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회> 

“한결아, 정말 몸이 괜찮은 거니?”

“그럼요 에취! 문, 문제없어요.”

엄마의 걱정스러운 목소리에도 한결이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말했지만 콧물과 재채기는 숨길 수 없었다. 약간 머리만 아파도 학교가기 싫어하는 한결이가 몸을 덜덜 떠는데도 학교에 가겠다고 하는 게 엄마는 이상했지만 한결이의 고집을 꺾을 순 없었다.

“학교 늦었어요. 갈게요.”

한결이는 엄마에게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하고 집을 나섰다. 옷을 겹겹이 껴입어서 마치 북극에 사는 사람처럼 보여도 어쩔 수 없었다. 한여름 햇빛이 아침부터 쨍쨍하지만 한결이의 몸은 으슬으슬 춥기만 했다.

“야! 너 왜 그러냐? 또 감기 걸린 거야?”

아주 작아진 미르가 호주머니 속에서 얼굴을 쏙 빼낸 채로 말했다. 미르는 얼굴에는 어젯밤 우울했던 모습은 전혀 찾아 볼 수 없었다.

“나 참, 미르 너 때문이잖아.”

“내가 왜?”

“네가 호주머니 속에 들어가 있으니까 내가 계속 추워지는 거라고 에 에취!”

“쳇 호주머니에서 절대로 나오지 말라고 한 게 누군데 그래? 난 자유롭게 돌아다니고 싶단 말이야.”

“안 돼 그건 절대 안 돼! 에 에취! 내가 감기에 걸리고 말지 암 그렇고말고.”

 한결이는 미르를 잘 보살펴 달라던 우돌 영감의 목소리가 아직도 귀에 생생했다. 미르를 어떻게 보살펴야 하나 고민 고민했던 한결이는 아예 미르가 자기 주머니에서 나오지 못하도록 한 것이었다. 한결이는 미르를 친 자식처럼 생각하는 우돌 영감을 실망시킬 수 없었다.

“한결아! 같이 가.”

등 뒤에서 찬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찬이에게도 석우에게도 미르 예기를 할 수 없다는 건 한결이는 잘 알고 있었다.

“응 찬이구나.”

“몸은 좀 어때?”

“콜록 콜록! 괜찮아 어젠 네 모습이 좀 황당했지?”

“그런데 가만 너 옷, 옷차림이 왜 그래?”

“감기에 걸려서 그래. 창피하니까 더 이상 묻지 마. 콜록 콜록”

“감기에 걸렸다고 그런 털옷을 입어? 한결아, 너 정말 괜찮은 거야!”

찬이가 걱정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한결이는 찬이에게 모든 걸 이야기 할 수 없었다.

“난 말짱해 그냥 감기에 걸린 거야. 그러니까 이상한 눈으로 그만 좀 쳐다봐 알겠니?”

 그때였다. 멀리서 석우가 달려왔다. 석우는 초코 맛 젤리가 입 속에 잔뜩 넣어서 우물거리느라 말이 느렸다.

“야, 찬이야, 한결아! 오늘은 지각 안 했네? 가만 한결아 너 왜 그런 옷을 입고…….”

“그만! 날 좀 가만 나둬!”

한결이는 두 사람을 밀치고 달려가기 시작했다. 한결이는 찬이와 석우에게 심하게 대한 것이 미안했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뭐, 뭐야? 한결이 왜 저래?”

석우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말했다.

“나도 몰라. 정말 사람이 어떻게 저렇게 까지 변할 수 있는 거지?”

찬이도 할 말을 잃고 한결이의 뒷모습만 바라보았다.




 교실 안에선 이미 한결이 주위에 많은 아이가 모여 있었다. 당연히 털옷을 입고 온 한결이가 이상하게 여겨졌기 때문이었다. 아이들이 한결이에게 질문을 해댔지만 한결이는 이번엔 아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감기에 걸렸다고 해도 어차피 아까 찬이처럼 이상한 얼굴로 쳐다볼 게 뻔했으니까 말이다.

‘아 괴로워, 왜 모두 나만 보는 거야.’

언제나 아이들 관심밖에 있던 한결이가 아이들의 주목을 받는 것은 견디기 힘든 일이었다.

 “저 녀석들은 왜 네 주위에 와서 흘끗흘끗 보는 거야?”

 미르가 주머니에서 목을 길게 빼고는 물었다. 미르는 주머니 속이 좁은 지 몸을 이리저리 움직였다. 그럴 때마다 한결이는 몸이 더 추워 졌다.

 “…….”

“응? 왜 아무 대답이 없어? 응? 응!”

“제발 그만 가만히 좀 있어!”

한결이가 큰소리로 고함을 치자. 주변에 있던 아이들은 모두 주춤주춤 자기 자리에 앉았다. 그때였다. 준태가 교실로 들어오다 한결이를 보고는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 야, 이 바보가 오늘은 한여름 에스키모가 됐네. 어제는 눈물 콧물 질질 짜더니, 너 맛이 완전히 갔냐?”

“하하하하!”

아이들도 준태에 말에 따라 웃었다. 그래도 한결이는 아무 말 그냥 앉아 있을 뿐이었다.

‘준태가 날 놀리는 건 한 두 번도 아니니까 상관없어. 아이들도 저러다 지쳐서 그만 둘 거야.’

이렇게 생각했지만 사실 찬이와 석우에게 쌀쌀맞게 군것은 마음에 걸렸다.

“야, 넌 입도 없냐? 저 못 돼먹은 녀석에게 소리라도 질러야 할 것 아니야.”

주머니 속에 있던 미르는 준태를 보고 화가 났는지 씩씩되었다.
“넌 가만히 있어. 나하고 약속했잖아. 내 호주머니에서 가만히 있겠다고 말이야.”


한결이는 미르를 쳐다보며 속삭이듯 말했다.

“제 또 누구하고 이야기 하는 거냐? 너 완전히 미쳤구나? 응?”

준태는 짓궂게 한결이의 어깨를 툭툭 쳤다. 마침 석우와 찬이도 교실로 들어왔다.

“준태 저 자식 한결이한테 시비를 걸고 잇잖아. 찬이야, 우리가 좀 도와줘야 하는 아냐?”

석우가 준태를 바라보며 찬이에게 말했다.

“우리가 무슨 힘이 있니? 그리고 한결이가 가만히 나두라고 했잖아.”

찬이가 쌀쌀 맞게 말했다.

“하지만,…….”

석우도 더 이상 아무 말 못하고 그냥 한결이를 바라만 보고 있었다.




“야, 너 이제 벙어리가 됐냐? 말 좀 해봐. 이 바보야!”

준태가 계속해서 한결이를 놀려댔지만 한결이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미르는 화가 나서 참을 수가 없었다.

“왜 가만히 있는 거야! 나 같으면 한방 먹였을 텐데. 뭐야? 왜 참는 거야?

“…….”

“한결아, 저 녀석 내가 확 집어 삼켜 버릴까?”

“제발 그만!”

 한결이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미르에게 고함을 빽 질렀다. 하지만, 준태는 그것이 자기에게 하는 소리인줄 알았다.

“어라! 나한테 고함도 쳐? 이게  정신만 나간 게 아니라 겁도 없어졌나보지? 어디 한 번 더 맞아야 정신을 차리겠냐?”

 준태가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너한테 한 게 아니야.”

한결이는 준태를 보며 이렇게 말했지만 준태가 자기 말을 믿어줄 것 같지 않았다.

“이 자식! 이제 날 놀리기까지 하네. 응?”

준태는 앉아있던 한결이를 멱살을 잡았다.

“그만 둬! 한결이가 그만 하라잖아.”

그때, 준태의 뒤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뒤를 돌아보니 긴장한 얼굴의 찬이와 석우의 모습이 보였다.

“석우야, 찬이야…….”

한결이도 두 친구를 바라보았다.

“이런 바보 삼총사가 힘을 합하시려나 보지? 엊그제 맞고 또 맞고 싶나봐. 그래?”

준태가 주먹을 움켜지고 찬이를 노려보았다. 찬이와 석우는 주춤 물러났다.

“어쭈, 나설 땐 언제고 이제 겁먹은 거냐. 응?”

“그, 그냥 놔둬 한결이는 아프단 말이야.”

 찬이는 엊그제 준태에게 맞은 부분이 다시 아파오는 것 같았지만 꾹 참았다.

“마, 맞아, 그냥 놔둬!”

석우도 찬이의 어깨에 손을 꽉 잡고 뒤에서 떠듬떠듬 말했다.

“그래? 좋아. 그냥 놔두지 그 대신 너하고 저 돼지 새끼를 흠씬 두들겨 패 줄 거야!”

준태가 앞으로 나가며 마치 권투 선수처럼 주먹을 휘둘렀다. 그때였다.

“그만둬!”

한결이가 갑자기 달려들어 등 뒤에서 준태를 와락 덮쳤다. 그러자 준태도 당황해서 몸의 균형을 잃고 말았다.

“야!”

 순간 석우와 찬이도 고함을 지르며 준태에게 달려들었다. 세 아이가 준태에게 달려들자 준태는 그만 바닥에 쓰러져 버렸다. 삼총사는 준태를 넘어뜨렸지만 그 다음에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그냥 준태가 일어나지 못하도록 팔다리를 꼭 붙잡고 있을 뿐이었다.

“야, 이 자식들, 이거 못 놔? 놔! 놓으라고!”

“미쳤냐? 우리가 널 놓게?”

찬이는 이렇게 말한 뒤 한결이를 보며 씩 웃었다. 한결이도 석우와 찬이에게 씩 웃음을 지어 보였다.

“선생님 오신다!”

회장 신철이가 복도를 살피다가 큰소리로 외쳤다. 삼총사들은 그 소리에 놀라 후다닥 일어나 제자리로 들어갔다. 준태도 옷을 털고는 씩씩대며 자리에 들어갔지만 두 눈은 삼총사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왜 이리 소란스러운 거니?”

담임선생님은 교실 문을 열고 아이들을 빙 둘러보았다.

 “그런데, 한결이는 괜찮은 거니? 가만, 오늘은 털옷을 입고 왔네.”

“으하하하!”

 아이들은 웃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선생님은 전혀 웃지 않았다. 그러자 아이들의 웃음소리도 차츰 줄어들었다. 선생님은 한결이에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한결이가 말하기를 기다렸다.

“감, 감기에 걸려서 그래요.”

“그렇구나. 몸이 그렇게 안 좋은데 학교에 온 거야?”

“네.”

“너무 무리하진 마라. 건강이 가장 중요하니까. 알겠니?”

“네 감사합니다.”

한결이는 자기를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 담임선생님이 너무 고마웠다.

“선생님!”

 찬이가 손을 번쩍 들었다. 찬이는 무언가 결심한 표정으로 준태를 쓱 한 번 보고는 말을 이었다.

“응? 무슨 일이니 찬이야”

“준태가 방금 전까지 한결이가 털옷을 입고 왔다고 놀리며 괴롭혔어요.”

“맞아요. 맞아!”

석우도 거들었다. 선생님은 바로 매서운 눈초리로 준태를 바라보았다. 준태는 움찔해서 고개를 숙였다.

“준태 이 녀석! 또 다른 친구를 못살게 굴었구나! 오늘 하루 운동장에 나가는 거 금지다 알겠니?”

“네…….”

‘수업 시간 끝나고 보자 이 바보 녀석들.’

준태는 풀이 죽은 목소리로 대답하고는 다시 삼총사를 노려보았다.

삼총사도 준태의 시선을 느꼈지만 왠지 겁이 나지 않았다. 방금 전처럼 삼총사가 힘을 합하면 준태가 아니라 그 누구라도 이길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야, 우리가 드디어 괴물 준태를 해치웠다!”

석우가 신이 났는지 앞에 앉은 한결의 어개를 톡 치고는 작은 목소리로 장난스럽게 말했다.

“그래, 모두 고마워!”

한결이도 미소를 지어보였다. 찬이에게 미안한 마음도 어느 정도 덜었고 미르가 더 이상 문제만 안 일으키며 오늘 하루는 큰 문제없이 지낼 것 같기 때문이었다.

 “고맙긴 우린 삼총사잖아 안 그래? 근데 너 땀을 너무 흘리는 것 같다?”

 석우의 말에 한결이는 웃는 얼굴로 주머니를 만지작거렸다.

“땀이 나다니 무슨 소리야 나한텐 미르가 ……. 맙소사 없어졌어. 미르가 없어졌어!”

“무슨 소리야 그게?”

석우는 어리둥절해서 한결이에게 물었지만 한결이는 놀라서 더 커진 눈으로 한참동안 말을 할 수 없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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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회>  

“15일 동안은 미르도 몸집을 작게 해서 다닌다고 약속했으니까 한결군이 불편하진 않을 거예요. 그러니까 좀 부탁할게요. 한결군.”

“하지만, 저 그러니까…….”

“영감이 20년 만에  친구를 만나러 자기 혼자 간다잖아 그냥 좀 들어줘!”

미르가 어느새 나타나서 찬 기운을 훅훅 내뿜었으며 시큰둥하게 말했다.

“너 냉장고에 냉기를 잘 불어 넣은 거야? 15일 동안 음식 상하지 않으려면 제대로 넣어야 해!”

“쳇 알고 있다고요. 지금 하고 있잖아요.”

 미르가 투덜대며 냉장고쪽으로 몸을 움직였다. 미르가 멀찍이 사라지자 우돌 영감은 귓속말로 한결이에게 말했다.

“미르에게는 그냥 친구를 만난다고만 이야기 했어요. 그래서 지금 자기를 안 데려간다고 살짝 삐쳐있어요. 하지만, 부루를 찾으러 간다고 하면 자기도 간다고 펄쩍 뛸게 분명해요.”

우돌 영감은 멀찍이 덜어져 있는 미르를 한번 쳐다보며 말했다.

“자 이제 보름달이 뜨려면 한 시간도 안 남았어요. 한결군이 도움을 주지 않으면 나는 온 대륙에 갈수 없어요. 하루빨리 가지 않으면 부루가 놈들에게 잡힐 수도 있고요. 그러니 제발 부탁이에요 한결군.”

 한결이는 우돌 영감의 부탁을 차마 거절 할 수 없었다. 한결이도 부루가 아직 살아있어서 미르와 함께 만나는 장면을 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한결이는 정말 자신이 없었다.

“후우, 알, 알겠어요.”

“좋아요 나는 처음부터 한결군이 도와줄 거라고 믿고 있었어요. 자 그럼, 이제 한결군이 어떤 능력을 갖게 됐는지 알고 싶군요.”

우돌 영감은 기분이 좋은지 손바닥을 짝짝 마주치며 말했다.

“능력이요? 전 아무것도 달라진 게 없는 데요? 그냥 눈에 미르가 보이게 됐고 그리고 ‘그리’같은 괴물들이 보이는 걸 빼면 말이에요.”

“음……. 그거 이상하군요. 보통 용의 비늘을 삼킨 사람은 12시간이 지나면 그 사람의 특징에 따라 특별한 능력을 가지게 되거든요 예를 들면 하늘을 날수 있다거나 숨을 참지 않고도 물속을 여행할 수 있다거나 뭐 그런 특이한 능력 말이에요.”

한결이는 팔을 벌려 자기 몸 구석구석을 살펴보며 뭔가 특별한 것이 있나 찾아보았다. 하지만, 눈에 띄는 변화는 발견할 수 없었다.

“보시다시피 전 아무 능력도 없는데요.”

“젠, 용을 보고 웃는 능력이 생겼어요.”

어느새 미르가 나타나서는 약간 비꼬듯 말했다.

“뭐 사람마다 능력이 나타나는데 약간의 차이가 있을지 모르니까 내일이면 달라질 거예요. 나중에 제가 돌아왔을 때 한결군은 무슨 능력이 생겼는지 알려 주세요. 용의 비늘을 삼킨 사람이 가지는 능력은 아주 다양해서 온 대륙에 있던 어떤 사람은 거대한 초코파이가 되는 능력이 생겼답니다. 생각해 보세요. 초코파이라니 하하하! 그걸 어디다 쓰겠어요.”

 우돌 영감은 호탕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영감, 이제 달이 뜨기 시작한다고요 서둘러요.”

미르가 핀잔하듯 말했어요.

“이런 내 정신 좀 봐 그럼 미르도 한결군이 돌봐주기로 했고 보름달도 떠올랐으니 두 세계의 통로를 여는 두꺼비 열쇠를 가져와야겠군요.”

 우돌 영감은 콧노래를 부르며 커다랗고 낡은 나무 서랍장으로 다가 갔다.

“쳇, 저렇게 좋을까 ?”

 미르는 영감의 뒷모습을 흘겨보며 말했다.

“너 같이 가지 못해서 좀 섭섭하지?”

“아, 아니야. 우돌 영감이 없는 15일간 마음대로 할 걸 생각하니 벌써부터 기분이 좋은 걸”

미르는 말은 그렇게 하고 있었지만 전혀 웃고 있지 않았다. 한결이는 미르의 등을 톡톡 두드리며 위로해 주었다.

“사실, 영감과 헤어져 있는 게 이 번이 처음이라 기분이 좀 이상해. 혹시 영감이 날 버리고 멀리 가버리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고 .”

 미르는 기운이 빠진 목소리로 말했다.

“걱정 마. 할아버진 분명히 15일 후에 돌아와서 다시 너에게 잔소리를 해대실 테니까.”

“우 그건 정말 싫은데.”

“하하하!”

 미르와 한결이는 한바탕 웃었다.

“아, 여기 있네. 서랍장 뒤 쪽에 넣어 놓은 걸 깜박하고 쓸데없는 곳을 뒤졌군요.”

서랍을 이리저리 뒤지던 우돌 영감은 마치 크리스털로 만든 것 같이 속이 비치는 투명하고 커다란 열쇠를 꺼내 들었어요.

“와 저 열쇠, 보석 같이 반짝거려요.”

“그렇죠? 이 열쇠는 달 두꺼비의 뼈로 만든 열쇠에요.”

“달 두꺼비의 뼈요?”

한결이는 두꺼비 뼈로 이렇게 예쁜 열쇠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어요.

“옛 부터 달 두꺼비는 달나라와 지상세계를 오고 갈 수 있는 신비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고 해요. 이 열쇠는 달 두꺼비의 뼈로 만들었기 때문에 온 대륙으로 갈 수 있는 힘도 가지고 있답니다.”

“와! 그럼 이 열쇠로 달나라도 갈수 있겠네요?”

“물론이죠. ‘그리’들의 수수깨끼 대왕이 낸 문제를 풀고 간신히 이 열쇠가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원래 열쇠가 두 개였는데 그만 온 대륙에서 이곳으로 넘어올 때 부루와 함께 잃어버리고 말았어요. 이제 이 열쇠가 온 대륙으로 갈 수 있는 유일한 열쇠 된 거죠.”

“그렇게 중요한 물건을 잡동사니 넣는 서랍에 아무렇게나 나둬요?”

 미르가 핀잔을 주었지만 우돌 영감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자 이제 준비가 다 되었군요. 미르야 잔소리 그만하고 부엌에 불을 모두 끄렴.”

“쳇 내가 무슨 하녀인줄 아나봐?”

 미르는 말은 그렇게 했지만 미르가 커다란 운동장 같은 분식집 부엌을 미끄러지듯 날면서 부엌 구석구석을 비추던 횃불들을 입김으로 끄기 시작했다. 순간 부엌 안은 깜깜해 졌다.

“와 아무것도 안보여요.”

“조금만 기다려 봐 이제 달이 더 높이 떠오를 테니까 .”

미르의 말대로 어느새 달빛이 부엌 창문턱을 은빛으로 물들더니 이내 창문 가득 비추기 시작했다. 부엌 창문을 따라 비추기 시작한 달빛은 마치 푸른 빛 광선처럼 부엌 한가운데 모이기 시작했다.

“자! 지금이야.”

우돌 영감이 서둘러 부엌 중앙으로 달려갔다. 푸른 달빛이 우돌 영감을 비추니 마치 산신령 같은 느낌이 들었다.  우돌 영감은 씩 미소를 지으며 뼈로 만든 열쇠를 높이 치켜들었다. 그러자 달빛은 열쇠 안으로 빨려 들어갔고 순간 투명한 열쇠 안에는 은빛으로 빛나는 작은 별들도 가득 찼다. 한결이는 그 모습이 너무 아름다워 넋을 잃고 바라보고 있었다.

 우돌 영감은 별들을 품은 열쇠로 공중을 가리키며 크게 원을 그렸다. 그러자 열쇠에서 쏟아져 나온 은빛 별 가루들이 마치 수레바퀴가 돌듯이 큰 원을 따라 돌기 시작했다. 

“이제 곧 온 대륙으로 가는 세상의 문이 열릴 거예요”

이 말을 마치고 나자 우돌 영감은 그 원 안에 다시 일곱 개의 작은 원들을 그리기 시작했다. 작은 원들은 모두 은빛 빛 가루가 되어 서로 겹치고 흩어지기를 반복하며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자, 이제 갈 때가 되었어요. 한결군 우리 미르를 잘 부탁해요. 미르도 얌전히 있어야 한다.”

“쳇 알겠으니까 걱정 말아요.”

미르가 투덜대었다. 한결이는 아름다운 광경에 놀라 말은 못하고 그냥 고개만 끄덕였다.

 은빛 원들이 서로 겹치면서 아름다운 무늬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 속도가 점점 빨라지더니 순간 은빛 빛 가루들이 마치 커튼처럼 쏟아져 내렸다.

“우와!”

“자 그럼 나는 온 대륙으로 갑니다.”

우돌 영감은 빛 가루 커튼 속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는 달 두꺼비의 뼈로 만든 열쇠를 높이 쳐들었다.

“리디롱다! 리디롱다!”

우돌 영감이 큰소리로 주문을 외자 뼈로 만든 열쇠가 푸른빛을 내며 별처럼 반짝였다. 그와 동시에 빛 가루들과 우돌 영감은 공중으로 떠올랐다. 빛 가루들이 우돌 영감의 주위를 더욱 빠른 속도로 돌기 시작하자 우돌 영감의 몸도 다리부터 천천히 빛 가루로 변하였다, 이윽고 빛 가루들은 푸른빛을 내며 점점 하나로 모이기 시작했다.

“저것 봐! 빛 가루들이 모여서 별이 됐어.”

한결이는 놀라서 손가락으로 빛나는 별을 가리켰다. 한결이의 목소리가 신호가 된 양 별빛은 점점 작아지더니 휙 사라져 버렸다.

“정말로……. 영감이 갔어.”

미르는 풀이 죽은 목소리로 말했다. 한결이는 미르의 슬픈 눈을 바라보다 등을 꼭 껴안았다. 차가운 냉기가 느껴졌지만 이상하게 미르를 꼭 껴안고 싶어졌다.

‘우돌 할아버지 제가 미르를 잘 돌볼게요. 걱정 마세요.’

“자, 우리 집으로 가자”

어두운 부엌 안을 비추고 있는 고요한 달빛만 아무 말 없이 두 아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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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회>  

한참 후에 우돌 영감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

“나단이 총을 나누어준 이후부터 온 대륙은 이상해지기 시작했어요. 용 사냥꾼들은 용을 점점 더 많이 잡기 시작했지요. 내가 어렸을 때부터 아니 내 아버지의 아버지가 어렸을 때부터 늘 보아오던 하늘을 아름답게 날아다니던 수십만 마리의 용의 무리들이 이제 보이지 않게 되었어요. 그리고 이상하게도 용을 잡았던 용 사냥꾼들도 하나둘씩 사라졌어요.”

“용 사냥꾼들도요?”

“네, 그래요. 그 모든 것이 나단의 계획이라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어요. 나단은 사냥꾼들에게서 여의주를 빼앗고 그들을 죽여 버린 거예요.”

“여의주의 힘을 이용하려고 한 것이군요?”

 한결이는 미르의 푸른색 여의주가 떠올랐다.

“그런데 그게 좀 이상했지요. 용이 아닌 인간은 여의주를 이용할 수 없어요. 용 사냥꾼들에겐 여의주는 그저 용과의 대결에서 이겼다는 것을 알려주는 증표일 뿐이거든요. 그런데 나단은 이상하게도 온 대륙 전체의 여의주를 다 모으기 시작한 거였어요.”

“그럼, 왜 여의주를 모은 거죠?”

“그 해 겨울, 온 대륙에 있던 수십만 마리의 용들이 자취를 감추자 용 대신 날개가 달린 검은 용들이 세상에 나타났어요. 검은 용들은 온 대륙 사람들을 닥치는 대로 죽이고 잡아먹었어요. 그 용들은 진짜 용이 아니었지요. 나단이 자기 실험실에서 만들어낸 괴물이었던 거예요. 살아남은 용 사냥꾼들과 온 대륙 사람들은 검은 용들과 대항했지만 역부족이었어요. 그 괴물들이 모두 여의주를 하나씩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지요. 결국, 수많은 사람이 죽임을 당했고 순식간에 아름다웠던 온 대륙은 나단이 지배하는 검은 용들의 세상이 되었지요.”

 우돌 영감은 생각만 해도 분한지 주먹을 부르르 떨었다.

 “결국, 온 대륙에서 살아남은 마지막용은 미르와 부루뿐이었어요. 하지만, 나단의 병사들과 검은 용들이 온 대륙 전체에서 살아남은 용들을 이 잡듯 찾았기 때문에  부루와 미르를 더 이상 온 대륙에서 숨겨둘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한결 군이 살고 있는 이 세계로 오게 된 거랍니다“

“잠깐만요. 그런데 미르 말고 부루라고 불리는 용은요? 그 용은 지금 여기 있나요?”

“그게 말이죠……. 온 대륙과 이 세계를 연결하는 문을 통과하는 도중에 사고가 났어요. 검은 용들의 습격을 받게 되었거든요. 간신히 이 세계로 빠져 나왔을 때 보니 미르만이 보이고 부루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어요. 이 세계에 와서 1년이 넘도록 계속 부루를 찾아다녔지만 부루를 발견할 수 없었지요. 용들은 자석처럼 서로 끌어당기기 때문에 부루가 살아있다면 벌서 우리를 찾았겠죠. 그렇게 생각하고 싶진 않지만 부루는 그때 죽은 게 아닌가 싶어요.”

 우돌 영감은 쓸쓸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런데 최근 ‘그리’들로부터 옛 친구 가온이 보낸 편지를 한 통 받게 되었어요. 가온은 나에게 온 대륙 소식을 전해주는 유일한 친구죠. 참, 한결군은 ‘그리’라는 녀석들에 대해 알고 있나요?

“네, 그 이상한 것들 때문에 낮에 얼마나 고생 했다고요”

 한결이는 낮에 겪은 일에 대해 우돌 영감에게 이야기를 해 주었다.

“하하, 그런 일이 있었군요. ‘그리’들이 좀 장난을 잘 치긴 하지만, 그렇게 떼로 공격하는 경우는 없는데 이상하군요. 아무튼 ‘그리’란 말은 그네라는 뜻이에요. 이 세계에서 저 세계를 그네처럼 왔다 갔다 할 수 있다고 붙여진 이름이죠. 온 대륙과 이 세계를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는 많지 않은 존재 중에 하나가 바로 ‘그리’에요. 그리’들은 온 대륙과 이 세계 사이에서 우편배달부 역할을 하지요. ‘그리’들은 약속을 목숨보다 소중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편지를 정확히 전달하거든요. 뭐 ‘용들의 간식이 되기도 하고요. 여러모로 쓸모 있는 녀석들에요. "

"그래도 기분 나쁜 녀석들인 건 분명해요.”

한결이는 얼굴을 찌푸리며 혀를 쏙 내밀었다.

“뭐 기분 나쁜 모습인 건 사실이지만 ‘그리’들이 쓸모 있는 건 단지 그것만이 아니에요. ‘그리’들의 대왕”은 세상의 모든 비밀들을 알고 있어요. 그래서 대왕을 찾아가 궁금한 것은  물어보면 모든 것에 대해 대답해 주지요. 단 그 대답이 아주 어려운 수수깨끼로 되어 있어서 문제이지만요. “

“수수깨끼요?”

“네, 그래서 수수깨끼 대왕이라고도 불리지요. 나도 간신히 그 대왕의 수수께끼를 풀어서 온 대륙에서 이 세계로 올 수 있는 방법을 찾게 되었답니다.”

 한결이는 우돌 영감의 말을 들으면 들을수록 ‘그리’들이 참 이상한 놈들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얘기가 다른 길로 샜군요. 어쨌든 편지 내용은 가온이 부루와 비슷하게 생긴 용 한 마리를 봤다는 거였어요.”

“정말요? 그럼 부루가 살아있을지도 모르겠네요?”

“가서 확인해 봐야 하겠지만 그럴 가능성이 높지요. 가온 말이 요새는 검은 용들이 많이 돌아다니지 않고 나단의 병사들도 경비가 소홀해졌다고 하니 온 대륙으로 돌아가서 그 용이 진짜 부루가 틀림없다면 데리고 와야겠지요. 그래서 한결 군에게 도움을 청하게 된 거예요.”

“예? 제가 무슨 도움이 된다고요?”

“온 대륙으로 가는 문은 보름달이 뜨는 날마다 열려요. 그러니까 오늘 온 대륙으로 가게 되면 다음 보름달이 될 때 까지는 이세계로 돌아 올수 없어요. 그 15일 동안까지 미르 녀석을 돌봐줄 사람이 필요 한 거죠. 아직 위험한 온 대륙에 미르를 데려갈 수는 없거든요.”

 한결이는 미르를 처음 만났을 때 미르가 했던 말이 어떤 의미인지 이제야 알 수 있었다.

“예? 그럼 저보고 미르하고 15일간 같이 있으란 말이에요?”

“맞아요. 다음 보름날 내가 돌아와서 한결군이 삼킨 용의 비늘을 다시 토하게 하면 한결군이 지금까지 있었던 모든 일은 기억하지 못할 거예요 그럼 한결군은 다시 평범한 초등학생으로 돌아가는 거지요 아주 간단하죠? 우리 가게에서 용 튀김 메뉴가 있었던 것도 바로 그 때문이에요.”

“그럼 그 메뉴는 미르를 돌봐줄 사람을 찾기 위해서 만든 거였어요?”

“네, 용 튀김을 먹어볼 용기가 있는 사람이라면 15일간 용과 생활해도 문제가 없을 것 같았지요. 그런데 웬일인지 아무도 용 튀김을 주문하지 않더라고요.”

 한결이는 우돌영감에게 ‘당연하죠. 할아버지 얼굴을 보면 누구라도 그걸 시키고 싶지 않을 거예요’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그런데 바보같이 우리 삼총사가 와서 덜컥 주문을 한 거였군요.”

“하하, 그래요. 시간이 없는 우리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었어요. 그리고 그 중에 한결군이 선택된 거예요.”

“하지만, 왜 저죠? 전, 애완동물도 키워 본 적이 없다고요.”

 한결이는 제멋대로인대다 커다란 용을 하루도 아니고 15일간 책임지고 맡을 자신이 없었다.

“너무 걱정 말아요. 미르는 좀 개구쟁인걸 빼면 아주 착한 녀석이니까. 게다가 15일간은 미르 녀석도 한결군 말을 고분고분 따르겠다고 약속했답니다. 그리고 한결군을 고른 건 바로 미르에요.”

“네? 미르가요?”

“한결군이 처음 우리 분식집에서 용 튀김을 시켰을 때 재료가 없다고 한건 사실 미르가 주방에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다음번에 우리 분식집에 왔을 땐 미르가 자기 비늘을 주도록 허락했던 거지요.”

“처음엔 반대 했는데 왜 어젠 허락한 거죠?”

“그건 네가 세상일에 별 관심이 없어 보였기 때문이야. 날 보고도 별로 놀랄 것 같지 않고 말이야.”

미르가 어느새 잠에서 깼는지 하품을 하며 말했다.

“네가 그렇게 겁이  많은 줄 알았다면 애시 당초 비늘을 주지도 않았다고.”

미르에 말에 한결이는 처음 미르를 만날 때가 떠올라 얼굴이 빨개졌다.

“이 녀석! 깨어났으면 냉장고에 냉기나 불어넣어. 쓸데없이 한결군 괴롭히지 말고.”

우돌 영감은 미르에게 호통을 쳤지만 얼굴엔 미소가 그려졌다.

“쳇 알았다고요.”

미르는 아직 졸린 지 눈을 게슴츠레 뜨고는 어슬렁거리며 몸을 움직였다.

“사실 저 녀석, 한결군이 어제 한 아이에게 도움을 주는 것을 지켜보고 한결군을 선택한 거예요. 말은 좀 싹수없이 하지만, 속은 깊은 녀석이니까 너무 맘 상해하진 말아요.”

 우돌 영감이 웃음을 띠며 말했다. 하지만, 한결이는 15일이라는 시간동안 미르와 함께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 상상조차 하기 힘들었다. 미르를 타고 하늘을 나는 것도 재미있고 미르의 어리광도 웃으며 봐 줄만 했지만 덩치 큰 미르와 함께 생활할 것을 생각하면 걱정부터 앞섰다. 만약 분식집 주방 천정처럼 학교건물이 무너져 내린다면 그건 정말 최악일 테니까 말이다. 한결이의 걱정을 알아차렸는지 우돌 영감은 다음 말을 덧붙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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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화>  

한결이는 이럴 때 어떤 말을 꺼내야 할지 알지 못했다. 머릿속에선 뭔가 이야기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였지만 막상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우돌 영감은 말을 계속 이어갔다.

“내가 살던 곳은 온 대륙이라고 불리는 곳이에요. 그 곳은 한 마디로 지금 이 세계와는 정반대의 세계이라고 말 할 수 있지요. 그곳은 수많은 용과 괴물들 요괴와 도깨비들이 사람들과 함께 사는 곳이에요. 온 대륙이란 이름은 백 개의 강과 백 개의 산 그리고 백 개의 호수에 백 가지 꽃과 백가지 나무 그리고 백가지 요괴들이 산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에요. 그 곳은 정말 환상적이고 아름다운 곳이지요.”

 우돌 영감은 눈을 감고 잠시 생각에 잠겨 있었다.

“용 사냥꾼은 평생 동안, 용을 사냥하는 사람들에요. 온 대륙 아이들은 누구나 커서 훌륭한 용 사냥꾼이 되기를 바라지요. 온 대륙에서 가장 강하고 두려운 존재인 용을 사냥할 수 있을 만큼의 지혜와 용기를 가진 사람은 영웅으로 대접받기 때문이에요.”

 우돌 영감은 찬장 옆에 세워진 많은 막대 중에서 용이 그려져 있는 것을 하나 골라서 가져왔다.

“일단 용 사냥이 시작되면 10년 이고 20년이고 용과 사냥꾼은 힘겨루기가 시작돼요. 사냥꾼은 ‘비알’이라고 불리는 긴 나무막대 한 가지만을 가지고 용과 맞서지요.”

 우돌 영감은 용이 그려진 막대를 한결이에게 건네주었다.

“이게 바로 ‘비알’인가요?”

“네, 그래요.”

비알은 보기보다 비해 훨씬 무거웠다. 한결이는 비알을 두 손으로 간신히 들어 올렸다.

 “용 사냥꾼이 오직 ‘비알’만을 가지고 용과 대결하기 때문에 용도 사냥꾼에게 여의주를 사용하지 않아요. 순수하게 힘과 지혜만을 겨루는 거지요. 그래서 어느 누구도 이 대결에 간섭하거나 끼어들 수 없어요. 그렇게 둘 만의 대결은 10년이고 20년이고 계속되지요 사냥꾼이 용 사냥을 포기하든지 아니면 용이 자신의 패배를 인정할 때까지 말이에요. 하지만, 그 결과는 거의 용의 승리로 끝나게 돼요.”

 “그럼, 용 사냥꾼들 중에는 평생, 용을 사냥을 성공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겠네요?”

 한결이는 용 사냥꾼들이 불가능한 일에  목숨을 거는 바보 같은 사람처럼 보였다.

“네 하지만, 용 사냥꾼들은 용과 대결하는 것 자체만으로 명예로운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만약 정말 운이 좋아 용 사냥꾼이 이기게 된다면 사냥꾼은 용의 여의주를 차지하게 되고 여의주를 빼앗긴 용은 죽게 돼지요.”

“그럼 미르의 부모님도 그렇게 죽은 건가요?”

“아니요, 용과 사냥꾼의 대결은 둘 다 명예를 건 싸움이기 때문에 그 결과에 대해서 용이건 사람이건 원망을 하거나 복수를 하려고 하진 않아요. 이것은 용과 사냥꾼 사이에 맺어진 오랜 약속 같은 것이지요. 그런데 어느 날 온 대륙에 있어서는 안 될 물건이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어요.”

“있어서는 안 될 물건이요?”
“그래요, 그건 바로 총이었어요.”

우돌 영감의 표정은 더욱 어두워졌다.

“어느 날 온 대륙에는 용 사냥을 시작한지 삼일 만에 용의 여의주를 차지한 ‘나단’이라는 용 사냥꾼 이야기로 떠들썩했어요. 평생 걸려도 성공하기 어려운 용 사냥을 삼 일만에 해냈으니 그는 온 대륙 전체에 영웅이 된 것이지요. 다른 용 사냥꾼들은 어떻게 하면 나단 같은 지혜와 용기가 생기는지 알기 위해 그를 찾아 갔어요. 그때까지 나는 나단의 이야기가 단지 뜬소문일 거라고 생각했지요.”

 “그런데 그 이후부터 용 사냥꾼들이 사냥에 성공하는 일이 점점 늘어나기 시작했어요. 지난 100년 동안 한 번도 용 사냥이 성공하지 못했는데 이제는 1년의 서너 차례나 용 사냥꾼들이 여의주를 차지하게 되었지요. 이건 뭔가 이상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걸 말하는 것이었어요. 그래서 난 용 사냥을 성공한 사냥꾼들을 찾아갔어요. 하지만, 그 사람들은 입을 굳게 다물었지요.”

“뭔가 말 못할 비밀이 있어나 보군요.”

“그래요, 저는 수 십 번 용 사냥꾼을 찾아다니며 수소문한 끝에 용 사냥꾼들이 나단에게 빌린 ‘비알’을 가지고 용 사냥을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

“그럼 할아버지도 나단을 찾아가게 되었나요?”

“그래요, 나단이 살고 있다는 철로 된 성을 찾아갔지요. 그런데 그 성 안에는 온 대륙에서는 한 번도 본적이 없는 물건들로 가득했어요. 나단은 다른 세계에서 온 사람이 분명했지요.”

“나단은 나를 웃으며 반겨 주었고 나를 위해서 자신의 비알을 빌려주겠다고 했어요. 나단의 ‘비알’은 천둥소리를 내며 은색 납덩이를 쏠 수 있었어요.”

“그. 그게 바로 총 이었군요”

“그래요. 나는 그게 용과의 약속을 깨는 짓이라는 걸 알았지만 차마 나단이 쥐어주는 총을 거부할 수 없었어요.”

 우돌 영감은 화난 표정이었다. 그것은 바로 자신에게 화를 내는 것이었다.

“용 사냥꾼은 용과의 대결을 평생의 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에요. 그래서 한평생 용 한 마리를 잡지 못해도 용 사냥꾼의 긍지를 가지고 살아가야 해요. 하지만, 그만큼 고통과 괴로움을 이겨내야 하는 일이기도 하죠. 긍지와 자부심보다 영웅으로 살고 싶다는 욕심이 앞섰던 바보 같은 청년은 결국, 용 사냥꾼이 된지 5년도 안 되서 ‘비알’을 팽개치고는 총을 들게 되었던 거예요.”

 우돌 영감은 괴로운 듯 고개를 숙였다.

“미르의 부모였던 초록 빛 용은 정말 아름답고 훌륭한 용이었어요. 내가 총이 아니라 대포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쉽게 잡을 수 있는 용이 아니었지요.  나는 수 십일을 용을 쫓고  총을 쏴 대었지만 쉽게 용을 잡을 수 없었어요. 그렇게 고생고생을 하며 용을 쫓다가 용의 둥지에 가서야 나는 초록 빛 용과 정면으로 마주할 수 있었어요.”

 우돌 영감의 눈에는 소리 없이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웬일인지 용은 아무 움직임이 없었지요. 대신 슬픈 눈으로 날 쳐다보았어요. 그때 그 눈빛을 알아차릴 수 있었어도 난 그를 쏘지 않았을 거예요.”

 “할아버지…….”

“용의 둥지에서 새끼용 두 마리를 발견하고서야 나는 그 눈빛의 의미를 알아차릴 수 있었어요. 그 녀석들을 본 순간 내 머리는 머리가 텅 빈 것 같았지요.”

 우돌 영감은 팔꿈치로 눈물을 쓱 닦았다.

“그때부터 난 용 사냥꾼 일을 그만 두었어요. 그리고 아무도 몰래 두 마리 용 미르와 부루를 키워왔어요,”

“미르도 그 사실을 알고 있나요?”

“아니요, 차마 녀석에게 말할 수 없었어요. 난, 참 나쁜 어른이지요? 어른들은 아이들보다 훨씬 쉽게 유혹에 넘어가지요. 그리고 진실을 밝히거나 사과하는 것도 아이들보다 더 서툴러요. 그래서 계속 미루고 있지요. 미르 녀석이 더 크면 더 커서 정말 강하고 멋진 용이 되면 그때 가서 알려 주려고요. 그땐 어느 정도 미르의 빚을 갚아줄 용기가 생길 것 같아요”

 한결이는 아무 말을 못하고 우돌 영감의 슬픈 눈을 바라보았다. 한결이도 우돌 영감도 한동안 그렇게 아무 말을 할 수 없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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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회> 

“콜록 콜록! 네 이 녀석! 도대체 몇 번을 이야기해야 하니?” 
 

한결이가 정신을 차린 곳은 "용 분식집" 주방이었다. 지붕을 뚫고 떨어져 내려온 탓에 아직도 여기저기 부서진 기왓장 조각들이 우르르 떨어지는 소리와 뿌연 먼지가 사방에 자욱했다. 그렇지만 분식집주인 할아버지가 큰 소리로 화를 내는 목소리는 똑똑히 들려왔다.

“지붕은 네 출입문이 아니야. 너도 다른 사람처럼 문을 이용해야 해! 문을!”

“나도 알고 있어요. 영감!  하지만, 너무 귀찮단 말이에요.”

건성건성 대답하는 미르의 목소리도 들려왔다. 한결이는 그 목소리에 피식 웃음이 났다.

“네 몸은 마음대로 늘이고 줄일 수 있잖아. 그게 뭐가 귀찮단 말이니?”

 할아버지는 아주 화가 단단히 난 모양이었다. 한결이가 보기에도 두 사람은 이런 승강이를 여러 차례 벌인 것 같아 보였다.

“하지만, 조그맣게 된 용을 누가 무서워하겠어요. 강한용은 우선 몸짓부터 커야 한다고요.”

미르가 볼멘소리를 했다. 하지만, 할아버지의 잔소리는 끝이 나지 않았다. 뿌옇게 피어오른 먼지가 차츰 걷히자 "용 분식집" 주방의 윤곽도 서서히 드러났다.

‘와! 이건 주방이 아니라 커다란 운동장 같잖아!’

 한결이는 "용 분식집" 주방의 어마어마한 크기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밖에서 볼 때는 작은 분식집인데 속 에는 커다란 공간을 있다는 것은 아마 한결이 말고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게 분명했다. 원형으로 만들어진 주방에는 아름다운 문양이 그려진 창문들이 햇살을 비추고 있었고 사방을 횃불들이 밝히고 있었다. 부엌 벽면은 푸른빛과 붉은 빛이 나는 사람 크기 보다 더 큰 찬장과 서랍들이 빙 둘러서 있었고 그 위에는 작은 것에서 어린아이 크기만 한 것까지, 작은 포크에서 용도를 알 수 없는 커다란 솥단지까지 각종 요리도구들이 걸려 있었다.

‘야 여기 정말 굉장하다!’

 한결이는 놀란 눈으로 주방 이 곳 저 곳을 살피다가 주인 할아버지의 얼굴이 보고는 웃음이 터져 나오려는 걸 간신히 참았다. 머리와 수염에 쌓인 먼지 덕분의 할아버지가 마치 산타클로스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쳇, 부서진 건 여의주로 원래대로 바꾸어 놓으면 되잖아요. 뭐!”

 미르는 주인 할아버지가 화를 내건 말건 상관없다는 듯이 후룩! 냉기를 내뿜으며 말했다.

 “저 할아버지…….” 
 “여의주 함부로 쓰면 네 수명이 줄어든다는 거 몰라?”

 주인 할아버지는 더 화가 났는지 얼굴이 무시무시하게 변했고 한결이의 말은 귀에 들리지 않는 것 같았다. 한결이는 둘 사이에서 어찌할 바를 몰라 미르와 할아버지 사이를 번갈아 볼 뿐이었다.

“네, 네. 알고 있다고요. 이제 그만 좀 해요 영감.”
“이 녀석이!  내 말 안 들으면 평생 후회 할 거…….”

하지만, 할아버지는 더 이상 말을 하지 못했다. 미르가 할아버지에게 ‘후욱’하고 냉기를 뿜었기 때문이었다. 할아버지는 마치 정지된 텔레비전 화면처럼 그대로 얼어붙어 버렸다.

“난 정말 잔소리가 딱 질색이야.”

 미르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다 놀란 눈으로 바라보는 한결이에게 말했다.

“괜찮아. 5분이면 땡 하고 풀릴 거야. 그 사이에 우린 저 지붕이나 고치자.”

 말을 마치자마자 미르의 입 속에서 푸른 빛 광채가 나기 시작했다. 한결이는 그 빛이 너무나 눈부셔 마치 태양을 쳐다보는 것 같았다. 푸른빛은 점점 퍼지면서 분식집 부엌 전체를 감쌌다. 그리고 그 순간 부셔진 기왓장들과 벽돌들이 일제히 공중에 떠올랐다.

 “번쩍!”

 마치 카메라 플래시가 터지는 것 같은 푸른 섬광이 빛나고 나자 어느새 기왓장 조각도 뿌연 먼지도 보이지 않았다. 보이는 건 깨끗이 정돈된 부엌과 화난 얼굴 그대로 서 있는 할아버지의 모습뿐이었다.

“봐! 아주 간단하잖아.”
“와! 방금 푸른빛이 난 게 여의주야?”
“응. 멋지지? 이런 일은 수천 번 해도 여의주의 힘이 닳진 않는단 말이야. 영감은 괜히 걱정이라니까”

미르가 한결이에게 큰 머리를 흔들며 으스대듯  말했다.

“사실 영감이 저렇게 화내는 건 순전히 자기 머리카락 때문이야. 내가 부엌을 어지럽힐 때마다 영감은 몇 개 안되는 머리카락이 빠지지 않았나 하고 거울 앞에서 언제나 머리카락 숫자를 세곤 해 우습지? 머리카락을 센다고 머리카락이 더 많아지는 것도 아닌데 .”

 미르는 짓궂은 표정을 지으며 얼어붙은 할아버지 앞을 왔다 갔다 했다. 그때였다.

“쨍”
“에에 취”

얼음조각이 깨지는 소리가 났다. 그리고 동시에 할아버지가 크게 재채기를 했다. 얼었던 몸이 드디어 풀린 것이었다.

“이 녀석 또 날 냉동시킨 거냐? 너란 녀석은 정말…….”

“영감, 잔소리 또 하면 다시 얼려 버릴 거예요. 그리고 난 이제 졸린단 말이에요. 한결이도 데리고 왔으니, 후암! 난 좀 잘래요.”

 미르의 말처럼 미르의 눈은 어느새 반쯤 감겨 있었다. 방금 전까지 팔팔하던 미르가 어느 순간 축 늘어지는 걸 보니 한결이는 신기하기만 했다.

“녀석, 말썽이란 말썽은 다 피우니까 피곤한 거야.”
“드르렁 쿨쿨”

 미르의 코고는 소리가 부엌 전체에 울려 퍼졌다.

“쳇, 벌써 골아 떨어졌네. 하긴 아직 아기용이니까. 금세 피곤하겠지.”

할아버지는 잠이 든 미르를 보며 쓴 웃음을 지었다.

“저, 할아버지!”
“이런, 미르 녀석하고 승강이를 벌이다 보니 한결 군을 그냥 세워두고 말았군요. 여기 앉아요. 앉아. 내가 따끈한 코코아라도 한잔 드릴 테니까.”
“아니 괜찮아요. 그런데…….”
“아, 한결군이 묻고 싶은 게 많은 거라는 건 이미 알고 있어요. 아직 보름달이 뜨려면 시간이 충분하고 미르 녀석도 한 잠 자야 하니까. 자, 하나씩 천천히 물어보세요.”

 할아버지는 의자에 걸터앉으며 미소를 띤 얼굴로 한결이를 바라보았다. 한결이는 궁금한 게 너무 많았지만 사실 뭘 먼저 이야기해야 할지 몰랐다.

“조, 좋아요. 그럼 먼저 할아버지 정체가 뭐죠? 사람인가요? 아니면 요괴인가요?”
“하하, 재미있는 질문이네요 내 이름은 우돌이에요. 그래서 미르 녀석이 우돌 영감으로 부르죠. 그리고 난 이 세계 사람은 아니지만 사람이 분명해요. 이 세계로 오기 이전에 내 직업은 사냥꾼이었고요.”
“사냥꾼이요?”
“그래요. 용 사냥꾼.”
“네? 그럼 미르는 할아버지가 사로잡은 용인가요?”
“아니요, 미르와 함께 살면서 난 용 사냥꾼 일을 그만 두었어요. 난 미르에게 갚아야할 빚이 있거든요.”

 우돌 영감은 쿨쿨 자고 있는 미르를 슬쩍 바라보았다.

“미르에게 빚을 졌다고요?”
“그래요. 그건 평생 갚아도 갚을 수 없는 빚이지요.” 
 

우돌 영감의 눈가에 이슬이 맺혔다. 한결이는 자기도 모르게 침을 꼴깍 삼켰다.

“내가……. 미르의 부모를 죽였거든요.”

당황한 한결이는 아무 말도 못하고 우돌 영감과 미르를 번갈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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