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  

한결이는 이럴 때 어떤 말을 꺼내야 할지 알지 못했다. 머릿속에선 뭔가 이야기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였지만 막상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우돌 영감은 말을 계속 이어갔다.

“내가 살던 곳은 온 대륙이라고 불리는 곳이에요. 그 곳은 한 마디로 지금 이 세계와는 정반대의 세계이라고 말 할 수 있지요. 그곳은 수많은 용과 괴물들 요괴와 도깨비들이 사람들과 함께 사는 곳이에요. 온 대륙이란 이름은 백 개의 강과 백 개의 산 그리고 백 개의 호수에 백 가지 꽃과 백가지 나무 그리고 백가지 요괴들이 산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에요. 그 곳은 정말 환상적이고 아름다운 곳이지요.”

 우돌 영감은 눈을 감고 잠시 생각에 잠겨 있었다.

“용 사냥꾼은 평생 동안, 용을 사냥하는 사람들에요. 온 대륙 아이들은 누구나 커서 훌륭한 용 사냥꾼이 되기를 바라지요. 온 대륙에서 가장 강하고 두려운 존재인 용을 사냥할 수 있을 만큼의 지혜와 용기를 가진 사람은 영웅으로 대접받기 때문이에요.”

 우돌 영감은 찬장 옆에 세워진 많은 막대 중에서 용이 그려져 있는 것을 하나 골라서 가져왔다.

“일단 용 사냥이 시작되면 10년 이고 20년이고 용과 사냥꾼은 힘겨루기가 시작돼요. 사냥꾼은 ‘비알’이라고 불리는 긴 나무막대 한 가지만을 가지고 용과 맞서지요.”

 우돌 영감은 용이 그려진 막대를 한결이에게 건네주었다.

“이게 바로 ‘비알’인가요?”

“네, 그래요.”

비알은 보기보다 비해 훨씬 무거웠다. 한결이는 비알을 두 손으로 간신히 들어 올렸다.

 “용 사냥꾼이 오직 ‘비알’만을 가지고 용과 대결하기 때문에 용도 사냥꾼에게 여의주를 사용하지 않아요. 순수하게 힘과 지혜만을 겨루는 거지요. 그래서 어느 누구도 이 대결에 간섭하거나 끼어들 수 없어요. 그렇게 둘 만의 대결은 10년이고 20년이고 계속되지요 사냥꾼이 용 사냥을 포기하든지 아니면 용이 자신의 패배를 인정할 때까지 말이에요. 하지만, 그 결과는 거의 용의 승리로 끝나게 돼요.”

 “그럼, 용 사냥꾼들 중에는 평생, 용을 사냥을 성공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겠네요?”

 한결이는 용 사냥꾼들이 불가능한 일에  목숨을 거는 바보 같은 사람처럼 보였다.

“네 하지만, 용 사냥꾼들은 용과 대결하는 것 자체만으로 명예로운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만약 정말 운이 좋아 용 사냥꾼이 이기게 된다면 사냥꾼은 용의 여의주를 차지하게 되고 여의주를 빼앗긴 용은 죽게 돼지요.”

“그럼 미르의 부모님도 그렇게 죽은 건가요?”

“아니요, 용과 사냥꾼의 대결은 둘 다 명예를 건 싸움이기 때문에 그 결과에 대해서 용이건 사람이건 원망을 하거나 복수를 하려고 하진 않아요. 이것은 용과 사냥꾼 사이에 맺어진 오랜 약속 같은 것이지요. 그런데 어느 날 온 대륙에 있어서는 안 될 물건이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어요.”

“있어서는 안 될 물건이요?”
“그래요, 그건 바로 총이었어요.”

우돌 영감의 표정은 더욱 어두워졌다.

“어느 날 온 대륙에는 용 사냥을 시작한지 삼일 만에 용의 여의주를 차지한 ‘나단’이라는 용 사냥꾼 이야기로 떠들썩했어요. 평생 걸려도 성공하기 어려운 용 사냥을 삼 일만에 해냈으니 그는 온 대륙 전체에 영웅이 된 것이지요. 다른 용 사냥꾼들은 어떻게 하면 나단 같은 지혜와 용기가 생기는지 알기 위해 그를 찾아 갔어요. 그때까지 나는 나단의 이야기가 단지 뜬소문일 거라고 생각했지요.”

 “그런데 그 이후부터 용 사냥꾼들이 사냥에 성공하는 일이 점점 늘어나기 시작했어요. 지난 100년 동안 한 번도 용 사냥이 성공하지 못했는데 이제는 1년의 서너 차례나 용 사냥꾼들이 여의주를 차지하게 되었지요. 이건 뭔가 이상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걸 말하는 것이었어요. 그래서 난 용 사냥을 성공한 사냥꾼들을 찾아갔어요. 하지만, 그 사람들은 입을 굳게 다물었지요.”

“뭔가 말 못할 비밀이 있어나 보군요.”

“그래요, 저는 수 십 번 용 사냥꾼을 찾아다니며 수소문한 끝에 용 사냥꾼들이 나단에게 빌린 ‘비알’을 가지고 용 사냥을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

“그럼 할아버지도 나단을 찾아가게 되었나요?”

“그래요, 나단이 살고 있다는 철로 된 성을 찾아갔지요. 그런데 그 성 안에는 온 대륙에서는 한 번도 본적이 없는 물건들로 가득했어요. 나단은 다른 세계에서 온 사람이 분명했지요.”

“나단은 나를 웃으며 반겨 주었고 나를 위해서 자신의 비알을 빌려주겠다고 했어요. 나단의 ‘비알’은 천둥소리를 내며 은색 납덩이를 쏠 수 있었어요.”

“그. 그게 바로 총 이었군요”

“그래요. 나는 그게 용과의 약속을 깨는 짓이라는 걸 알았지만 차마 나단이 쥐어주는 총을 거부할 수 없었어요.”

 우돌 영감은 화난 표정이었다. 그것은 바로 자신에게 화를 내는 것이었다.

“용 사냥꾼은 용과의 대결을 평생의 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에요. 그래서 한평생 용 한 마리를 잡지 못해도 용 사냥꾼의 긍지를 가지고 살아가야 해요. 하지만, 그만큼 고통과 괴로움을 이겨내야 하는 일이기도 하죠. 긍지와 자부심보다 영웅으로 살고 싶다는 욕심이 앞섰던 바보 같은 청년은 결국, 용 사냥꾼이 된지 5년도 안 되서 ‘비알’을 팽개치고는 총을 들게 되었던 거예요.”

 우돌 영감은 괴로운 듯 고개를 숙였다.

“미르의 부모였던 초록 빛 용은 정말 아름답고 훌륭한 용이었어요. 내가 총이 아니라 대포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쉽게 잡을 수 있는 용이 아니었지요.  나는 수 십일을 용을 쫓고  총을 쏴 대었지만 쉽게 용을 잡을 수 없었어요. 그렇게 고생고생을 하며 용을 쫓다가 용의 둥지에 가서야 나는 초록 빛 용과 정면으로 마주할 수 있었어요.”

 우돌 영감의 눈에는 소리 없이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웬일인지 용은 아무 움직임이 없었지요. 대신 슬픈 눈으로 날 쳐다보았어요. 그때 그 눈빛을 알아차릴 수 있었어도 난 그를 쏘지 않았을 거예요.”

 “할아버지…….”

“용의 둥지에서 새끼용 두 마리를 발견하고서야 나는 그 눈빛의 의미를 알아차릴 수 있었어요. 그 녀석들을 본 순간 내 머리는 머리가 텅 빈 것 같았지요.”

 우돌 영감은 팔꿈치로 눈물을 쓱 닦았다.

“그때부터 난 용 사냥꾼 일을 그만 두었어요. 그리고 아무도 몰래 두 마리 용 미르와 부루를 키워왔어요,”

“미르도 그 사실을 알고 있나요?”

“아니요, 차마 녀석에게 말할 수 없었어요. 난, 참 나쁜 어른이지요? 어른들은 아이들보다 훨씬 쉽게 유혹에 넘어가지요. 그리고 진실을 밝히거나 사과하는 것도 아이들보다 더 서툴러요. 그래서 계속 미루고 있지요. 미르 녀석이 더 크면 더 커서 정말 강하고 멋진 용이 되면 그때 가서 알려 주려고요. 그땐 어느 정도 미르의 빚을 갚아줄 용기가 생길 것 같아요”

 한결이는 아무 말을 못하고 우돌 영감의 슬픈 눈을 바라보았다. 한결이도 우돌 영감도 한동안 그렇게 아무 말을 할 수 없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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