복은 잠시 뿐이었다. 부모님들이 찬이가 아는 건 오직 공룡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요새는 부모님들이 찬이가 공룡의 “공”자만 꺼내도 버럭 화를 낼 뿐이었다.

 “또 아무 짝에 쓸모없는 공룡이야기니?”

  한결이는 모든 게 귀찮은 아이였다. 학교 가는 것도 귀찮고 어려운 수학 공식을 외우는 것도 귀찮고 사회시간에 발표하는 것도, 심지어는 축구와 피구를 하는 것도 다 귀찮았다. 공부를 못하면 못하는 대로 살면 그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수업시간에도 멍하니 앉아서 시간을 보내곤 했다. 친구하고 사귀는 것도 서툴고 별로 사귀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삼총사들을 빼고 다른 친구도 없었다.

 한결이는 다른 아이들이 도와달라고 부탁을 하면 “그래.”하고 쉽게 도와주고 자기 준비물도 다 나누어 주는 착한 아이였지만 이상하게 욕심을 가지고 스스로 무언가를 하는 걸 싫어했다. 그래서 선생님들과 부모님들이 한결이에게 “한결아 네 꿈은 뭐니?”라고 물으면 한결이는 항상 이렇게 대답했다.

“몰라요. 그냥 살죠. 뭐.”

그것도 아주 귀찮은 표정으로 말이다.

 부모님과 선생님들은 이런 한결이를 걱정했지만 정작 한결이는 자기 자신이 걱정스럽지 않았다. 오히려 사람들이 한결이에게 관심을 두는 것이 귀찮을 뿐이었다.

 이런 한결이가 "용 분식집"에 대해 관심을 둘 리가 없었다. 그래서 석우나 찬이가 "용 분식집" 대해 주워들은 헛소문들을 신이 나서 말해도 한결이는 시큰둥하기만 했다.

“민우가 그러는데 용 튀김은 사람고기가 분명할 거래.”
“응. 그렇구나.”
“야, 정말 놀랄 뉴스야! 용 튀김 먹은 5반 애가 이틀 후에 죽었대.”
“응. 그렇구나.”
“한결아, 너 내 얘기 듣고 있기는 한 거니?”
“응. 그렇구나.”

 이런 한결이가 친구와 함께 "용 분식집"까지 가고 “용 튀김 세 조각”을 주문시키게 된 것은  순전히 찬이의 자존심 때문이었다. 사건은 바로 어제 점심시간에 일어났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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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주 2009-09-11 1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ㅋㅋㅋㅋㅋㅋ
재미있어염......ㄱㅅㄱ
쌤.... 이런거 쓸시간이 만아 보임... ㅋㅋㅋㅋ
(구라예염.. ㅋ)
 



 

<1회>

“여, 여기, 용 튀김 세 조각이요.”

한결이의 떨리는 목소리가 작은 분식집 안에 울려 더욱 이상하게 들렸다. 기다렸다는 듯이 석우와 찬이의 웃음보가 연달아 터져 나왔다.

“으하하!”
“우 헤헤헤!”
“야, 왜 웃어?”

 한결이는 두 친구를 바라보며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말했지만 한결이의 얼굴은 이미 잘 익은 토마토처럼 새빨개졌다.

 두 친구가 그렇게 웃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새우튀김, 생선 튀김도 아닌 용 튀김 세 조각을 시키다니, 정신 나간 사람이 아니고서야 그런 걸 분식집에서 대놓고 시킬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한결이도 자신의 모습이 얼마나 한심하고 바보 같아 보이는지 잘 알고 있었다. 만약 가위 바위 보에서 지지 않았다면 한결이도 다른 친구처럼 마음 편히 웃음을 터뜨리고 있었을 것이다.

 ‘쳇, 그때 가위를 냈어야 했어.’

 후회해봤자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한결이는 바보같이 가위 바위 보에서 졌고 지금 이 순간 바보 같은 메뉴를 말하는 사람은 결국, 한결이니까.

 세 아이가 모여 있는 이곳, "용 분식집"이 학교 앞에 생긴 것은 1주일 전이었다. 원래 간판 명은 “붉으락푸르락 용 분식”이라고 쓰여 있었지만 아이들은 모두 이곳을 그냥 "용 분식집"이라고 불렀다.

 처음 이 "용 분식집"이 생겼을 때만 해도 아이들은 별로 관심이 없었다. 분식집 이름이 쓸데없이 긴 것을 제외하고는 눈길을 끌 만한 것이 없어 보였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용 분식집"이 들어선 곳은 떡볶이 집, 팥빙수 집, 튀김집으로 1년에도 서 너 번씩 바뀐 곳이라, 아이들은 새로 간판이 달린 걸 보며 그저 ‘어? 이번엔 분식집이네.’라고 한마디씩 말할 뿐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았다.

 사실 학교 앞에 분식집이 하나 새로 생긴다고 해서 관심을 둘 아이들이 몇 명이나 될까? 값이 엄청나게 싸다거나 양을 많이 준다는 소문이 나도 그때  뿐이다. 분식집이 달라 봤자 결국, 분식집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용 분식집"”은 달랐다. 문을 열고 만 하루가 안 되었는데 벌써 학교 아이들의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했던 것이다. 아이들은 쉬는 시간에. 점심시간에 심지어는 수업시간에도 흥분해서 "용 분식집" 이야기를 했다. 혹시 "용 분식집" 라면이 특별한 스프를 사용하거나 가격이 엄청나게 싸다거나 한 걸까?  물론 그런 단순한 이유가 아니었다. 아이들이 흥분해서 "용 분식집" 이야기에 열을 올린 건  바로  "용 분식집"의 메뉴판 때문이었다.

 "용 분식집"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메뉴판에는 떡볶이, 순대, 라면, 튀김 같은 흔한 분식집 메뉴가 있었다. 그 메뉴들 사이에 붓으로 쓴 푸른색의 굵고 진한 글씨로 다음과 같이 쓰여 있었다.  

 

    용 튀김 한 조각....... 만 원 

 

 처음 "용 분식집"에 찾아간 아이들은 누구나 똑같은 행동을 보였다. 먼저 무심코 메뉴판을 보다 용 튀김 메뉴를 발견하고는 놀라서 눈동자가 두 배로 커졌다. 그 다음엔 누구나 킥킥하고 실없이 웃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이내, 용 분식집주인 할아버지의 무시무시한 눈과 마주치고 웃음을 뚝 그쳤다. 겁에 질려 은근슬쩍 분식집에서 빠져나온 후에는 "용 분식집" 밖에서 자기들끼리 용 튀김은 있네, 없네 하며 말싸움을 하기 시작했다.

“와! 여기, 진짜 용을 튀겨서 파나 봐. 그래서 이름도 용 분식 아냐?”
“바보야! 용이 어디 있니? 그냥 소고기 튀김 같은 걸 이름만 그렇게 부르는 거야.”
“하지만, 분명히 한 조각에 만원이라고 쓰여 있잖아.  진짜니까 그렇게 파는 거 아냐?”
“말도 안 돼! 저건, 그냥 장난으로 쓴 게 분명해.”

 아이들은 이렇게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이상한 메뉴판을 보러 "용 분식집"을 찾아갔다. 그럴 때마다 두 명에서 네 명, 네 명에서 여덟 명으로 아이들은 점점 더 많아졌다. 결국, "용 분식집"이 새로 생긴 지 삼일 만에 학교 아이들 대부분이 "용 분식집"을 다녀가게 되었다. 

 이렇게 새로 생긴 지 삼일 만에 학교 아이들이 전부 다녀갔으니 용 튀김은 매진이 되고 “"용 분식집"”은 떼돈을 벌었을까? 오히려 그 반대였다. “"용 분식집"”을 찾아간 그 많은 아이 중에 용 튀김을 주문한 아이는 한명도 없었다. 아이들은 메뉴판을 신기하게 쳐다보았지만 그것뿐이었다. 대부분 아이들은 고개를 저으며 이렇게 말했다.

“우와, 한 조각에 만원이네. 저걸 어떻게 사 먹어”
“그래, 그래. 너무 비싸.”

 아이들의 말처럼 한 조각에 만원이나 하는 용 튀김을 아이들 용돈으로는 선뜻 사먹기 어려운 게 당연했다 하지만, 사실 이유는 그것만이 아니었다.

 그럼 그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그 첫 번째 이유는 바로 용이라도 때려잡을 것 같은 우락부락한 분식집 주인 할아버지의 외모 때문이었다.

 용 분식집 할아버지의 키는 거의 2미터는 되어 보였다. 게다가 온 몸이 근육으로 둘러싸여서 팔뚝은 보통 아이들 머리통보다 더 커보였다. 그 덕분에 셔츠는 금방이라도 단추가 튕겨져 나갈 것 같았고 청바지는 밑단이 너덜너덜했다. 이 무시무시한 모습을 예쁜 토끼 무늬가 그려진 앞치마로 간신히 가리고 있었지만 흉터투성이에 잡아먹을 듯 노려보는 얼굴 앞에서는 예쁜 토끼무늬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래서 아이들은 음식을 주문할 때도 할아버지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지도 못했다. 모깃소리처럼 작은 소리로  “떡볶이 1인분이요.”라는 말도 간신히 내뱉었다. 그러면 주인 할아버지는 아무 말 없이 떡볶이가 담긴 접시를 툭 가져왔다. 이때, 할아버지의 팔뚝에 그려진 커다란 용 문신을 보게 된 아이들은 더욱 겁에 질려 말문이 막히기 일쑤였다. 이런 상황에서 감히 용기를 내서 “용 튀김”을 소리 높여 말할 수 있는 아이들이 있을까?

 두 번째 이유는 너무나 간단했다. 혹시 누군가 용기 있게 용 튀김을 주문했다면 어떻게 될까? 만약 주인 할아버지가 황당한 표정을 지으며 “용 튀김을 먹겠다고? 넌 정말 그런 게 있을 거로 생각해서 주문한건 아니겠지?”라고 말한다면 그 녀석은 그 순간부터 학교에서 바보로 불리게 될 것이다. 용이 없다는 건 유치원생도 다 아는 사실이니까 말이다.

 설마 그럴 리는 없겠지만 만약 용 튀김 메뉴가 진짜라면 어떨까? 용 튀김을 주문했는데 정말 주인 할아버지가 김이 모락모락 나는 진짜 용 고기를 떡 하니 가져온다면, 그걸 용기 있게 꿀꺽 삼킬 수 있는 아이들이 있을까? 주인 할아버지가 저승사자 같은 표정으로 노려보고 있어서 차마 도로 뱉을 수도 없을 텐데 말이다. 결국, 용 튀김이 접시에서 사라질 때까지 억지로 입속에 밀어 넣고 나서야 자리에서 일어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끔찍한 일을 스스로 나서서 할 사람이 정말 있을까?

 이런 이유 때문에 아이들은 아무도 용 튀김을 주문하지 않았다. 그저 자기들 끼리 용 튀김은 너무 비싸, 저건 맛이 없을 것 같아 등의 핑계를 댈 뿐이었다.

  용 튀김 메뉴를 주문하는 않는 건 어른들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어른들은 아이들처럼 용 튀김 메뉴를 보며 놀라가거나 신기해하진 않았다. 오히려 어른들은 마치 용 튀김 메뉴가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눈에 안 보이는 것처럼 행동했다.

 한 번은 한결이네 반 아이들이 담임선생님을 졸라 "용 분식집"으로 간 적이 있었다. 어른들은 메뉴판을 보고 어떤 반응을 보일까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담임선생님은 “용 튀김 한 조각 만원”이라는 글씨가 선명한 메뉴판을 보고도 아무 반응이 없었다. 답답해진 아이들을 대표해서 회장인 신철이는 “선생님. 저희 용 튀김 사주 세요.”라고 슬쩍 말을 꺼냈다. 물론 주인 할아버지의 귀에 들리지 않을 적도로 작은 목소리로 말이다.

 아이들의 모든 시선이 담임선생님에게 꽂혔지만 선생님은 한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

“원 녀석도 참.”

선생님은 억지웃음을 지으며 신철이에게 꿀밤을 콩 주었다. 그리고는 뭔가 쫓기는 사람처럼 재빨리 떡볶이와 튀김을 주문했다.  

 

"혹시, 어른들에겐 정말 안 보이는 건 아닐까?”
“야, 괜히 무섭게 그런 소리 하지 마.”
“겁쟁이, 그런 게 어디 있니? 어른들도 먹는 게 무서워서 피하는 게 분명해.”

 아이들은 그 사건 덕분에 더욱더 숙덕대고 수군거렸지만 그것뿐이었다. 결국, 일주일이 지난 지금까지도 용 튀김 메뉴를 시킨 아이는 한 명도 없었다. 오늘 이곳에 온 한결이와 석우, 찬이를 빼면 말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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