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회> 

“콜록 콜록! 네 이 녀석! 도대체 몇 번을 이야기해야 하니?” 
 

한결이가 정신을 차린 곳은 "용 분식집" 주방이었다. 지붕을 뚫고 떨어져 내려온 탓에 아직도 여기저기 부서진 기왓장 조각들이 우르르 떨어지는 소리와 뿌연 먼지가 사방에 자욱했다. 그렇지만 분식집주인 할아버지가 큰 소리로 화를 내는 목소리는 똑똑히 들려왔다.

“지붕은 네 출입문이 아니야. 너도 다른 사람처럼 문을 이용해야 해! 문을!”

“나도 알고 있어요. 영감!  하지만, 너무 귀찮단 말이에요.”

건성건성 대답하는 미르의 목소리도 들려왔다. 한결이는 그 목소리에 피식 웃음이 났다.

“네 몸은 마음대로 늘이고 줄일 수 있잖아. 그게 뭐가 귀찮단 말이니?”

 할아버지는 아주 화가 단단히 난 모양이었다. 한결이가 보기에도 두 사람은 이런 승강이를 여러 차례 벌인 것 같아 보였다.

“하지만, 조그맣게 된 용을 누가 무서워하겠어요. 강한용은 우선 몸짓부터 커야 한다고요.”

미르가 볼멘소리를 했다. 하지만, 할아버지의 잔소리는 끝이 나지 않았다. 뿌옇게 피어오른 먼지가 차츰 걷히자 "용 분식집" 주방의 윤곽도 서서히 드러났다.

‘와! 이건 주방이 아니라 커다란 운동장 같잖아!’

 한결이는 "용 분식집" 주방의 어마어마한 크기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밖에서 볼 때는 작은 분식집인데 속 에는 커다란 공간을 있다는 것은 아마 한결이 말고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게 분명했다. 원형으로 만들어진 주방에는 아름다운 문양이 그려진 창문들이 햇살을 비추고 있었고 사방을 횃불들이 밝히고 있었다. 부엌 벽면은 푸른빛과 붉은 빛이 나는 사람 크기 보다 더 큰 찬장과 서랍들이 빙 둘러서 있었고 그 위에는 작은 것에서 어린아이 크기만 한 것까지, 작은 포크에서 용도를 알 수 없는 커다란 솥단지까지 각종 요리도구들이 걸려 있었다.

‘야 여기 정말 굉장하다!’

 한결이는 놀란 눈으로 주방 이 곳 저 곳을 살피다가 주인 할아버지의 얼굴이 보고는 웃음이 터져 나오려는 걸 간신히 참았다. 머리와 수염에 쌓인 먼지 덕분의 할아버지가 마치 산타클로스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쳇, 부서진 건 여의주로 원래대로 바꾸어 놓으면 되잖아요. 뭐!”

 미르는 주인 할아버지가 화를 내건 말건 상관없다는 듯이 후룩! 냉기를 내뿜으며 말했다.

 “저 할아버지…….” 
 “여의주 함부로 쓰면 네 수명이 줄어든다는 거 몰라?”

 주인 할아버지는 더 화가 났는지 얼굴이 무시무시하게 변했고 한결이의 말은 귀에 들리지 않는 것 같았다. 한결이는 둘 사이에서 어찌할 바를 몰라 미르와 할아버지 사이를 번갈아 볼 뿐이었다.

“네, 네. 알고 있다고요. 이제 그만 좀 해요 영감.”
“이 녀석이!  내 말 안 들으면 평생 후회 할 거…….”

하지만, 할아버지는 더 이상 말을 하지 못했다. 미르가 할아버지에게 ‘후욱’하고 냉기를 뿜었기 때문이었다. 할아버지는 마치 정지된 텔레비전 화면처럼 그대로 얼어붙어 버렸다.

“난 정말 잔소리가 딱 질색이야.”

 미르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다 놀란 눈으로 바라보는 한결이에게 말했다.

“괜찮아. 5분이면 땡 하고 풀릴 거야. 그 사이에 우린 저 지붕이나 고치자.”

 말을 마치자마자 미르의 입 속에서 푸른 빛 광채가 나기 시작했다. 한결이는 그 빛이 너무나 눈부셔 마치 태양을 쳐다보는 것 같았다. 푸른빛은 점점 퍼지면서 분식집 부엌 전체를 감쌌다. 그리고 그 순간 부셔진 기왓장들과 벽돌들이 일제히 공중에 떠올랐다.

 “번쩍!”

 마치 카메라 플래시가 터지는 것 같은 푸른 섬광이 빛나고 나자 어느새 기왓장 조각도 뿌연 먼지도 보이지 않았다. 보이는 건 깨끗이 정돈된 부엌과 화난 얼굴 그대로 서 있는 할아버지의 모습뿐이었다.

“봐! 아주 간단하잖아.”
“와! 방금 푸른빛이 난 게 여의주야?”
“응. 멋지지? 이런 일은 수천 번 해도 여의주의 힘이 닳진 않는단 말이야. 영감은 괜히 걱정이라니까”

미르가 한결이에게 큰 머리를 흔들며 으스대듯  말했다.

“사실 영감이 저렇게 화내는 건 순전히 자기 머리카락 때문이야. 내가 부엌을 어지럽힐 때마다 영감은 몇 개 안되는 머리카락이 빠지지 않았나 하고 거울 앞에서 언제나 머리카락 숫자를 세곤 해 우습지? 머리카락을 센다고 머리카락이 더 많아지는 것도 아닌데 .”

 미르는 짓궂은 표정을 지으며 얼어붙은 할아버지 앞을 왔다 갔다 했다. 그때였다.

“쨍”
“에에 취”

얼음조각이 깨지는 소리가 났다. 그리고 동시에 할아버지가 크게 재채기를 했다. 얼었던 몸이 드디어 풀린 것이었다.

“이 녀석 또 날 냉동시킨 거냐? 너란 녀석은 정말…….”

“영감, 잔소리 또 하면 다시 얼려 버릴 거예요. 그리고 난 이제 졸린단 말이에요. 한결이도 데리고 왔으니, 후암! 난 좀 잘래요.”

 미르의 말처럼 미르의 눈은 어느새 반쯤 감겨 있었다. 방금 전까지 팔팔하던 미르가 어느 순간 축 늘어지는 걸 보니 한결이는 신기하기만 했다.

“녀석, 말썽이란 말썽은 다 피우니까 피곤한 거야.”
“드르렁 쿨쿨”

 미르의 코고는 소리가 부엌 전체에 울려 퍼졌다.

“쳇, 벌써 골아 떨어졌네. 하긴 아직 아기용이니까. 금세 피곤하겠지.”

할아버지는 잠이 든 미르를 보며 쓴 웃음을 지었다.

“저, 할아버지!”
“이런, 미르 녀석하고 승강이를 벌이다 보니 한결 군을 그냥 세워두고 말았군요. 여기 앉아요. 앉아. 내가 따끈한 코코아라도 한잔 드릴 테니까.”
“아니 괜찮아요. 그런데…….”
“아, 한결군이 묻고 싶은 게 많은 거라는 건 이미 알고 있어요. 아직 보름달이 뜨려면 시간이 충분하고 미르 녀석도 한 잠 자야 하니까. 자, 하나씩 천천히 물어보세요.”

 할아버지는 의자에 걸터앉으며 미소를 띤 얼굴로 한결이를 바라보았다. 한결이는 궁금한 게 너무 많았지만 사실 뭘 먼저 이야기해야 할지 몰랐다.

“조, 좋아요. 그럼 먼저 할아버지 정체가 뭐죠? 사람인가요? 아니면 요괴인가요?”
“하하, 재미있는 질문이네요 내 이름은 우돌이에요. 그래서 미르 녀석이 우돌 영감으로 부르죠. 그리고 난 이 세계 사람은 아니지만 사람이 분명해요. 이 세계로 오기 이전에 내 직업은 사냥꾼이었고요.”
“사냥꾼이요?”
“그래요. 용 사냥꾼.”
“네? 그럼 미르는 할아버지가 사로잡은 용인가요?”
“아니요, 미르와 함께 살면서 난 용 사냥꾼 일을 그만 두었어요. 난 미르에게 갚아야할 빚이 있거든요.”

 우돌 영감은 쿨쿨 자고 있는 미르를 슬쩍 바라보았다.

“미르에게 빚을 졌다고요?”
“그래요. 그건 평생 갚아도 갚을 수 없는 빚이지요.” 
 

우돌 영감의 눈가에 이슬이 맺혔다. 한결이는 자기도 모르게 침을 꼴깍 삼켰다.

“내가……. 미르의 부모를 죽였거든요.”

당황한 한결이는 아무 말도 못하고 우돌 영감과 미르를 번갈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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