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회>
“여, 여기, 용 튀김 세 조각이요.”
한결이의 떨리는 목소리가 작은 분식집 안에 울려 더욱 이상하게 들렸다. 기다렸다는 듯이 석우와 찬이의 웃음보가 연달아 터져 나왔다.
“으하하!”
“우 헤헤헤!”
“야, 왜 웃어?”
한결이는 두 친구를 바라보며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말했지만 한결이의 얼굴은 이미 잘 익은 토마토처럼 새빨개졌다.
두 친구가 그렇게 웃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새우튀김, 생선 튀김도 아닌 용 튀김 세 조각을 시키다니, 정신 나간 사람이 아니고서야 그런 걸 분식집에서 대놓고 시킬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한결이도 자신의 모습이 얼마나 한심하고 바보 같아 보이는지 잘 알고 있었다. 만약 가위 바위 보에서 지지 않았다면 한결이도 다른 친구처럼 마음 편히 웃음을 터뜨리고 있었을 것이다.
‘쳇, 그때 가위를 냈어야 했어.’
후회해봤자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한결이는 바보같이 가위 바위 보에서 졌고 지금 이 순간 바보 같은 메뉴를 말하는 사람은 결국, 한결이니까.
세 아이가 모여 있는 이곳, "용 분식집"이 학교 앞에 생긴 것은 1주일 전이었다. 원래 간판 명은 “붉으락푸르락 용 분식”이라고 쓰여 있었지만 아이들은 모두 이곳을 그냥 "용 분식집"이라고 불렀다.
처음 이 "용 분식집"이 생겼을 때만 해도 아이들은 별로 관심이 없었다. 분식집 이름이 쓸데없이 긴 것을 제외하고는 눈길을 끌 만한 것이 없어 보였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용 분식집"이 들어선 곳은 떡볶이 집, 팥빙수 집, 튀김집으로 1년에도 서 너 번씩 바뀐 곳이라, 아이들은 새로 간판이 달린 걸 보며 그저 ‘어? 이번엔 분식집이네.’라고 한마디씩 말할 뿐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았다.
사실 학교 앞에 분식집이 하나 새로 생긴다고 해서 관심을 둘 아이들이 몇 명이나 될까? 값이 엄청나게 싸다거나 양을 많이 준다는 소문이 나도 그때 뿐이다. 분식집이 달라 봤자 결국, 분식집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용 분식집"”은 달랐다. 문을 열고 만 하루가 안 되었는데 벌써 학교 아이들의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했던 것이다. 아이들은 쉬는 시간에. 점심시간에 심지어는 수업시간에도 흥분해서 "용 분식집" 이야기를 했다. 혹시 "용 분식집" 라면이 특별한 스프를 사용하거나 가격이 엄청나게 싸다거나 한 걸까? 물론 그런 단순한 이유가 아니었다. 아이들이 흥분해서 "용 분식집" 이야기에 열을 올린 건 바로 "용 분식집"의 메뉴판 때문이었다.
"용 분식집"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메뉴판에는 떡볶이, 순대, 라면, 튀김 같은 흔한 분식집 메뉴가 있었다. 그 메뉴들 사이에 붓으로 쓴 푸른색의 굵고 진한 글씨로 다음과 같이 쓰여 있었다.
용 튀김 한 조각....... 만 원
처음 "용 분식집"에 찾아간 아이들은 누구나 똑같은 행동을 보였다. 먼저 무심코 메뉴판을 보다 용 튀김 메뉴를 발견하고는 놀라서 눈동자가 두 배로 커졌다. 그 다음엔 누구나 킥킥하고 실없이 웃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이내, 용 분식집주인 할아버지의 무시무시한 눈과 마주치고 웃음을 뚝 그쳤다. 겁에 질려 은근슬쩍 분식집에서 빠져나온 후에는 "용 분식집" 밖에서 자기들끼리 용 튀김은 있네, 없네 하며 말싸움을 하기 시작했다.
“와! 여기, 진짜 용을 튀겨서 파나 봐. 그래서 이름도 용 분식 아냐?”
“바보야! 용이 어디 있니? 그냥 소고기 튀김 같은 걸 이름만 그렇게 부르는 거야.”
“하지만, 분명히 한 조각에 만원이라고 쓰여 있잖아. 진짜니까 그렇게 파는 거 아냐?”
“말도 안 돼! 저건, 그냥 장난으로 쓴 게 분명해.”
아이들은 이렇게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이상한 메뉴판을 보러 "용 분식집"을 찾아갔다. 그럴 때마다 두 명에서 네 명, 네 명에서 여덟 명으로 아이들은 점점 더 많아졌다. 결국, "용 분식집"이 새로 생긴 지 삼일 만에 학교 아이들 대부분이 "용 분식집"을 다녀가게 되었다.
이렇게 새로 생긴 지 삼일 만에 학교 아이들이 전부 다녀갔으니 용 튀김은 매진이 되고 “"용 분식집"”은 떼돈을 벌었을까? 오히려 그 반대였다. “"용 분식집"”을 찾아간 그 많은 아이 중에 용 튀김을 주문한 아이는 한명도 없었다. 아이들은 메뉴판을 신기하게 쳐다보았지만 그것뿐이었다. 대부분 아이들은 고개를 저으며 이렇게 말했다.
“우와, 한 조각에 만원이네. 저걸 어떻게 사 먹어”
“그래, 그래. 너무 비싸.”
아이들의 말처럼 한 조각에 만원이나 하는 용 튀김을 아이들 용돈으로는 선뜻 사먹기 어려운 게 당연했다 하지만, 사실 이유는 그것만이 아니었다.
그럼 그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그 첫 번째 이유는 바로 용이라도 때려잡을 것 같은 우락부락한 분식집 주인 할아버지의 외모 때문이었다.
용 분식집 할아버지의 키는 거의 2미터는 되어 보였다. 게다가 온 몸이 근육으로 둘러싸여서 팔뚝은 보통 아이들 머리통보다 더 커보였다. 그 덕분에 셔츠는 금방이라도 단추가 튕겨져 나갈 것 같았고 청바지는 밑단이 너덜너덜했다. 이 무시무시한 모습을 예쁜 토끼 무늬가 그려진 앞치마로 간신히 가리고 있었지만 흉터투성이에 잡아먹을 듯 노려보는 얼굴 앞에서는 예쁜 토끼무늬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래서 아이들은 음식을 주문할 때도 할아버지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지도 못했다. 모깃소리처럼 작은 소리로 “떡볶이 1인분이요.”라는 말도 간신히 내뱉었다. 그러면 주인 할아버지는 아무 말 없이 떡볶이가 담긴 접시를 툭 가져왔다. 이때, 할아버지의 팔뚝에 그려진 커다란 용 문신을 보게 된 아이들은 더욱 겁에 질려 말문이 막히기 일쑤였다. 이런 상황에서 감히 용기를 내서 “용 튀김”을 소리 높여 말할 수 있는 아이들이 있을까?
두 번째 이유는 너무나 간단했다. 혹시 누군가 용기 있게 용 튀김을 주문했다면 어떻게 될까? 만약 주인 할아버지가 황당한 표정을 지으며 “용 튀김을 먹겠다고? 넌 정말 그런 게 있을 거로 생각해서 주문한건 아니겠지?”라고 말한다면 그 녀석은 그 순간부터 학교에서 바보로 불리게 될 것이다. 용이 없다는 건 유치원생도 다 아는 사실이니까 말이다.
설마 그럴 리는 없겠지만 만약 용 튀김 메뉴가 진짜라면 어떨까? 용 튀김을 주문했는데 정말 주인 할아버지가 김이 모락모락 나는 진짜 용 고기를 떡 하니 가져온다면, 그걸 용기 있게 꿀꺽 삼킬 수 있는 아이들이 있을까? 주인 할아버지가 저승사자 같은 표정으로 노려보고 있어서 차마 도로 뱉을 수도 없을 텐데 말이다. 결국, 용 튀김이 접시에서 사라질 때까지 억지로 입속에 밀어 넣고 나서야 자리에서 일어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끔찍한 일을 스스로 나서서 할 사람이 정말 있을까?
이런 이유 때문에 아이들은 아무도 용 튀김을 주문하지 않았다. 그저 자기들 끼리 용 튀김은 너무 비싸, 저건 맛이 없을 것 같아 등의 핑계를 댈 뿐이었다.
용 튀김 메뉴를 주문하는 않는 건 어른들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어른들은 아이들처럼 용 튀김 메뉴를 보며 놀라가거나 신기해하진 않았다. 오히려 어른들은 마치 용 튀김 메뉴가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눈에 안 보이는 것처럼 행동했다.
한 번은 한결이네 반 아이들이 담임선생님을 졸라 "용 분식집"으로 간 적이 있었다. 어른들은 메뉴판을 보고 어떤 반응을 보일까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담임선생님은 “용 튀김 한 조각 만원”이라는 글씨가 선명한 메뉴판을 보고도 아무 반응이 없었다. 답답해진 아이들을 대표해서 회장인 신철이는 “선생님. 저희 용 튀김 사주 세요.”라고 슬쩍 말을 꺼냈다. 물론 주인 할아버지의 귀에 들리지 않을 적도로 작은 목소리로 말이다.
아이들의 모든 시선이 담임선생님에게 꽂혔지만 선생님은 한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
“원 녀석도 참.”
선생님은 억지웃음을 지으며 신철이에게 꿀밤을 콩 주었다. 그리고는 뭔가 쫓기는 사람처럼 재빨리 떡볶이와 튀김을 주문했다.
"혹시, 어른들에겐 정말 안 보이는 건 아닐까?”
“야, 괜히 무섭게 그런 소리 하지 마.”
“겁쟁이, 그런 게 어디 있니? 어른들도 먹는 게 무서워서 피하는 게 분명해.”
아이들은 그 사건 덕분에 더욱더 숙덕대고 수군거렸지만 그것뿐이었다. 결국, 일주일이 지난 지금까지도 용 튀김 메뉴를 시킨 아이는 한 명도 없었다. 오늘 이곳에 온 한결이와 석우, 찬이를 빼면 말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