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쳇, 삼총사라면서 이게 뭐야, 의리 없는 놈들”

 한결이는 우두커니 학교 운동장을 바라보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준태에게 얻어맞은 명치끝이 조금씩 아파왔지만 그럭저럭 참을 만 했다. 어제 용 튀김을 못 먹은 비운의 삼총사들은 준태에게 비웃음을 당하고는 한 대씩 맞는 걸로 "용 분식집" 내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물론 석우는 초코 맛 젤리를 준태에게 잔뜩 준 덕분에 맞는 건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석우는 준태에게 “돼지 새끼”라는 말을 들어야 했고 석우는 눈물을 찔끔댔다. 그렇지만 사실 석우가 눈물을 흘린 것은 돼지새끼라는 말보다. 초코 맛 젤리를 다 줘버린 게 너무 아까웠기 때문이었다. 
 자존심 강한 찬이도 한 방 얻어맞고 그대로 넘어져서 씩씩 대기만 할 뿐 별 다른 방법이 없었다. 게다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삼총사는 오늘 본 쪽지 시험에서 또 꼴찌를 차지했다. 결국, 세 친구 모두 나머지 공부를 하게 된 것이다. 삼총사는 오늘 시험에서 면제된 광철이가 한 없이 부러울 따름이었다.

‘오늘도 저녁때까지 셋이 함께 있겠네.’

 한결이는 당연히 이렇게 생각했지만 오늘따라 석우와 찬이 모습은 예전과 달랐다. 선생님이 자리를 비우기라도 하면 셋이 모여 잡담으로 시간을 때웠었는데 오늘은 석우와 찬이는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않고 문제를 끙끙대며 푸는 게 아닌가.

“미안해, 오늘 텔레비전에서 끝내주는 공룡 다큐멘터리가 한단 말이야.”

“오늘 동생 생일이야, 지금 안가면 동생이 음식 다 먹어버릴 거야.”

이런 저런 이유로 한결이를 제외한 두 아이는 나머지 공부를 서둘러 끝냈다. 결국, 아무런 계획도 없던 한결이만 저녁 6시가 넘어서야 교실에서 빠져 나올 수 있었다.

“쳇, 집에 가서 게임이나 해야겠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한결이는 발걸음을 빨라지지 않았다. 느린 걸음으로 계단을 따라 타박타박 운동장까지 내려오느라 주변은 더욱 더 어두워졌다. 게다가 하늘은 먹구름이 잔뜩 끼어 갑자기 빗줄기가 쏟아질 것 같았다. 마침 어두워진 운동장엔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아 마치 학교에서 한결이 혼자만 있는 것 같았다.

“이크, 비가 올려나 보다. 어쩌지?”

 한결이는 먹구름을 한 번 쓰윽 올려다보고는 다시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뭐, 그냥 맞지 뭐.”

비 맞다가 감기 걸리면 그 핑계로 학교도 안 갈수 있고 비방울이 목 뒤를 간질거리는 것도 나름 재미있었다. 빗방울이 한 두 방울 어깨에 떨어져왔지만 한결이의 걸음걸이는 전혀 빨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비구름이 더욱더 몰려들어 짙은 회색이 되고 사방이 온통 어두컴컴해지자 한결이도 더럭 겁이 나기 시작했다. 순간, 하늘에서 굵은 빗줄기가 쏟아져 내리기 시작하자 결국, 한결이의 발걸음도 빨라지기 시작했다.

“이 크크!”

 한결이는 재빨리 학교 밖에 있는 건물 처마로 뛰어 들어갔다. 빗줄기는 어느새 더욱 굵어져 눈앞이 하나도 보이지 않을 지경이 되었다. 길가의 자동차 소리도 빗소리에 묻혀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번쩍! 쿠르르 쾅!”

“엄마야!”

마치 한결이 바로 옆에서 번개 내리친 것처럼 큰 소리가 났다. 그 소리에 깜짝 놀라 한결이는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사방을 둘러봐도 빗줄기에 가려 아무것도 보이지 않자, 한결이는 점점 겁이 나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이런 비를 쫄딱 맞았군요! 어서 들어와요! 어서”

 한결이는 그 목소리에 놀라 머리카락을 타고 흐르는 빗물을 훔치며 간신히 찡그린 눈을 떴다. 그러자 하얀 콧수염에 험상궂은 얼굴이 보였다. 한결이가 비를 피한 건물은 바로 "용 분식집"이었던 것이다.

“자 따뜻한 국물이에요.”
“고맙습니다. 할아버지.”

주인 할아버지가 따뜻한 국물을 담긴 그릇을 내밀었다. 한결이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그릇을 잡았다. 조금 지나자 떨리던 손가락도 그릇의 온기 때문에 따뜻해지기 시작했다.

‘저 할아버지, 얼굴은 무섭게 생겼어도 좋은 사람인가 봐.’

 한결이는 슬쩍 할아버지의 얼굴을 살펴보았다. 여전히 할아버지의 얼굴은 무섭게 보였지만 왠지 모르게 매서운 눈초리가 부드러워진 것 같기도 했다.

 뜨거운 국물이 목구멍에 들어가자 한결이의 몸도 조금씩 따듯한 기운이 돌아오고 있었다. 긴장이 풀리고 몸도 따뜻해지자 한결이는 슬슬 졸음도 오고 배도 고파졌다.

“꼬르륵!”

뱃속에서 소리가 나자 한결이는 얼굴이 빨갛게 되었다. 그 모습을 본, 주인 할아버지의 얼굴에 잠시 미소가 그려졌다.

 “이런, 배가 고픈가 보군요. 어쩌나 오늘 우리 가게엔 남은 음식이 하나도 없는데…….”

“괜찮아요. 그리고 저 돈 없어요.”

 한결이는 얼굴이 더욱 빨개져서 말했다.

“ 돈은 무슨! 우리 집을 찾는 손님 분들에게 이런 서비스는 당연한 거예요. 그나저나 남은 재료가 뭐가 있더라…….”

주인 할아버지가 골똘히 생각하더니 무릎을 탁 쳤다.

“참! 지난번에 찾았던 용 튀김 한 조각이 남아 있는데 그걸 한 번 먹어보겠어요?”

“네? 요, 용 튀김이요?”

“그래요, 오늘 같이 비오는 날엔 용 튀김 요리가 제격이지요.”

 주인 할아버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겉모습으로는 무섭게만 여겨졌던 주인 할아버지도 인자한 분이라는 생각이 들자 이상하게도 한결이의 마음속에 전에 없던 용기가 무럭무럭 생겨났다.

‘용 튀김 한 번 먹어볼까?’

 처음 왔을 때와 달리 은은한 불빛이 비추는 분식집 안은 마치 꿈속에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배가 고픈 것도 이제 참을 수 없을 지경이었다.

‘용 튀김이면 뭐 어때. 배만 부르면 되는 거잖아’

 이렇게까지 생각이 들자 한결이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이렇게 말하고 말았다.

“조, 좋아요. 주세요. 용 튀김!”

“알겠습니다! 그럼 바로 준비 할 테니 잠시만 기다려요.”

주인 할아버지는 미소를 지으며 서둘러 주방으로 들어갔다. 한결이는 순간 정신이 퍼뜩 들었지만 이제 후회 해봐도 소용없었다.

‘내가 미쳤나봐. 어쩌려고 그런 걸달라고 한 거야 이 바보 !’

 한결이는 자기 자신이 한심스러워 졌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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